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아, 지루하다.’
아리스는 마차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이 연습했어.’
매번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노래 연습을 했다. 그리고 공연도 여러 번 했다 그렇다 보니 이제 노래를 부르는 게 신물이 났다. 그렇다고 이것을 겉으로 표현하자니,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 같아 표현도 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아가씨.”
“응.”
“노래 연습 하셔야죠.”
루진이 시계를 보았다. 아리스는 매일 세 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야지.”
그리 말하고 아리스가 악보를 잡았다. 그러곤 악보를 보다가 이내 접었다.
“악보 안 보세요?”
“안 봐도 부를 수 있어.”
몇 달 동안 매일 부른 노래다. 그것을 암기 못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진 않았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정성이 들어간 노래였다. 귀찮다 해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으흠.”
노래를 듣던 루진이 눈을 감았다 떴다.
“이상해?”
“아니요.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악보를 보지 않고 노래를 하니 좀 더 노래가 부드러워졌다. 루진은 아리스가 든 악보를 자신이 보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 좀 더 힘이 들어갔으면 해요.”
루진이 악보를 들고 말해 주었다.
“힘이 덜 들어갔나.”
“이전보다 덜 들어갔어요.”
“알았어.”
아리스와 루진이 노래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사이 마차가 멈추었다. 마차가 멈추자 로지엘이 문을 열어 주었다.
“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이스턴에 도착했다. 주에른 지역에서도 가장 번화한 도시라고 한다. 매년 봄의 축제를 광고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와.”
아리스는 기뻐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공연장이 바로 보였다.
“오늘은 쉬지 않고 공연부터 합니다.”
로지엘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마차가 이곳에서 멈춘 것이었다.
“공연은 저녁에 할 예정입니다.”
“네.”
지금은 정오였다. 저녁부터 공연이 있다고 하니 얼른 리허설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아리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린 레오가 다가왔다.
“정말로 지루한 여행이군요.”
레오는 투덜거렸다. 며칠 동안 같은 노래를 연습을 하느라 지루했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얼른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해요.”
아리스도 그 말에 동의했다.
“얼른 끝내고 다른 노래 부르고 싶어요.”
레오는 이야기를 하다가 안내자의 손길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
무대는 무척이나 예뻤다. 아름드리나무가 동그랗게 심어져 있고 그 공간 안에 의자에 놓여 있었다. 무대 위로 강렬한 빛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 빛이 어색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얼른 합시다.”
레오의 말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얼른 자리에 앉았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첫 소절은 늘 했던 것처럼 아리스가 먼저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내밀자 레오가 그 손을 잡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늘 연습했던 대로 노래와 화음, 음악 소리는 완벽했다. 안내자는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아주 좋습니다.”
가는 곳마다 노래를 부른 뒤 칭찬을 들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연습하셨군요.”
행사 안내자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뜻 깊은 공연을 위해 늘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레오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연습하느라 지루했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건 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지긋지긋하다.”
“태도가 너무 다른데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레오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리스도 같이 웃어 주었다.
“아, 참.”
안내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녁에 공연이 있으니 5시까진 다시 와 주십시오.”
꾸미는 데에는 한 시간이 소요된다. 정확히 6시 정도면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
“알겠어요.”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마차로 돌아갔다.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마차는 여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마지막 공연이구나.”
아리스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이가 왔을까.”
그녀는 불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루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셨을 거예요.”
“그렇겠지?”
답장을 받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는 금방 가지만 로이에게 보낸 편지는 두 달이 지나서야 도착한다. 중간에 보낸 편지는 아직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편지들을 읽어 주면 더 좋았을 텐데.
“보고 싶으세요?”
루진이 물었다.
“응.”
아리스느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있는 곳이 가까이 왔기에 더욱더 그리움이 커지고 있었다.
* * *
공연이 시작되었다. 서커스단이 먼저 초빙되었다. 앞에서 손님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묘기를 부리는 사이 아리스는 늘 입던 옷을 입고 꾸밈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점검했다.
드디어 노래 부를 시간이 되었다.
아리스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등장하자 환호성이 들렸다.
저 많은 사람 중에 과연 로이는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래에 집중하자.’
그녀는 고개를 흔든 뒤 레오 옆에 섰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다음 소절을 레오가 불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긴장하지 않고 음이 이탈하지 않도록 잘 불렀다. 그녀와 레오의 무대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내년에도 봄의 축제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안내자가 나와 넉살스럽게 소리쳤다. 공연을 마친 아리스와 레오는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끝이군요.”
“네.”
“감회가 새롭네요.”
레오가 무대를 바라보았다. 아마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일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기분이 미묘했다.
“그러게요.”
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겹다고 생각했던 무대가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뭐 하실 겁니까?”
레오가 물었다.
“혹시 시간이 난다면 저하고…….”
그가 이런 말을 하는데 누군가가 아리스에게 다가왔다. 로지엘이 우선 다가온 남자를 저지했다.
“누구십니까?”
그의 저지에 남자가 입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아리스와 레오가 뒤를 돌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아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로이!”
그녀가 기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레오는 아리스의 미소를 많이 보았지만 그녀가 저토록 티 없이 웃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과 그녀가 무슨 사이인지 말이다.
“왔었어요?”
“네, 왔습니다.”
로이가 아리스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이지, 갑자기 나타나고!”
아리스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미워요.”
“정말로 밉습니까?”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아리스가 입술을 쑥 내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 올렸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의 말이 아리스의 심장에 닿았다.
“나도요.”
아아, 드디어 오랜 여행 끝에 그를 만났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