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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158화 (158/246)

158회

[ chapter # 11 ] 도전하는 마왕은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

‘후후!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제발, 제발 숨 쉬어줘!!’

몸이 뜨거웠다. 당장이라도 온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방금 전 보았던 용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맹수에게 머리를 뜯긴 것처럼, 온통 깜깜했다.

아니다. 분명, 용사는 죽였다. 그것도 용사의 몸이 산산조각 났었다.

‘이거, 만병통치약이라고! 제발, 숨 좀 쉬어줘! 제발 내 눈 앞에서 죽지 마!’

‘우웁!!’

‘수, 숨이 돌아왔다! 제르멜 수병은 빨리 응급도구 준비해! 이대로 지혈한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어느 다급한 남자의 외침이었다.

나는 분명··· 용사를 죽였고, 아르미엘의 시신을 회수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급 조타수님! 준비 끝났습니다!’

‘제길! 너는 여기부터 지혈해! 인공호흡 시작한다! 모함거리 보고해!’

‘츠, 측거의 거리 측정결과 남은 거리 250야드! 아르미엘 기사님 조금만 힘내십시오!!’

‘아가씨 조금만 참아! 내 눈앞에서 아가씨가 죽으면, 평생 상처로 남을 거야!!’

잠시 호흡이 멎었다. 하지만 입을 타고 뜨거운 숨결이 몸 안에 파고들었다.

이 감촉. 잊을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감촉이 맞았다.

그래··· 아르미엘의 시신을 안고 나는 슬픔에 잠겼었다. 그리고, 아르미엘과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감각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죽은 걸까? 어떻게 된 걸까?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쿨럭, 쿨럭!! 웨에에엑!!’

‘아밀레스 개새끼! 나한테 약을 팔았어!!! 도착하면 개 패듯 패줄 거다!!’

욕설어린 남자의 목소리에 환호성이 가득 찼다.

# 57(1).

“가까스로 치명상만 피하신 상태입니다.”

“···누가, 이런 짓을?”

미사엘의 상태는 심각했다. 차마 그녀의 상처를 볼 수 없었다. 고위 성직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차마, 한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급소만을 피해, 여러 곳을 검으로 찔렀다고 했다. 검의 크기도 짐작되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 신성력 조절해! 출력 안 낮출 거야?! 빌어먹을 흑기사 놈들···! 잘도 이런 짓을!!”

“여신께서 절대 용서치 않으실 겁니다. 그들에게 멸망과 고통만이 보답하기를!”

성직자들조차 마족들에 대한 저주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미사엘에게서 시선을 뗐다.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의 잘못도 없었다. 누군지 모를, 누군가의 잔혹한 행동 일뿐이었다. 가슴을 베여오는 날카로운 감각에 나는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다.

내가 미사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사엘을 공격한 미지의 적을 향해 보복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겨우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용사가 나를 호출한 까닭도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일지 몰랐다. 아니면, 용사를 대신하여 불사조의 기사로 되돌아가라고 할지 몰랐다. 정말로 흑기사단이 소행이라면, 내 힘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몰랐다. 그게 두려웠다. 나는 절대무적이 아니었다. 그건 용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검에 맞으면 아프고, 급소를 맞으면 목숨을 잃었다. 하다못해, 불사조의 검 자체가 내 생명력을 소모했었다.

과연, 아밀레스와 미사엘을 위해 불사조의 기사로 되돌아갈 용기가 있는 걸까?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을 구걸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가질 것을 다 가졌고, 나는 마음마저 강탈달한 채, 잃어버린 2년을 보내야 했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검을 잡으라고?

지금의 나는 잃은 것들이 더 많았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소꿉친구의 옛정으로서 용사를 지켜야할 명분조차 생기질 않았다.

“미사엘 부인과는 소꿉친구라고 하셨지요?”

“···네”.

“부인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국왕폐하께서 급히 찾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보좌실장이 나를 출구로 안내했다. 미사엘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내 약혼녀였고,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함께 잠들었었다. 과거를 잊고, 미래지향적인 친구관계로 돌아갔었다. 미사엘에 대한 감정은 진짜였다. 이대로 영영 그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미워도, 살아있기만 했으면 충분했다.

마음속의 손익계산서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정작, 아밀레스의 앞에 선 나는 무슨 대답을 할까? 애초에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지레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칠 것만 같다. 그래도···! 그래도, 미사엘을 저렇게 만든 녀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마음속의 손익계산서가 이리저리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호수물방울 꽃 장식을 머리카락에서 떼어 냈다. 손에 꼭 쥔 채,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켜보았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불사조의 검을 잡을 구실을 찾고 있었다. 양날의 검인 것은 알고 있었다. 내 자신을 해치더라도, 과거에는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려했던 고향친구들이었다. 내가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살아만 있다면··· 원망이라도 할 수 있지 않는가!

“불사조의 기사님 행진하신다!”

“제 1 특수근위대, 특수근위 전대장 등 30명 경계 중 이상 무!”

또다시 시야에 가득 찬 커다란 로비가 보였다. 젊은 고위 기사가 거수경례하며 외쳤다. 그의 옆으로 왕국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예의를 갖추었다.

우주를 표현한 천장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휘장과 휘장 주변을 지키는 여신의 불사조가 보였다. 이곳이 국왕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깊은 늪지대처럼 이리저리 꼬여버린 마음이었다. 하지만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애꿎은 아렐만 목숨을 잃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이에게 어머니를 빼앗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녀와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보좌실장이 커다란 문의 사자조각상을 두들겼다. 이 문을 두들길 수 있는 사람은 국왕의 혈육과 왕비, 그리고 보좌실장 뿐이었다.

이 문 너머에는 아밀레스가 있었다. 그리고 나를 무참히 내쫓았던 용사가 있었다. 그리고 내 힘을 강제로 요구할 왕국의 국왕이 저 너머에 있었다.

“국왕폐하, 불사조의 기사가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좋아. 들어오세요.”

···여자 목소리? 순간 귀에 환청이 스쳐지나간 것 같았다. 어딘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는 분명했다. 하지만 아밀레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좀 더 낮고, 부드럽게, 그리고 청아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린 것은 교회의 종소리 같은 어느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입실하시면, 국왕폐하께는 예의를 갖추어 주십시오.”

“···알고 있어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국왕폐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십니다. 모쪼록 안에는 왕비님도 계시니, 의전에 만전을 기하여 주십시오.”

“···.”

왕비가 있다고? 내가 아는 우리엘 왕비가 맞는 걸까? 나는 입을 열다가 멈추었다.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방금, 우리엘 왕비의 목소리일 수 없었다. 그녀는 혼수상태였다. 아니지, 적을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발표했을 수도 있었다.

“왕비님께서는 현재 혼수상태이십니다. 너무 요란한 목소리는 삼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네?”

“불사조의 기사가 집무실에 입실합니다!”

내 질문은 그에게 닿질 못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내 등장을 알렸다. 이윽고, 천장까지 닿은 커다란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미처 정리가 끝나지 못했다. 심장박동수가 이성을 흔들 만큼 치솟아 올랐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불사조의 기사. 아니, 아르미엘.”

여신을 찬양하는 소리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드레스자락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몸을 낮추었다. 국왕에 대한 예의였다. 그나마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득히 넓은 공간이라는 것과, 수려한 책상과 침대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침실도 아니고, 책상 옆으로 의자같이 생긴 침대가 있었다. 의료원의 환자실에서나 볼법한 침대였다. 복잡한 의료도구들이 침대에 엉켜있었다. 우리엘 왕비? 우리엘 왕비는 혼수상태라고 했었다.

“실장은 자리를 비켜주세요. 예식은 생략하겠습니다.”

“예, 국왕폐하! 퇴실하겠습니다.”

확실히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엘 왕비의 목소리였다. 보좌실장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국왕폐하라고 하지 않았나?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엘 왕비에게 국왕폐하라고 답했었다.

이 비릿한 위화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천천히 곁눈질로 시선을 움직였다. 각종 의료도구에 둘러쌓인 침대를 바라보았다. 창가를 향한 침대의 뒤편으로 백금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고개를 드세요. 아르미엘.”

“아르미엘. 폐하의 용안을 감히 뵙겠···!”

“예절은 생략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차갑고 딱딱하게 변한 우리엘 왕비의 목소리였다. 감정조차 사라진, 분명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내 눈을 의심했다.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토록, 짓눌렀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초면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아르미엘.”

“우, 우리엘 왕비님!”

맞았다. 내 의심이 정확했다. 왕국을 상지하는 황금색 망토를 두른 우리엘 왕비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을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셨던, 용사님은 지금 깊은 꿈을 꾸고 계십니다.”

“···!!”

무슨, 말도 안 돼! 흑기사들에게 공격당한 사람은 아밀레스였던 걸까? 내가 알던 현실이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좌실장은 우리엘 왕비를 국왕폐하라고 호칭했었다. 내가 눈치 채지도 못한 사이, 불사조의 검과 공명이 끊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압도적인 신성력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다. 신성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력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혼돈스러운 기운이었다.

“환각···?”

“역시, 불사조의 기사에게는 먹히지 않나보네요. 많이 놀라셨나요? 맞아요. 내가 우리엘 왕비에요. 저기 깊은 잠에 빠져 계신 분이, 아밀레스 빈 엘리네이 국왕폐하이시고요.”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은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우리엘을 감싼 미세한 오라가 아밀레스의 형상과 비슷했다. 전형적인 환각위장 마법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환각마법을 간파했을 때 보이는 현상이었다. 우리엘 왕비는 아밀레스로 위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우리엘 왕비는 넋을 놓아버린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녀의 청아한 푸른색 눈동자는 마치 장애물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나를 쓰레기··· 경멸? 도저히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좋은 눈빛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계속 만나고 싶었어요. 아르미엘. 자, 일어나세요. 그리고 저를 똑바로 마주하세요.”

“···.”

나는 엉거주춤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리엘 왕비에 대한 감정자체가 파악되질 않았다. 비무장인 것은 확실했었다. 하지만 나를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나를 불사조의 기사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내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고 있었다.

어딘가 증오가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한 나에 대한 적개심이 녹아있었다.

“많이 놀랐죠? 그래요, 당황스러울 거예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기도 힘들 거예요. 당연해요.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마족의 습격으로 혼수상태여야 하는 우리엘 왕비가 아밀레스로 위장하고 있었고, 정작 아밀레스가 혼수상태가 되어 침상에 누워있는 상황이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불사조의 검이 남긴 능력이 없었더라면, 우리엘 왕비의 환각조차 간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환각술은 마법이었다. 신성력으로 어쩔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아밀레스··· 아밀레스가 눈을 뜨지 않아요.”

우리엘 왕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흑기사단의 소행입니까? 아니, 마계의 소행이 확실합니까?”

“확실···? 아아, 그랬죠? 분명, 마족들의 소행이라고 언론에 발표가 났었죠?”

“···.”

“차라리 구더기같은 마족들의 소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장이라도 기사단을 몰고 가서, 머리를 모두 잘라주었을 텐데. 그런데, 아니에요. 마족들은 그냥 구더기에요. 그런데, 아밀레스가 이렇게 됐어요. 너무 깊은 꿈속으로 잠겨버렸어요.”

“···?”

“불사조의 기사, 아르미엘. 왕국은 당신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당신이 없으면, 이 세계가 망가져버려.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대로 끝내서는 안 돼.”

뭔가 우리엘 왕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엘 왕비가 맞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미사엘··· 그 여자도 제 인내의 허용 선을 넘었어요. 그래서 배때기에 신성검을 몇 번 찔러주었어요. 후계자도 못 낳는 년이 감히, 내 뱃속의 아이를 죽여? 크큭, 크크크!! 캬하하하!!”

도대체 무슨 소리지? 우리엘 왕비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웃는 건가? 우리엘 왕비의 손이 집무실의 서류더미를 붙잡았다. 집무실의 창가에는 왕국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서류를 구겨버렸다.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구겨진 서류로 책상 위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행동이 괴기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여신의 뜻을 인도하는 자. 여신의 뜻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자. 그리고 여신의 간택을 받은 용사의 반려자. 오직, 그와 함께 지옥 같은 저주의 굴레를 부수는 자.”

우리엘 왕비가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용사의 반려자라는 목소리를 강조했다. 마치, 자아에 도취 된 것 같았다. 이단교의 광신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를 감싼 정체불명의 기운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뒤를 따르던 아밀레스의 환영도 같이 사라졌다. 신성력, 그렇다고 마력도 아닌 불쾌한 기운이었다. 사라질 때조차 더러운 하숫물이 흘러내려가는 것 같았다.

“불사조의 가사, 아르미엘. 여신··· 아니, 우리아레 왕국의 왕비가 직접 명합니다.”

“···??”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실타래가 입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의문조차 표시할 수 없었다. 우리엘 왕비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내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반려자의 재물이 되어주세요. 당신이 없으면, 내 반려자가 죽어!”

우리엘 왕비의 표정이 돌변했다. 미쳤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마나비전 속에서나 보았던 우리엘 왕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녀 같은 웃음소리로 내 머리카락을 쥐어 잡았다. 고통조차 느낄 틈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우리엘 왕비의 행동에 대응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거의 울부짖는 목소리였다. 내 머리카락을 잡아끌며, 의료기구들이 얽힌 침대로 끌어당겼다.

“끄으으··· 아르미엘···.!! 아르미엘···. 끄으으으, 안 돼! 제발, 오오! 여신님, 제발! 끄으윽!”

끔직한 광경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말라비틀어진 육포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용사는 더 이상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불량 장작 같은 팔뚝이 허공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늠름하던 피부와 단단한 근육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각상 같던 미모조차 끔찍하게 문드러진 시체 같았다.

“끄윽! 아르미엘!!!!”

눈은 뜨고 있었다. 좁아진 동공에는 빛이 없었다. 동공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새빨갛게 출혈 된 안구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아밀레스···? 내가 아는 아밀레스가 맞는 거야?!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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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밀레스. 이것 좀 드셔보세요. 제가 직접 기른 야채로 만든 샐러드에요.’

우리엘과의 식사시간. 그녀는 내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내 사소한 상처에도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어딘가 자아의식에 도취 된, 거만한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우리엘에게 너무 강경하게 대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내 의견을 모두 지지했었다. 정치적인 문제도, 마계와 관련 된 문제도 모두 내 뜻을 따랐다.

‘맛있어요. 공주님. 이 소스는 어떤 걸로 만드신 건가요?’

‘맛있게 드셨나요? 당연히 제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었지요.’

‘샐러드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정말 뛰어난 솜씨군요?’

‘후후훗, 만족하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러면 이제, 저한테도 맛있는 걸 주세요.’

‘맛있는 거요? 갑자기 요리를 하라고 하셔도···’

‘용사님의 아기씨.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전쟁이 없던 탓에 정치적인 문제도 없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우리엘 공주님,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그만 하세요.’

‘싫어요. 이게 싫으시다면, 저를 그때처럼 때려주세요.’

‘···.’

내 최대의 실수가 내 발목을 붙잡아 버렸다. 메이드들과 국왕 성의 관리자들이 시선을 돌렸다. 우리엘 공주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막무가내 식 요구가 시작 되었다. 시체 같다는 우리엘 공주의 말 한마디에, 이성을 놓아버린 내 잘못이 컸다. 나는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었다.

다른 건 뭐든지 내가 선택해도 괜찮았다. 대신, 사랑이라는 것만큼은 우리엘 공주가 모든 것을 가지기로 약속했었다. 그저 무의미한 약속이었다. 그저, 우리엘이 요구하는 행위만 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용사의 힘을 쥐어짜내며, 마계를 부술 일도 없었다.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아르미엘을 상대로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여기에 없었다.

아르미엘이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지은 단독주택 앞. 무려 3층짜리의 작은 정원이 꾸려진 집이었다. 장가간다는 아르미엘의 소식에 고향 어르신들과 아르미엘의 부모님이 보태주신 가구가 가득한 집이었다. 축복받은 아르미엘의 보금자리였다.

‘아르미엘 오빠! 방금 느꼈어요? 예나엘이 제 배를 발로 찼어요!!’

‘응응! 오또카면 조아? 우리, 예나엘~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은 가봐!!’

‘네에? 예나엘은 엄마가 더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그지, 예나엘??’

저 자리는 내 자리였어야 했었다. 마왕 시엘의 여성 판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내 자리, 에밀리엘의 자리였다. 아무런 운명의 제약 없이, 시간의 회귀 없이! 그 어떠한 장애물만 없었다면, 아르미엘의 옆에는 에밀리엘인 내가 있어야하는 자리였다.

마족여자가 두른 목도리가 보였다. 아르미엘이 얼굴을 파고들고 있었다. 내가 에밀리엘이었을 때, 그것도 첫 번째 회귀 때 생일선물로 받았던 목도리였다. 목도리에 그려진 자수와 장식들 하나까지 똑같았다.

질투. 절대 사라지지 않는 감정.

그리고 나를 움직이기 하는 감정. 하지만,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

용사란, 용기 있는 자를 말했다. 나는 용기가 있는가? 단언할 수 있었다.

꿈을 이룩하기 위한 용기 의외에는 질투라는 감정은 추악할 뿐이었다.

나는 백금의 검을 뽑아 들었다. 행복은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회가 없다면, 용기를 내서 만들면 된다. 남들에게는 없는 용기가 있기에, 용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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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다음화 예고

광기vs광기vs광기

얀vs얀vs얀

집착은 이렇게나 무서운겁니다. 여러분~!

하지만, 저는 사랑이 매우 넘치는 작가이므로 안심하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p.s// 용사 좀 굴려달라고 하셔서, 정말 가혹하게 굴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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