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186화 (186/246)

186회

[ chapter # 13 ] 너와 내가 연주하는 작은 소음과 화음

# 62(2).

“쿡쿡쿡! 그렇지? 뜬금없이 그 표독한 사람이 선장 씨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 있지, 있지! 그 반반한 집사장 옆에 요나엘이라는 여자가 있거든? 그 사람이 약혼녀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부모 잘 만나서 부럽네. 누구와는 다르게 복 받았지. 꺄아-!”

···빠득하고,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아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입술을 쪼개고 있었다. 마리아는 기지개를 켰다. 약간 씁쓸한 얼굴이었다.

“선장 씨? 선장 씨, 얼굴 새빨갛게 변했어.”

“···아니야.”

“어쨌든, 알게 모르게 대단한 인물이야. 그런 남자랑 만난 요나엘이라는 여자애도 부럽고. 내가 더 일찍 태어났다면, 벨튼 저택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을까?”

“···.”

나는 마리아의 혼잣말에 묵묵부답으로 대답했다. 마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타를 천천히 우측으로 움직였다. 내 입에서 깊은 한숨이 토해졌다. 피곤함과 짜증보다도, 시엘에 대한 배신감을 참기가 어려웠다. 용사의 옆에는 항상 미나가 있었다. 나는 용사를 무조건 적으로 신뢰했기에 소문은 신경 쓰지 않았었다. 물론,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어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분명, 시엘은 내가 부양해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선박을 수리했었던 것도, 어쩌면 시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시엘이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하는 사이. 시엘이 저 멀리 뛰어올라 버린 것 같았다. 벨튼 저택에서 가정 일을 하며, 서로의 작은 월급을 차곡차곡 저축하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엘의 버는 돈이 나보다 더 많았었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엘의 키가 커지는 것만큼 시엘과 나의 거리가 늘어나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가. 내가 우려하고 걱정하던 것이 온 걸까? 내가 열심히 갑판을 뜯어 고치는 사이. 예나엘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져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시엘은 베르투아에서 제일가는 미남들 중 한명이었다. 마족 특성이라고 하지만, 그런 시엘과 함께 걸을 때면 묘하게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또다시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 하게 되는 것일까?

“돛대 우현으로 30도, 키 왼편으로 15도. 기관은 미속으로 뒤로 부탁드려요!”

“좋아···.”

어느덧 배가 부둣가에 가까워졌다.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게 타와 돛대를 어떻게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키가 작은 덕분에 선교 탑 갑판의 아래쪽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판장들에게 배의 밧줄 사용을 지시했다. 사실, 마리아의 부탁대로 지시한 것이었다.

“다급하게 홋줄을 당기지 말아주세요. 2번 홋줄 조금만 풀어주시면 감사드려요!”

“좋아. 모든 갑판에게 선장이 전파합니다. 홋줄 당기기 멈추고. 2번 홋줄 장력 풀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마리아의 말대로 배가 천천히 부둣가에 부딪쳤다. 막무가내로 선체가 부둣가에 출동한 것은 아니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배의 속력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배의 꼬리 부분이 살며시 부두에 도착했다. 부둣가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항구 직원들이 가파른 계단 사다리를 갑판에 접합시켰다.

“입항! 어때, 어때?! 이 정도면 만족? 대만족?”

“···대단하네.”

나는 고개를 내밀어 뱃머리와 꼬리 부분의 홋줄을 관찰했다. 조선소 직원들이 분주하게 홋줄을 정리했다. 우리 배의 갑판에서 흘러나간 밧줄들이 부둣가와 거미줄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단단히 고정 되면, 해일이 오지 않는 이상에는 배가 부둣가에서 떨어지는 없을 것이다.

“엣헴!”

마리아는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으로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무척이나 깔끔한 작업이었다. 조선소에서 시운전 나온 직원들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배에 승선해 있는 손님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운 기세로 내뱉던 욕설도 사라져 있었다.

내 부족한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마리아의 항해술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거금의 항구 도선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콧대를 높이고 있는 마리의 머리에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보면 시엘과 닮아 있었다. 시엘도 칭찬을 바랄 때면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을 지었었지. 표정이 풍부한건 마족들의 공통점인지도 모르겠다.

“으앗!”

나는 내밀었던 손의 방향을 바꿔, 마리아의 코를 집게손가락으로 움켜잡았다. 마리아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서 화들짝 떨어졌다.

“알겠으니까, 빨리 정리하자.”

“으응···. 나는 코도 민감하단 말이야···.”

마리아가 코를 부여잡고 발 받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는 토끼처럼 멀리 도망가려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시엘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이런 감정인 걸까? 반대로, 시엘이 내게서 느꼈던 감정은···.

“아르미엘. 잘 지냈니? 허허헛.”

마리아가 조타실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자, 벨튼 공작이 박수를 치며 서 있었다. 마리아는 당황했는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도 급한 마음에 없는 치맛자락을 잡으며 가볍게 예의를 표했다.

“어서오십시오. 벨튼 공작님. 저희 선박에 승선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런 불편한 예절은 하지 않아도 좋다네. 내가 예고 없이 결례를 범했으니.”

벨튼 공작은 껄껄 웃었다. 그의 뒤에는 벨튼 부인과 요나엘. 그리고 시엘이 서 있었다. 제르바엘 예비 공작은 함께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았다. 시엘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내 얼굴을 보고 있었지만, 차마 내가 눈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배가 아주 아름다워. 고철이 되어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는데, 실로 놀랍군. 고맙기도 하고.”

“그럼요. 누가 되살린 배인데요?”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오? 역시, 우리 마음은 통하는구려. 우리 저택에서 일했을 때도 그렇게 성실하더니만, 어느새 아르미엘이 선장이라니. 감개무량이 짝이 없소.”

때 아닌 높은 신분의 과찬에 차마 얼굴을 들기 어려웠다. 그의 어깨를 장식한 벨튼 가문의 장식 때문인지, 껄렁하던 마리아도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배를 우리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소.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오?”

“흠. 아무리 그래도 아르미엘에게 민폐가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구먼. 시엘.”

“예, 어르신.”

벨튼 공작의 호출에 시엘이 벨튼 공작에게 다가갔다. 결혼식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내가 알기로는 벨튼 부부의 결혼식은 그의 조선소 중앙에서 열린다고 들었었다. 벨튼 부인을 통해서 시엘과 함께 초대장을 받았었다. 하지만 시엘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입장이었다. 그곳에서 시엘과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아이작에게 말해서, 인수기간을 조금 앞 당겨 달라고 해. 문제가 생기면 우리 조선소에서 책임진다고 같이 전해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관련해서 관계자들에게 통보하여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게.”

벨튼 공작은 차분하게 표정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시엘은 벨튼 공작에게 목례를 하고서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조타시엘에서 내려갔다.

잠시 시엘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을 참을 때 짓는 시엘의 표정이었다. 시엘이 조타실에서 내려가기 무섭게 요나엘이 눈을 번뜩였다. 요나엘의 앞에 선 벨튼 부부는 그 사실을 모르는지,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조타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요나엘은 벨튼 부부에게서 한걸음 떨어진 채, 여전히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참. 아르미엘. 결혼식은 올해 하반기라고 했었나?”

“···예? 예. 맞습니다. 공작님.”

벨튼 공작의 질문에 나는 말을 더듬었다. 요나엘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시엘과 아리라에서 약혼식을 올렸던 적이 기억이 났다. 미리엘이었던가? 손수건을 물어뜯던 성직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나엘이 얼굴을 찌푸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 화를 내야하는 쪽은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요나엘을 따라 표정을 찌푸릴 수는 없었다. 내 앞에는 귀족들의 수장인 벨튼 대 공작이 앞에 있었다.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벨튼 부인의 입김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 집사장의 유학이 계획대로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좋은 결심을 하게 도와줘서 고맙구나. 아르미엘. 시엘의 고용주로서, 의붓아버지로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아, 아닙니다! 제게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머, 아니란다. 아르미엘이 아니었다면, 시엘은 혼자서 엄청 고민하고 있었을 거란다. 자, 여보. 우리 이제 그만 내려가요. 너무 오래있으면 아르미엘 선장님한테 민폐가 될 거예요.”

“오오 그렇지. 내가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구먼. 자, 아르미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공식적으로 방문하마. 괜찮겠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뒤로 돌아서는 벨튼 부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지막까지 요나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조타실에서 내려갔다.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주먹을 움켜쥔 채. 요나엘이 떠나간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아! 바, 방금 벨튼 대 공작님 맞지?”

“···.”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저기, 선장 씨! 방금 내가 들었던 말 진짜야?”

“···뭐가?”

벨튼 부부와 요나엘이 내려가기 무섭게 마리아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마리아를 곁에서 밀어냈다.

“아니, 올해 하반기에 장악의 시엘하고 결혼한다는 거! 그나저나, 시엘이 벨튼 공작의 의붓아들이었다니. 의붓아들에 후계자는 제르바엘이라는 사람 아니었던가? 으으···!!”

“맞아. 네가 말하는 시엘이 내 약혼자야. 어제부터 위기를 맞이한 것 같지만.”

나는 머리를 감싸 쥐는 마리아를 향해 어감 없이 대답했다. 마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아니, 아니! 잠깐만, 시엘은 마족이잖아. 같이 메이드로 일하는 여자는 요나엘이라는 마족여자고. 사람들 전부가 요나엘이 시엘의 약혼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거 대박인데?”

“대박이긴 뭐가 대박이야. 요나엘이 언제부터 내 약혼자의 약혼녀였던 거야?”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잖아. 어딜 가나 장악의 시엘 옆에는 요나엘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독한 표정의 시엘도 요나엘한테만큼은 자상했다고 하나봐. 소문을 들어보니까 어제 벨튼 공작님이 자기 부인한테 청혼했다며? 거기에서 요나엘이 시엘한테 기습 입맞춤했고. 다들 소문이 진짜인가보다 생각했었지.”

“···.”

분명 시엘에 대한 소문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시엘은 누구에게나 자상했다. 아니. 내 앞에서만큼은 자상한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었다. 여전히 어리바리하고 덤벙거리는 것이 특기였다. 가끔가다가 소금과 설탕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시엘이 타인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당장, 내가 유지해야하는 생계전선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시엘의 옆을 비워두는 사이. 요나엘이 끼어들었을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내가 환경사랑 91호의 선장으로 부임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계약서와 영수증으로 해결하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시엘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자신의 업무가 벨튼 가문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내게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때로는 혼자인 게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었지. 나는 침실에서 중얼거리는 시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마냥 일이 힘들 구나 생각하고 가볍게 위로해 주었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냉정하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 역시 힘들 때는 힘들었지만, 시엘을 상대로 칭얼거리지 않았다. 내가 연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엘도 마찬가지로 혼자인 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힘들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 것들이 시엘을 수렁으로 몰고 가지 않았을까?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같은 또래인 요나엘에게 채우려고 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선장 씨가 그 유명한 장악의 시엘의 약혼녀면, 요나엘하고 시엘의 관계는 무슨 관계지? 서,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마리아의 말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곧 파멸로 이끌었다.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이와 비슷한 실수를 범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내가 했던 실수를 또 범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골똘하게 고민 중인 마리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뭐, 뭐야? 갑자기 칭찬이라도 해줄 생각이야? 잠깐만, 선장 씨. 지금 그럴 상황 아니지 않아?! 당장 내려가서 선장 씨 약혼자한테 진위를 따져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됐어. 그건 집에 돌아가서도 충분할 것 같아.”

나는 마리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조타실의 창문 아래로 부둣가로 내려가고 있는 손님들이 보였다. 나는 선교 탑의 외부 갑판으로 나갔다. 부둣가에서는 벨튼 공작과 시엘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악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시엘의 곁에 붙어 있는 요나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끊어졌던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돌아왔다. 더욱 냉담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 일수록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행동해야만 했었다. 옛날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시엘과 눈이 마주쳤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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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왜 이렇게 바쁜 걸까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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