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135)화 (135/166)

<135화>

“아가씨, 바쁘세요?”

“스튜어드, 잠깐 다녀올게.”

“네.”

예상대로 집무실 밖에는 마리아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가씨, 시간이 없다고요.”

“알았어.”

나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트왈렛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º º º

드림팀의 스타일리스트 원이어가 인디 핑크색의 오프 숄더 드레스를 선보였다.

“바디에 금실로 패턴을 넣었답니다.”

내 시선이 벨벳 쿠션 위의 유리구두로 옮겨가자 그녀가 이어서 설명했다.

“신데렐라에게 마법을 걸어줄 것 같지 않나요? 이 영롱한 빛깔의 다이아몬드 쥬얼리 세트와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넷이서 합의점을 찾았는지 마리아와 다른 셋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성에서 돌아올 때 플러드가 준비해준 드레스의 디자인과 조금 비슷하네.’

세계를 구할 용사 전용 갑옷을 선보이듯 마리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가씨, 어떠세요?”

“…엄청, 예뻐. 내 마음에 쏙 드는데.”

내가 소감을 전하자 마리아와 드림팀이 환호했다.

“그쵸?”

“가주님, 어서 입어 보세요.”

º º º

건국제 참석을 위해 평소보다 힘을 줘 꾸며서 그런가?

1층으로 향하는데 고용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존경과 흠모가 담긴 시선이긴 해도 일거수일투족 따라붙는 눈길들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미녀들의 삶도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겠구나.’

본래의 내 몸에게 조금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평범할 때는 미녀들을 부러워했으면서 정작 미녀가 되니까 평범했던 때를 그리워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즐기기로.

그때 1층에 있던 스튜어드가 나를 발견하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주, 주인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내가 배시시 웃자 등 뒤에서 “하아….” 하고 고용인들의 숨죽인 탄성이 들려왔다.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네… 맡겨주십시오.”

넋 나간 듯 대답하던 스튜어드가 뒤늦게 덧붙였다.

“아참, 주인님. 아까부터 대공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택 입구에 삐까뻔쩍한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백마 탄 왕자님 컨셉인 건 알겠다.

그런데,

‘이건 좀 과한 것 아닌가?’

백마가 무려 여섯 마리라니….

누가 보면 황제가 타는 마차인 줄 알겠다.

나는 치렁치렁한 드레스 자락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마차에 올랐다.

“늦… 었군.”

시선이 마주치자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텀 대공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동요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데쏠레이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준비할 게 좀 있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약속 시각보다 이른 도착이었다.

하지만 어텀 대공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어텀 대공이 내게 턱짓했다.

“또 어떤 영식을 꾀려고 그렇게 아름답게 꾸민 거지?”

“대공 전하야말로, 제국의 모든 영애들을 홀리려고 작정하신 것 같은데요.”

나는 어텀 대공의 차림새를 흘깃 보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붉은색 연미복이 그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침 좀 흘리라고 작화가들이 작정이라도 한 듯 말이다.

“내 약혼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내가 한 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어텀 대공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자제하듯 입술을 오므렸다.

‘뭐야, 저 소년미는… 귀엽게?’

그답지 않게 수줍어하는 미소라 내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아직 완료하지 못한 퀘스트를 떠올렸다.

“코치먼은 오늘 보이지 않네요?”

코치먼의 비밀, 그거 힌트 좀 주라.

“내 약혼녀께서 내 마부를 보고 싶어 할 줄은 몰랐군.”

내 관심이 다른 데로 쏠리자 어텀 대공의 입매가 일자로 다물렸다.

‘이 집착 광공 같으니라고.’

그래서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º º º

황궁 안은 대낮이라 해도 믿을 만큼 눈이 부셨다.

천장과 벽면을 가득 메운 벽화와 예술품들의 향연에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내부를 훑어볼 때였다.

“어텀 대공님, 카스텔른 백작님 드십니다.”

연회장 입구에 선 시종의 외침에 먼저 와 있던 귀족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

귀족들이 서로 눈치 게임을 하는 사이, 노귀족이 다가와 어텀 대공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대공 전하.”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근처를 배회하던 귀족들이 너도나도 어텀 대공 주위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먼저 내게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공식 석상에서 펄시스의 예법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주어야만 발언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백작이다.

동시에 미래의 대공비였다.

황족을 제외하면 이 자리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은 어텀 대공이었다.

그래서 선뜻 말을 걸지 못하고 귀족들은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그때 시종이 외쳤다.

“헤르메른 제국의 스프링 공작님 드십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헤르메른? 스프링?’

흰 제복을 입은 장신의 미남이 홀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마치 그에게만 필터 효과를 적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근데 체스트가 여길 왜? 그보다 공작이라니?’

나는 예상치 못한 체스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 홀 안을 둘러보던 체스트가 나를 발견하고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런 곳에서 뵙네요. 카스텔른 백작님.”

내 손등에 입을 맞춘 체스트가 싱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스프링 공작님?”

내가 말끝을 올리자 체스트의 얼굴에 웃음기가 짙어졌다.

마치 ‘놀랐어요?’하고 되묻는 듯했다.

당연히 그가 헤르메른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로서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 저택에 남자들이 드나든다는 소문 때문에 화를 냈었는데….’

지금 내 대외적 신분이 어텀 대공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어텀 대공과 정말 결혼을 하고 말고를 떠나, 약혼녀가 타국의 사신과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후폭풍이 불 게 뻔했다.

그런 내 입장을 이해하기라도 한듯 체스트가 담백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다른 귀족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잠시 체스트를 주시하던 어텀 대공이 내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꽤나 친해 보이던데?”

돌려 말했지만 나와 체스트의 관계에 대해 묻는 게 분명했다.

“저 분은 헤르메른의 사업가세요. 저와 거래를 하고 계시고요.”

빤히 나를 쳐다보던 어텀 대공이 코웃음을 쳤다.

“내 약혼녀의 사업 파트너라 이건가?”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홀 안이 시끄러워지더니 시종의 외침이 들려왔다.

“스톤콜드 후작님과 소후작님 드십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한 순간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중년의 귀족 옆에 푸른 연미복을 입고 서 있는 남자가 엘지드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귀족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후작이라니요? 스톤콜드가의 후계자가 바뀌기라도….”

“그럼 성기사단장직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엘지드는 자신을 둘러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감한 얼굴로 홀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듯 엘지드가 한 발 내딛는 찰나, 스톤콜드 후작이 누군가를 소개했다.

어쩔 수 없이 내게 눈인사만 건넨 엘지드가 소개받은 귀족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내 귀에 한숨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군.”

어텀 대공이었다.

내가 시선을 주자 어텀 대공이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딘가에 가둬 두기라도 해야 나만 봐줄 건가?”

‘감금이라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바짝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 농담하신 거죠?”

필시 그래야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더군.”

그러고는 왼팔을 살짝 들어 올려 팔짱을 끼라고 종용했다.

반협박처럼 느껴져서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대는 속박받는 걸 즐기는 편인 모양이지?”

어텀 대공이 내 손을 끌어당겨 제 팔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는 듯 턱짓했다.

내 평판은 어찌되는 별로 상관없지만, 어텀 대공에게는 사교계의 소문이 중요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 지금은 약혼녀니까.’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나는 굳이 팔을 풀지 않았다.

데쏠레이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체스트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엘지드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허…’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욕도 안 나왔다.

한 명의 호감도가 오르면 두 명의 호감도가 하락한다?

이건 완전히 밑지는 장사였다.

내가 시스템에게 거하게 따지려 할 때였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시종장의 외침에 이어 황제가 등장하자 홀 안의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졌다.

“저쪽으로 가지.”

어텀 대공이 황좌가 있는 쪽을 향해 턱짓했다.

펄시스의 예법에 따라 몇몇 황족들은 이미 황제의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방계지만 어텀 대공의 자리 또한 황제 옆이었다.

나는 어텀 대공과 함께 황제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곧바로 귀부인들의 시선이 대공에게 따라붙었다가, 이내 옮겨졌다.

때마침 체스트와 엘지드가 앞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세 남자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귀부인의 고개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어캣이야?’

세계관 최고 미남 셋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몹시 드물다.

거기다 여기를 봐도 잘생겼고, 저기를 봐도 잘생겼다.

‘존잘 옆에 존잘이니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암.’

나는 그녀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º º º

‘여기가 지뢰밭이었구나….’

춤곡이 연주되는 순간, 나는 현실을 자각했다.

체스트와 엘지드가 동시에 내 쪽으로 몸을 튼 것이다.

‘야, 씨! 이건 아니잖아?’

내가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허공에서 빨간 폰트가 사이키 조명처럼 깜빡였다.

돌발 이벤트 발생!

호감도 대폭 상승의 기회!

첫 춤은 누구와 추시겠습니까?

‘시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곁에 있는 어텀 대공은 당연하다는 듯 내게 손을 내밀었고, 무소의 뿔처럼 나를 향해 직진하는 체스트와 엘지드에 이어 날뛰는 시스템 창까지.

게다가 당구장 표시가 있는 깨알 같은 설명글이 눈에 밟혔다.

호감도 대폭 하락에 주의하십시오.

바로 감이 왔다.

누구와 춤을 추든, 춤 상대가 되지 못한 최애의 호감도 하락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걸….

‘갑자기 플러드 보고 싶네.’

세컨드도 좋다던 플러드라면 춤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포용력 있게 이 상황을 이해해 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 세 남자는 달랐다.

집착 기질이 다분한 대공.

인성은 갑이지만, 자신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 부분에서만큼은 자비 없는 드래곤.

겉으로는 가장 시크해 보이지만, 가장 잘 삐지는 성기사단장.

“…….”

그 짧은 순간.

나는 셋 중 누가 가장 적은 호감도 하락을 보일지 셈을 해봤다.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금쪽같은 명언이 떠올랐다.

‘원래 인생은 개썅 마이웨이다.’

한번 살다 죽을 인생 남의 눈치 살살 봐가며 살면 얼마나 억울한가?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나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제 첫 춤 상대가 되어 주시겠어요?”

“……?”

“…….”

“……!”

내가 손을 내밀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던 상대가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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