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이제부터 마리아가 공략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시나리오 스포를 방지하려던 탓에 최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나였기에 이건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마리아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어?”
마리아와의 대화로 공략캐릭터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스탯이 캐릭터 공략에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는 거네?”
랭크에 따라 정보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랭크가 오를수록 고급 정보를 주는 모양이었다.
귀속 캐릭터 마리아의 랭크가 개방됩니다.
마리아의 랭크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유능한 마리아라면 최소 A 랭크는 되겠지.’
이제 공략은 손쉬워질 거다.
고속도로 위 하이패스를 단 붕붕이처럼 꽃향기를 맡으며 탄탄대로를 달릴 거라 믿으며 랭크를 확인했다.
“응. 보여줘.”
현재 마리아의 랭크는 D입니다.
“에게?”
즐거웠던 기분이 짜게 식었다.
이내 묻지도 않았는데 시스템이 내 스탯과 레벨을 띄웠다.
마리아의 랭크를 올리고 싶으면 내 스탯부터 올리라는 소리였다.
마리아를 키워주세요.
“어… 그래.”
새로 개방된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기운 빠진 나를 다독이듯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응.”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새롭게 개방된 캐릭터로 눈을 돌렸다.
호감도
호감도 영역에 아벨이 자리를 잡았다.
“아벨이 풀 하트라고?”
가득한 하트에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벨: 노란색
그러나 색깔만큼은 노란색이었다.
“캐릭터별로 퀘스트가 있고 그걸 완료해야만 공략 성공이라는 거지?”
딩동.
정답입니다!
알림음과 함께 칭찬하는 듯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벨 구출 퀘스트는 마리아뿐만 아니라 아벨의 호감도도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가장 중요한 해츨링의 이름으로 눈을 돌렸다.
해츨링의 이름 위, SD 캐릭터는 여전히 알 상태로 호감도 또한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음….”
나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가장 중요한 해츨링의 호감도를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가 돼야 해츨링이 으른이 되는지 궁금했다.
물어봐도 시스템은 헛소리를 내뱉을 게 분명해 보였기에 나중에 마리아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체스트: 노란색
데쏠레이: 초록색
체스트의 호감도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데쏠레이 또한 파란색에서 초록색으로 호감도가 오른 상태였다.
‘체스트는 룸메이트가 되면서 오른 것 같고. 그럼 데쏠레이는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오른 건가?’
시스템은 침묵을 유지했다.
“…….”
나는 마리아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아가씨, 부르셨어요?”
“응. 쉬는 데 미안해.”
좀 진정되어 보였으나 마리아의 눈가가 여전히 붉었다.
“아니에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빈텔테리저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니까요.”
마리아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용인들이 더 들어온 뒤에는 할 일이 줄어서 심심하기까지 하다니까요. 일을 시켜 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귀족가의 영애처럼 하루종일 뒹굴기만 하면서 지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행동파에 가까웠다.
항상 바쁘게 일해 온 탓에 놀라고 하면 더 괴로워할 것 같았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적적하던 참이었거든. 내 말상대 좀 해줘.”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말씀만 하세요!”
머릿속으로 마리아에게 물어볼 말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마리아가 캐릭터 공략 정보를 알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랭크 별로 공개되는 정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알겠어.’
나는 속으로 대답한 뒤 마리아에게 물었다.
“마리아가 생각하기에 해츨링은 뭘 좋아하는 거 같아?”
“마력이 높으면 아기님의 호감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모럴이 높은 것도 도움이 되겠네요.”
흡사 예언가처럼 마리아가 해츨링의 공략 팁을 전수했다.
“아하!”
나는 검지와 엄지를 딱, 맞부딪혔다.
‘마력을 올려야겠구나.’
º º º
외출 준비를 마치고 트왈렛 룸을 나설 때였다.
“아가씨. 체스트 님도 저택에서 함께 살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마리아가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물었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가 입을 떡 벌리며 기함했다.
“왜요?”
“체스트가 해츨링 아버지거든.”
“와… 저보다 어려보이시던데, 벌써 아이가 있으셨구나….”
잠시 혼잣말하던 마리아가 염려했다.
“그런데, 아가씨. 저는 걱정이 되요. 혹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아가씨의 명예가 실추될 테니까요.”
마리아의 걱정은 타당했다.
혼인도 하지 않은 영애의 저택에 젊은 남자가 드나들면 좋은 소문이 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마리아의 걱정을 일축시켰다.
“혹여나 누가 물어보거든, 체스트를 내 먼 친척이라고 하면 돼.”
할 말 많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던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체스트가 머물 침실 준비는 어떻게 됐어?”
나는 트왈렛 룸을 빠져나오며 물었다.
“제가 잘 모셨으니, 주인님께서는 심려치 마십시오.”
기척도 없이 등 뒤에서 나타난 스튜어드가 대답했다.
“…어? 고마워, 스튜어드.”
마차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S랭크 집사에게는 무력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그렇지 않고선, 기척도 없이 저렇게 툭 튀어나올 수가 있나.’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스튜어드를 가늘게 뜬 눈으로 힐끔거렸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스튜어드가 물었다.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표정과 말투 모두 여느 때처럼 태연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외출 용건은 두 가지였다.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길드, 어둠의 자식들을 찾았다.
“개나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새까만 어둠 속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패스워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저번하고 다르네.
그새 패스워드가 변경된 건가?
“…개나리.”
중성적인 목소리가 재차 나를 채근했다.
“…조카 신발?”
나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어서 오십시오. 길드, 어둠의 자식들에.”
이쯤 되니 패스워드에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길드 마스터를 만나러 왔어.”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핀 조명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양손에 깍지를 낀 채로 앉아 있었다.
“일은 원활히 해결하셨습니까?”
“그런 셈이죠.”
일부는 해결했으니.
“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보다… 상급 고용인 셋이 필요하시다고요?”
조금 전에 작성한 서류를 들여다보며 길드 마스터가 물었다.
“네. 기왕이면 밀정 역을 수행할 만한 사람과 무력을 갖춘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이 좋겠어요.”
“그들을 빈텔테리 남작가로 보내실 겁니까?”
“맞아요.”
센스 있으시네.
“만족하실 만한 자를 선별해 안배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딱 적절한 인재가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길드 마스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트 백작은 적이 많은 사람이더군요.”
º º º
길드에서 볼 일을 끝낸 나는 다시 마차에 올라 시스템 창을 띄웠다.
교육
검술 마스터
마법 600루비
폴 댄스 500루비
예법 400루비
.
.
‘마법을 배울래.’
고급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을 자랑하는 호박 마차가 대기의 마나라고 적힌 간판 앞에서 멈췄다.
띠링.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알림음이 울렸다.
퀘스트 발생
퀘스트: ‘대기의 마나’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보상: 마법 능력치 랜덤 상승 및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마법 수업을 시작하시겠습니까?
1회 600루비가 사용됩니다.
‘고고.’
짤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효과음이 울리고, 입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거품이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검술 도장과는 또 다른 연출이 재미있다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반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이었다.
‘득음이라도 하려는 건가?’
여전히 눈을 감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여자의 주변으로 날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또 뭐야.’
나는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허공을 부유하는 물체에 집중했다.
주먹 크기보다 작은 생명체에는 앙증맞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여왕 모기라도 되는 건가….’
내가 의문을 품자마자 시스템이 대답했다.
요정 팅커벨
‘오호.’
내 속에서 판타지 요소가 한층 증가했을 무렵.
“나는 위키드란다. 마법을 배우러 왔니?”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위키드가 물었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위키드가 제 옆자리로 고개를 틀었다.
마치 눈을 감은 상태로도 내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앉으렴.”
시스템에 의해 강제적으로 몸이 움직였던 검술 도장에서와는 다르게 내 몸을 통제할 수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위키드의 자세를 따라 하며 앉았다.
“어떤 마법을 배우고 싶니?”
위키드의 물음과 함께 시스템 창에 선택지가 쭉 떠올랐다.
공격계
회복계
방어계
정신계
부활계
소환계
‘뭘 배우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결정했구나. 그럼 수행을 시작하도록 해.”
나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건만 위키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저절로 움직였다.
마법 수행을 시작합니다.
º º º
한 차례 루비 파티를 벌인 뒤 마차에 올랐다.
‘마력 스탯 좀 보여줘.’
마력 100
마법 기술 100
“좋아.”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릴 때.
청량감 있는 효과음과 함께 흰 빛 무리가 나를 에워싸더니 시스템 창이 술렁였다.
퀘스트: 대기의 마나 10/ 10 완료
레벨업
교육으로 올릴 수 있는 마법 스탯이 가득 찼다.
그럼에도 내가 어떤 계통의 마법을 배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어도 알려주지 않을 게 뻔한 시스템에게 속성을 묻는 대신 해츨링의 변화를 확인하기로 했다.
“해츨링의 호감도를 보여줘.”
호감도
해츨링: 노란색
“……?”
호감도의 총량은 마법 교육을 하기 전과 같았고 하트의 색상 또한 개나리색 그대로였다.
뭐가 잘못된 건지 잠깐 고뇌하다 시스템을 불렀다.
“해츨링의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스탯이 또 뭐가 있어?”
마력과 모럴, 그리고 ???와….
마리아가 알려준 마력과 모럴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물음표의 향연이었다.
‘지롤도 풍년이다.’
나는 짧게 분노한 뒤 생각했다.
‘이 정도 스탯 변화로는 호감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뜻이겠지?’
나는 마차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루비로 수행 시간을 단축한 덕에 아직도 해가 중천이었다.
‘잠깐!’
문득 흑역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