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106화 (106/246)

106회

[ chapter # 8 ] 희망을 품은 나는 내일과 싸운다. # 46(5).

“다녀왔어.”

“아르미엘 누나!”

시엘이 해맑은 웃음이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시엘의 웃음이 깨끗한 강물 같았다. 일자리 문제로 꿀꿀하던 내 마음을 씻어 주는 것만 같았다.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짜증내며 시엘을 밀어 냈을 것이었다.

“별일 없었지?”

“네. 얌전히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시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시엘에게 꿀꿀한 마음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누나도 조심히 다녀오신 거죠?”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 있었겠어?”

내가 외투를 벗자, 시엘이 슬며시 빼앗아 갔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나는 내 일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주의였다. 하지만 이런 시엘의 손길이 이상하게 거부스럽지 않았다.

“저녁부터 더 추워진다고 해서요. 걱정했었어요.”

시엘이 내 외투를 정리하며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신경 끄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나는 시엘에게 무슨 일로 나간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벌써 노을이 가득한 저녁시간이었다.

“그래도 일찍 오셔서 기뻤어요.”

“그게 기뻐할 일이야?”

“그럼요. 누나가 옆에 안계시면 조금 불안해요.”

내가 일찍 와서 기쁘고,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니··· 시엘이 살짝살짝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시엘은 자기가 한 말에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사탕발린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다지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시엘의 표정이 너무 순수해서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뭐, 시엘이 말없이 늦게 돌아온다면, 나는 더 걱정했을 것이다. 다음에는 행선지라도 꼭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이라도 기쁜 소식이 있다면, 그 정도는 전해줘도 되지 않을까?

“배고프지? 저녁준비 할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옷걸이를 정리하는 시엘을 보며 물었다.

“저는 누나가 드시고 싶으신 거면 뭐든 좋아요.”

내가 좋다고 뭐든 안 좋아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시엘의 성격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소심한 녀석 같으면서도 자기 생각만큼은 소신껏 말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가벼워진 이유가 뭘까? 나는 시엘의 담담한 미소를 바라보았다. 시엘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우중충하던 마음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괜한 내 짜증으로 그 웃음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내가 생각한대로 된 일이 없었다. 변변한 일자리도 못 구해서 무거운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여자아이 시엘의 모습으로 망상이나 하며, 씁쓸한 마음만 달래고 왔었다. ‘만약에’라는 단어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잠시 달콤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것 잡을 수 없는 절망감만 가득해졌었다.

하지만, 내 망상은 현실에 다 가까웠었다. 내가 잘하면 모두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비록, 기사의 신분이 아니더라도 버금가는 일자리만 찾으면 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렇다면, 시엘의 미소가 지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르미엘 누나···?”

“아! 잠깐, 다른 생각해버렸네.”

“갑자기 진지하게 고민하셔서 놀랐어요.”

“그런 것 가지고 일일이 놀라지마. 저녁식사로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죄송해요··· 다음에는 제가 준비할게요. 누나가 좋아하시는 걸로···”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져든 모습이, 시엘에게 걱정을 준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평소의 표정을 찾았다. 생각에 빠져들면, 미간이 찌푸려지는 버릇은 어떻게든 고쳐야겠다. 괜히, 시엘의 웃음만 지워버린 꼴이 되버렸다.

아니. 그것보다 오늘 저녁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더 걱정했어야 했다. 시엘만 보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든 된 것 같았다. 자꾸만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애써 시엘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도 나는 시엘만 바라보고 있었다.

* * *

“여기도 있었네!?”

철지난 봄 코트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나는 기대하지 못한 수확에 들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엘이 씻으러 간 사이. 나는 구석구석에 숨은 동전들을 찾아냈다. 동전을 찾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언제 세탁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베개를 세탁할 생각이었다. 베개를 들어 올리니, 구석에 예상하지 못한 동전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침대 밑과 배게 밑이며, 철지난 옷들을 뒤졌었다. 나는 매일 땡전 한 푼 없다며, 일을 안 하면 식사를 거르곤 했었다. 그때, 이런 돈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 후회가 들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더 중요했기에 들뜬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9은 50 동화··· 오늘 돈 받고 쉰 기분이네?”

무려 은화가 9개나 있었다. 배게 밑에 동전을 넣어 두는 습관 덕이었다. 침대와 매트리스 사이로 동전들이 숨어 있었다. 의도치 않은 저축이었다. 동전 몇 개가 흘러들어 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귀찮아서 꺼낼 생각은 안하고 있었다. 귀찮다고 침대에 들어 누운 내가 고맙게 느껴졌다.

거기에다가 시엘이 가지고 있던 돈과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합하니, 무시하기 어려운 액수가 되었다.

나 혼자였다면 한 달 정도는 일을 안 해도 될 정도였다. 물론, 월세와 저축을 무시하고 도박장에서 돈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 하였다.

이 정도나 숨겨진 돈이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초라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먹던 상관없었다. 시엘이 맛있다고 좋아하긴 했었지만, 너무 빵만 잔뜩 먹인 것 같았다.

사실 수프나 슈트, 빵 종류도 식사로는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는 사치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건 혼자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식사는 가장 맛있고 행복해야 했었다. 어머니가 줄곧 하셨던 이야기였다.

용사와 결혼을 기대했을 때부터, 어머니 같은 신부가 되고 싶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남자로서 살아 왔던 시간을 모두 떨쳐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생활양식부터 습관까지, 남자였을 때의 행동을 피나는 노력으로 뜯어 고쳤었다.

물론, 용사에게 쫓겨난 뒤로는 그런 꿈도 함께 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필요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혼도 결혼의 일부였고, 책임을 가져야 할 의무도 있었다. 시엘은 아직 덜 성숙했으니, 내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다음에는 시엘이 좋아 할만 걸 찾아볼까?”

이왕이면 닭요리도 좋을 것 같았다. 시엘은 마족이었으니까, 마계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달맞이여관에서 먹었던 요리와 시엘에게 배웠던 젓가락질을 떠올렸다.

시엘이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해 보았다. 시엘의 반응은 내가 잃어버린 표정들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안정이 끝나면 나도 시엘처럼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저녁을 함께 준비하던 시엘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자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시엘은 내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저 모종의 이유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였다. 시엘에 대한 과한 감정은 오히려 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잠시, 스쳐지나간 생각에 시엘에 대한 마음을 한 폭정도 접어 내렸다.

마나비전이나 보자. 너무 시엘에 대한 생각에 빠지는 것도 좋지 않았다. 일자리를 못 구해 기분이 우울해지는 걸 막으려는 정신적 방어본능일 지도 몰랐다.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에요?”

“정말이에요. 우리가 함께 만든 보금자리에요.”

“여기서 당신과 함께···”

벌써, 드라마 방영시간인가? 시엘과 아리라에 간 사이에 보지 못했던 드라마였다. 가난한 척하지만 실은 부자인 어느 기사와 가난한 몰락귀족의 딸이 연애하는 드라마였다. 둘이 티격태격하며 싸우다가도 서로 좋다고 속삭이던 것 같은데, 벌써 결혼까지 한 것 같았다.

신혼집인가···?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함께 지낼 작은 집을 보며,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가구는 천천히 알아보도록 해요. 저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건, 다 좋으니까요.”

“와아! 정말요? 방 진짜 넓어요!”

“여기가 햇볕이 잘 들어요. 우리 침실로 쓰면 좋을 것 같네요.”

구석구석, 방을 둘러보며 행복해하는 몰락 귀족집의 딸이 보였다. 앞 내용을 전혀 모르겠지만, 저렇게 작은 집을 보면서도 행복해 하는 몰락 귀족집 딸을 보니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그럼요! 당신과 함께 할 보금자리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꿈만 같아요!”

“···좋아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몰락 귀족집의 딸이 사랑스럽게 비추어졌다. 확실히, 이런 장면은 남자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장면 같았다. 왜냐하면 내 눈에 그렇게 보였으니까.

몇 장면 되지도 않았지만, 순식간에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 되어버렸다. 앞 내용을 전혀 모르겠지만, 두 주인공 모두 귀족처럼 입고 있지 않았다. 무척이나 평범한 복장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몰락 귀족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복장만큼은 귀족스러워야 했었다. 무엇을 대가로 귀족의 직위를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거기서 죽었더라면, 당신은 기사로 부귀영화를 누리셨을 거예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몰락 귀족집 딸이 기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기사는 자신의 직위를 모두 포기한 것 같았다. 몰락 귀족집 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위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둘은 평민이었다. 기사였던 남자 주인공은 어떻게 가정을 책임질 것이며, 여자 주인공은 더 가난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귀족직위를 포기한 귀족은 평민 사이에 섞이기 어려웠다. 평민들이 귀족이었다는 이유로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는 계급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여보.”

“당신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부자가 아니더라도···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 누구도 아닌, 당신만을 위해 살게요.”

더욱 더, 불안한 미래가 펼쳐져 있는데도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보금자리가 있다하더라도, 배경으로 보았을 때. 생활하기 좋은 대도시 쪽은 아닌 것 같았다. 한적한 시골이거나, 작은 마을정도의 주택으로 보였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신뢰한다며, 서로 입술을 포갰다.

“아르미엘 누나! 다녀왔어요.”

시엘이 문을 닫으며 들어왔다. 나는 시엘에게 시선을 주기도 잠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누나?”

생각보다 거친 소리가 마나비전에서 새나오고 있었다. 두 주인공이 침대를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왕국 국영 방송인데도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진하게’ 표현하는 이유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윽! 시엘이 보기 부담스러운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리모컨을 찾아, 화면을 꺼버렸다.

“아르미엘 누나?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셨어요!”

“시, 신경 꺼!”

시엘이 천연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진짜 별것도 아닌 장면인데, 부끄러운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마치, 어렸을 때 아밀레스와 몰래 보았던 성인잡지를 미사엘에게 들킨 기분과 비슷했다.

“누나, 감기 기운 있으신 거 아니에요?”

“괜찮다니까. 너나 감기 안 걸리게, 빨리 침대로 와.”

“네?”

나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시엘을 침대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시엘이 그 장면을 못 보았을 리 없었다. 혹시라도 ‘그 장면’을 보았다면, 빨리 잊어버리게 만들어야 했다.

“아르미엘 누나! 아파요!”

“머리카락을 잘 말려야지, 감기에 안 걸려! 잘 기억해.”

나는 시엘의 수건을 빼앗고는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는 빨리 잊으라며 수건으로 시엘의 젖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닦아주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부드러운 탓에 더욱 더, 거친 손길로 시엘의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누, 누나! 귀, 귀에 아파요!”

“헉! 미안···”

시엘이 양손으로 귀를 감싸며 나를 돌아보았다. 시엘의 귀가 살짝 뾰족한 걸 잊은 내 탓이었다. 나는 급하게 시엘에게 급하게 사과를 하며, 수건을 시엘의 머리에서 떼어내었다. 시엘의 얼굴도 덩달아 빨갛게 변해서, 홍당무를 보는 것 같았다.

“시엘, 괜찮아?”

“귀는 좀 민감해요···”

“누나가 미안해.”

“아니에요. 다음부터는 머리카락 잘 말릴게요.”

살짝 울먹이며 말하는 목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철근처럼 떨어졌다.

잠시, 난방을 핑계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엘은 여전히 귀가 아픈지, 양 손으로 귀를 감싸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 탓에 시엘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마족의 귀가 엄청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아무리 수건이라 하더라도, 시엘 입장에서는 천둥번개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었다.

다음부터는 진짜, 조심해야겠다. 나는 곧장 침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시엘이 귀를 감싸고 있어서 몇 발자국 움직일 수도 없었다. 툭하고 건드리면 시엘이 더 아파할 것 같았다.

곳곳에 숨어있던 동전들을 찾아서, 기분이 들떴었던 것도 잠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나중에 보려고 했던 메이드장의 종이봉투를 손에 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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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_ㅠ.

장기 출장을 간 사이, 컴퓨터가 고장나 있었네요.

자료까지 복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버렸습니다. ㅠ_ㅠ.

하지만 짱짱 좋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손에 넣었으니, 다시 연중 해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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