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반드시 오늘 천궁환단을 손에 넣는다.
유주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남궁세가에 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천궁환단의 수색을 지속하고 있었으나,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역시 내벽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
남궁세가 안에서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은 이제 세가의 직계들이 거주하는 내벽의 안쪽밖에 없었다.
‘문제는 저길 어떻게 들어가냐는 건데…….’
외벽의 높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서든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들어가서 천궁환단을 찾을 때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분명 안쪽에는 창궁단의 무사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죽이는 건 몰라도, 그들의 눈을 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은신 무공이라도 하나쯤 배워 둘 걸 그랬나.’
전생의 그는 돌아서는 일 없고, 멈추는 일 없이 길을 나아가기만 했던 자였다.
당연히 몸을 숨길 수 있는 무공 따위는 배울 필요도 없었다.
유주혁이 내벽에 잠입할 방법을 곰곰이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유 공자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돌연 내벽의 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가 말을 걸어왔다.
“……잠시 산책 중이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무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며칠 사이에 자신을 아는 척하는 자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전이라면 자신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나, 지금은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던져 오는 탓에 그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마 상관수엽과의 일 때문이겠지.’
그때부터 자신과 뇌화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좀 과하군…….’
자신이 의도한 바이긴 했으나, 이렇게 한 번에 바뀌어 버릴지는 그도 몰랐다.
그것은 유주혁의 무위를 직접 본 자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뇌강마신의 탓이었다.
현재 무림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뇌강마신이라는 절대고수였다.
그런데 또 다른 뇌기를 쓰는 신성이 정파에서 등장하자,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 조금씩 부풀려 가며 그를 치켜세워 주고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원래 받을 관심보다 더한 관심을 받고 있는 유주혁이었다.
‘어딜 가든 내 얘기밖에 안 들리는군.’
아직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뇌강마신의 정체 또한 그 자신이었다.
그런 뇌강마신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들려오자, 어딜 가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신비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뇌강마신과 자신을 비교까지 하고 있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쁜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가문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과한 집중만 받지 않는다면 그가 우려했던 문파의 견제들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만이 아닌 뇌화문의 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 강해져 봤자 소용없었다.
단기간에 오대세가처럼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문파들의 외압에 견딜 수 있을 정도까지는 성장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이 안심하고 다른 일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종과 나동수, 그리고 남윤성이 잘해 줘야 하는데.’
현재 남궁세가에 있는 문도들 중, 자신을 제외한다면 가장 강한 건 그들 셋이었다.
때문에 유주혁은 그들 셋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재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 정도면 상당히 뛰어난 정도에 속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가문의 무공에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공의 소모가 너무 빠르다.’
파괴력과 속도 면에서는 확실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장점이 있었지만, 내공의 막대한 소모는 장점을 깎아내릴 정도로 큰 단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어중간해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정해진 시간밖에 싸우지 못한다면 무인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군.’
뇌전화륜지검의 개량을 위해 틈나는 대로 여러 방법을 시도 중이었지만, 가장 급한 건 역시 내공 쪽이었다.
그것이 해결된다면 현재의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주혁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직 무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마침 생각난 것이 있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소가주들은 아직 안에 있습니까?”
오대세가의 소가주들은 자신과의 일이 있은 그날, 모두 내벽 안쪽에 들어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며칠간은 바쁘다고 했었나.’
분명 남궁소소가 그런 말을 했었다.
‘정의련의 결성에 대한 것들을 의논 중이겠지.’
단체들의 연합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결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나 여러 문제가 차고 넘칠 것이다.
‘어차피 남궁세가가 수장 역할을 하겠지만.’
전생에서도 그랬고, 현시점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남궁세가이니 변동 사항은 없을 것이었다.
유주혁의 질문을 들은 무사는 표정을 조금 굳혔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오늘 내로는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유주혁은 큰 관심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짧은 인사와 함께 발을 옮겼다.
‘오늘인가.’
내벽에 들어가려면 그들을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남궁백이나 남궁선옥이라면 천궁환단에 대한 것을 알고 있겠지.’
정 방법이 없다면 그들에게 정혼금안술을 걸어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정혼금안술을 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몸 상태 문제도 있었지만, 정파 무인들의 심령을 제압하는 것은 조금 까다로운 일이었다.
하나같이 정심한 심법을 지니고 있기에, 혼에 침입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심령을 제압하는 것에 오래 걸리기라도 한다면, 남아 있는 자연진기는 모조리 소멸해 버릴 것이다.
‘일단 그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놔둬야겠군.’
아직 시간이 급박한 것은 아니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 * *
“아, 유 공자! 여기 있었구려.”
유주혁이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세가의 소가주들이 단체로 몰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문도들이 당황하지 않게 눈빛으로 진정시킨 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팽혁호에게 물었다.
팽혁호는 밝은 미소와 함께 유주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린 잠시 밖에 다녀올 생각인데, 같이 어떻소?”
“밖에…… 말입니까?”
팽혁호가 끄덕이자, 이번엔 남궁백이 앞으로 나왔다.
“유 공자, 다시 뵙는군요.”
“남궁 소협.”
남궁백은 팽혁호의 말을 보충하려는 듯 밖에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 진행하고 있던 일이 잘 풀려서, 자축의 의미로 근처 유람을 하려는 겁니다. 멀리 갈 생각은 아닌데…… 유 공자도 같이 어떠십니까?”
“전-”
아무리 급하지는 않더라도 놀 시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바로 거절하려 한 유주혁이었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소가주들끼리 나가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 세가의 정예 무사들이 따라나설 거니까요.”
황보심윤의 말을 들은 당무기가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군.”
여전히 세 명의 여인을 끼고 있는 그는 조금 따분한 표정이었으며, 상관수엽은 자신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유주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일이 있어서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쉽군요…….”
진정으로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남궁백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유주혁의 뒤를 쳐다본 남궁백이 자세를 바로 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분들은 뇌화문의?”
“예. 제 동생과 호위로 따라온 자들입니다.”
“아, 유 공자의 동생분이셨군요. 남궁백이라고 합니다.”
“유화림이에요.”
유화림과 인사를 나눈 남궁백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유주혁이 예상치 못한 말을 던져 왔다.
“그럼 유 소저와 호위분들은 어떠십니까?”
“네?”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어리둥절한 유화림에게 남궁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유주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속셈이지.’
자신이라면 몰라도, 그들이 유화림과 문도들에게 호의를 베풀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전 괜찮긴 한데…….”
유화림이 유주혁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최근에는 무공을 익히느라 조용히 지냈긴 했으나, 천성이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이곳에서 갇혀 있는 듯 지냈으니 당연히 답답했을 것이었다.
유주혁은 남궁백의 생각을 가늠해 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겁니까?”
그들은 오대세가의 소가주들이다.
원래라면 자신과 같은 중소문파와는 상종도 하지 않을 권위 계층의 인물들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남궁백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 공자.”
“예.”
“유 공자에게 드리고 싶은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남궁백은 다른 소가주들과 한 번씩 눈을 맞췄다.
“저희 세가들은 새로운 세력을 만들려고 합니다.”
“…….”
갑자기 그런 말을 해 올 줄은 몰랐던 유주혁이 남궁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새로운 세력에 뇌화문도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뇌화문은 무림맹 소속입니다만.”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해 오는 저의를 알 수 없었기에 떠보듯 그런 말을 내뱉었다.
“저희도 모두 맹의 소속이지요. 불이익을 받으실까 봐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이 세력을 만드는 결정은 현 맹주님께서 내리신 거니까요.”
“맹주님이?”
이번 말에는 유주혁도 살짝 놀랐다.
‘정의련을 만들려고 한 것이 신창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무슨 의도로 만들려는 것인지는 대충 감이 잡혔다.
‘이 시기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하긴, 혈천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면 몇십 년 동안 그들을 견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희를?”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었다.
정의련이 굳이 중소문파인 뇌화문을 껴안고 갈 이유가 있는가?
남궁백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시원스레 대답해 주었다.
“유 공자가 보여 주셨던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능성?”
“예, 저희는 유 공자와 뇌화문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미리 선취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다른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유주혁은 막힘없이 대답하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본문을 합류시키려는 이유가, 최근에 들려오는 뇌강마신이라는 자 때문입니까?”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해오는 유주혁 때문에 소가주들의 몸이 흠칫 굳었다.
‘대체 어떻게……?’
남궁백은 무서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유주혁을 쳐다보았다.
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자신과는 전혀 달랐다.
한기가 서린 것 같은 날카로운 눈.
마치 자신의 폐부를 샅샅이 훑고 있는 것만 같은 눈이었다.
“본문의 가능성을 본 게 아니라, 뇌기의 가능성을 본 것이군요.”
“…….”
소가주들이 얼어 있는 걸 본 유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으니 괜찮습니다. 뇌기는 본문의 정체성이기도 하니까요.”
유주혁은 유화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분들과 같이 갔다 올래?”
“그래도 수련이…….”
“한 곳에만 틀어박혀서 하는 수련은, 이미 깨달음의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큰 효과를 낼 수 없어. 밖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는 게 더 도움이 될 거야.”
자신은 깨달음에 비해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유화림은 그 반대였다.
며칠 동안 본 유화림의 무골은 나쁘지 않은 것을 떠나 아주 출중한 정도였다.
다만 워낙 깨달음이 미천하기에 별다른 진보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갔다 와도 될까요?”
“그래.”
살짝 눈을 빛내는 유화림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 준 그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호위들을 바라보았다.
“목숨을 걸고 지키세요.”
“충(忠)!”
마치 군대의 사람들같이 충의가 넘치는 모습을 본 소가주들은 고개를 저었다.
‘유 공자 같은 인물이 소문주라면, 무사들도 저렇게 되는 건가.’
얼마 전까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소가주들은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 * *
“그럼 유 공자, 갔다 와서 뵙겠습니다.”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유주혁은 남궁세가의 정문에서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궁백의 말처럼 멀리 가려는 것은 아닌 듯, 짐은 별로 없었고 마차도 대게 작은 것뿐이었다.
대신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말을 탄 무사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일 정도였다.
그는 남궁백이 탄 마차의 뒤를 쫓고 있는 무사들을 쳐다보았다.
‘창궁단.’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세가를 나서는데 흔한 무사들을 호위로 딸려 보낼 리 없다.
‘저들이 저기 있다는 건.’
내벽 안의 창궁단이 사라졌다는 소리였다.
물론 창궁단 전 인원이 따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고, 또 그들 대신 다른 무사들이 내벽 안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보다는 확실하게 나아진 상황이었다.
유주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유화림과 호위들도 없으니, 더 이상 그의 발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반드시 오늘 천궁환단을 손에 넣는다.’
오늘이 아니면 또 귀찮은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내벽의 주위에 도착한 그는 땅을 박차 전각의 지붕 위에 올라섰다.
보통 잠행은 밤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남궁세가 같은 거대한 곳에서는 밤에 경계가 매우 심해지기에, 오히려 낮에 움직이는 게 활동하기 편했다.
유주혁은 몸속에 뇌기를 만들어, 심법에 따라 용천혈로 밀어 넣었다.
극쾌의 섬신뢰가 펼쳐진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내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 * *
“어떻게 되었지?”
어두운 실내.
옥좌에 앉아 있는 중년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옥좌의 앞에 엎드려 있는 사내에게서였다.
“소가주들이 나서는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찾아왔군. 검성의 움직임은?”
“반년 전 세가를 한 번 나섰다가 돌아온 뒤로는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세가 안에 있는 건가…… 그자라면 다른 이들의 이목을 속이는 건 간단할 테니 확정 지을 수는 없겠군.”
옥좌의 팔걸이에 팔을 올린 그는, 짧게 혀를 차며 다른 질문을 했다.
“소가주들의 호위들은 어떻지?”
“각 세가에서 동행했던 장로 한 명과 무사들이 그대로 따라나섰습니다. 남궁세가는 창궁단 절반이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거창하게도 움직이는군.”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난 줄 알았던 중년인은, 수하의 말이 이어지자 그를 내려다보았다.
“뭐지?”
“뇌화문의 무사들도 함께라고 합니다.”
“뇌화문?”
“예, 부련주님.”
부련주라 불린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뇌화문이라면 합비에 있던 문파였던가? 그놈들이 갑자기 왜?”
“무슨 용무인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며칠 전에 남궁세가에 도착해 머물고 있는 듯합니다.”
“흠…….”
잠시 턱을 매만지던 중년인은 고개를 저었다.
뇌화문은 변수를 가져올 정도로 강한 문파도 아니다.
그들이 껴 있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를 하라고 전해라.”
그들을 미끼로 무슨 짓을 벌일 수도 있으니 대비는 해야 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수하의 대답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고, 중년인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그 질문을 던졌다.
“……뇌강마신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나.”
그를 생각하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뇌강마신.
최근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는 절대고수의 별호.
스무날 정도 전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호법인 혈수마종을 죽이고, 오화대의 무사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여 버린 후 사라졌다.
그 일 때문에 련에는 시종일관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는 중이었다.
중년인은 수하가 대답이 없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못 찾았나?”
“죄송합니다…….”
오화대를 몰살시킨 뇌강마신은 그 이후로 종적을 감춰 버린 상태였다.
“그의 위치조차 파악 못 했다고?”
“오화대의 시체는 회수했습니다만…… 뇌강마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화대의 시신은 사사련의 안휘 지부에서 회수했다.
지부 바로 앞에 죽어 있었으니 회수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련의 지부 앞에서 죽인 건 대체 무슨 의미지? 우리에게 경고를 하려는 건가?”
아무 의미도 없이 그곳에서 오화대를 전멸시켰을 리가 없었다.
중년인은 호흡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지 않는다면 머리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혹시 남궁세가로 갔을 가능성은? 그가 안휘에 나타난 이유가 검성 때문이라면…….”
중년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으나, 수하는 조심스럽게 그 생각을 부정했다.
“오화대의 시신을 발견한 곳은 남궁세가로 가는 곳과 정반대입니다. 그 가능성은 아무래도…….”
“흠……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그놈들이 뇌강마신을 손에 넣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만약 뇌강마신이 남궁세가를 도와 세력을 결성시키게 된다면,
자신들의 위치는 지금보다 위태위태하게 될 것이었다.
“일단 그를 추적하는 것은 멈추지 마라. 련주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혈수마종 혁괴는 련주가 굉장히 아끼던 자였다.
그런 자를 갑작스레 잃은 련주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분노를 실제로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신만은 알 수 있었다.
“예, 안휘에 파견할 병력을 더 늘리겠습니다.”
중년인은 한숨을 쉬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마교의 성녀는 찾았나?”
“대략 위치는 특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름 없는 산에 들어서 있는 것 같습니다.”
“산이라…… 그놈들의 목적은 대체 뭐지?”
오대세가의 소가주들을 방해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 갑작스럽게 마교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처음에는 세가의 임무 쪽이 더 막중하기에 무시하려고 했으나, 그들 중에 마교의 성녀가 끼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런 이상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세가의 임무를 잠시 미루고 그들을 쫓았던 것인데…….
‘생각해 보면 일이 잘못된 것은 그들을 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런 정보를 준 자가 원망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자는 어디에 있나.”
“누구 말씀이십니까?”
“그 환사(幻邪)인가 뭔가 하는 자 말이다.”
언젠가부터 련에 나타나 련주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자.
중년인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그 자가 련주의 곁에 있는 것이 심히 거슬렸다.
“아마 련주님이랑 같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만…….”
수하가 그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놈에 대한 조사도 계속하고 있겠지?”
“예. 하지만 워낙 다가가는 것이 어려운 자인지라…….”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해라. 그자에게 경계심을 심어 줘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중년인은 옥좌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그런 바람을 가지며, 사사련의 부련주는 명을 내렸다.
“소가주들의 납치를 시작하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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