소설리스트

남주는 내가 차지한다-12화 (12/124)

# 12

‘준비는 끝났고.’

자연스럽게 발을 밟는 연습을 줄기차게 했다. 그놈은 오늘 발이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고 이안이 들어왔다. 변신한 딸을 보고 이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파란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잘 어울렸다. 딸의 외모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움직이자 귀걸이가 달랑거렸다. 그녀의 목걸이에 맞추어 파란 다이아몬드로 만든 귀걸이였다.

“아름답구나.”

“아버지도 참.”

그녀는 얼른 다가가 이안의 팔에 팔짱을 꼈다.

“아버지도 오늘 멋져요.”

오늘 이안과 같이 황궁에 가게 된다. 이안도 황태자의 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저번에 티타임에 참석한 아가씨들은 모두 다 초대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황태자가 춤을 출 또 다른 아가씨들 역시 정해졌다. 자신만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여러 명 골라 춤을 추기로 했다고 했다. 물론 처음 그와 춤을 추는 건 자신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아리스는 마차에 올랐다. 루진은 다음 마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

“황궁에 가서 비올레와 같이 있을 거예요.”

“에셀 영애와 말이냐?”

“네.”

황태자와 춤을 추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겠지.

비올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 * *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벽에는 아름다운 명화가 걸려 있고,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화려한 홀에 초대받은 귀족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보통 나라에 큰 연회가 있을 때 사용되는 이 홀에서 황태자의 성년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직 주인인 황태자는 오지 않았다. 이엘이 도착하지 않은 걸 알아차린 아리스는 이안과 함께 연회장을 걸었다. 눈에 익은 아가씨들이 보였다. 이전에 티타임으로 서로 얼굴을 익힌 상태였다.

‘나한테 관심을 가지네.’

다들 아리스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파란 다이아몬드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오늘 그녀가 황태자와 첫 춤을 출 거란 사실 때문에 주목을 더 받았다.

“모두 아가씨만 바라봐요.”

“응.”

루진은 뿌듯해했다. 여자들의 시선도 느껴지지만 남자들의 시선도 느껴진 것이다. 아리스는 스스로 굉장히 아름답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수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가씨 중 하나였다.

화려한 느낌은 없지만 소소하게 사람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루진은 아가씨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녀는 아가씨를 열심히 꾸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그리고 곧이어 비올레와 루이슨이 무도회장에 들어왔다. 비올레 뒤에는 그녀를 모시는 시녀인 안테도 있었다.

안테는 눈을 번뜩이며 아리스를 보고 루진을 보았다. 루진은 비올레를 보고 안테를 보았다. 비올레와 아리스 둘 다 아름다웠다. 드레스, 장신구, 거기에 악세사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목걸이에서 비올레가 조금 밀렸다.

‘이런.’

안테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런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는 흔하지 않은 거다. 그에 비해 비올레는 아름답긴 하지만 임팩트가 없는 목걸이를 했다.

‘졌군.’

하지만 다음에는 이기고야 말리라. 안테는 전의를 불태웠다.

‘간신히 이겼군.’

루진은 어제 목걸이를 준 후작이 고마웠다. 이걸로 아가씨를 비올레 영애보다 더 눈에 띄게 꾸몄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비올레를 모시는 시녀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인정할 만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그 생각을 하는 것은 안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바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았다.

* * *

“아, 나는 오늘도 아름답군.”

이엘은 자신의 외모를 보고 감탄했다. 그 옆에 시종이 거들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아가씨들이 나를 위해 치장을 했겠군.”

“물론입니다.”

시종은 혀에 버터를 바른 것처럼 아부를 했다. 그의 말이 너무나도 듣기 좋아 이엘은 가만히 있었다.

“좋아, 가자.”

드디어 오늘 주인공이 나설 차례다. 그는 천천히 걸어 사자궁을 나왔다. 연회장까지는 별로 멀지 않지만 그래도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그런데 왜 편지가 안 왔지.”

“편지요?”

“에셀 영애 말이야.”

다른 영애들은 모두 다 티타임에 참석했다. 아름답게 차려입고. 그런데 비올레만 오지 않았다. 모두 자신에게 편지를 하겠다고 했고 편지지를 고급스럽게 싸서 보내 주었다. 그런데 비올레만은 보내지 않았다.

“아프다는 연락만 하고.”

“전하.”

“나를 남자로 보는 게 분명한데.”

비올레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어려도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외모가 빼어났다. 특히 그녀처럼 아름다운 금발은 처음 보았다.

“아직 어려서 표현할 줄 모르는 겁니다.”

시종의 말에 이엘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렇겠지?”

“물론입니다.”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했는데.

“으흠.”

이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올레를 생각하니 오늘 춤을 출 아리스가 떠올랐다.

호리슨 영애처럼 자기 주관이 또렷한 여자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귀찮지.’

그런 여자는 친구로 두는 게 낫다.

마차에서 내린 그는 천천히 홀로 걸어갔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나설 차례였다.

* * *

이엘이 무도회장에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아가씨들과 기타 귀족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혼자 입장했다. 금처럼 고운 금발을 늘어뜨리고 파란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잘생기긴 잘생겼어.’

아리스는 그리 생각하며 음료수를 입에 넣었다. 루진이 음료수을 마시는 건 허락했기 때문이다. 비올레 역시 시녀의 허락을 받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이엘이 다가오자 영애들이 모두 그의 곁으로 갔다. 가만있어도 화려한 남자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보고 이엘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했다.

그가 모여든 아가씨들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

“그래.”

황태자가 왔으니 인사를 하러 가야 한다. 비올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엘에게 티타임 때 시달린 게 생각난 것이다.

“비올레, 가지요.”

“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살 수는 없다. 황태자는 미래의 황제였다. 그리고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 건 당연한 예의였다.

아리스와 비올레는 내키지 않지만 천천히 이엘에게 걸어갔다.

“오.”

이엘이 비올레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거렸다. 오늘도 아리스와 비올레는 같이 붙어 있었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비올레와 아리스가 인사했다. 그 뒤로 이안과 루이슨이 인사를 했다.

“고맙군.”

황태자에게 인사를 한 후 그들은 곧장 물러났다. 다른 이들이 몰려와 이엘과 인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기에 루이슨과 이안을 오래 상대할 수 없었다. 비올레와 아리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기애가 가득한 황자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황제의 등장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그는 먼저 연회장에 도착한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황태자,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주셀은 이엘의 옆에 서서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연회를 즐기시길.”

주셀에게 인사를 하러 다들 모여들었다. 고위 귀족들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이안과 루이슨 역시 딸을 데리고 인사를 했다. 황제를 처음 마주한 아리스에게 주셀이 말했다.

“그대가 아리스 호리슨인가?”

“맞습니다.”

“듣던 대로 아름답구나.”

흔한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을 가졌지만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물론 그 옆에 있는 비올레가 더 눈에 띄긴 하지만 아리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주셀의 칭찬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황태자 때문에 황제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 생겼다. 무척 곤란했다. 황태자비를 하라고 한다면 큰일인데.

‘편지는 무사히 도착했을까.’

이운이 올 때가 되었는데. 황제를 보니 로이가 떠올랐다. 아직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책으로 접했던 남자 주인공이 아닌가. 그에게 가진 호의는 이엘을 만나면서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주셀에게 인사가 대충 끝났다. 음악이 홀을 채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녀는 이엘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에셀 영애.”

그는 아리스 옆에 있는 비올레에게 말을 걸었다.

“그 다음은 그대야.”

“네, 전하.”

비올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잘 추고 오세요.”

“응.”

아리스는 이엘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갔다. 그리고 천천히 배운 대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엘이 따라 움직였다.

그때였다.

“어머!”

그녀는 연습한 대로 이엘의 발을 밟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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