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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70)화 (70/166)

<70화>

버틀러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같은 대상을 두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내 주장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얼른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버틀러. 성 외에 묵을 만한 곳은 전혀 없는 걸까?”

“확실히 남작님께서 머무시기에는….”

“그렇다기보다….”

나는 눈을 도르르 굴리며 뒷말을 흐렸다.

그러자 가만히 내 안색을 살피던 버틀러가 곧 알겠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 혹시 윈터 경께서 추운 날씨에 야영이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신 겁니까?”

조금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딱히 부정하기도 애매해 적당히 얼버무렸다.

“…어찌 되었든 이 성의 주인은 나고, 성기사단은 내 성의 손님이잖아. 손님을 홀대해서는 안 되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버틀러가 기뻐하며 내 말에 동의했다.

“그럼 얼른 가서 성기사분들이 묵으실 만한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버틀러가 뛰듯이 홀을 빠져나갔다.

‘왠지, 좀 불안한데?’

º º º

버틀러는 홀을 나서자마자 성기사단을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메이어와 대화를 나누는 성기사단을 발견했다.

“윈터 경.”

버틀러의 목소리에 엘지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남작님께서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남작님께서는 성기사 분들께서 홀을 양보해주어 매우 고마워하십니다. 그래서 성 인근에 성기사 분들께서 묵으실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엘지드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버틀러가 메이어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멀리서 달려오신 성기사 분들께서 묵으실 곳이 있는지 찾아보러 갑시다.”

그 말에 엘지드 뒤에 서있던 성기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 말 진심 같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장님을 호랑말코 취급했잖아.”

한 기사가 작게 속삭였다.

“큼.”

엘지드가 성기사들에게 눈치를 준 뒤 무표정한 얼굴로 버틀러에게 말했다.

“신경 써준 건 고맙지만, 저희는 야영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º º º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시스템 창이었다.

엘지드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엘지드의 호감도는 쉽게 내리더니 또 쉽게 올랐다.

‘성기사들의 거처에 대해 한 마디라도 늘어놓았던 게 효과를 보인 건가?’

어젯밤 성기사들은 폐허와 다름없는 낡은 신전 근처에서 야영을 했다고 버틀러가 알려 주었다.

‘엘지드의 호감도 좀 보여줘.’

엘지드: 노란색

‘원상복구 되지는 않았네.’

어쨌든 바닥없이 떨어지던 엘지드의 호감도가 반등한 건 다행이었다.

속으로 잘 되었다 생각하며 영주 미션을 확인하려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영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가 허락하자 치유사 두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상황은 좀 어떤가요?”

내 질문에 살비르산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병의 원인이나, 단서 같은 건 발견하지 못 했나요?”

“감기와 증세가 비슷하기는 한데….”

살비르산이 뒷말을 흐렸다.

그러자 또다른 치유사 라피스가 말을 이었다.

“환자들의 증세를 관찰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요. 지금 당장 단정 짓기는 힘들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의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을 넘겨짚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으니.

시일이 걸리더라도 자세히 알아보는 게 낫다.

“그럼 살비르산과 라피스는 교대로 쉬도록 해요.”

내 말에 라피스가 빠르게 대꾸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숨을 거둔 환자가 여럿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쉬다니요.”

“두 사람 다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니에요?”

“과신하다니요?”

라피스가 눈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라피스와 살비르산의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써클을 가리켰다.

“전염병이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잖아요. 블랭크 내에 치유사라고는 두 사람 뿐인데, 당신들마저 쓰러지고 나면 영지민들은요? 게다가 전염병이 도는 지역까지 찾아와줄 용감한 치유사가 또 있을까요?”

나는 부러 과장된 표현을 써가며 거듭 휴식을 권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다 치유사라는 입장 때문에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내 말에 입술을 달싹이던 살바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럼 더 많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저희 건강부터 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치유사들이 교대로 휴식을 취하기로 한 사이, 나는 성의 요직을 맡은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 블랭크의 현 상황을 전해 듣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모두 맡은 업무를 수행하러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혼자가 된 나는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기분을 추측해 보았다.

‘힘들었겠구만….’

블랭크는 내게 신대륙과 동급이었다.

왜냐면,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땅이었던 만큼, 식량난과 위생 문제, 몬스터 출몰과 치안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개척해야 했으니까.

“하아….”

나는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럴 때 치유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꿍얼거리던 내 말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혹시 치유 마법을 배울 수 있어?’

내 질문에 바로 시스템 창이 떴다.

마법 속성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오! 돼? 그럼 치유 마법을 사용하게 해줘.’

희귀 마법 속성을 보유 중입니다.

정말로 마법 속성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모처럼 좋은 속성을 바꿀 거냐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내가 소유한 속성이 뭔지 알아야 바꾸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속성을 변경하시겠습니까?

내가 투덜대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무한루프와도 같은 문구를 띄웠다.

‘…….’

나는 소리 없이 분노하다가 발상의 전환을 했다.

‘답이 안 나올 때는 질문이 잘못된 거랬어.’

그래서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돌고 있는 전염병의 원인이 뭐야?’

단서가 될 마을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빙 둘러가는 대답을 내놓았지만, 그것만으로 적잖은 소득을 얻었다.

‘좋아.’

나는 활로를 찾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버틀러를 찾았다.

“영지 안에 다른 치유사가 있는지 찾아보고 올게.”

“위험합니다! 남작님께서 직접 움직이시기보단 사람을 시켜 알아보시는 게….”

피곤에 찌든 얼굴로 버틀러가 나를 만류하고 나섰다.

메이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주님, 치유사 두 분만으로는 치료가 더디겠지만, 성에서 기다리시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버틀러야 전염병이 만연한 지역을 쏘다니겠다는 내가 걱정이 되어 말리는 거라지만, 메이어의 말투는 묘하게 거슬리는 구석이 있었다.

가만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니?

‘호감도가 낮아서? 아니면, 텃세라도 부릴 심산인가….’

자연히 메이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뾰족해졌다.

“영주인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다는 거지?”

내가 진지하게 묻자 메이어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블랭크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수도와 달리 블랭크는 치안이 좋지 않습니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가?”

“영지민으로서 영주님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메이어의 표정과 말투는 나를 더욱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권위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 성에서의 서열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걸.

“그대가 잊은 듯하여 묻지.”

“…….”

“블랭크의 새 영주가 어떻게 영주가 되었는지 알고 있나?”

“그 말씀은…?”

“내 몸 하나쯤은 지킬 힘이 있다는 뜻이야. 내 안전을 걱정하는 거라면, 고맙지만 사양하지.”

나는 살짝 턱을 치켜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제야 메이어가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영주님께서 대단한 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다만….”

“다만?”

“병의 원인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걸 찾으러 성 밖으로 나가려는 건데요?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답답함을 느끼며 가슴을 퍽퍽 치고 싶었지만, 나는 속내를 감추고 태연히 말했다.

“혹시 내가 병을 옮을까 걱정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짓는 메이어를 보며 나는 씩 웃어보였다.

“나는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 체질이니까.”

“…….”

메이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회복약: 단번에 상처를 치료해주는 고급 치료약

아이템 목록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이내 출구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발길을 멈춰세웠다.

“제가 남작과 동행하겠습니다.”

엘지드였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윈터 경이 저와 동행한다고요?”

이젠 대놓고 감시하려는 건가?

“제가 블랭크에 온 이유도 남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전염병이 다른 영지로 퍼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윈터 경도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요.”

“그건 남작께서도 마찬가지겠지요.”

나는 짧게 고민하다 답을 내렸다.

지금은 다람쥐 손 하나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더구나 엘지드가 날 따라오면 성기사단도 함께 움직일 테니.

“그렇다면 좋아요. 지금 당장 출발하죠.”

º º º

나는 지도에 떠오른 도트 무늬의 방향을 따라 말을 달렸다.

성과 꽤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마을은 산과 인접해 있었다.

‘여기야?’

내가 묻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름 없는 마을

지도를 확인하니 도트 무늬가 표시된 곳은 이곳이 분명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는 없는 폐허와 같은 마을이었다.

“남작께서는 특정하고 이곳에 오신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엘지드의 물음은 당연했다.

치유사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놓고 성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왔으니까.

“신께서 이곳으로 향하라고 하시더군요.”

신실한 성기사들이니 나를 떠받들던 헨리처럼 대충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남작께서 신실한 분이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만.”

엘지드가 정곡을 찔렀다.

귀족, 평민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예배일에는 신전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후원하는 아이들을 보러 가거나 부활을 위해 방문한 일처럼, 목적이 있을 때 이외에는 신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윈터 경께서 보시는 것보다는요.”

나는 그의 말을 간단히 일축하고 가볍게 말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투레질하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읍읍!”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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