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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는 내가 차지한다-19화 (19/124)

# 19

날씨가 청명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리스는 루진의 손에 이끌려 꾸밈을 받았다. 적당한 드레스를 고르고 화장을 한 그녀는 오늘도 예뻤다. 아리스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했다. 비올레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아가씨들보단 예쁠 것 같았다.

“아가씨는 좋겠어요.”

루진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름다우시잖아요.”

“아, 그렇지.”

원래 세상에 있을 때는 평범하게 생겼었는데. 여기 와서는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귀찮기도 해.”

“그래요?”

“응.”

별로 원치 않는 일들이 많이 생기니 말이다. 원작에서는 결혼한 시점부터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막상 책 속에 들어가니 그보다 한참 전의 시점이었다. 그녀가 예측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오늘도 귀찮은 일이잖아.”

“그건 그래요.”

사냥 대회에 꽃으로 참석을 해야 한다. 그냥 귀족 영애들과 같이 수다나 떨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비올레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가씨.”

“응.”

“책 챙길까요?”

“아.”

적당한 영애가 없으면 혼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루진은 눈치 빠르게 물어보았고 아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심심할 때 책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책을 챙기는 루진을 보고 방긋 웃었다.

* * *

이안은 내려오는 아리스의 손을 잡았다. 나날이 더 예뻐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딸을 보면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쏠릴 것 같다. 거기에 아리스는 성격도 좋았다. 남자들이 더욱더 원할 것이다.

“황궁에서 마차를 보냈더구나.”

이안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가 친구하자고 하더니 그 말을 착실히 지키고 있었다. 황실에서 여는 사냥 대회에 참가하는 그녀에게 마차를 내린 것이다.

“황태자 전하의 명령이라고 한다.”

황궁에서 내린 마차는 무척이나 화려했고 황궁 문양이 마차에 붙어 있었다. 마차 안에 들어간 그녀는 폭신폭신한 쿠션에 놀랐다. 후작 가문의 마차 쿠션도 좋았지만 황궁에서 보낸 마차보다는 덜 폭신폭신했다.

“감촉이 좋아요.”

아리스가 쿠션을 만지며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이안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마부가 문을 닫았다.

루진은 다른 마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단둘이 있었기에 아리스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 사냥 대회에는 누가 참석하나요?”

그녀는 궁금한 걸 물었다.

“우선 황태자 전하께서 참가하신다.”

“네.”

황태자가 참가하는 일만으로도 큰일이다.

“황태자 전하께서 무예에 능하신가요?”

“음, 소소하게 사냥을 할 정도는 되신다고 들었다.”

“그렇구나. 또 누가 참가해요?”

“음.”

이안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무인들이 좀 참가한다는구나.”

“어머.”

아무리 황태자가 날뛴다 해도 무인들을 이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무인들이 황태자보다 잘 잡을지는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이런 대회는 보통 누군가를 치켜세워 주기 좋은 기회인데.”

“그렇지.”

이안도 동의했다.

이런 기회에 자신을 드러낸다? 글쎄, 황태자보다 잘 잡아서 굳이 그보다 뛰어남 보인다면 황태자 눈 밖에 날 수도 있는 일이다. 때문에 자기 실력보다 적게 잡을 수도 있었다.

“작년에는 황태자 전하께서 참석하셨나요?”

아리스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다. 이번에 성년이 되셔서 처음 참석하신다.”

“아아.”

그럼 이야기는 끝났다.

우승자는 보지 않아도 누가 될지 짐작 간다.

황태자가 처음 참가한 사냥 대회에서 누가 그보다 더 잡으려고 하겠는가.

“하아.”

이러다가 또 황태자와 춤을 추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황태자 전하께서 다른 여자를 택하길 빌어야겠어요.”

아리스가 냉정히 말하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다.

* * *

이엘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찰랑이는 금발을 단정히 묶어 뒤로 넘겼다. 거기에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사냥에 적합한 복장을 입었다.

“잘생겼군.”

오늘도 자기 얼굴을 보고 감탄하는 그를 보고 라자엔이 덧붙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라자엔은 늘 했던 것처럼 이엘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엘은 라자엔의 말을 들으면서 콧대를 점점 높였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찬양하는 게 좋았다. 자신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은 욕심이 없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친구로 두었다. 그런 타입은 친구로 두는 게 낫기 때문이다.

“에셀 영애와 호리슨 영애에게 마차는 잘 보냈겠지?”

이엘이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물론입니다.”

라자엔은 아부도 잘했지만 일처리도 깔끔했다.

황태자는 자신을 찬양하더라도 일처리가 어수룩한 남자는 곁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아부를 잘하고 일을 잘하는 이들만 모여 있었다.

라자엔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엘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친구들에게 마차를 보내는 건 어떻겠냐고 의견을 제시한 건 자신이었다. 이엘은 그 말을 듣고 아리스와 비올레에게 마차를 직접 보냈다.

황궁에서 내린 마차는 특별하다. 이엘이 마차를 내렸으니, 다들 그가 이들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의견이었어.”

“네, 전하.”

“보너스가 갈 거야.”

“감사합니다.”

호리슨 후작가와 에셀 공작가는 대대로 황제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는 가문이다. 이들과 잘 지내서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황태자 전하를 뵈어야 한단 말이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황태자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것 같았다.

“쫓아낼까요?”

라자엔이 냉정하게 말했다. 보나마나 황태자의 총애를 조금 받은 정부가 와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라자엔의 말에 이엘이 피식 웃었다.

“그냥 들어오라고 해.”

그가 말하자 라자엔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밖에 서 있던 요염하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이엘이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전하, 왜 저를 사냥 대회에 안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녀는 황태자가 사냥 대회에 자신을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엘은 그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가 그대를 데려가야 하지?”

“전하!”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건 내 애인이어야 가능해.”

그는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사랑이 소중하다면 여기서 멈춰.”

그는 정부에게 경고했다.

“그대는 애인이 아니라 정부야.”

“전하.”

“그걸 잊지 말라고 말했는데. 어젯밤에 말이야.”

어젯밤만 해도 황태자는 자신에게 잘해 주었다. 그들이 보낸 밤은 뜨거웠고, 그녀는 황태자가 자신을 사냥터에 데려갈 거라고 믿었다.

“이러면 곤란해.”

황태자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 돌아가.”

“전하!”

그녀는 자신의 눈물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찬양받는 걸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황태자였으나 그가 가진 선은 분명했다. 그는 울먹이는 정부를 두고 떠났다.

“귀찮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놈의 인기란.”

어딜 가도 자신은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여자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게 그는 좋았다. 하지만 선을 넘으려고 하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일었다.

‘아아 여자뿐만 아니지.’

남자들 역시 자신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 그는 그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기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런 이들을 친구로 두기를 원했다. 그들이 친구가 된다면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곁에 있어 주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할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만나기 드물지만 이번에 두 명이나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군.’

사냥터에 가서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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