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우리들의 아포칼립스 하드모드-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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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거주구 칸에 누워 있던 서윤은 문득 이 모든 일이 일어나던 날을 떠올렸다.
끝이 없는 과제와 어려운 강의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의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 둘 갑자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곧 몇몇 정의감 넘치는 학생들이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진 사람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에 그들을 걱정하던 다른 학생들은 곧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이들도 있었다.
쓰러졌다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학생들이 자신들을 걱정해서 다가온 다른 학생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처럼 변모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덮치고 그렇게 공격당한 학생들이 곧 자신을 덮친 이들처럼 변해서 다시 다른 학생들을 덮쳤다.
이차함수적으로 퍼져나가는 이상현상 속에서 서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도망쳤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변모한 학생들이 달려들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서윤은 이 모든 일이 운 나쁜 사고, 혹은 단체 착란 정도의 일이라 생각했다.
겁에 질리기는 했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이 모든 일이 머지않아 수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캠퍼스를 빠져나와 대로로 나오기 전 까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전봇대를 들이 박은 승용차에서 들려오는 경적소리, 이미 죽은 인간을 뜯어먹는 ‘좀비’들의 ‘으적으적’ 대는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을 본 서윤은 서울대에 들어올 정도의 뛰어난 두뇌로 곧 지금 자신에게, 아니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챘다.
‘아, 세상이 망했구나’
그리고 그 때부터 체감 시간은 가속 버튼을 누른 듯 가속했다.
일단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갔고 거기서 지금 자신의 ‘부관’인 주설화를 만났다, 둘이서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하던 중 주설화와 자신이 차례로 각성자가 되었고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던 와중에 지금의 무리와 만나게 되었고 이내 수색조의 조장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던 서윤은 자신의 옆에 여러 겹의 모포를 덮고 잠들어 있는 주설화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아~”
살며시 입바람을 불어본 서윤은 옅게 생겨난 입김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날짜는 9월 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날이 빨리 풀리는 해라면 슬슬 시원해 질만 한 날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김이 생길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
아무래도 그들에게 닥친 재해는 좀비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으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서윤은 추운지 잠꼬대로 신음성을 내는 주설화를 보고 그녀가 덮고 있던 모포를 끌어올려 주었다.
“넌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인데도 잘 자는구나?”
주설화와의 추억을 회상하던 서윤은 곧 자신들이 자고 있던 칸을 두들기는 소리에 문 쪽으로 가보았다.
“무슨 일이입니까?”
“회의입니다, 각 조의 조장이랑 부관들은 모여달랍니다”
“이런 한밤중에 무슨···”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 다른 인원들의 동요를 피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령으로 온 남자의 말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서윤은 내키지 않지만 곤히 자고 있던 주설화를 깨워 그들이 항상 회의를 위해 사용하는 역 한 켠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내부의 물건들이 모두 옮겨져 텅빈 매대로 가득한 편의점은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편의점에는 조금 늦게 도착한 서윤과 주설화 외에도 8명의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60명이 조금 안되는 이 작은 집단에는 총 5개의 조가 존재했다.
수색1조, 수색2조, 문지기조, 격퇴조, 참모조, 각 조에는 조장과 조장을 보조하는 부관이 존재하며 그 외에도 5명의 조원을 합쳐서 한 조로 친다.
이렇게 총 35명의 조원과 그 외의 25명을 합친 이 무리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관악 집단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서울대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서울대에 관련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기에 관악 집단이었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참모조의 조장인 최주영이었다.
“쳇! 종일 틀어박혀서 별것도 안하는 놈들이 바쁜 사람들 오라가라 하기는···”
“······”
그런 최주영을 비꼰 곳은 수색2조의 조장인 오성호였다.
오성호는 서울대 인근에서 호프집을 하던 남자로 20대 후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한 가게의 사장으로 지냈던 만큼 성격이 괄괄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바로 표현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비단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최주영이 마땅치 않은 것은 오성호 만은 아닌것인지 다른 조장이나 부관들도 별달리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참모라는 이름이 들어가니 그들이 마치 이 집단의 리더처럼 느껴지지만 각 조에 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다는 것이고 암암리에 힘의 우위는 존재했다.
격퇴조>수색조>문지기조>참모조, 참모조는 그 이름 그대로 밖에서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내부에서 머리를 굴리는 이들이기 때문에 직접 목숨을 걸고 밖을 나다니는 격퇴조와 수색조는 물론 은거지의 최종방어라인이 되어주는 문지기조보다도 발언력이 낮았다.
그런 주위의 반응에 표정이 굳은 최주영이었지만 이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급박한 사안이기에 이렇게 여러분을 모은 겁니다”
그런 최주영의 반응에 오성호는 재미없다는 듯이 혀를 찼고 그렇게 주위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은 최주영이 말을 이었다.
“오늘 무전을 통해 신대방역 인근에 있는 생존자무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신대방역 인근은 제법 사태가 안정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반면 이쪽 인근에는 점점 변이좀비들이 늘어나고 데드 웨이브도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신대방역 쪽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그곳에 있는 생존자무리들과 합류할 것을 제안하······”
“아니,아니, 잠깐 잠깐!”
그런 최중영의 말을 끊은 것은 이번에도 오성호였다.
“신대방역? 너 대가리에 총 맞았냐!? 갈 거면 사당 쪽으로 빠져서 서울을 벗어나야지!?”
오성호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신대방이고 나발이고 일단 서울을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수도 서울이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이 좀비 사태에서 최악의 방향으로 작용했다.
좀비 감염이 초고속으로 퍼지면서 서울은 삽시간에 좀비들의 세상으로 변해버렸고 그 와중에 소수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지하로 파고들었다.
도저히 지상에서는 생존자들이 살아기지 못할 정도로 좀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좀비들은 지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두운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지하 보다는 실내, 실내 보다는 실외를 좋아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들의 기호 덕분에 그나마 피난민들은 세이프존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호의 문제고 결코 좀비들이 지하로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혹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성호는 그런 서울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으니 얼른 경기도로 빠져나가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주장에 최중영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봤지만 역시 무리입니다, 오성호씨도 알다시피 사당은 이미 좀비굴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몇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거기를 돌파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밝은 곳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량의 좀비가 실내, 혹은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런 좀비의 습성을 무시하고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변이좀비가 버티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적으로 밝은 곳을 좋아하는 일반 좀비들과는 달리 변이좀비들에게는 그런 습성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변이좀비가 장악하고 있는 일반 좀비들은 설령 어두운 곳이라 해도 개의치 않고 모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방금 오성호가 말한 사당이 그 전형인 장소였다.
정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비상한 강함을 가진 변이 좀비가 근거지로 삼은 탓에 상당수의 좀비들의 보금자리가 된 장소가 사당역이었다.
변이좀비와 만나지만 않는다면 수색조나 격퇴조, 문지기조같이 실전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어찌어찌 돌파한다고 쳐도 그렇지 못한 30명가량의 일반인들은 죽을 확률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그게 뭐? 그딴 짐짝들 때문에 우리까지 개고생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먼데!?”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는 오성호의 모습에 무어라 반박하려던 최주영이 기에 눌려서 입을 다물었다.
각성자인 오성호와 달리 최주영은 그냥 일반인이었다.
그런 그가 참모조의 조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태 이전에 아마추어 무선을 즐긴 덕분에 이들 중 유일하게 무선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고작 아마추어 무선 유경험자라는 사실이 오성호의 험악한 기세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적당히 해두시죠 오성호씨”
그런 오성호를 말린 것은 서윤이었다.
최주영을 노려보던 오성호의 눈이 서윤을 향했다.
“앙? 뭐라 짓거렸냐 애송이가?”
“적당히 하라는 겁니다, 일단 공식적으로 각 조의 조장들은 모두 대등한 관계 아니었습니까? 그런식으로 노골적인 압박주기는 그만두시죠?”
자신의 기세에도 조금도 움추러들지 않는 서윤의 모습에 오성호가 혀를 차고는 말했다.
“옆에 붙은 여고생 빼면 별것도 아닌 애새끼가 건방지게···!”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꼰대야?”
그런 오성호의 모욕에 서윤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그의 부관인 주설화였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자는 도중에 깨운 탓에 반쯤 졸고 있던 주설화가 서리처럼 차가운 눈으로 오성호를 노려보았다.
“어린 년이 어디 형님한테 반말이냐?”
그리고 그런 주설화에 대응해서 나선 것은 수색 2조의 부관인 장성대였다.
백광호 보다는 작지만 사태이전 까지만 해도 유도를 했던 장성대의 체구는 상당한 것이었고 동시에 각성자이기까지한 그가 만들어내는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압박감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주설화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
“!?”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한 것은 금발머리의 어린소녀였다.
중성적인 외견과 옷차림을 하고 있는 프랑스와 한국인의 혼혈 소녀, 그녀의 이름은 캐미 화이트였고 격퇴조의 조장이었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보다 강한 각성자인 캐미의 중재에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였던 3사람은 전의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캐미와 일대일로 붙어서 그나마 버티기라도 할 수 있는 건 백광호 정도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없었다.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 계획”
그리고 그런 캐미가 자신의 계획에 찬동하자 최주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16살 중3짜리의 칭찬에 기뻐하는 대학생의 모습은 뭔가 보기 묘한 부분이 있었지만 세상이 이모양이 된 마당에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누구하나 없었다.
“저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나도 동의하네”
“···쳇! 맘대로 해”
그렇게 차례로 다른 조의 조장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낸 최중영은 자신의 부관에게 지시해 커다란 지도를 한 장 가져왔다.
“신대방역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은 그냥 지하도를 지나면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신림역과 봉천역 중심에 빅헤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캐미, 빅헤드와 붙으면 처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빅헤드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머리에 팔다리가 달린 기괴한 변이좀비였다, 하지만 변이 좀비 치고는 딱히 난폭하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아 그렇게 위험한 변이좀비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빅 헤드가 자리잡고 있는 장소였다.
빅헤드는 방금 최주영이 설명한대로 신림역과 봉천역의 철도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고 하물며 빅이라는 그 이름대로 덩치가 워낙 커서 지하철로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확신은 못하겠어, 공격에서는 보잘 것 없지만 워낙 딴딴하고 체력도 좋은 놈이라···무엇보다 죽이는데 성공했다 쳐도 RPG게임도 아니고 죽였다고 시체가 깔끔히 증발하는 것도 아니잖아? 남아있는 시체 때문에 지나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 걸?”
이 중 유일하게 빅헤드와 직접 교전한 경험이 있는 캐미의 확신에 최주영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렇담 이 경로는 지상으로 지날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최주영은 그 근처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런저런 메모가 붙어 있는 인근 지역중에 드물게도 신림역과 봉천역 사이에는 메모가 붙어 있지 않았다.
이 메모들은 변이좀비나 데드 웨이브 같은 요주의 위험요소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그것이 없다는 것은 그 지역이 별로 위험하지 않은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주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 방면에는 위험한 좀비는 없지만 문제는···질 나쁜 약탈자 무리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거죠···”
그들은 인근의 중고등학생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상당히 위험한 약탈자 집단이었다.
어떻게 그런 형태를 띄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의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사태 초기부터 그들의 영역을 지나는 생존자들을 적극적으로 약탈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배를 불린 후 피해자들을 망설임 없이 가지고 놀다 죽이는 지극히 위험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길은 없잖아?”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는 최주영을 보고 서윤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걱정에 빠지기 보다는 어떻게든 사태를 타파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렇게 그들은 약탈자들을 상대할, 혹은 피해갈 방법을 찾기 위해 밤이 지새도록 머리를 맞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