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당연하죠. 아가씨 몸매가 보통 몸매인가요.”
다른 이들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몸매다. 거기에 얼굴도 예쁘다. 황태자와 춤을 추지 않았어도 무도회에서 충분히 주목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이 님은 여자를 외모를 보고 좋아하시지 않아서.”
“그래요?”
“그럴 것 같아.”
책에서 로이는 루진의 내면을 보고 좋아했다. 외모로 사람을 좋아했다면 나중에 나타난 아리스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이는 루진을 택했다.
원작대로라면 로이는 루진의 남자였다.
“루진.”
“네, 아가씨.”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꼭 말해.”
로이는 좋은 남자다. 그녀가 꿈꿔 왔던 남자였다. 아무리 루진이라 해도 로이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로이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루진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겠어요.”
루진은 아가씨를 보았다.
“그런데 별 볼 일 없는 남자면 반대할 거야.”
“아가씨도 참.”
루진이 웃었다. 아가씨의 말이 너무 비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결혼 생각이 없었다. 이제 열여섯 살이기도 했고 아가씨가 결혼하기 전에는 따로 남자를 만날 생각도 없었다.
“루진은 정식 후작 딸은 아니지만 어쨌든 후작가의 피를 이어받았잖아.”
“네, 그렇죠.”
“지참금 많이 주게 내가 손쓸 테니까. 꼭 좋은 남자로 골라.”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이 정도는 해 주실 거다.
“말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건 아가씨가 결혼하고 난 뒤의 일이다. 루진은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이제 비올레 아가씨가 오실 거예요.”
“응.”
오후에 비올레와 차를 한 잔 하기로 했다. 비올레와 같이 있어도 비교되지 않도록 꾸미는 게 중요했다.
귀족으로 살면서 꾸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리스는 루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 * *
리로드의 거리는 활기찼다. 곧 다가올 신년회에 귀족들은 황궁에서 연회를 즐기고 일반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음악단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 이날은 다들 멋을 부려 황궁 연회나 길거리 축제에 참석했기에 옷 가게에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에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로브로 얼굴을 가렸지만 키가 무척이나 컸다. 그 옆을 따라가는 남자 역시 큰 키였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수도는 복잡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남자는 결국 마차를 잡기로 했다.
“대장, 마차를 잡으시게요?”
“그래.”
황궁에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갈 순 없다. 황궁에 들어가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우선 황궁에 가서 황제를 알현하고 황태자를 알현할 생각이었다. 부자를 알현할 걸 생각하니 긴장되었다.
마차가 그의 앞에 멈추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더스튼 제1번가의 제논 옷 가게로.”
“알겠습니다.”
마부는 그곳이 어디인지 금방 알았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타자 제논 옷가게로 그들을 안내했다.
“수도에 언제 도착하는가 했는데 금방 도착했습니다.”
부지런히 온 덕분에 1주일 더 빨리 올 수 있었다. 다음 주가 바로 신년회인 걸 생각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이왕 온 김에 수도 관광이나 하는 건 어떻습니까?”
더윈의 말에 로이가 그를 보았다.
“관광이라.”
“저희가 또 언제 수도에 오겠습니까? 이왕 온 거 구경도 하고 그러는 거죠.”
“시간이 있다면 그러는 것도 괜찮겠지.”
로이도 전쟁터에서 벗어나 기분이 조금 들떠 있었다. 더윈의 말대로 구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먼저야.”
황제를 알현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금방 끝날 겁니다.”
로이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나 황태자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년회로 바쁠 테니 자신과 이야기는 짧게 하고 끝낼 것이다.
마차가 멈추었다. 더윈과 로이는 마부에게 값을 치렀다.
한 건물 통째가 옷 가게였다. 로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허름한 로브를 입고 두 남자가 들어왔다. 주인은 방긋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허름한 옷차림이라도 가게로 들어오면 모두 다 손님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저렴한 옷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남자가 로브를 벗었다. 초록 머리카락의 준수한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오호.’
그럭저럭 생긴 얼굴이다. 이 정도 얼굴이라면 이런 옷이 어울리겠다. 주인은 열심히 더윈에게 추천할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로브를 벗었다.
‘헉!’
파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새하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수많은 남자를 봐 왔지만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이었다.
‘세상에!’
그런데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로이 님?”
주인이 물었다. 그러자 더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전에 신문사에서 로이를 취재해 간 일이 있었다. 그들이 얼굴도 볼 수 있도록 초상화를 그려 갔는데 그 신문이 대박이 났었다. 로이가 너무 잘생겨 신문이 동이 났던 것이다.
가게 주인 역시 그때 로이의 얼굴을 봤었다. 잘생겼다고 감탄했는데.
‘이거 그림이 영!’
직접 보는 것과 달랐다. 직접 보니 그 그림이 얼마나 로이의 잘난 외모를 다 표현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떤 옷을 고르시겠습니까?”
가게에 들어온 아가씨와 남자들이 로이를 바라보았다.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자 로이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황궁에 입고 갈 적당한 옷이면 좋겠군요.”
“아.”
“둘 다 신년회에 참석할 겁니다.”
로이의 말에 주인이 얼른 그들을 2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가격이 제법 나가지만 괜찮은 옷들이 많았다. 주인은 그들에게 적당한 옷을 소개해 주었다. 탈의를 하고 나온 로이를 본 더윈이 소리쳤다.
“대장이 잘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 입으니 옷이 날개가 따로 없군요.”
주인도 감탄했다. 본래 잘생긴 얼굴이 옷을 제대로 입자 더욱더 빛나 보였다.
“가격은 얼마입니까?”
로이는 옷을 몇 벌 입어 보더니 마음에 드는 옷을 금방 골랐다. 검은 예장에 금실로 수가 놓인 옷이었다. 더윈은 갈색으로 골랐다. 둘 다 가격이 좀 나가는 옷이었다.
“다른 가게 가면 옷값이 배나 비쌉니다.”
가격을 제시하면서 주인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로이는 옷 가격을 듣고 조금 놀랐다. 상상했던 것보다 비싸지 않았다. 한 달 월급을 투자하면 살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로이 님이기에 가격을 좀 더 저렴하게 드린 겁니다.”
주인은 황홀한 눈으로 로이를 보았다.
“고맙습니다.”
로이는 고맙다고 말하고 이전에 입고 온 옷을 가방에 담았다.
바로 옷을 입고 황궁으로 갈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두 남자가 나가는 걸 배웅한 주인이 얼른 팻말을 걸었다.
<로이 님이 옷을 고른 가게.>
로이가 옷을 골랐으니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와서 옷을 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그의 실물을 봤으니 할 이야기가 많았다.
주인은 신이 났다.
오늘은 정말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
* * *
황궁으로 가는 길을 복잡하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평민들이 드나드는 길로 가야 하지만 황제의 서신을 들고 있기에 귀족들이 통과하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황궁으로 가는 길이 멀었기에 이번에도 마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창문으로 밖을 구경하던 로이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는 더윈을 보았다.
“그만해도 멋지다.”
그러자 더윈이 로이를 보았다.
“대장은 제가 아니니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다.”
“뭐라?”
“전 대장처럼 소름 돋게 잘생기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옷차림에 신경 써야죠. 머리에도 신경 쓰고요.”
로이는 옷을 그냥 입기만 해도 주변을 압도하는 미남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자신은 약간 준수하게 생긴 편에 불과했다. 그러니 좀 더 가꿔야 한다.
대장하고 같이 있으면 비교당하는 일이 생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더윈은 머리 모양에 더욱 신경 썼다.
“쓸데없는 짓이야.”
“대장이 잘났으니 이리 해도 소용없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신년회에서 좋은 아가씨를 만나고 싶은 제 욕심입니다. 최소한 덜 비교당해야죠.”
더윈의 말에 로이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워낙 청산유수라 할 말이 없었다.
마차가 멈추었다. 황궁에 도착한 것 같았다. 마차에서 내린 로이는 문을 지키던 기사들에게 황제가 보낸 서신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다들 놀란 눈으로 로이를 보았다.
“로이 님이십니까?”
수도에서 유명한 남자였다. 오란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만을 취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가 이번 신년회에 초대된다는 소식이 신문에 났었는데 이렇게 직접 그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병사들은 얼른 로이에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