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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24)화 (24/166)

<24화>

“대공 전하.”

“리브스, 무슨 일인가?”

서류를 들여다보던 데쏠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리브스가 집무실 책상 위에 작은 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하께 선물이 들어왔습니다.”

귀족들에게서 선물이 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데쏠레이는 리브스가 가져온 선물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디서 온 선물이지?”

“저쪽 저택에 사시는 그분께서 전하께 선물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

순간 데쏠레이의 자안이 눈에 띄게 커졌다. 동시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

선물을 열어본 데쏠레이의 입에서 나온 건 쓰디 쓴 실소였다.

“대공 전하, 이건…!”

내용물을 확인한 리브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은 십자가라….”

은으로 만든 물건은 뱀파이어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뱀파이어 헌터들이 은으로 만든 예기를 지니고 다녔을 만큼.

“아니, 은도 모자라서 십자가라니요!”

리브스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십자가는 뱀파이어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알음알음 퍼져 나간 소문은 뱀파이어가 십자가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선물을 한 건지?

선물을 보낸 당사자의 의도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데쏠레이는 턱을 괸 채, 자색 눈동자만 굴려 리브스를 바라보았다.

“리브스.”

“…예. 대공 전하.”

“설마, 정체를 들킨 건 아니겠지?”

“예?!”

리브스는 눈을 크게 뜨고 기함했다.

지난번 레이디 헬레나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 혹시라도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들킬 정도로 실수를 했는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대공 전하.”

리브스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흐음, 그렇겠지….”

데쏠레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리브스가 철두철미하다는 걸 데쏠레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이런 선물을 보냈을까?’

데쏠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 밖 너머 저택으로 시선을 던졌다.

“선물을 받았으면 응당 보답하는 게 예의겠지.”

“그 레이디께 선물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리브스의 물음에 데쏠레이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º º º

나는 가만히 집사 후보자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그러자 마리아가 내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아가씨. 어떠세요?”

다기를 다루는 우아한 손놀림과 눈을 흥겹게 만드는 뛰어난 미모!

모노클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건 좀 아쉽지만 목을 죄는 타이와 제비 꼬리 연미복은 아주 훌륭했다.

‘합격.’

겉으로는 심사숙고하는 척했지만 이미 속으로는 결정한 참이었다.

내 집사는 너로 정했다.

눈앞의 남자는 그야말로 내 상상 속 집사의 표본 같았다.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집사 후보자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나는 말없이 찻물을 들이켰다.

“으음….”

쓰고 떫다는 인식이 있던 차로 우려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났다.

“차 맛은 어떠십니까?”

S랭크의 집사 지원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도 예술이로다.

“계약하죠.”

“예? 아가씨, 이렇게 바로 결정하시기보다는 좀 더 생각하시는 편이….”

마리아가 속삭이며 나를 만류했다.

‘아냐, 아냐.’

나는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 확고한 결심을 간파한 집사 지원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반드시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집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나를 올려다보더니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내 주인님.”

그리고는 내 손등에 입술을 꾹 눌렀다.

‘꺄아!’

나도 모르게 내지를 뻔한 비명을 꾹 삼켰다.

S랭크의 집사 앞에서 주접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마리아. 계약서 좀 가져다줄래?”

“…네, 아가씨.”

더는 반대할 생각이 없는지 마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그런데 이 분은 누구십니까?”

“하녀장 마리아예요. 난 마리아를 무척 아낀답니다. 둘 사이의 화합이 좋기를 기대하죠.”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왼쪽 가슴께로 흰 장갑을 낀 손이 올라가며 곧은 허리가 숙여진다.

몹시 절도 있는 몸가짐이라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주인님, 이제부터는 저를 편히 불러 주십시오.”

“그럴게.”

전속 집사 계약을 진행하시겠습니까?

게임 속이라는 걸 잊을 만큼 한동안 조용하던 시스템 창이 올라왔다.

‘응.’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전속 집사 계약이 체결됩니다.

서명하시겠습니까?

서걱. 서걱.

마리아가 건네준 계약서에 사인하자 연이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캐릭터 정보가 개방됩니다.

‘보여줘.’

곧 내 집사의 가슴께에 문구가 떠올랐다.

히든 캐릭터, 집사 스튜어드

S랭크의 집사 스튜어드가 귀속 상태가 됩니다.

‘이양.’

S급 집사라니.

이게 카드 뽑기 게임이라면 지금 엄청난 인재를 획득한 셈이었다.

‘스튜어드의 호감도를 보고 싶어.’

스튜어드: 노란색

마리아와 해츨링처럼 하트의 색상이 노란색이었지만 스튜어드에게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풀 하트라는 거다.

‘해츨링과 마리아보다도 호감도가 높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스튜어드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보여줘.’

VIP 14단계의 특전: 최상급 집사 스튜어드를 고용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

이건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게 있었어?’

집사 계약이 체결되었을 시에만 공개되는 희귀 정보입니다.

아하.

‘그럼 VIP 특전에 또 뭐가 있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시길 추천합니다.

흐응, 참으로 비밀이 많다.

보통의 게임이 퀘스트를 먼저 준다면, 여공남수는 내가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려 할 때만 퀘스트가 열렸다.

하나하나 다 밝혀내야 하는 건 좀 귀찮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정해진 시나리오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내 마음에 들었다.

º º º

“봤지. 그 저택 삐까뻔쩍한 거? 헬레나 걔가 갑자기 무슨 수로 그런 저택에서 살게 된 거지?”

드리젤라가 다다다다 속사포로 입을 털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나스타시아?”

“그러게.”

아나스타시아가 대충 대꾸했다.

지금 드리젤라와 아나스타시아는 작당 모의 중이었다.

물론 둘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원래 아나스타시아는 헬레나를 빈텔테리 저택으로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대저택과 호화로운 마차에 더불어 화려한 드레스라니?’

신수가 훤해진 헬레나를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그 저택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을까?’

아나스타시아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반면 드리젤라의 목표는 신분이 높은 가문과의 혼약이었다.

‘대공 전하와는 무슨 관계일까?’

남루한 남작 영애 신분으로는 자작가와도 연이 닿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헬레나가 있을 적에는 파티 문턱이나마 밟아보았으나 최근에는 그마저 어려워졌다.

‘헬레나를 이용해서 대공 전하와 가까워질 좋은 방법이 없을까?’

도통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거듭하던 드리젤라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티파티조차 참가한 적이 없던 애가 어떻게 대공 전하와 아는 사이가 됐을까?”

“그러니까 말이야.”

“심지어 데이트라니!”

드리젤라와 아나스타시아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이었다.

“또 무슨 소란이니?”

이마를 문지르며 빈텔테리 남작 부인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어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나스타시아가 목소리를 높이자 남작 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넌 제발 그 큰 목소리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니? 그래서는 상류 사회에 오를 수 없단다, 아나스타시아.”

남작 부인이 꾸짖자 아나스타시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네, 어머니 주의할게요….”

“하아…. 정말. 내가 어쩌다 메이넌스를 만나서.”

여느 때와 같이 남작 부인은 짜증스럽게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러니까요. 아버지께서는 왜 하시는 사업마다 말아 먹으시는 건지. 제 드레스 좀 보세요. 다 낡았다니까요.”

그렇게 맞장구를 치다보니 드리젤라도 짜증이 치솟았다.

누군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이게 다 헬레나 때문이에요.”

“그래도 그 애가 집을 나간 건 다행이지. 안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입이 하나 줄었으니까. 너희 둘도 알아둬, 집 나가면 고생이란다. 몸을 의탁할 곳도 없을 터인데 어디서 굶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때 드리젤라가 끼어들었다.

“어머니께서는 참 뭘 모르신다니까요.”

버릇없는 딸의 타박에 남작 부인의 눈매가 바짝 치켜 올라갔다.

“뭐?”

“얼마 전에 헬레나가 사는 저택에 가봤거든요.”

남작 부인의 날선 시선에 드리젤라는 차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제가 본 시각대로 남작 부인에게 고자질했다.

“……!”

남작 부인은 눈과 입을 활짝 개방하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드리젤라, 그게 정말이니?”

“네. 그렇다니까요.”

순간 남작 부인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호호호.”

“어머니…?”

드리젤라는 간드러지게 소리내 웃는 남작 부인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나스타시아 또한 뚱한 표정으로 남작 부인을 주시했다.

“이건 너희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란다.”

“기회라니요?”

드리젤라와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기다려보렴. 이 어미에게 생각이 있단다. 너희는 곧 이전보다 더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될 거야.”

남작 부인의 말에 드리젤라와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남작 부인은 의문을 품는 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리젤라. 너는 당분간 외출을 금하렴. 그 까무잡잡한 피부를 더 태워서는 안 되잖니?”

“…네.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

“아나스타시아. 너는 식사량을 좀 줄이도록 하렴.”

“…알겠어요. 어머니.”

드리젤라와 아나스타시아는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에 순종적인 딸들을 보며 남작부인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머리가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좋은 일은 앞당길수록 더 좋지.’

두 딸의 외모에 대해 한 차례 질책을 늘어놓은 남작 부인은 이내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내려갔다.

“쥬그테.”

“예. 마님.”

“이걸 발송하도록 해.”

남작 부인은 빈텔테리 가문의 인장이 박힌 봉투를 내밀었다.

쥬그테는 남작 부인의 안색을 살피며 생각했다.

‘별일이네.’

항상 술에 쩔어 낯빛이 어둡던 빈텔테리 남작 부인의 얼굴이 묘하게 밝아 보였다.

쥬그테는 마님의 좋은 일이 제게도 좋은 일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님, 잘 전달하겠습니다.”

쥬그테가 마주 웃으며 건네받은 봉투를 품에 꼭 안았다.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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