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신 회귀 공자-91화 (92/201)

91화 외부호법(外部護法)

‘이게 무슨…….’

무림맹의 참모이자 군사인,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고성.

그가 손에 든 문서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한번 위에서부터 쭉 읽어 내려갔으나, 처음 읽었을 때랑 다른 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문서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제일 아래에 있는 직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화려한 붉은색 직인.

자연스레 그 옆에 새겨져 있는 이름에 시선이 갔다.

무림맹주 이윤.

직인도 그렇고, 필체도 그렇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력까지 맹주의 것이 확실했다.

‘……대체 왜 맹주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뇌강마신과 해검문과의 대사건이 있은 다음 날 아침.

무림맹의 고위급 장로들을 통틀어 모든 이들에게 공문이 내려왔다.

맹주의 이름이 새겨진 공문이.

‘그동안 맹의 일에는 관심도 없으시더니…….’

이렇게 공문이 내려온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들이 중요 안건을 올리는 것이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명이 내려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맹주님의 생각을 도통 짐작할 수가 없소.”

제갈고성이 섭선으로 탁자를 두드리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자가 입을 열었다.

운남성(雲南省) 점창산(點蒼山)에 위치한 점창파(點蒼派)의 장로 풍녕현(馮鑏現).

조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그가 말을 이었다.

“본 사건의 심각함은 이해하는 바이나, 이게 새로운 직책까지 만들어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구려.”

제갈고성은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맹주의 직인이 찍힌 공문은 꽤나 장문의 글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랬다.

[최근 해검문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맹 내에 타 세력의 첩자가 깊숙한 곳까지 숨어들어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이번 일은 맹의 권위와도 직결되는 바, 따라서 맹의 안보를 책임지는 맹주로서 대대적인 조사를 명한다.

내부적으로는 군사 제갈고성 및 별도로 기재한 참모들이 조사를 하게 될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남궁세가의 남궁인, 당문의 당우양(唐雨洋), 그리고 새로이 맹에 입맹한 뇌강마신에게 조사에 관한 임무를 부여한다.

직책이 없는 뇌강마신에게는 그의 명성과 강호에서의 권위를 생각해 ‘외부호법(外部護法)’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내린다.

외부호법은 하나의 단을 조직해 꾸릴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권한은 기존 호법과 동일하게 처리한다.

이는 맹주령에 의한 강제력을 띠는 명령이며, 모든 맹원들은 지엄한 명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제갈고성은 살짝 인상을 굳혔다.

‘맹주령이라니…….’

무림맹 소속이라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명령.

물론 그런 만큼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맹에 거대한 위기가 닥쳐왔을 때, 혹은 그런 조짐이 확인되어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할 때.

그런 맹의 안보와 직결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맹주라 할지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맹주령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위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건이었다.

하남 해검문은 남궁가주와 뇌강마신에 의해 사사련과 연관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에 대한 증거 또한 해검문주의 아들과 살아남은 해검문도들을 통해 속속 드러나는 중이었다.

다른 세력이라면 몰라도, 사사련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냥은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때문에 이번 맹주령은 정당한 것이었으며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장로들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군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풍녕현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제갈고성에게 물었다.

“……사유는 정당하니 어쩔 수가 없소.”

“그렇지만 어찌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리실 수 있단 말이오.”

“…….”

“뇌강마신을 맹에 들이는 건 나도 찬성하오나, 호법의 직책을 부여하는 건 과한 게 아닐까 싶소. 무엇보다 그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잖소.”

그의 말에 동의하긴 하지만 제갈고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정체에 대한 건 뇌천궁주와 검성, 그리고 남궁가주가 본인들의 이름을 걸고 보증을 했소.”

“아니, 왜 남궁세가가 뇌강마신을…….”

제갈고성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뇌천궁주까지는 이해하지만, 어째서 남궁세가가 뇌강마신을 비호하고 드는 것인가.

그걸 떠나 어떻게 그와 관계를 맺었으며 어떻게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인가.

‘어제의 일도 간단하게 넘길 건 아니다.’

귀빈각 주변에 붙여 둔 사람을 통해, 검성과 남궁가주가 뇌강마신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긴 시간 있었던 건 아니라지만, 최근 다른 장로들은 들이지도 않던 뇌강마신이다.

그런 그가 남궁세가와 접촉했다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렇지만, 밖의 조사를 맡긴 인물들이 세가의 장로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리는구려.”

풍녕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제갈세가를 제외한 오대세가가 새로운 세력을 만들면서, 그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만약 맹에서 그들에게 이런 중책을 맡기게 된다면 정의련의 기세는 더더욱 커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것은 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장로들에게는 상당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

“흠…….”

제갈고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문서를 읽어 보았다.

외부호법이 기존 호법들과 동등한 권한을 부여받는다고 하나, 모든 부분이 그런 건 아니었다.

우선 기존 호법들과는 다르게, 오직 단 하나만을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은 장로들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뇌강마신의 세력이 이 이상 커져 버리면, 그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버릴 테니까.

애초에 제갈고성은 그를 끌어들여 단주의 직을 맡게 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외부호법은 맹 내가 아닌 외부에서 활동하며 그의 단은 맹과 별개의 조직으로서 운영된다……라.’

이 부분이 거슬렸다.

뇌강마신이 외부에서 활동하는 한 그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았다.

그것은 제갈고성이 원하고 계획했던 것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별개의 조직이라.’

그 말은 오직 뇌강마신의 명령만을 수행하며 맹의 인물들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뜻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권한을 주신 거지……?’

이건 뇌강마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나, 맹 전체적으로 봐서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맹주님을 만나 얘기를 나눠 봐야 하지 않겠소?”

풍녕현과 다른 장로들이 그렇게 말해 왔지만, 제갈고성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나오시지 않던 분이 이제 와서 나올 리는 없겠지.’

군사인 자신조차 만나 주지 않던 맹주이다.

이번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맹주였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달한 제갈고성은 고개를 휘저었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사사련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잖소. 우선은 그것부터 해결합시다.”

뇌강마신과 정의련에 대한 문제는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당장의 문제였다.

사사련이 정말 딴마음이라도 품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큰일을 벌이기 전에 모든 것을 파악해야만 했다.

‘그의 힘을 축소시킬 방법을 찾는 건 그다음이다.’

어차피 뇌강마신이 새로운 단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맹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만 했다.

그때까지 생각을 거듭한다면 분명 어떤 방법이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의 군사, 와룡(臥龍) 제갈고성이었으니까.

* * *

“대협의 단예요?”

한가령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예, 생각이 있으십니까?”

서영원이 내온 차를 마시던 유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키워 나갈 생각이니까요.”

한가령과 서영원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주혁은 눈을 빛냈다.

‘이들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다면…….’

용봉각에 머무는 후기지수들은 구파일방이나 대문파에서 일대제자에 속하는 기재들이다.

그들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웬만한 세력들을 이끄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물론 신창의 말처럼 무림맹 사람들을 제대로 단결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자신에겐 언제가 될지도 모를, 아니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을 맡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혈천회의 그림자는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뭐, 그것도 그들이 맹주 직을 받아들인다면 해결되겠지.’

유주혁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과 부드러운 인상의 노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대협이 직접 지도해 주시는 건가요?”

한가령이 반짝거리는 시선을 향해 오며 물었다.

“남을 지도하는 것에 재능은 없지만, 교두를 구할 때까진 제가 가르쳐드릴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서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희는 새로운 무공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화산파의 일대제자다.

새로운 무공을 배울 수 있냐 없냐를 떠나, 그런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유주혁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해 주었다.

“새로운 무공을 가르치진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배운 무공들에 맞게 지도할 거니까요.”

“……예?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어느 무공이든 시작과 끝은 같으니까요.”

서영원과 한가령이 감탄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른 문파의 무공을 지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작과 끝은 같을지라도, 끝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은 전혀 달랐으니까.

다만 유주혁으로서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은 전생에서 구파일방의 비급들을 모조리 섭렵했었던 사람이다.

그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 고작 후기지수들의 무공을 지도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주혁은 고민에 빠져드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말했듯이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저도 시간이 없으니까요. 생각이 있다면, 남궁인 장로님께 말씀드려 놓으시면 됩니다.”

“예?”

한가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어디 가세요?”

“재판도 끝났으니 돌아가 봐야죠.”

“이렇게 갑자기요?”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직 내부 구경도 제대로 못 시켜드렸는데…….”

한가령이 아쉽다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무림맹에서 이뤄야 할 것은 모두 이뤘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괜히 어물쩡거리다간 맹 놈들의 시선만 향해 올 테지.’

자신이 호법이란 위치를 갖는 것을 그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러니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옭아매려 들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제부터 향할 곳은 무림맹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시선이 집중되어 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유주혁은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용봉각의 다른 분들에게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일이 말씀드릴 시간은 없을 듯하군요.”

다른 후기지수들은 점심 식사를 위해 외벽 구간에 있다고 했다.

원래라면 한가령과 서영원도 따라갔겠지만, 화산오검과의 식사 예정이 잡혀 있어 따라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유주혁은 그들의 기운을 느꼈기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럼.”

서영원의 대답을 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엇……! 이대로 가시는 거예요?”

한가령이 다급히 외쳤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어어…….”

당황한 표정의 한가령이 더듬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언제 다시 오시는데요?”

“…….”

우선 마교에 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 뒤로는 뇌화문에 복귀해 미뤄 둔 일을 처리해야만 했으며, 그 외에도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니 당분간 무림맹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것 같군요.”

“으음…… 그럼 오랫동안 못 보겠네요?”

뭔가 시무룩해 보이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어 주었다.

“제 소속의 단원이 된다면 금방 만나겠죠.”

자신의 단은 무림맹 소속이긴 하나, 그 이전에 외부호법의 직속 수하 신분이다.

자신이 외부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도 맹 내부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음…….”

잠시 생각하던 한가령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두워지려던 얼굴은 다시 밝아진 상태였다.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

단원이 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말인지 애매한 말투였다.

유주혁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는 행동이 유화림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

문득 그리운 느낌이 찾아들었다.

‘……지금쯤이면 많이 성장했겠군.’

무공을 익히는 것에 상당한 재능이 있던 유화림이다.

확실한 수준은 알 수 없지만,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을 것이다.

“…….”

그러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일 하나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유주혁은 고개를 숙였다.

“건강히 지내십시오.”

“예! 대협도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대협.”

한가령과 서영원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용봉각을 빠져나온 유주혁은 곧바로 외벽 쪽으로 향했다.

짐이 될 만한 건 이곳에서 받은 선물들뿐이었고, 그것들은 모두 남궁도진에게 맡겨 두었으니 귀빈각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야겠군.’

자신이 떠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다.

그 소식이 알려진다면 저번처럼 따라오는 자들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귀찮은 걸 떠나, 이번에 향하는 곳은 그들이 따라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는 인적이 드문 골목을 통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을 향했다.

곧 정적이 감도는 곳에 도착한 유주혁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

시야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기감에도 기척은 잡히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땅을 박찼다.

탓!

그의 신형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높은 전각 위에 올라선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본 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섬광휘전을 사용해 외벽을 뛰어넘었다.

탓!

벽 반대쪽에 착지한 유주혁이 그대로 땅을 박차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오랫동안 끊이지 않을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유주혁의 흐릿한 잔상은 막대한 비에 지워져 내리며, 그곳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준비해라.”

외벽 바깥에 숨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을 제외하고는.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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