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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11화 (11/246)

11회

[ chapter # 2] 외로운 나는 희망과 만났다.

# 10.

“하아···!!”

나는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뒷골목은 두 갈래 길 밖에 없었다. 한 곳은 사창가였고 한 곳은 미로처럼 복잡했지만 어쨌든 시장으로 향하는 출구 밖에 없는 단순 무식한 구조였다.

요란하게 울리던 갑판피리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 더미 구석에 최대한 웅크린 채 숨을 삼켰다. 너무 오랜만에 체력을 소진시킨 탓인 지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최대한 어둠 속으로 몸을 가리며 어디 튀어나온 곳이 없도록 최대한 둥글게 말았다.

물론 혼자였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읍읍!”

“쉿!”

나는 시건방진 어린 마족의 입을 틀어막은 채 더욱 더 몸을 웅크렸다. 요란하게 울리던 갑판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분간하기 힘든 발자국 소리가 오고가고 있었다. 골목길 너머의 시장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다. 거기에다가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와 부랑자들의 소리도 방해에 한 몫 했다.

하지만 갑옷이 철컹거리는 마찰음에 나는 숨을 꾹 참았다.

“베르브 하급기사!”

“예!”

“그쪽 골목의 동향은 어떠한가.”

“예! 노숙자로 보이는 부랑자가 셋 정도 있었습니다.”

“좋아! 다른 순찰 조와 합류해서 기필코 구출하라.”

“예, 알겠습니다!”

갑옷의 보호구 사이로 울리는 철컹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멀어지는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에서 갑판피리 소리가 뒷골목을 부르짖으며 순식간에 소리가 멀어졌다.

“후우···!”

어제와 오늘에 이은 고수익 덕분에 일이 잘 풀린다 싶었다. 2년 만에 만난 용사의 깜짝 방분에 잔뜩 기분이 나빴었지만 어제와 오늘의 짭짤한 수입에 괜히 기분이 좋았었다. 나는 한 숨을 깊게 내뱉고는 몸에 긴장을 풀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었고 자칫 잘 못했으면 구해주려 했던 어린 마족 덕분에 인신매매 단으로 오해 받아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봤을 때 해군 기사단의 순찰 조들한테 잡히지 않았고 다시 집으로 갈 생각만 하면 됐었다.

나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윽!”

손에 뭍은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감촉에 표정을 찌푸렸다. 내 손은 시건방진 어린 마족의 입을 틀어막은 덕에 침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어두운데다가 난데없는 기사단의 추격에 깜빡 잊고 있었다.

내 품 속에 돌돌 말렸던 어린 마족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몸에서 살짝 힘을 풀어 놓자 힘없이 내 품에 스르륵 기대어 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밀쳐내고 싶었지만 싸구려 알람시계처럼 떨고 있어서 밀쳐내지는 못했다.

절박하게 흔들림을 꺼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히익!”

“···.”

눈이 마주치자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이 입을 우물거렸다. 내가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입을 틀어 막으려하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콩 벌레같이 움츠려 들었다. 나는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린 팔을 바라보고는 슬며시 손을 내렸다.

그래도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기사도’가 생각나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불량배들과 어린 마족의 도발에 주먹을 휘둘렀던 덕분에 팔찌 아래의 손목이며 손등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파왔다. 아프다는 것보다도 들어갈 약 값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일용직 근무에 상당한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아니다. 옛날은 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어쨌든 팔이 회복 될 때까지 일용직 노동을 하지 못하면 어제와 오늘에 이은 고수익도 물거품이나 다름없었다.

“···.”

“딸꾹!”

가만히 노려보는 나를 향해 어린 마족이 힐끔 고개를 올렸다. 또다시 눈이 마주치자 딸꾹질을 시작했다. 솔직히··· 도가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하더라도 어린 꼬마아이였다. 우리와 같은 색의 피가 흐르고 문화는 다르지만 비슷한 생활을 했다.

비록 지금은 ‘천한 하녀’라고 놀림이나 받는 신세가 되었지만 ‘아줌마’라고 부르는 어린 아이한테 주먹을 휘두를 것 까지는 없었다.

참 교육을 표방했지만 어쨌든 위협도 폭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떨어져.”

나는 어린 마족을 떼어놓으며 최대한 차갑게 말했다. 쓸데 없는 동정심은 곧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누굴 동정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에 가득 찬 공허감이 자꾸만 뭉클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었지만 어린 마족이라도 의심할 필요는 있었다. 분명한 것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 죽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역사였다. 물론 모든 공적은 말소 되었었다. 지금의 나는 용사와 함께 마왕을 토벌하던 원정대도 아니었고 동료도 아니었다. 2년 만에 찾아온 기회조차 ‘두려움’에 거절했었다.

나는 문뜩 스쳐지나간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어린 마족을 밀어냈다. 내가 힘이 빠진 탓인지 아니면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남은 어린 마족의 눈물자국 위로 호수 같은 눈동자가 아른 거리고 있었다. 마족이 가진 특성만 아니라면 꽤나 귀여운 외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공허감을 동정심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수두룩한 동전 주머니에서 몇 개의 은화를 덥석덥석 꺼내주었겠지만 지금은 10 은화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잃어버릴까봐 주머니 속에 구겨 넣어 둔 상태였다.

나는 혀를 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 안 된다면 힘이던 욕설이던 사용할 심산이었다.

이 미묘한 사이에 동정심과 연민이라도 들기라도 하면 피차 피곤해 질 게 분명했다. 이렇게 호되게 당했으니 인신매매 단에 발을 담근 불량배들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거, 건방진 녀석! 가, 감히 어딜 손을 데는 게냐?!”

“···.”

“호, 혼자서도 이, 일어날 수 있다! 손 데지 말거라! 딸꾹!”

“···.”

꾸역꾸역 말을 더듬으면서도 도도한 척 애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더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용사에게 ‘떠나라’는 말을 들었을 적의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추했구나. 나는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물씬 풍겼지만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마족을 보니 그럴 마음도 사라져버렸다. 아마 이 녀석의 정신 나간 행동은 정신적 최종 방어 수단일 지도 몰랐다.

마족들은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귀족 칭호만 얻어도 품격자체가 활 달라졌었다.

7년간의 전쟁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과 마족들의 혼을 빼놓았었다. 비록 왕국의 선전포고로 시작 된 전쟁이었지만 왕국 군과 용사 원정대를 포함해서 수많은 마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방어하는 입장이었던 마족들은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들까지 있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것도 어쩌면 내 탓일 지도 몰랐다.

“시끄럽고 빨리 사라져.”

“···!!”

내가 목소리 낮추며 말하자 어린 마족의 표정이 화들짝 바뀌었다. 빨리 집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드라마나 봤으면 당장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생활비로 쓰고 남은 일당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싶었다. 괜히 시건방진 어린 마족 녀석 때문에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 으···! 저! 저기!”

하지만 방금까지 콧대 높은 귀족의 말투를 따라하려던 마족 녀석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소맷자락을 꾹 움켜잡으며 더욱 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설마···?!

“죄, 죄송해요오···! 히끅!”

“야, 야 인마!!! 너!!!”

어쩐지 자꾸만 목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어린 마족의 애달픈 울음소리에 생각나버렸다. 기세등등하던 척을 하던 검은 호수 빛 눈동자가 바람에 맞은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호수를 쏟아낼 것 같아서 나조차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껏 받은 전속 메이드 복의 치마 속으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아마. 언젠가 멋 훗날 이 때를 회상하면서 즐겁게 웃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린 마족을 번쩍 들어 올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 갈팡질팡 머리조차 굴리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혼날 줄 알아!!!”

뒷골목길 뒤편으로 처절한 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드시 눈물을 콧물 쏙 빼내 주리라. 나는 굳게 다짐했다.

“삐익! 저쪽에서 소리가 났다!”

그 뒤를 이어 또다시 시끄럽게 울리는 해군 기사단의 갑판 소리에 또다시 추격이 시작 되어버렸다. 나는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 옷을 반납하게 되면 무릎 꿇고 메이드장에게 용서를 빌어야겠다. 아니, 그것보다는 당장이라도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에 밖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어제와 오늘 운수가 너무 좋았다.

왕국의 작은 항구도시에 송골송골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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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연재가 많이 늦었군요 'ㅅ'...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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