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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70화 (70/246)

70회

[ chapter # 6] 외로웠던 나는 여신에게 맹세한다. 나라면 분명 용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눈물 많던 꼬마였을 때부터 쭉 지켜보았다.

그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속 그의 옆을 지켰다고 생각했으니까.

끝이 보인다. 지긋지긋한, 악몽 같은 여정의 끝이 보인다.

저항할 세력조차 잃어버린 마왕성은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끝나면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게 아니다. 그 정도 꿈은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신은 반드시 허락하고 축복해 줄 것이다.

지금 걷는 이 길은 꽃이 만연하는 축복의 장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꿈꾸어 왔던 것을 이룰 것이다.

아아. 또 한명의 동료가 쓰러졌다. 마지막이니 만큼 환영의 인사가 다소 거칠다.

내 옆으로 거침없이 생명의 불꽃을 꺼뜨린다.

마치 정해진 이야기라는 것처럼 허무하게 소실해 간다.

이제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

나를 욕하던 동료들도, 나를 위로해주던 동료들도,

내 꿈을 위한 제물이 되어 사라진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면 결혼식은 어떻게 할까? 집은 어디에 구할까?

지금까지의 저축은 물론이고, 돌아가면 많은 보상금을 받을 것이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다. 보상금 따위 안 받아도 좋았다.

그저 돌아가서 남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귀여운 자식들을 낳고, 행복한 일만 가득 찬, 그런 일상을 살고 싶을 뿐이다.

‘아르미엘··· 기사님!’

성직자, 미나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 40(3).

“하아···!”

한 숨이 터져 나왔다. 바닥을 부리도 콕콕 쪼던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기쁜 날인데 왜 저러지? 하는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기뻐 보인다고? 내 생각이지만 비둘기의 멍청한 착각 같았다.

비둘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더 바보 같았다.

맑은 날의 햇살이 쏟아지는 교황청의 대 정원. 나는 벤치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가던 성직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누군가가 내 표정을 본다면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할 것이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행복한 날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다.

“야옹!”

시엘은 정원의 난간 위에 앉은 고양이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러다 물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는 거드름을 피우며 시엘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엘은 고양이의 관심이라도 사려는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닥거리는 시엘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 팔을 벤치의 등받이에 기대고는 다시 한 숨을 토해냈다.

‘정말! 할게! 하면 되잖아요!’

‘헤헤! 여신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정말로 감사드려요! 진즉에 하시면 좀 좋았어요? 여기에 예약 신청서 있어요. 어렵지 않아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래도 추억하나 쯤은 만드셔야죠!’

‘추억···.’

시엘의 요구에 못이긴 나는 결국, 약혼식을 하기로 했다. 계획에도 없었고 준비도 되지 않았었다. 관례적인 종교의식 같은 것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엘의 수줍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미사엘과 약혼식 얘기로 많이 싸웠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핑계라면 핑계였다. 약혼식을 꼭 해야 하는 내 물음에 미사엘은 펑펑 울었었다. 요구하는 돈도 돈이었지만 약혼식보다는 결혼식을 더 거창하게 해주고 싶었었다. 그 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군함의 출항 일정도 빠듯했었다. 상관들의 눈치도 보였었고 약혼식으로 휴가를 신청해야했었다. 물론 그 약혼식은 성사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펜 좀 빌려 주세요.’

‘후후훗! 좋아요! 어서 싸인 하시라고요!’

지금이라면 괜찮다는 생각과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만 어지러웠다. 시엘은 그 때의 미사엘이 아니었다. 내가 강경하게 거부하면 시엘도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엘의 눈치를 살폈다.

수줍어하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나는 서명을 하고는 시엘에게 예약 신청서를 건네주었다. 시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시엘은 드디어 눈치 챘는지 자기의 이름을 꾹꾹 눌러 쓰고는 미리엘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그럼 비용은 30 은화되시겠습니다!’

‘네? 금액은 한 마디도 안하셨잖아요.’

‘아차! 제가 너무 흥분해서 설명을 안 해드렸네요! 죄송해요!’

‘···.’

‘전부 내실 필요는 없어요! 30 은화면 애들 이름도 아니잖아요! 지금 저렴한 이자로 할부행사하고 있답니다! 천천히 내셔도 돼요. 이 정도로 봉사해드리는데 너무 비싼 걸까요?’

미리엘이 해맑은 표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저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그럴 수도 없었지만 꼭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벌써 예약 신청서는 미리엘의 손에 넘어 갔으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0은화면 단칸방의 월세 금액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행동에 불필요한 지출까지 생각하니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 게요!’

‘시엘.’

‘인생에 ’한 번‘ 뿐이라고 하잖아요!’

수줍어하던 시엘이 버럭 소리쳤다. 마족들은 고집이 쌔다. 아마 시엘의 고집은 이때부터 시작 된 것 같다.

어쨌든 나도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미리엘을 통해서 약혼식 일정을 잡았고 금액이라면 시엘이 벨튼 대 공작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해결했다. 10은화 7개가 주머니를 상당히 무겁게 하고 있었다. 내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어차피 서류들을 제출하는 내내 한 푼의 수수료도 내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헌금이며 성금이며 수수료니 뭐니 하며 떼 가는 돈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신의 가르침을 반한다고 해서 사라진 상태였다. 성직자들도 먹고 살아야 했으니 수수료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을 마시것조차 돈이 드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어느덧 고양이와 친해진 시엘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따뜻한 아리라의 날씨에 졸음이 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마음이 무거울 것도 없었다. 어차피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어린 마족을 납치, 감금에 인신매매의 더러운 의혹에서 벗어 날수 있었다. 몇 번이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순응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따지면 잘 된 일이다.

그게 뭐가 잘 된 일인거지?

나는 눈을 살며시 뜨고는 고양이와 해맑게 웃고 있는 시엘을 바라보았다. 아직 점심시간 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도 점심식사를 무엇으로 해결할까하는 생각이 절반이었다.

“내가 나를 모르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런 기분을 옛날에도 느낀 것 같았다. 해군 기사단을 선택했을 때? 미리엘과 약혼하기로 약속했던 때였을까? 아니면 약혼을 깼을 때?

아니면···

용사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 불쾌하고 우울한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그 때의 상황과는 다른 게 아니고 아예 틀렸다. 근데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꺼림직 한 느낌이었다. 마치 음마들에게 이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신마법 저항력은 원정대 내에서도 최고였던 나였다. 웬만한 서큐버스나 세이렌 따위는 내 꿈에 잡아먹힐 정도였다.

하지만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 같은 마음 속 느낌이 쓴맛을 다시게 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부정. 괜찮을 리 없었다. 내 스스로의 상황은 물론이고 경재적인 상황도 좋지 않았다. 다만 긍정적으로 검토 할 부분이 있다면 다행이 빚은 없다는 것.

반려자는 괜찮은가?

부정. 나는 ‘시엘’이라는 마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시엘’이라는 이름도 내가 지어준 것이다. 사념체가 되어버린 전직 마계의 집정관의 말에 따르면 수많은 마왕의 후보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왕으로서의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냥 평범한··· 아니, 조금 가여운 마족일 뿐이다. 어쩌다가 만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기사단의 범죄자로 찍혀서 여기까지 왔다.

거부할 방법은 없었는가?

부정. 좋은 방법이 없었다. 체포 되어 재판을 받던가, 이렇게 약혼 하던가 둘 중 하나였다. 재판을 받았다면···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의 계획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먼저 내 직업을 구해야 했다. 점찍어둔 곳은 없지만 벨튼 저택이 유력후보이다. 필요하다면 ‘용병단’이나 ‘선박직’을 고려하고 있다. 물론 최후의 수단이다. 직업이 구해지고 안정화 되면 기사단 근처의 임대 빌라에 입주할 계획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가장 먼저 시엘을 학교에 보내는 게 계획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려 애를 써보았다. 내 마음은 갈팡질팡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서류 가방에서 약혼 증명서를 꺼냈다. 각종 여신의 가르침들과 축복하는 문구들이 가득했다.

‘고통의 인고 끝에 탄생한 사랑스러운 자식들이여, 그대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가장 첫 문단에 기록 된 질문이었다. 나는 여기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대의 대답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가?’

마지막 문단에 내 이름을 서명하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 내 이름과 시엘의 이름을 써 넣었다. 그 위로 시엘의 엄지손가락과 내 엄지손가락의 지장을 찍어 두었다.

여신은 거짓을 싫어한다. 자신의 뜻을 배반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기사단 시절의 종교 활동 내내 들었던 내용이었다. 나도 2년 전에는 독실한 여신의 신자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누나! 꽃이에요! 분홍색 꽃이에요!”

“호수물방울 꽃이네.”

시엘이 호숫가 근처에서 꺾어온 꽃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아리라가 아니고서야 꽃구경은 꽃집에서나 가능했었다. 하지만 호수물방울 꽃은 겨울에도 피는 꽃들 중 하나였다.

시엘은 꺾어 온 꽃을 이리저리 손으로 만지더니 내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짠! 꽃모양 머리핀이에요!”

“···.”

시엘이 내 머리에 꽂은 호수물방울 꽃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배시시 웃는 시엘을 바라보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의외로 손재주가 좋아서 내 머리에 잘 고정되어 있었다. 꿀밤이라도 먹일까 고민했지만 싱긋 웃으며 바라보는 얼굴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아르미엘 누나, 정말 예뻐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안 돼요! 빼시면 안 돼요! 꽃이 엄청 기뻐하고 있는 걸요?”

“꺾인 것도 불쌍한데 꽃이 기뻐하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할래?”

“아니에요. 이 꽃은 예쁜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장식하는데 소원이라고 했어요.”

시엘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했다. 마족들은 꽃들하고도 교감까지 하는 걸까? 가만히 바라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천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시엘의 말을 의심 할 수도 없으니 관두기로 했다.

거울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머리에 꽃을 단 모자란 여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고양이랑 친해 진 거야?”

“네! 좋아하는 암컷 고양이가 있는데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 중이었데요!”

“동물이랑 대화가 가능 한 거야?”

“대화까지는 아니에요. 저희가 다른 국가의 인간언어를 배우는 거랑 같아요.”

“같다고?”

“네! 우리 마족··· 아니, 저희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도 듣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요. 울음소리나 몸짓 같은 걸로 판단하고 유추하는 방식이에요.”

“그렇구나···”

“안 그러면 마수들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으니까요.”

시엘이 손을 꼼지락 거리며 말했다. 마족들에 대해 처음 안 사실이 있다면 언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다는 것과 그런 방식으로 동, 식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알면 알수록 인간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마력이라는 힘으로 물을 끓이고 추운 방을 난방하고 방을 밝힐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외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가끔 내가 생각하는 마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시엘만 봐도 그렇다. 젖살이 채 빠지지는 않았지만 눈동자며 이목구비는 어디 내놔도 꿇리지 않았다. 조금 마르기는 했지만 군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과는 달랐다.

그래. 시엘을 보며 생각한 느낌은 ‘용사’와 비슷했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냈다. 마력도 신성력도 아닌 힘으로 무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적들을 꿇게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나한테는 조금 씩 비추긴 했지만 지금에야 생각하면 그것도 거짓말 같았다.

마치 경외하게 되는 느낌. 섞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기름 같아서 가까이 갈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시엘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입술을 비죽 내밀며 동그랗게 변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부드럽게 꾹 눌러서 그런지 저항은 하지 않았다.

아리라의 날씨가 건조한 탓인지 시엘의 입술이 메말라 보였다. 나는 시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르미엘 누나?”

“하아···”

나는 마지막 한 숨이라며 호흡을 정리했다. 그대로 이마를 시엘의 머리에 기댔다. 머리가 무거운 탓이었다. 이대로 내 생각이 시엘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아프세요?”

“응. 너 때문인 것 같아.”

“죄, 죄송해요··· 거기서 제가 고집부리는 게 아닌데···”

“됐어. 그것 때문 아니야. 조금만 더 쉬었다가 점심이나 먹으러가자.”

나는 슬며시 시엘에게서 기댔던 머리를 뗐다. 내 무거운 생각들이 시엘에게 전해진 걸까? 시엘이 수줍게 눈웃음을 그렸다. 오후를 알리는 교황청의 종소리와 햇살이 시엘의 미소를 장식해 주었다.

시엘은 웃음기가 많은 것 같다. 시엘과 머리를 맞닿으며 내 고민이 전해지길 희망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는 시엘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스며든 것만 같았다.

‘나는 당신을 위한 마왕이 되겠어.’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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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ㅇㅅㅇ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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