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 chapter # 2] 외로운 나는 희망과 만났다. # 12.
졸지에 마귀할멈에게 듣고 싶지 않은 비웃음을 산 나는 표정을 팍 찌푸렸다. 마족들이 우리 기준에서 ‘미형’인 것은 인정한다. 물론 마족들 중에도 여러 가지 종족이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냥 미형의 외모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새하얀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동자면 여자아이로 오해하기 충분했다. 분명 손 안에 잡혔던 감촉도 무게도 여자아이 같았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 착각일 수도 있었다.
나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지그시 누르고는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샤워기를 가리켰다.
남자건 여자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 과거와 나이를 생각한다면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딱히 상관없었다. 마귀할멈의 기분 나쁜 비웃음소리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오해를 살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결백을 증명 할 수 있었다.
속으로 욕을 뱉으며 꾸물꾸물 움츠린 채 걸어 나온 어린 마족을 바라보았다.
“빨리 씻어.”
“···네!”
나름 남자아이라고 나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대충 짐작으로 열 살 정도 되어보였으나 밝은 곳에서 바라보니 그 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귀까지 새빨갛게 물든 어린 마족은 벽에 걸린 샤워기를 작은 손으로 매만지기 시작했다.
내 착각으로 본의 아니게 혼욕이 되어버렸지만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남자아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았어도 나는 당연하게 끌고 들어왔었을 것이다. 물론 혼자 씻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지만 괜히 욕실에 집어 넣어둔 사이 몰래 도망 가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괜히 도망가서 기사단에게 발각 되기라도 한다면 더욱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거기에다가 가장 큰 것은 돈 문제도 있었다. 저렇게 돈독 오른 마귀할멈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추가금을 달라고 할지 몰랐다. 차라리 빠른 시간 안에 씻고 나오는 것이 바가지를 피하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뭐해?”
“아··· 저기!”
대충 샤워를 마친 내가 쏘아붙이자 어린 마족이 휙! 시선을 피했다. 어린 마족은 어물거리며 샤워기를 든 채 어찌 할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욕조에 물이 가득차자 수도꼭지를 잠갔다.
샤워시설이나 목욕시설은 마계나 이곳이나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처음 마계에 진입 했을 때 생활방식이 비슷한 것이 많아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예 처음 본다는 눈치로 샤워기를 붙잡고 있었다.
“이, 이 몸은 이런 거 만져 본 적도 없단 말이다!”
“···.”
“···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어린 마족이 갑자기 소리쳤다. 곧바로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소심하게 주눅 들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나는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손을 움직였다.
“쯧! 빨리 씻기나 해.”
“앗! 뜨거!”
나는 혀를 차고는 손에 쥐었던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열었다. 어린 마족의 몸으로 가져가 머리 위에 흠뻑 뿌려주었다. 폴폴 풍기는 수증기에 놀란 어린 마족이 펄쩍 뛰어올랐다. 나는 혹시라도 바닥에 미끄러질까 싶어 녀석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몸이 좀 덥혀졌다 싶으면 옆에 있는 샤워수건 보이지? 여기에 이걸로 거품을 내서 몸을 닦아.”
“···.”
“아니. 몸에 나오는 더러운 물이 사라지면 그 때 거품으로 닦아. 그 다음에 다시 물로 헹궈.”
“네···.”
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어깨 뒤로 넘겨버리고는 한 숨을 깊게 내뱉었다. 혼자서도 제대로 씻지 못하다니. 이 녀석의 머리를 열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알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지.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어린 마족의 손에 샤워기를 쥐어주고는 목욕탕인 척하는 욕조로 발을 움직였다. 먼저 챙겨온 수건을 머리에 감싸서 둘둘 말아 올리고는 조금은 뜨겁게 느껴지는 욕조 위에 발을 담갔다.
이제 알아서 씻게 내버려두고 나는 1 은화씩이나 지불한 대가를 보상받고 싶었다. 단 한 번도 부랑아들을 위해 돈을 쓴 적도 없었다. 물론 이렇게 선의를 베푼 적도 없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모두 다 용사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난데없이 나를 찾아와 ‘필요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느 때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후···.”
나는 욕조에 무릎을 모아 웅크리고는 턱 아래까지 몸을 잠기게 했다. 목재로 이루어진 천장에 수증기가 이슬이 되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벽 구석에는 시커먼 곰팡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욕조를 바라보고는 살짝 안심했다. 저번처럼 욕조를 청소하지 않아 곰팡이물이 그대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마귀할멈에게 항의했지만 확인 못한 내 잘못이라며 환불을 극구거부 했었다. 하지만 나 말고도 많은 입주민들이 항의해준 덕인지 저번보다는 깨끗하게 보였다. 나름 입주민들이 목욕탕 겸 샤워장을 사용해줘야 이윤이 생겼기 때문에 마귀할멈이 직접 신경 쓴 것 같았다.
하지만 1은화 정도에 웃돈을 더 주고 목욕탕을 가면 이보다 더 호사스럽게 누릴 수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사우나도 있었고 식사와 따뜻한 휴게 공간도 제공 되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 많아서 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다. 더 이상 돈에 대해서 후회하는 생각은 그만하자. 계속 생각할수록 허기진 빈속이 더욱 쓰릴 뿐이었다. 일용직 노동의 퇴근 후 자유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까지 들어 살짝 짜증이 났다. 뒷골목에서 저 녀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혼자서’ 시장의 식당에서 저녁거리를 포장해서 사와 ‘혼자서’ 식사와 마나비전의 드라마를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목욕탕에 50 동화정도의 금액으로 이렇게 따뜻한 온수에서 아무에게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여유와 맥주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난방효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단칸방으로 돌아가 먹고 남은 저녁 식사는 방치 한 채, 혼자서 온갖 ‘혼자만’의 꿈을 꾸며 악몽 속에 잠겨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일용직 소개소로 나갈지 또다시 잠을 잘지 수도 없이 고민 할 것이다. 오직 혼자서 즐기고 혼자서 방황하고 혼자서 잠들 것이다.
나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씻어내고는 시선을 돌렸다. 어린 마족은 구석에서 샤워기 물을 머리에 쏟아내고 있었다. 평야에 쌓인 설원 같은 자그마한 등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저분하게 기른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검은 비단결 같은 폭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덕인지 뒷모습만 봐서는 성별이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전히 흘러내리는 땟국물이 내 표정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저렇게 머리에만 물을 쏟아낸다면 돈 낭비에 시간낭비에 자원낭비에 불쾌할 정도의 비효율성이었다.
“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린 마족을 불러 세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나는 괜한 선심을 부렸다며 방금 전, ‘과거의 마음’을 가졌던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린애라면 질색이었다. 나는 잠시 그 사실을 망각했었던 것 같았다. 과거일 적의 나라면 온갖 온정을 베풀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히익!”
어린 마족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서운 강아지를 본 새끼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혀를 차고는 욕조에서 나와 샤워기를 빼앗아 들었다.
“차렷!”
* * *
세제를 풀어 세탁까지 마치니 벌써 1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마귀할멈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을 늦게 열어 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선뜻 1 은화를 들이밀어서 그런 것인 지도 몰랐다. 덕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목욕이며 세탁까지 끝내니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끌고 온 어린 마족 덕분에 그 뿌듯함의 가치도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
“먹어.”
나는 어제 먹고 남은 바게트 빵을 잘게 찢어 어리둥절 바라보고 있는 어린 마족의 무릎 위에 올렸다. 나는 손에 쥔 얼어붙은 생크림을 2 동화짜리 차 숟가락으로 녹이며 어린 마족의 옆을 비집고 앉았다.
“이, 이런 걸 제물로 바쳐봤자 그대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
“닥치고 먹어.”
“네···.”
씻겨놓고 몸까지 녹여두니 다시 제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혀를 차며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어린 마족의 무릎 위에 올려둔 접시 위에 생크림을 뿌렸다. 얼어붙어 있는 걸 잘게 부수어서 뿌린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빵도 너무 딱딱하게 굳어서 그대로 먹으면 이가 다칠 것 같아 잘게 찢어둔 상태였다. 꼭 애완동물들한테 준 사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입을 비죽 내민 어린 마족 때문이었다.
“불만 있어?”
“전혀 없노라!···요.”
내가 무릎 위에 올려주었던 접시를 빼앗으려 하자 어린 마족이 손으로 부여잡으며 말했다. 배고픈 녀석이 불만을 가지면 진짜로 먹여줄 가치도 없었다. 나는 접시 위에 빵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는 입천장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천천히 씹었다.
어린 마족은 나와 빵조각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손으로 집어 한입 물었다. 곧 신 것은 먹은 것 같은 짜릿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 동안 굳어 있던 침샘이 자극 돼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자그마한 빵조각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물었다.
어린 마족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먹고 남은 빵이 꽤 많이 있었다. 평소처럼 햄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언제 식료품을 다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 상태가 좋지 않아서 버렸던 기억이 났다. 그 때 무슨 생각으로 가져다 버렸는지 그 때의 나를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읍!”
볼이 터져라 바게트 빵 조각을 몰아넣은 어린 마족이 갑자기 가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으로 갔다. 다행스럽게도 우유는 아직 얼지 않았었다. 간만에 돌린 난방 덕택에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고소한 향기는 여전했다.
나는 하나 밖에 없는 컵에 우유를 부어 주고는 어린 마족의 손에 쥐어주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입에 그대로 부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상상만으로 그쳤다. 그래도 어린애였다. 나는 꾸역꾸역 우유를 삼키는 마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막상 제대로 씻기고 나니 머릿결이 상당히 보드라웠다. 내가 사용하는 싸구려 머리거품이 이 정도 성능을 발휘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얼굴에 잔뜩 끼었던 때며 눈물자국을 죄다 지워주니 잘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인형 같았다. 새하얗게만 보였던 피부는 약간의 홍조가 들어가 부드러운 백석 같았다. 마족들 중에서는 검은색 피부도 있었지만 마족이라기보다는 여신의 신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외모였다.
아무리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나라도 잘 꾸미면 예쁜 여자아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다듬으면 멋진 남자아이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턱을 살짝 매만지고는 텅 비어버린 접시를 가져가 주방에 올려두었다. 나는 텅비어버린 녀석의 컵을 바라보고는 벽장에 넣어 두었던 우유병을 가리켰다.
어린 마족은 윗입술에 흰 우유 자국을 그대로 남긴 채 나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정말로 더 먹어도 되느냐···요?”
“마음대로 먹어. 어차피 내일 되면 얼어서 먹지도 못 할 거야.”
“감사할 따름이다···요!”
침대에서 폴짝 일어선 자그마한 마족소년은 벽장으로 다가갔다. 언어며 말투며 제대로 된 사고방식조차 가지지 못한 것 같았다. 벽장에서 우윳병을 꺼낸 마족소년은 컵에 한 모금 정도 부어 입으로 가져갔다. 차근차근 움직이는 게 어디서 행동거지는 배운 것 같았다.
나만 가만히 마족소년을 관찰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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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너무 많은 분들의 성원에 어찌 몸 둘 바를 모르는 MuorLove 입니다! 오직 감사, 또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더욱 더 최선의 노력과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부어 부디 즐거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하나 죄송스러운 소식이지만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이틀에 걸쳐 출장이 잡혀 있습니다. 감히 죄송스럽지만 하루만 휴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숨가쁘게 진행되다보니 잠시 작품의 호흡을 고르고 부족한 부분을 점검해야 할 시간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이르면 금요일 오후부터 연재 시작 예정입니다. 더욱 더 멋진 작품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 코멘트// (12화 기준: 전 편들은 직접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ichealㅡWittmann // 감사합니다!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라빠룽룽// 하지만 정체는...?! 두둥!
Pirque// 진정한 치유물은 제 필력이 더욱 상승 되면 쓸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이 작품도 즐겨주시면 대단히 감사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mabi2004// 남자아이는... 사랑(읍읍!!).
sfbrwur// 돈이 웬수죠.. ㅠㅠ
Narrrr// 저도 좋아요!
델라아데// 주인공 울지도 몰라요 ㅠㅠ
mimei// 용사가 진정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은둔마녀링// 헉!! 쉿쉿!!
냥이눈// 키워서 잡아먹는 맛은 어떤 맛(읍읍!)?
camanama// 저, 저도 좋아해요?!
음란막이//감사합니다!! >_<
통수류의달인// 헉...! 쉿!
꾸르르르르// 나중에 보여드릴 밀당도 기대해 주세요! :)
AriaStark// 네!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일 1~3회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 특성 상 장기 출장이 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양질의 작품으로 보답해 드릴 수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습작처리나 잠수 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후기와 공지를 통해서 반드시 휴재 공지를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선생님// 용사가 정말 나빠요! 주인공 자리는 겸직이나 다름 없으니...
단발머리a// 이 이야기의 남주이기도 합니다! 곧 천천히 등장 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세페이드// 감사합니다!! >_<
마오미오// X보다 더한 걸... 읍읍!
김상민씌//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