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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81)화 (81/166)

<81화>

나는 초상화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내 표정이 밝지 않다는 걸 깨달은 스튜어드가 걱정스레 되물었다.

“주인님. 혹시 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

나는 차마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스튜어드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촉촉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론 주인님의 아름다움을 털끝만큼도 표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저도 인정합니다. 황궁에도 자주 초대받는 화가라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 실물에 비할 것은 못 되는군요.”

설명을 쏟아낸 스튜어드가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역시… 이 그림은 당장 치워 버리고, 대신 커다란 거울을 달아 두는 게 좋겠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응….”

나는 뺨을 긁적이며 먼 산을 보았다.

초상화는 책상에 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거기에 거울을 단다면 다분히 오해를 살 것 같은데.’

자기애가 너무나 강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 초상화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스튜어드 좋을 대로 해.”

“예. 당장 하인을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스튜어드가 우물쭈물 내 얼굴과 초상화를 번갈아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초상화 말입니다. 초대하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 인기 화가의 그림이어서 창고에서 썩히는 건 몹시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

“만약, 주인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 초상화를 제가 따로 보관해 두어도 되겠습니까?”

“응. 스튜어드가 알아서 해줘.”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님!”

기뻐하는 스튜어드의 반응을 보고난 뒤에야 나른한 몸을 소파에 묻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업그레이드 된 저택을 구경하려던 마음이 푸스스 식었다.

“그런데 스튜어드, 황자 전하께서 내게 초대장을 보냈다고 했지?”

문득 스튜어드가 끓여주는 차를 기다리다 물었다.

순간 스튜어드가 흠칫 몸을 굳혔다.

그를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렇습니다.”

스튜어드가 어항 속 물고기가 헤엄치듯 매끄러운 동작으로 차를 내려놓았다.

찻잔에서 몽글몽글 김이 올라오며 향긋한 차향이 폐부를 그득 채웠다.

“왜 갑자기 나를 초대한 건지, 좀 알아봐야겠어.”

내 말에 스튜어드가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신경 쓰실 듯하여 미리 조사해두었습니다.”

역시 S 랭크 집사는 다르네.

그런 생각을 하며 향긋한 차향을 음미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그는 차를 홀짝이는 나를 가만히 응시 중이었다.

내가 말해보라는 듯 눈길을 보내자 스튜어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해리스 황자 전하께서 주인님을 눈여겨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찻잔을 매만지다 반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인님께서는 황위 다툼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황위 다툼?”

당연히 처음 들었다.

나는 이 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스탯 올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살롱이나 자그마한 티파티조차 참가한 적도 없다.

그러니 고급 정보를 알 턱이 있나.

“타이렌 황가의 후계 구도에 대해 잠깐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순간 공부하기 싫은 수험생의 기분을 느꼈다.

‘역사 수업 시간인가….’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로그아웃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들어야하는 이야기였다.

또 관속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망할, 부활 주문서….’

그때가 떠올라 말아 쥔 주먹을 부들거리며 스튜어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스튜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펄시스 제국의 황위 계승권은 총 아홉 분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 중 주인님께 초대장을 보낸 분이 황비 전하 소생의 해리스 황자 전하이긴 합니다만.”

“합니다만?”

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문득 이전에 보았던 신문기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정부에 관한 기사.

정부의 아들과 황자 해리스가 황위를 두고 알력 다툼이라도 하는 건가?

“현재, 황제 폐하께서는 장자 계승 원칙을 따르지 않을 듯한 태도를 취하고 계십니다.”

세계 어느 황가나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방금 스튜어드의 발언으로 단서를 얻었다.

“그럼 황태자 책봉을 아직 안 했다는 거네.”

“맞습니다.”

“해리스 황자 전하가 어떤 분인지 알아?”

“연배는 주인님과 비슷하실 겁니다. 어릴 적부터 검, 마법, 학문, 정치 같은 것들에 일절 흥미가 없으셨다 들었습니다.”

몸이 약한가?

“주로 새벽까지 술과… 여자를 취하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냥 놀기 좋아한다는 소리였다. 황족의 의무는 지지 않고 말이다.

‘한량이네, 한량.’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할 말을 되뇌었다.

“문제는 외척 세력의 힘이 강한 편입니다. 주인님께서도 황비 전하의 친정인 웨이런 공작가에 대해 들어 보셨겠지요?”

사교계와 제국 사정에 무딘 나조차 들어본 가문이었다.

“응. 웨이런의 소공작이 유명했던 거 같은데. 맞아?”

“네. 주인님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웨이런 공작들이 대대로 정치 쪽에만 발을 들여왔다면 소공작께서는 검술에 능하십니다.”

이후에도 스튜어드는 방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역시 S 랭크 집사라 그런가?’

제국 내의 이름난 가문과 그들이 지지하는 황위 계승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설명하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핵심만 딱딱 집어주는 1타 강사처럼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현생에서 스튜어드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나는 최고 대학에 두 번은 가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잠깐 휴식을 취하도록 할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게 좋겠어.”

나는 피로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스튜어드가 설명을 잘 한다 하여 암기해야 하는 쪽인 내 피로도가 적은 건 아니니까.

“여러 날에 걸쳐서 찬찬히 설명해 드려야 하는데, 주인님께서 이해력이 좋으시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습니다.”

스튜어드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냐, 언제가 되었든 꼭 알고 있어야 할 정보잖아.”

그렇게 칭찬을 해주고 잠깐 휴식을 취할 때였다.

VIP 14단계의 특전: S 랭크 집사의 ‘핵심요약’ 발동

S랭크 집사의 ‘핵심요약’ 발동 효과로 습득 가능한 지능 수치가 두 배가 됩니다.

지능이 6 X 2 상승합니다.

지능이 3 X 2 상승합니다.

.

.

총 습득 지능 72

알림음도 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오호!’

뜻하지 않게 지능 스탯이 대폭 올랐다.

º º º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나는 다시 스튜어드와의 대화에 몰두했다.

“그런데 최근 해리스 전하께서 어텀 대공과 접촉이 있던 모양입니다.”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나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대공이라는 고귀한 핏줄과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부.

배경을 빼도 본인 자체의 능력과 외모가 워낙 출중한 터라 대공과의 인연을 원하는 귀족들이 많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러니 황족도 마찬가지겠지.

“아무래도 가장 확실한 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성한 계약서를 대주교 앞에서 공인받지 않는 한, 영원한 편은 없다.

그래서 귀족들끼리는 혼인이라는 계약을 맺었다.

서로 사돈을 맺음으로써 절대 등 뒤에서 칼을 꽂지 못할 가장 강력한 인질을 획득하는 셈이었다.

“해리스 황자 전하께 누이가 있어?”

“같은 어머니 아래엔 없습니다만. 외가인 웨이런 공작가에 혼기 적절한 영애가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혼인시켜 어텀 대공의 세력을 등에 업겠다는 거구나.”

“예. 민감한 사항이다 보니 조심스럽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리 대단하신 황자 전하께서 왜 나를 눈여겨본다는 거야?”

가끔은 말을 하면서 머릿속이 정리되고는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설마…?’

내가 미간을 모으자 스튜어드가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해리스 황자 전하께서는 아직 공식적인 약혼자가 없습니다.”

스튜어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신분제가 존재하는 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황족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가령 황비 쪽에서 황제를 구슬려 혼담을 구체화시킨다면?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황자 해리스와 결혼해야만 한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스튜어드가 내 표정을 살피며 걱정스레 물었다.

“응.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알겠습니다. 저는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스튜어드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집무실을 나갔다.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속으로 결심했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튀자!

하지만 모든 커맨드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로그아웃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로그아웃.’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려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작게 읊조렸다.

“읍됐다.”

물론 필터링은 여전히 신속 정확하게 내 욕을 차단했다.

‘다른 방법이 뭐가 있지….’

짧게 고민하다 이전에 시도해 보지 않았던 방법을 찾았다.

‘리셋 할래.’

이번에도 시스템 창이 조용했다.

“읍읍.”

비속어 2회차에 돌입하셨습니다.

내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초기 리셋도 아니고 이만큼이나 방대한 노오력을 투자했다.

거기다 루비는 또 얼마나 많이 쏟아 부었나?

그렇다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와의 결혼만큼은 딱 잘라 사양이었다.

“으으….”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마른세수를 하다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아직 모르는 거잖아? 어쩌면 자신을 지지해 줄 세력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고.’

내가 바라는 쪽으로 사고회로가 돌아갔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황자 해리스가 황위를 노리고 있는 거라면 나 같은 뽀시래기 남작을 황자비로 들여서 무슨 이득이 있겠나.

‘하등 도움이 안 되지.’

내 지위에 대해 곱씹다 보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심정이 되었다.

‘정녕, 나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건가…?’

그때 시스템 창이 깜빡였다.

황자 해리스의 초대를 거절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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