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2. 사냥 대회
꽃이 활짝 피었다. 피어난 꽃들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고 있던 아리스는 자신을 따라온 루진을 보고 빙글 몸을 돌렸다.
“이 꽃 어때.”
“이것도 보내시게요?”
“응.”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이운이 옷을 홀딱 벗고 몸수색을 당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었다. 이운이 계속 배달을 하면 곤란할 것 같아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보냈다. 둘이 번갈아 가며 보낼 예정이었다.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적고 꼭 태워 달라고 했는데.
편지를 태울 때 그가 조금은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꽃을 같이 보낼 생각이었다. 꽃이 시들 수 있으니 말려서 같이 편지와 같이 동봉할 것이다.
“편지가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
“그럼요. 검문을 했다면서요!”
루진의 말에 기운이 조금 빠졌다.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루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다른 남자도 많은데 왜 하필 전쟁터에 사는 남자를 고르신 건지. 그녀는 아리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만약 아리스라면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텐데.
“그래도 보낼래.”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씩씩하게 꽃을 꺾는 그녀를 말리는 것을 포기한 루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꺾으세요. 곧 있으면 비올레 아가씨가 오실 거예요.”
“아,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
“그럼요.”
오늘은 주말이었다. 수업도 없어서 여유 시간이 넘쳤다. 며칠 전 무도회 때문에 지쳤을 법한데 비올레와 아리스는 약속을 잡았다. 케이크 카페에 가기 위해서.
비올레가 오기 전에 꽃다발을 만들어야 한다. 아리스는 얼른 마음에 드는 꽃들을 골랐다. 말라도 향기가 나도록 향이 진한 꽃으로 골랐다.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모양은 예쁘지 않았다. 이걸 그냥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만든 게 아까워 보내기로 결정했다.
말리는 건 꽃집에서 해 줄 것이다. 시녀가 꽃다발을 들고 꽃집으로 향했다. 루진은 멀어지는 시녀를 바라보다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비올레가 오기까지 한 시간 남았다.
“배고프다.”
“아침도 안 드셨잖아요. 당연하죠.”
“케이크 카페 가서 많이 먹어야 한단 말이야. 루진도 안 먹었잖아.”
그녀의 말에 루진이 얼굴을 붉혔다.
“케이크 먹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케이크 카페에는 루진도 따라가기로 했다. 비올레의 시녀인 안테 역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안테 말이에요.”
“응.”
“실력이 뛰어난 거 같아요.”
루진은 안테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아가씨를 꾸며 주는 입장에서 약간의 라이벌 의식이 있기도 하지만 동지 의식이 더 강했다.
“루진이 칭찬하는 거 오랜만이네.”
“그래요?”
“그럼.”
루진은 엄격했다. 그래서 기준이 항상 높았다. 그런 그녀가 안테를 칭찬하고 있었다.
“비올레 님 보면 무척 아름답잖아요. 옷도 잘 입고 머리도 예쁘시고요.”
비올레는 사교계의 패션을 주도하고 있었다. 아리스도 질 수 없었다.
“아가씨는 사교계의 얼굴이에요.”
“그래?”
“네!”
그녀가 황태자와 처음 춤을 춘 다음 날 아리스의 얼굴이 신문에 전국적으로 실렸다. 황태자가 택한 여자라고 말이다. 물론 비올레 역시 신문에 나긴 했지만 얼굴이 그러진 것은 아리스뿐이었다.
황태자가 그녀와 첫 춤을 추고 반했을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정작 본인은 그 유명세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신문이 나간 이후로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초대장이 쏟아졌던가. 아리스가 공부를 핑계로 초대장을 거절했지만 말이다.
그중 좋은 남자도 있었는데.
루진은 무척이나 아까웠다.
아무튼 아가씨가 유명 인사가 된 만큼 아름답게 꾸미는 건 시녀의 몫이었다.
* * *
“앉으세요.”
화장대에 앉은 아리스는 눈을 감았다. 루진이 얼른 화장하는 시녀를 불렀다. 시녀가 와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리스를 위해 특별히 화장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시녀를 둔 것이다.
시녀는 아리스의 드레스에 어울리는 화장을 한 뒤, 마지막에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마무리 지었다.
“눈 뜨세요.”
“응.”
루진의 말에 아리스가 눈을 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무도회에 갔을 때보다는 아니지만 평소보다 힘을 주어 꾸몄다.
“마사지도 해야 하는데.”
“그건 황궁에 갈 때나 해야지.”
“비올레 아가씨는 했을지도 몰라요.”
“왜 비올레를 의식해.”
아리스의 말에 루진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의식해야죠.”
비올레는 아름답다. 그녀와 같이 있을 때 뒤처지지 않으려면 당연히 꾸며야 한다. 루진은 아가씨가 다른 아가씨보다 뒤처지는 게 싫었다.
“아무튼 그냥 놀면 되는데.”
“아가씨는 시녀의 마음을 모르세요.”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화장을 끝낸 아리스의 눈썹이 무척이나 길어 보였다. 루진은 얼굴을 보며 꼼꼼히 마무리를 지시했다.
“시녀가 실력이 좋아진 것 같아.”
“당연하죠.”
첫 춤을 추고 난 이후로 아가씨를 위해 시녀에게 화장법을 좀 더 배우도록 지시했다. 물론 돈은 이안에게서 받았다.
이안은 화장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루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딸이 신문에 났으니 나갈 때 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게 가문을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아리스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루진도 대단해.”
“그래요?”
“응. 정말로.”
아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씨가 약간 더웠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비올레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기는 반바지가 없어.’
그나마 시원한 옷이 민소매 옷이다. 파여도 가슴이 파이지 다리를 무릎 이상 드러내진 않았다. 아리스는 이 세계에 미니스커트가 없는 게 아쉬웠다.
‘내가 만들어 입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에이, 코르셋 없는 게 어디야.’
다행히 이 세계에는 코르셋이 없었다. 코르셋이 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올레 아가씨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시녀의 말에 아리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마차 한 대가 있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마부가 마차 문을 열었다. 마차 안에는 예쁘게 차려 입은 비올레와 안테가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아리스가 웃으면서 마차 안에 타고 이어 루진이 탔다.
루진은 비올레의 옷차림을 보았다. 분홍색 민소매 드레스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노출이 있는 것보다 단정한 옷차림을 골랐다.
드레스 자체가 귀여워 비올레 나이 또래처럼 보였다. 상큼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아직 어려 화장은 진하게 하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게 잘 꾸몄다.
루진이 감탄하는 사이 안테는 아리스의 차림을 보고 있었다.
노란 민소매 드레스였다. 찰랑이는 갈색 머리카락에, 또렷하고 선명해 보이는 눈동자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게 걸맞게 단정한 화장까지, 그녀가 숙녀로 보였다. 남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안테는 루진의 실력에 감탄했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두 시녀의 눈빛 전쟁을 알지 못한 채 두 여자는 마냥 좋은 듯 손을 꼭 잡았다.
“오늘 가는 곳 예약하느라 힘들었어요.”
비올레가 가자고 했기에 예약은 그녀가 했다.
“그래요?”
“주말이라 빈 자리 나기를 기다렸어요. 운 좋게 자리가 난 거 있죠?”
“어머, 좋아라.”
“요즘 딸기가 제철이잖아요. 오늘 딸기 특별식을 한대요.”
“정말요?”
딸기는 아리스가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맛있겠다.”
“그런데 언니, 별일 없었어요?”
그녀의 말에 아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태자의 여자로 소문나는 바람에 초대장이 엄청 왔어요.”
“어머.”
“그거 다 거절하느라, 편지 쓴다고 힘들었어요.”
“좋은 데는 가 보시지.”
“특별히 가고 싶은 데는 없었어요.”
그녀의 말에 비올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는 무도회나 사교 모임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과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걸 좋아했다.
“저도 초대장이 왔어요.”
“그래요?”
비올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몇 군데 가려고요.”
아리스에 비해 비올레는 무도회에 가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는 걸 즐겼다. 그곳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아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비올레는 공작이 되어야 하니 자주 가는 게 좋아요.”
“언니는 후작이?”
“안 될 거예요!”
하긴, 후작이 되면 바빠질 것이다. 아리스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좋아했다. 기본적인 것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기 싫어했다.
마차가 제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밖을 바라보던 아리스가 오늘 갈 케이크 집을 발견했다.
“케이크 카페가 저기 있어요.”
“정말이네요.”
마차가 멈추었다. 문을 열고 내려 가게를 보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브레이크 타임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그런데 손님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