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유학 준비는 다 끝났나요?”
“오늘 기숙사로 짐을 부쳤습니다.”
“아.”
정말로 내일이면 그가 떠난다. 이제 곧 떠나야 하는 연인을 바라보며 비올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늘 즐겁게 놀아요.”
“그럴 생각입니다.”
떠나고 나면 한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리몬트리는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누구의 공연을 보러 가나요?”
비올레가 물었다.
“음악가 제크론, 아십니까?”
“알아요.”
최근에 떠오르는 신예 음악가였다. 비올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제크론도 후원하시나요?”
“네.”
“아!”
저명한 음악가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 있었다. 리몬트리가 후원을 하면 언젠가 유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가 후원하는 음악가들은 실력이 있었고 언젠가 빛을 봤다.
“음악가들이 리몬트리에게 매달린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 말하고 그는 웃었다.
“원래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연주했던 분입니다.”
“아.”
리몬트리는 피아노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력이 괜찮은 음악가들을 두고 사용했기에 평판이 좋았다. 아직 음악회를 열지 못할 정도로 유명하진 않은 음악가들이었지만 실력은 괜찮았기에 다들 음악을 들으러 그의 카페로 왔다. 비올레도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기대할게요.”
“네.”
마차가 연주회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연주회는 괜찮았다. 연주자는 거칠고 날카로운 피아노를 치는 남자였다. 특이한 음색이었기에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이 끝나자 비올레는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리몬트리도 마음에 든 듯 박수를 쳤다. 제크론은 자신을 무명시절부터 알아봐 준 리몬트리가 온 것을 알고 얼른 다가왔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왔네. 실력은 여전히 괜찮군.”
“감사합니다.”
“이쪽은 내 연인, 비올레 디 에셀.”
“안녕하세요.”
비올레가 인사했다. 그러자 제크론은 얼른 그녀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미인이십니다.”
“감사해요.”
비올레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전 리몬트리 님이 연인을 안 둘 줄 알았습니다.”
“제크론.”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리몬트리는 애인을 두지 않았다. 고백을 받아도 족족 차 버렸다. 이따금 여자가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인을 두다니! 거기다 연인은 리몬트리와 오랫동안 친구였던 비올레 디 에셀이었다. 리몬트리의 성격상 잘 모르는 여자와 연인이 될 리가 없기에 비올레가 연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리몬트리는 아름다운 연인을 손에 잡고 웃었다.
* * *
저녁은 리몬트리가 운영하는 찻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마차에 올라탄 비올레는 들떴다.
“아직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님이 많이 없습니다.”
음악 찻집이 흥하자 리몬트리는 찻집을 한 군데 더 오픈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점차 늘어 가고 있는 추세였다.
“궁금했어요.”
그가 새로 찻집을 열었다고 했을 때 꼭 가 보고 싶었다.
“거기서 저녁을 먹는 겁니다.”
“저녁요?”
“네. 브런치가 맛있습니다.”
보통 찻집에서는 차를 판다. 그런데 리몬트리가 운영하는 찻집은 특이하게 빵과 차를 같이 팔았다. 식사 대용으로 말이다.
“빵을 그토록 잘 만든다면서요?”
리몬트리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었다.
“기대하십시오.”
“네.”
“이 찻집에 아는 사람을 데려가는 건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장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비올레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네.”
비올레는 마차가 얼른 멈추기를 기다렸다.
* * *
찻집은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번화가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빈자리가 조금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차 있었다. 테이블 위에 차와 빵이 보였다.
“샌드위치 드셔 보시겠습니까?”
“샌드위치요?”
“네.”
음악을 듣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시장할 것이다.
“샌드위치와 빵을 시키겠습니다.”
“네.”
비올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비올레와 리몬트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게 주인이 나타났기에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고, 주인님. 오셨습니까?”
찻집 매니저가 리몬트리를 발견하고 얼른 걸어왔다. 그리고 옆에 있는 비올레를 보았다.
“이쪽은 내 연인, 비올레 디 에셀.”
“안녕하세요.”
비올레가 인사했다. 그의 연인으로 소개받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에셀 영애시군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공작이 될 여자와 리몬트리가 잘되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음식을 시킨 리몬트리는 비올레를 데리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비올레는 리몬트리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여긴 음악 찻집은 아닌가 봐요.”
“원래 음악 찻집입니다만.”
그는 아쉬운 듯 말했다.
“제가 원하는 음악가를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아.”
“저의 이미지 때문에 많은 음악가들이 지원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더군요.”
리몬트리는 후원을 아주 잘 해줬다. 그렇기에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후원을 받고자 했다. 리몬트리는 이쪽에서 큰손이었다. 그가 후원을 해 주면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지는 게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그냥 빵과 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그리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리몬트리.”
“제가 유학을 가서 일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당분간 이렇게 둘 겁니다.”
음악가는 자신이 직접 선발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없는 당분간은 그냥 일반 찻집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제가 도와줄 것은 없나요?”
비올레가 물었다. 그러자 리몬트리가 그녀의 볼을 잡았다.
“웃어 주십시오.”
“리몬트리.”
“비올레의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곧이어 그들이 시킨 샌드위치와 빵, 차가 나왔다. 비올레는 배가 조금 고파 샌드위치를 베어 먹었다. 빵의 고소함과 신선한 야채가 씹혔다.
“빵이 맛있어요.”
그녀는 샌드위치 옆에 있는 빵을 보았다.
“정말로 맛있어요!”
자신의 집에서 만드는 빵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렇게 실력 있는 요리사를 구한 거예요?”
그녀가 궁금한 걸 물었다. 리몬트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수를 많이 주고 구했습니다.”
“아아.”
“사람들이 빵으로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실력자를 찾았습니다.”
철저히 실력으로 뽑았다. 그렇기에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는 가게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비올레는 궁금한 걸 물었다.
“보수를 어떻게 정하셨나요?”
“비율제입니다.”
“비율제요?”
“손님 수당 돈을 줍니다. 물론 최저 시급은 보장하고요.”
그의 말에 비올레는 놀랐다.
“그럼?”
“매니저도 명단 돈을 받습니다. 우리는 사업 파트너거든요.”
사람이 많이 찾으면 찾을수록 돈을 벌 수 있다. 리몬트리는 돈을 철저히 주었고 사업적으로 아주 깔끔했다. 그렇기에 매니저와 요리사는 일을 열심히 했다.
“아.”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공작 가문도 사업을 몇 개 하고 있었다. 흑자가 나는 곳도 있고 적자가 심한 곳도 있었다.
“나중에 리몬트리가 유학을 끝내고 돌아오면 우리 집 사업도 좀 봐 주세요.”
“비올레.”
그는 자신을 써먹을 생각을 하는 연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저는 조용히 사는 게 좋습니다.”
“사업 조언만 해 줘요.”
하지만 속으로는 그에게 사업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말이다.
‘결혼이라.’
아리스는 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비올레가 리몬트리를 쳐다보았다.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자신이 결혼을 하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비올레와 리몬트리는 다정하게 마차 안에서 손을 잡았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비올레가 말했다. 그러자 리몬트리가 그녀의 볼을 꾹 눌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차가 멈추었다.
저택에 도착한 것이다. 그녀는 마차에서 내렸다. 리몬트리 역시 마차에서 내렸다.
“음.”
그가 망설이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비올레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요?”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요?”
그리 말하며 그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춰 주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접촉에 비올레가 놀랐다.
“리몬트리!”
“가을에 봅시다.”
가을에 방학을 한다. 그때가 되면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비올레는 더욱더 아름답게 자라 있겠지.
입에 키스하고 싶지만 아직 그녀는 어렸다.
볼에 한 것도 나름 크게 결심한 것이었다.
“사랑합니다.”
그는 그렇게 고백했다.
“편지 꼭 하십시오.”
“네.”
비올레는 달아오른 볼을 꾹 눌렀다.
달밤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 * *
그가 떠났다. 무슨 편지를 써야 할까. 비올레는 편지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아리스처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도 아리스처럼 편지로 리몬트리와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묘했다.
[사랑하는 리몬트리에게.]
말머리를 그렇게 잡았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편지는 강을 건너 이웃 나라에 유학을 간 리몬트리에게 전해질 것이다. 잠시 후, 그와 같이 가서 샀던 실링 도장을 찍었다.
편지는 예쁘게 포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