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회
[ chapter # 8 ] 희망을 품은 나는 내일과 싸운다.
다시, 눈을 뜨게 되면 당신이 있을까?
다시, 행복 했던 그 때로 돌아 갈수 있을까?
# 47(1).
이모란, 어머니 쪽의 자매를 부를 때 지칭하는 호칭이었다. 지금은 기혼자에 대해, ‘~부인’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에 사라진 호칭이었다. 혹은 아줌마, 아주머니를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의 부인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진짜 오래만이다···!”
베르투아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해군 기사단의 군항기지가 보였다. 상당히 낯익은 곳이었다. 이곳에 대기 중인 전투함은 없었지만, 주로 수리목적으로 입항하는 곳이었다. 근처에 벨튼 조선소가 있었고, 해군 기사를 훈련하는 교육 시설도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베르투아에 그렇게 큰 인연은 없었다. 내가 기사단 시절에 몇 번 와본 기억 밖에 없었다. 기사단의 군항으로 가는 길에는 기사들에게 지급 되는 관사들이 보였다. 오밀조밀 모인 주택들이었다. 건물의 덩치가 컸다면, 귀족들의 마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성탄제 주간이라 그런지, 기사들의 마을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가족들끼리 어딘가 놀러가지 않았을까? 나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기사들의 관사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단 군항의 입구가 가까워졌다. 입구 주변에는 벽돌로 쌓아 만든, 빌라 형태의 독신자 숙소도 보였다. 하급 기사가 되고, 군함에 승함하게 되면 각자의 단아한 크기의 단칸방을 지급해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단칸방보다 조금 더 넓었던 걸로 기억했다.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하급 기사 시절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배를 타고 나가는 게 힘들긴 했었다. 하지만 정박하게 되면, 왕국에서 지급하는 독신자 숙소도 있었다. 기사단 시절에는 의식주 문제로 고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시선을 돌려, 뒤편으로 보이는 주택가를 바라보았다. 좁긴 하지만 정원이 있는 주택들이 보였다. 내게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저기 보이는 기혼자 주택 중 하나는 내가 살고 있지 않았을까? ···미사엘과 함께.
“처자, 정신 똑바로 차려!”
“아, 예!”
내가 넋을 놓은 사이, 지긋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콕 찔러 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기사단 군항의 입구 검문소에 도착해 있었다. 경갑을 착용한 병사들이, 선두에 있던 반장과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해군 기사단은 군함이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함을 정박시키는 곳은 경비가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에 안내를 따라, 각자 신분증을 검사했다. 나는 신분증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후드를 벗긴 했지만, 혹시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를 기억할 사람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이유는 뭘까?
“자, 소지품 수색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초급 기사님의 안내를 받아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검문소장, 초급 기사 드리미엘 핀 알리시아입니다. 모두 짐마차에서 하차해 주세요!”
검은색 제복차림의 여기사가 자신을 소개했다. 곱게 묶은 반짝이는 금발이며, 우아한 말투가 귀족 집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해군기사단은 승조원 계층의 부기사와 병사는 남자들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관계층의 기사는 여성들도 할 수 있었다. 드리미엘은 짐마차에서 내린, 아주머니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다른 남성 기사가 여성의 몸을 수색하는 건 대단한 결례였다. 어쩔 수 없이, 귀족계급의 기사가 수색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드리미엘은 꼼꼼하게 아주머니들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부외자가 폭탄이나 가연성 물질을 반입한다면, 테러로 이어질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군함에서는 흡연도 금지 되어 있었다. 화재가 나게 되면 손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미혼자시네요?”
“네?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내 신분증을 확인한, 드리미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옷깃에 달린 계급장 때문에 나도 모르게 옛날 버릇이 나와 버렸다. 드리미엘은 내 신분증의 앞, 뒷면을 번갈아 확인하고는 내게 돌려주었다.
“반장님?”
“예! 드리미엘 경!”
드리미엘의 부름에 반장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이 분은 미혼자이신 것 같네요. 확인 똑바로 하신 거 맞아요?”
“예? 아아··· 아니요. 미, 미혼자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미혼자?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드리미엘은 정색하는 표정으로 반장에게 따지듯이 말하고 있었다. 반장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드리미엘 경. 제가 똑바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게 변명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군함에 부정이라도, 타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드리미엘 경. 지금 곧바로 되돌려 보내겠습니다.”
“오늘 요청한 인원은 30명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인력 채우실 거죠?”
“제, 제가 어떻게든 구해보겠습니다. 서, 설마 이렇게 여자아이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여자아이는 아닌데··· 반장은 드리미엘의 고압적인 태도에 쩔쩔 매고 있었다. 드리미엘은 나를 흘겨보고는 반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혼자가 군함에 타기라도 하면 부정이 탄다는 건 도대체 언제 적 미신인 걸까? 거기에다가 되돌려 보내겠다는 반장의 말도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지금 여기에서 되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다른 곳에서 일 할 방법도 없었다.
“하아···! 빨리 조치하세요. 상륙함 쪽에서도 빨리 인원 보내달라고 난리에요.”
“예, 알겠습니다!”
반장은 급히 고개를 돌리며,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왜 오자마자 저한테 말 안했어요?”
“네? ··· 소개소에서 분명 연락드린다고 했는데요?”
“그야, 여성이신 것 까진 알았어도 미혼, 기혼은 저희야 잘 모르죠. 여기 처음 오세요?”
“처음이기는 하지만, 그런 규정은 어디에도 없어요.”
“어쨌든 이대로 돌아가 주면 안 될까요? 소개비 정도는 저희가 챙겨드릴 테니까···”
반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들에게는 쩔쩔매면서, 내게는 도끼눈을 뜨고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부터 열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지만, 애써 꾹 참았다. 소개비만 챙겨준다는 이야기는 일당이고 뭐고, 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헛걸음한거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었다.
“미혼자가 군함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 거죠? 군함, 개방 행사 때도 많이들 오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아, 아니. 이 사람이?!”
“해군 기사단 규정에도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어요. 그냥 미신 아닌가요?”
나도 욱하는 마음에, 이유라도 물어 봤다. 부기사 양성학교 시절부터,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원정대 시절까지 10년여 동안 몸담았던 기사단이었다. 내가 그런 사실도 기억 못할리 없었다.
“규정? 방금 저희 기사단 규정을 들먹이신 건가요?”
“네. 그런데요?”
검문소 건물로 들어가려던, 드리미엘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규정과 관습을 철칙으로 여기는 진짜 기사들의 귀에 거슬린 것 같았다.
“우리, 해군 기사단에서 군함은 매우 신성한 곳이에요. 특히, 여신의 가호를 받은 군함은 여성이 군함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우리 군함에 승함할 수 있는 여성은, 여신의 축복을 받은 부인들과 여신께 허락받은 우리 여기사들뿐이지요.”
“···”
동네 들개 같은 소리를···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다시 목으로 삼켜버렸다.
“이름이 아르미엘 양이었나요? 나는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아무리 정박 중인 군함이라 하더라도, 여신께 허락도, 축복도 못 받은 여자가 짐승 같은 승조원들과 한 배에 오르는 건 좋지 않아요.”
짐승? 드리미엘의 언행에 검문소를 지키는 병사들의 표정이 찌그러져 졌다.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반장은 자신의 짐마차만 남겨 놓고, 다른 아주머니들을 군항 안으로 보냈다. 한 아주머니가 내게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활짝 열려진 정문으로 들어갔다.
“당신도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겠죠? 그런 좋지 않은 기운이 당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저도 원하지 않아요. 여러모로, 승조원들이 당신으로 인해서 사기가 떨어지는 건 더 더욱 원하지 않고요. 제 말 이해하셨나요?”
“···그런 규정이 어디에 있어요? 드리미엘 경의 말씀을 이해 할 수가 없네요.”
나는 정확하게 기사단의 규정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드리미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다시 한 번 정리할게요. 군함에 오를 수 있는 건,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기혼자와, 선택받은 여기사들뿐이라고요.”
“그러니까, 저같이 축복도, 선택도 못 받은 여성은 군함에 탈 수 없다는 건가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당신이 배를 타면, 배에 부정 탄다고요! 여신이 저주를 내리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미신을 겁내는 건지, 아니면 자기만 군함에 탈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강한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기로서는 기사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귀족출신 기사의 마음자세인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은 해군 기사단의 규정이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성서도 성서 나름이지만, 실제로 원정대 시절에는 많은 여성들이 군함에 승함했었다. 그리고 수많은 성과를 올렸었다. 해상 전에서도 성직자들이며, 여성 대원들이 역전으로 이끈 역사도 있을 정도였다.
“드리미엘 경의 말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해군 기사단은 오직 규정과 규칙에 의해 승함 여부를 허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면, 깔끔하게 물러나겠습니다.”
···꽉 막힌 사람 같았다. 반장이 나를 말리려다가 한 발짝 내게서 떨어졌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봐야, 귀족이라는 이유로 밀어 붙인 다면 내가 손쓸 방법은 없었다. 짜증이 밀려오긴 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유라도 꼬집어 준다면, 나도 깔끔하게 물러날 의향이었다. 드리미엘은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미혼의 여성은 타지 말라는 규정이 새로 생겼을 수도 있었다. 드리미엘은 병사를 시켜, 두꺼운 해군 기사단의 규정 지침서를 들고 오게 했다.
“아르미엘 양이라고 하셨던가요?”
“네. 맞아요.”
드리미엘이 두꺼운 규정 지침서를 펼친 순간, 무거운 남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반장인가 싶었지만, 반장은 무거운 목소리의 남성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레이디, 저는 36번 상륙함 함장, 로이넬 본 카스텔라입니다. 계급은 준 고위 기사입니다.”
어마어마한 체격의 남성이 간단한 목례로 내게 인사했다. 나도 급한 마음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준 고위 기사라고 소개한 함장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규정 지침서를 뒤지고 있는 드리미엘 옆으로 다가갔다. 반쯤 벗겨진 함장의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아르미엘 양의 말씀이 맞단다. 드리미엘.”
“헉! 로이넬 함장님!”
“아직, 초급기사라서 규정은 상당히 어려운가 보구나. 힘들게 우리 배를 도와주러 오신 분인데, 안내해 드리지 그러니?”
“예!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명확하게 규정을 파악하고 있으면 좋단다. 반드시 명심하려무나. 기사로서의 소명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함장님!”
로이넬 함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드리미엘 초급기사가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해군 기사단에서 준 고위 기사 정도면, 한 척의 함장으로서 막강한 권위를 자랑 할 수 있었다. 기사로서, 하위 기사까지는 몰라도, 고위 기사 반열에 발을 내딛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 반장님. 특별히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기사는 감정적으로 언행 해서는 안 된단다. 드리미엘. 사관학교의 10 계명을 외워 보겠니?”
“예? ···”
“그, 예? 라는 되묻는 질문도 함장은 듣기 거북하구나. 자고로 기사란 말이지.”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10 계명은 외워보지 않겠느냐?”
··· 어딘가 낯익은 광경 같았다. 로이넬 함장은 껄껄 웃으면서, 드리미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빙빙 돌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반장은 이때다 싶었는지, 내게 짐마차에 빨리 타라며 손짓으로 재촉했다. 나는 짐마차에 몸을 싣고는 반장이 먼저 배부 받은 군항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입구를 지키는 병사는 얼른 들어가라며, 문을 활짝 개방시켜 주었다. 나는 살짝 뒤돌아서, 드리미엘에게 혀를 비죽 내밀어 보았다. 쌤통이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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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으헝헝... 죄송합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