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신 회귀 공자-94화 (95/201)

94화 비는 멈추지 않는다.

“끄아아아아아악!”

수많은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소리는 쏟아져 내리는 폭우와 욕지거리가 포함된 고함 소리에 묻혀 흩어져 버렸다.

촤아아아아악!

쏴아아아아아아아!

한 사람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가 곧바로 비에 휩쓸려 언덕 밑으로 흘러내렸다.

쉬익!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

유주혁은 곧바로 검과 함께 몸을 회전시켰다.

휘이이이이이이익!

뇌전화륜지검의 오초식 천고반회.

서억!

뒤에서 접근하던 세 명의 머리가 동시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날아오는 칼날은 전에 비해서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귀찮군.’

달려드는 장정들을 상대하던 유주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폭우가 운신을 방해하는 건 크게 상관없었지만, 공격해 오는 상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야말로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상황.

물론 그런 것 따위에 당황할 유주혁이 아니었다.

아무리 수가 많아 봐야 오합지졸은 오합지졸이다.

몇 명이든, 몇십 명이든, 아니면 몇백 명이든, 달려들면 그냥 죽이면 될 뿐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유는 그저 귀찮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뇌전화륜지검의 후반 초식을 이용해 모조리 쓸어 버렸겠지만-

투두두두두두둑!

입고 있는 피풍의가 쏟아지는 빗방울을 튕겨 냈다.

그 튕겨 나간 빗방울은 곧, 유주혁의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검이 도달하는 끝에 서 있는 사내들의 몸통과 함께.

쏴아아아아아아아!

이 비.

쏟아져 내리는 이 맹렬한 비가 문제였다.

이런 날씨에 함부로 뇌기를 발현시켰다가는 자신까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펼치는 뇌기라면 몰라도, 자신이 펼치는 뇌기는 유주혁, 그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호신강기를 펼친다면 피해를 덜 수 있을 것이나-

‘이놈들이 끝이 아닐 테지.’

유주혁이 덤벼 오는 사내들, 녹림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생김새와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즉시 알 수 있었으니까.

‘주변에 있는 녹림도란 녹림도는 죄다 몰려든 것 같군.’

특이한 점은 그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흐릿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비를 맞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환술에 걸려 있다.’

그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덤벼드는 것은 그들 본인의 의지가 아니다.

녹림도들의 눈 속에 깃든 술법의 기운.

‘사사련인가.’

처음에는 환영마존의 짓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꽤나 질이 낮은 환술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환술만으로도 녹림도 따위를 조종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총표파자랑 손을 잡았나 보군.’

아니, 손을 잡았다기보단 서로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게 옳을 것이다.

목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무기들로 알 수 있었다.

뇌강마신의 척살.

그것을 위해 두 세력이 뭉쳤을 것이다.

‘지금은 녹림도들 뿐이지만…….’

그것도 떨거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 없는 산적들.

이들이 맡은 임무는 뻔했다.

‘내 힘을 빼놓고, 지쳤다고 생각하면 한 번에 나타나서 정리하려 들겠지.’

신강까지는 아직도 멀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이런 곳에서 호신강기를 펼쳐 심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악!

촤아아아아아악!

정면에서 덤벼들던 녹림도 한 명의 머리가 수백 갈래로 갈라지며 피를 터트렸다.

뇌전화륜지검의 삼초식 뇌화참.

그리고 무엇보다, 이딴 놈들은 뇌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죽어라.”

유주혁의 나직한 말과 함께, 사방에서 뛰어들던 녹림도들의 몸이 잘게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저급한 환술이 고통마저 지워 주는 건 아니다.

촤좌좌좌좌좌좍!

다리에서부터 잘려 나가며 비명을 지르던 이들.

그들은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멈추었다.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얼굴들이 입을 벙끗거렸다.

스윽-

유주혁은 아직도 많이 남은 사람들을 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자연스레 그의 입은,

“다음.”

미소를 지어 가고 있었다.

* * *

스릉.

검을 집어넣은 유주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지옥이라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싶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유주혁에게 있어서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전생에서는 이보다 더한 곳들을 밤낮으로 거닐었었으니까.

비에 쓸려 나가는 붉은 선혈을 보던 그가 다시 몸을 돌렸다.

‘섬서에서 감숙(甘肅)을 통하는 게 가장 빠르겠군.’

전생에서의 길을 떠올리며 피풍의를 꼼꼼하게 여몄다.

머리를 덮은 부분 또한 깊숙이 끌어내린 후,

타앗!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쏴아아아아아아!

휘이이이이이이잉!

정면에서는 칼날 같은 빗줄기가 몸을 찔러 왔고, 귓가에는 맹렬한 바람 소리가 미친 듯이 들려왔다.

유주혁은 휙휙 변해 가는 풍경에 시선을 두며 앞으로의 계획을 찬찬히 정리했다.

‘……말은 못 빌리겠군.’

본래 계획대로라면 무림맹의 시선을 피해 하남을 조용히 빠져나간 후, 섬서에서 말을 빌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런 날씨에 말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애초에 빌린다고 한들, 땅이 이래서는 말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할 것이다.

벌써 대지는 빗물이 웅덩이를 넘어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대로 훈련된 명마가 아니라면 낙마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

예전 처음 승마법을 배웠을 시절, 낙마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 그가 피식 웃었다.

당시에는 이런 힘을 갖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했을 뿐.

그때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쉬익!

“……!”

땅을 밟아 앞으로 뻗어 나가던 유주혁이 다급히 몸을 틀었다.

쐐애애액!

암기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파공음과 함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암기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죽여라!”

“찢어 버려!”

“우아아아아아아아!”

또다시 괴성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기운의 파악이 점점 어려워진다.’

사방을 뒤덮고 있는 비가 하나의 장막이 되어 기운을 읽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

유주혁은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우우우웅!

다시 한번 피 맛을 보기 위해 혀를 내민 검이 청명한 검명을 토해 내었다.

직후,

슈우우우욱!

점점 뿌예지는 시계(視界) 속,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챙!

유주혁은 심장을 향해 온 장창을 쳐올리며 앞으로 파고들었다.

“…….”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건 구름이 태양을 가렸기 때문도, 사람들의 발 구름으로 인해 생긴 먼지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퍼져 나가는 짙은 안개.

그 안갯속에서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법.”

그것도 환술이 가미된 진법.

처음 만난 녹림도들에게 사용된 저급한 술법이랑은 차원이 다른 술법이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놈들이군.”

채챙!

옆구리를 노려 오는 창 두 개를 튕겨 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쇄도해 들었지만-

휘익!

휘두른 검은 피어오른 안개만 가를 뿐이었다.

그 순간,

훙훙훙훙!

무게가 담긴 소리가 비 사이를 뚫으며 몸을 노려 왔다.

타앗!

소리만으로 무슨 무기인지 알아챈 유주혁이 검을 거두고 옆으로 비켜섰다.

후웅!

다수의 투척용 도끼들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곳을 지나쳤다.

휙!

휙!

휙!

공격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또다시 찔러 들어오는 장창들.

척 봐도 창을 주로 쓰는 자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의 수발이 굉장히 어설펐으니까.

화아아악!

그러나 그 어설픈 운용을 환술이 보조했다.

혈을 찔러 오는 창을 튕겨 낸 유주혁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동시에 수십 개의 검격이 바닥을 긁고 지나갔으며, 수십 개의 도끼가 땅에 박혀 들었다.

몸을 숨긴 적들.

홀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유주혁.

이 중에 위험한 자는 과연 누구일까.

“착각하고 있나 보군.”

유주혁은 피식 웃었다.

“공격해 온다는 건 어차피 여기에 있다는 뜻.”

그의 검이 밝게 빛났다.

“그렇다면 주변 모든 곳을 베어 버리면 된다.”

자연진기를 가득 담은 검이 사방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촤아아아아아악!

유주혁의 검이 길게 그어질 때마다, 곳곳의 땅에 거대한 검흔(劍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커억……!”

“끄아악……!”

움푹 팬 그 흔적에, 대량의 선혈이 스며들었다.

사위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맞춰, 유주혁은 난도를 멈추고 검을 치켜올렸다.

뇌전화륜지검의 일초식 천뢰진단.

후욱!

세상을 가를 듯 휘둘러진 검.

그 말대로,

화아아아아악!

세상이 갈라졌다.

“……!”

안개가 사라지고, 주변에서 술법을 펼치고 있던 환술사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경악 어린 얼굴을 한 그들의 입이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맞춰, 유주혁의 입도 움직였다.

“찾았다.”

진의 연결점.

결을 베어 낸 유주혁이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곧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걱!

“끄억!”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전신에 피를 휘감는 혈검무(血劍舞)를.

“무, 무기를 들어라!”

녹림도들이 창을 버리고 본인들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서억.

그 무기째로 반으로 갈라졌다.

유주혁은 지체하지 않고 자연진기를 터트렸다.

콰아아앙!

뇌전의 기운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저 일반 자연진기만으로도 폭발적인 힘이 터져 나왔다.

후우우우우웅!

그를 중심으로, 내력의 파도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때였다.

피잉!

가느다란 소리.

빗속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소리지만,

쐐애액!

자연진기를 끌어낸 유주혁의 귀는 그 소리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는 녹림도와 환술사를 쓸어 가던 검을 비틀었다.

채앵!

찌잉-

검을 타고 전해져 오는 싸한 기운.

‘침투경!’

유주혁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살수인가.’

이 정도로 빠르게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자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밖에 없다.

“…….”

그는 검에 흐르던 자연진기를 나누어 다른 곳으로 보냈다.

백회혈로 급격하게 치솟는 자연진기.

서걱!

자연진기로 주변을 잠식해 들어가면서도, 유주혁은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온갖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번 상대들은 환술에 걸려 있지는 않았기에, 시간이 흐르자 자리에서 도망가려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몰살하기로 마음먹은 유주혁에게서 몸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퍼트린 자연진기에 음습한 기운 하나가 걸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는 기운 하나.

이 정도 거리면 암기로 공격하고 난 후 바로 도주를 택한 것이리라.

유주혁은 산개해서 흩어지고 있는 자들의 추격을 멈추고, 빠르게 땅을 박찼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이 앞으로 나가는 것과 비례해, 맹렬한 폭우가 전신을 강타했다.

‘……놓치겠군.’

유주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순간,

화악!

빛무리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투두두두두두둑!

전면을 찔러 오던 비가,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호신강기.

타앗!

유주혁이 땅을 박차며 대기의 자연진기를 흡수했다.

호신강기를 펼쳤다는 건,

파지지지지지지지직!

뇌기를 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아아아아앗!

빠르게 지나가던 풍경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직후,

“컥……!”

유주혁의 손은 한 사내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녹림도나 사사련의 떨거지들은 언제 어느 때든 죽일 수 있다.

다만 살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살수란 한 번 실패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자이다.

때문에 그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에 만전을 기했다.

만약 지금 그를 놓치게 된다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유주혁은 고민하지 않고 검을-

“……?”

살수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검이 가슴을 파고들지도 않았는데, 살수가 온몸을 떨어 대고 있었다.

유주혁의 검이 방향을 바꿔, 살수의 입을 길게 그었다.

촤악!

피부가 찢어져 크게 벌어지는 입.

“…….”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독단.”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검은 형체가 보였다.

“푸헉!”

눈살을 찌푸린 채 그것을 보고 있자니, 살수가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아닌, 검은 피를.

유주혁은 얼굴에 쏟아질 뻔한 피를 호신강기로 막았다.

투두둑.

땅에 떨어진 검은 피.

그 피에 닿은 땅이-

치이이익-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그 광경을 본 유주혁이 혀를 차고는 그를 내던졌다.

철퍼덕!

조금 전 땅처럼, 바닥에 처박힌 살수의 몸 또한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살수가 독단을 깨문 이유는 도주를 포기해서가 아니다.

그 독단의 독을 이용해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자결을 택했다.

유주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해는 보이지 않는다.

쏟아져 내리는 비는 멈추지 않는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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