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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27화 (27/246)

27회

[ chapter # 3] 가난한 나는 외롭지 않은 꿈을 꾼다. # 23.

“지금 네 곁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벨튼 가를 선택하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단다.”

마치 유혹하는 것 같은 메이드장의 목소리에 나는 찻잔을 입에서 떼버렸다. 메이드장은 그윽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동료가 되지 않겠냐며 손을 내밀던 용사의 얼굴이 보여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잠깐만! 내 곁에 있는 아이라고?

“메이드장님! 제 곁에 있는 아이라고 하시면···?”

“어제 데리고 다녔던 마족 남자아이 말하는 거란다.”

“···.”

메이드장의 눈썰미에는 차마 피해 갈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물론 힐끔힐끔 고개를 들던 시엘 때문인 것도 있었다. 아마 그 때의 메이드장이 눈치가 없었다는 말은 우리를 숨겨주기 위한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겨울 코트 소중한 거지?”

“예? 아, 네. 맞아요.”

한 번 밖에 없는 겨울 코트가 소중하긴 소중했다. 그야 한 벌 밖에 없었으니까. 메이드장은 잠시 운을 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를 뒷모습에 감출 때 메이드장은 오묘한 기분을 느꼈었단다.”

“···네?”

“소중히 아끼는 옷을 정성스럽게 입혀주고 감추려는 모습이 꼭 ‘기사’ 같았다 랄까?”

“기사 말씀이신가요?”

“그렇단다. 뭔가 아르미엘에게서 못 보던 표정을 보았었지. 마치 기사가 공주를 지킨다는 느낌이었을까?”

“···.”

메이드장의 말을 반 이상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말처럼 시엘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적발 되면 그대로 기사단에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아이를 잘 지켜주려무나. 반드시 보답 받는 일이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 벨튼 가를 선택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단다. 아르미엘.”

“네··· 생각해 볼게요.”

메이드장은 나를 전속 메이드로 고용하기 위해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지레짐작으로 말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물론 벨튼 가의 전속 메이드도 전혀 나쁘지 않은 일 터였다. 만약 시엘이 이대로 의료선을 타지 못하고 교황청으로 가지 못한다면 ‘식비’가 필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안전 구호 제창하겠습니다!”

“안전! 안전! 안전!”

“경비지원부 마구간 지킴이 조! 배치 붙겠습니다!”

“어이! 어이! 어이!”

마구간 뒤편으로 들려오는 우렁찬 남성들의 목소리에 고개가 번쩍 들렸다. 마치 고가다리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외치던 구호와 비슷했다. 마구간을 지키러 왔다는 데 ‘안전!’을 외치는 게 어울리지 않았다.

“어머, 벌써 경비부에서 왔나보구나? 얘! 요나엘!”

“네! 네!! 메이드장님!”

“즐거운 점심시간은 끝났단다. 어서 일하러 가보자꾸나.”

메이드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방긋 미소를 건넸다. 나는 희미한 미소로 대답했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던 요나엘은 메이드장의 부름소리에 벌떡 일어나 찻잔들이며 도시락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나엘? 메이드장이 몇 번이나 교육했었니? 팔러 메이드는 자고로···.!”

“죄송해요!!”

이 녀석도 메이드장 앞에서는 별 수 없는 것 같았다.

“부르젤씨는 세 명과 저쪽으로 프루지엘 씨는 남은 네 명과 저쪽으로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장님!”

벨튼 가의 경비 지원부에서 지원 받은 10명의 경비원들과 근무지를 교대했다. 오전에는 국왕 청 손님맞이 준비로 정원을 정비하느라 못 왔다는 말을 덧 붙였다. 안 왔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메이드장이 불러온 거니 나는 순순히 마구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메이드 씨! 이제 여기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네.”

마구간에 도착한 나에게 어떤 남성이 말을 걸었다. 그의 양 팔 근육이 당장이라도 경비복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조장’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사무실로 데려가 노트를 인계해 주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조장을 따라서 경비원들이 청소도구를 챙기고 마구간을 청소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야.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걸 혼자서 다하셨다니.”

“···요나엘이라는 메이드도 도와줬어요.”

“예? 그 건방진 요나엘이 일을 했다고요?”

물론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내 공적을 조금 나누어 주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조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나는 긍정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마구간을 빠져나왔다.

조장에게 마구간에 대한 업무를 넘겨주는 사이 메이드장과 요나엘은 먼저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제 좀 편하게 일할 수 있겠지. 나는 옷에 묻은 마구간의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는 저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전부터 조금 무리했는지 고단한 삽질 덕에 어깨며 허리가 조금 뻐근했다.

퇴근하면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구고 싶다는 욕망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 * *

“아르미엘! 정말로 고생 많았어! 자, 여기 10 은화.”

“···!!”

메이드장의 집무실 안. 메이드장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10 은화를 내밀었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메이드장과 은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늘은 지붕수리 때처럼 하루 종일 일 한 것도 아니었고 오후 반나절은 국왕 청 손님맞이 준비로 욕조를 청소했을 뿐이었다. 물론 벨튼 가의 대 목욕탕은 어마어마한 크기 덕분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긴 아팠다.

“저, 정말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 오늘 아르미엘 덕분에 집사관님의 불호령 없이 잘 마무리 되었단다.”

아무리 메이드장이라도 귀족 신분의 집사관에게는 별 수 없는 것 같았다. 메이드장의 아들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계급이 깡패이긴 깡패인 것 같았다. 어쨌든 아무리 귀족이라 하더라도 마구간 관리는 중요한 것 같았다. 덕분에 잘 마무리 되었다고 하면 나로서도 기쁜 이야기였다.

나는 메이드장에게서 10 은화를 받고는 메이드장이 내민 일당 지급 명세서에 사인을 했다. 벌써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메이드장 뒤편의 창문으로 초승달이 물끄러미 구름에서 도망 나왔다.

“아침부터 힘들었을 텐데 늦게까지 더 일해 줘서 더 챙겨줬단다. 마음 같아서는 추가수당이라도 주고 싶은데 일용직이라서 규정에 걸려버리는구나···”

“아, 아니에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해요!”

내가 10 은화를 바라보고 있자 메이드장이 아쉽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돈에 눈이 팔리다니 나도 속물이 되긴 된 것 같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고수익 덕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미소’가 떠올랐다.

“아르미엘? 내일도 출근 할 거니?”

“아직 결정 된 건 없어요.”

“그래? 내일도 출근해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꾸벅 인사하려고 하자 메이드장의 질문이 날아왔다. 물론 일용직이었기에 출근은 내 마음대로였다. 벨튼 가는 오늘부터 내일 모레까지 있을 ‘국왕 청의 손님’ 덕분에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국왕 청이라 하더라도 용사는 아니었고 관련 된 인원들이 다른 귀족 가에서 연회를 마치고 방문한다고 들었다. 다른 전속 메이드들은 아직도 손님맞이 준비로 일하고 있었다.

일당도 일당이었지만 대 목욕탕 청소를 삼일 연속으로 하라고 하면 내 몸이 못 버틸 것 같았다. 옛날이라면 밤새도록 일할 수 있겠지만 몸보다 정신이 더 피곤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시엘’의 일도 처리해야만 했다.

“혹시 결정 되면 내일 꼭 일해주면 고맙겠구나.”

“네···”

매일 10 은화를 준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겠지만 의료선 출항 일정이 확인 되는 대로 시엘을 보내야만 했다.

“어쨌든 오늘은 정말 고생 많았으니까 들어가는 길에 따뜻한 거라도 사먹으려무나.”

“네. 그렇게 할 게요.”

“마족들은 잘 챙겨 먹이지 않으면 성장이 더디니까 꼭 잘 챙겨 먹이는 거 잊지 말고.”

“네. 말씀 하신대로··· 네?”

“어린 마족들은 매년 성장기 마다 힘을 모아서 한 번에 자란다고 한다구나. 그러니까 매 성장기 놓치지 않게 꼭 잘 먹이렴.”

메이드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아이. 너희 집에서 살고 있지? 지금은 마력 순환이 잘 되지 않으니까 따뜻하게 잘 보살펴주렴.”

“제 방에서 살고 있는 것까지 아셨어요?”

“물론이지? 그렇게 소중하게 꽁꽁 싸매고 다니면 굳이 메이드장이 아니더라도 다 알 수 있단다. 아르미엘.”

당혹스러운 내 질문에 메이드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책장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책장의 책을 한권 뽑아 나에게 내밀었다.

“마족과 함께 공존하기? 친구에서 연인으로?”

“제목이 좀 낯 뜨겁기는 한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네. 읽어 봤는데 참고용으로 정말 좋단다.”

~친구에서 연인으로~라는 문구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나는 메이드장이 건네준 책을 받았다. 책을 펴서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책을 가슴 폭에 챙겼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메이드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녀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메이드장이 건네 준 책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그대로 벨튼 가의 후문을 빠져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수수료를 내지 않았으니 다시 소개소로 갈 일이 없어 기분이 가벼워졌다. 하루 소개료를 떼고 받은 4은화여도 감지덕지였는데 수수료 없이 내 손에 떨어진 10 은화가 발걸음을 자꾸만 재촉했다. 기사단 시절에도 1 은화 몇 개만 가지고 다녔지 10 은화를 가지고 다닌 적은 손에 꼽았다. 딱 한 번 금화를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약혼녀와 약혼을 파기하기 위한 벌금 때문이었다.

다음에 쉬는 날이 결정 되면 경마장이나 도박장을 가볼까 하는 욕구가 샘솟아 올랐다. 저번에 받은 10 은화도 있었고 오늘의 수익까지 합치면 10 은화 쯤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오늘의 수익을 어떻게 쓸지는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필요한 것부터 사기로 했다.

“나사 주세요.”

“아가씨! 이걸로 엄한 짓 할 건 아니지?”

“문짝 수리 할 거예요.”

“아가씨가?”

“···제가 직접 할 거예요.”

엄한 짓이라니. 나는 철물점 주인이 무신경하게 내뱉은 말에 머리에 눌러썼던 후드를 벗었다. 후드를 덮고 있으나 쓰고 있으나 남들 눈에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상일 것이다. 나는 애써 눈을 부릅뜨고 나사 뭉치를 받아 철물점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지나고 불어나기 시작한 행인들 덕분에 도로를 걷기가 어려워져 있었다.

“으으! 진짜 춥네.”

나는 몰려오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고는 작업복에 나사뭉치를 집어넣었다. 벨튼 가의 넉넉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난방 덕에 땀을 흘리며 일했었다. 하지만 막상 저택을 나오고 시장의 뒷골목까지 들어가니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

나는 가까스로 기침을 참고는 코를 적신 진눈깨비를 바라보았다.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시장의 도로에는 인파들과 베르투아 축제 준비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시계탑의 시간을 확인하고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10 은화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 손에는 종이봉투 가방에 책이 한권 들어가 있었고 장갑이 없는 손은 따가울 정도로 시렸다.

“···빨리 집에나 가자.”

나사를 샀으니 빨리 집이나 가자.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대로 뒷골목을 따라 사창가를 지나면 단골로 가는 룰렛 게임장이 있었다. 나는 은화를 넣고 굴리는 재미보다 빨리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커져 있었다. 아니지. 돈을 잃던 따던 남은 돈으로 목욕탕으로가 지친 몸을 녹이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니 나름 중노동 덕분에 허리도 어깨도 끊어질 것 같았다.

역시 수중에 남을 정도의 돈이 생기니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이 쌓여만 갔다.

“···엣취!”

뺨을 적시는 진눈깨비를 떼어놓고는 시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집에 가도 춥기는 매한가지 일 텐데··· 나는 발걸음을 돌릴까 말까 한 바퀴 제자리에서 돌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코를 훌쩍이고는 찬바람에 얼어붙은 코를 손가락으로 녹여주었다.

아니지.

나도 모르게 깜빡 잊고 있었던 시엘이 생각나버렸다.

< 다음 화에 계속 … >

━━━━━━━━━━━━━━━━━━━━

< 1권 끝. >

[작품후기] 으아아!! 상사님! 어째서 제게 이련 시련을 주시나이까!

주말 특근이라니...! 특근이라니... 8ㅅ8.

겨우 퇴근하고 글 좀 쓰니 벌써 토요일이 사라져버렸군요.

엉엉엉...

p.s1// 조회수 10만을 돌파했습니다! >_<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10만 100만 찍을 때까지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p.s2// 모든 분들께 리코멘트 해드리지 못 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_ _ 제 컨디션 악화로 답변 못해드리고 있지만 수십번은 읽으면서 힘을 보충하고 있으니 한 말씀 씩 간절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막간 QnA.

Q. 도대체 언제까지 아르미엘 고생시킬 건가요? 8ㅅ8.

A. 그래서 '1권' 끝입니다. :).

Q. 아르미엘이랑 시엘의 나이차이가 얼마나 나나요?

A. 약 10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응(?) 하실 수 도 있지만 곧 둘의 나이도 공개 됩니다 :)

Q(1). 다음주 군대가는데 아르미엘이 행복한 모습 보고 싶어요!

Q(2). 작품 진행이 너무 느려서 답답해요!

A.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하지만 전부터 말씀드린 것 처럼 고구마 이야기를 길게 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연참폭격으로 제 머리속에 있는 거 다 끄집어 드리고 싶은데 개인사정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조금만 양해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차후 연재 진행 방향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쓸 예정입니다. 초전반부를 담당하고 있는 1권의 내용은 용사의 배신->주인공 힘듦->폐인생활->만남->앞으로 전개에 대한 포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본래 챕터 2로 쭉 밀고 갈 생각이었지만 다시 챕터를 나누어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기대해 주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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