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194화 (194/246)

194회

[ chapter # 13 ] 너와 내가 연주하는 작은 소음과 화음 # 63(5).

나는 시엘의 체온을 한 동안 즐겼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감촉이었다. 몇 번이고,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내 스스로가 자그마한 균열을 파멸로 이끌었었다.

과거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고 했지만, 경험을 상식화 시키는 행동은 위험천만 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과거의 좋은 경험을 빌려서 시엘을 살펴본다면, 시엘의 발언 속에 거짓은 없다는 것. 나는 그것만을 믿기로 했다.

“저녁거리라도 사올게요. 일어나신 뒤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잖아요.”

해가 산 너머로 고개를 감출 때 쯤. 시엘은 내 등을 톡톡 두들기며 떨어져 나왔다. 나는 떨어져나가는 온기의 아쉬움을 애써 외면했다. 그래도 나름 내가 연상인데, 투정부리는 모습은 감추고 싶었다. 주책처럼 보이지 않을까?

“배 많이 고파? 누나는 괜찮아, 식당에 빵하고 육포 남아 있어. 시엘만 괜찮다면, 그걸로 할래? 하늘도 어두워졌고···”

그래도 입 안에서 감도는 투정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내 아쉬움에 못이긴 채,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누나가 가꾼 배에서 요리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지만···”

나는 계속 말끝을 흐렸다.

“잠시 다녀올게요. 식료품 점 근처에 연락할 곳이 있으면, 저택에도 잠시 연락하고 올게요. 요나엘을 계속 둘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알았어. 같이 가자.”

나는 차분하게 대답하는 시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엘은 잠시 내 손을 꼭 움켜쥐고는 손을 놓았다.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시엘을 바라보았다.

“더 추워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

시엘은 밤눈이 밝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건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애써 섭섭한 마음을 지워냈다. 나는 시엘을 부둣가까지 배웅했다. 그래도 추위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해가 떨어진 뒤의 바람은 겨울바람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부둣가에 흩날리는 꽃무리와 시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시엘을 배웅한 나는 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요나엘과 마리아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시엘도 시엘이었지만, 요나엘과 마리아도 내심 걱정이 들었다. 분명, 마리아가 취향이니 뭐니, 말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마리아를 계속 고생시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요나엘의 상태도 걱정 되었다. 벨튼 저택의 사람들이 올 때까지, 마리아를 지켜보는 게 최소한의 도리일 것 같았다.

“메이드 씨! 이제 괜찮아졌어?”

“네. 조금은 괜찮아졌어요.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마리아 언니.”

언니···? 나는 요나엘과 마리아의 목소리에 이끌려 회의실로 급하게 향했다. 내심 걱정하는 것은 마리아가 요나엘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옳지. 옳지. 괜찮아. 엄청 고생 많았어. 메이드 씨 정도면, 조만간 실실거리는 아저씨보다 더 멋진 왕자님들 만날 수 있을 거야.”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이렇게 속 시원하게 털어 놓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분명, 실실거리는 아저씨가 메이드 씨를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할거라니까? 그리고 말이야. 속닥속닥···.”

요나엘을 다독여 주던 마리아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요나엘에게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 것인지 불안감이 엄습할 정도였다. 나는 미간을 팍 찌푸려보았다. 그래도 약간 웃음기를 띄운 나는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누가 후회하니, 마니··· 내 욕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히익! 선장 씨!! 내 말 들은 거야?”

“보나마나 내 욕이겠지. 하고 싶으면 해. 네 밥줄은 내가 쥐고 있다는 거 잊지 마.”

“선장 씨는 공격적으로 말해서 탈이야! 선장 씨 욕은 안 했네요, 뭘!”

마리아가 혀를 비죽 내밀었다. 꿀밤이라도 쥐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끝끝내 참았다. 그래도 요나엘의 상태가 많이 가라앉아 보였다. 그녀의 눈가에는 붓기도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마리아가 요나엘을 다독여준 덕분인 것 같았다.

나는 나와 시선을 피하는 요나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는 괜찮냐는 질문을 꾹 누르고 있었다. 요나엘이 내게 눈치를 주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죄송해요. 고용된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까지, 실례를 끼쳐드려 죄송해요.”

“···.”

요나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있었던 일은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투정은 아니라고 생각해.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지 몰라.”

나는 애써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내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내가 사과받기에는 내 과오도 컸었다. 시엘도 요나엘에게 언젠가 진심으로 사과해야하는 날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했다. 요나엘은 많이 진정 되었는지, 무청이나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시엘은··· 아니, 시엘 분은 나가셨나요?”

“아니. 그렇게 시엘에게 격식을 차리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

요나엘은 잠시 침묵했다.

“요나엘은 시엘보다 먼저 일했었잖아. 분명, 요나엘은 시엘에게 훌륭한 선배이자, 친구였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한건 잘잘못을 따져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

“그래.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시엘과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요나엘.”

“아, 아니···! 제가 감사 받을 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요나엘의 고개가 순식간에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온유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한다면, 내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시엘 뿐만 아니라, 요나엘에게도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감에 찌들어 살던 과거의 나처럼··· 요나엘이 그런 절망을 품은 채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엘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며, 요나엘의 도움이 분명 컸었을 거라고 생각해. 시엘도 분명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상처받은 게 있다면 내가 사과할게. 나도 말이 심했었던 것 같아. 요나엘.”

“···제가 시엘에게 오해를 품지 않으면 괜찮았을 거예요. 제가 조금 더 빨리 시엘을 이해하고 인정했더라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요나엘이 희미하게 웃음을 그렸다. 그 짧은 사이에 마음을 정리한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요나엘이 보여주는 모습이 무척이나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마족들은 빨리 어른이 되는구나.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 요나엘의 미소였다.

“자자! 선장 씨, 메이드 씨! 마음 같아서는 다함께 수다와 술을 즐기고 싶지만, 메이드 씨 일하다가 뛰쳐나왔다며?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항구 경비소 쪽에 말하면, 항구 밖의 마차 정류소까지 안내해 줄 거야.”

“시,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네요?!”

“메이드 씨! 뭘 이제야 놀라는 거야? 메이드 씨, 이제 일어나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마리아랑 또 만날 일이 있을 거야! 그때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놀아줄 테니까, 오늘은 이만 굿바이 하자, 응?!”

마리아가 어디에서 배워온 건지 모를 접객용 미소로 요나엘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택으로 돌아가봤자, 벨튼 부인께 죽도록 혼날 거예요. 그리고 메이드장님께도 두 번 혼날 거예요. 어차피 혼날 거··· 오늘은 여기서 자면 안 될까요?”

“아니···! 메이드 씨, 우리사이에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자, 늦었으니까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

마리아가 콧노래를 섞어가며, 굳건히 멈춘 요나엘을 잡아끌고 있었다. 요나엘이 갑작스럽게 태도가 변했다. 잠깐만, 여기서 재워 달라고?

“혼나는 건 잠깐 뿐일 거야. 저기, 메이드 씨! 아니, 마리아한테 매달려도 마리아는 힘이 없다고! 서, 선장 씨! 도와줘! 아니, 도와주세요!”

“마리아 언니! 저, 마리아 언니가 좋아요! 그러니까 오늘만이라도 같이 있어주세요! 네?!”

힘으로라도 잡아끌려던 마리아가 순식간에 요나엘의 품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체격차이부터 마리아가 요나엘에게 힘을 쓸 도리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요나엘은 마리아를 아예 앞 치마폭으로 감싸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걸 말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야하는 걸까? 분명,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 되었던 건 내 착각이었던 걸까?

“아르미엘 아줌···! 아니, 선장님! 저는 마리아가 언니가 너무 좋아요! 저한테 넘기라는 말은 안 할 테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세요!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근처에 여관라도···!”

“서, 선장님! 미안해요! 마리아 살려주세요! 숨 막혀요! 숨 막혀 죽어버려요!”

갑자기 머리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성회로가 살아 있기는 한데, 적절한 답과 대처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안 돼! 요, 요나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정···”

“싫어! 선장님이 시엘 가져갔잖아! 나는 마리아 언니 가질 거야! 이제, 시엘은 양보해도 마리아 언니는 정말정말 양보 안 할 거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밖에서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통로복도를 울렸다. 요나엘은 숨이 막힌다며, 아예 비명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뜯어 말려야겠지? 그렇지? 시엘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시엘이라면, 마리아 언니를 허락해 줄 거지?!”

덩달아 나와 함께 넋이 나간 시엘이 복도 밖에서 서 있었다. 시엘도 한방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바닥에는 잘 포장 된 식재료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응···. 항해사님이라도 괜찮다면, 뭐.”

“아저씨! 그걸 당신이 결정하면 어떡해?! 켁켁! 마리아 살···!”

마리아가 요나엘의 앞치마 올가미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아의 비명이 끊길 때쯤이었다.

* * *

요나엘의 폭주 아닌, 폭주가 끝난 후. 겨우 진정이 된 요나엘과 마리아 그리고 나는 다시 테이블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의 상석에 있었다. 테이블 측면에는 요나엘과 마리아가 찰싹 붙어 있었다.

시엘은 영혼없는 웃음으로 식당의 조리실로 향해 있었다.

“저기, 메이드 씨? 마리아는 다 괜찮은데, 마리아를 만지려면 돈이 든다고?”

“괜찮아요. 마리아 언니.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저, 모아둔 돈 많아요. 아아···! 나중에 이런 옷 말고, 다른 옷을 입어주시면 안 될까요? 선장님이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선장님까지 건들고 싶어지잖아요.”

요나엘은 테이블 아래로 마리아를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리아가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움직여 내게 시선을 돌렸다.

요나엘은 실성한 것만 같았다. 아니, 실성했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이 모습이 정상인 것 같았다. 내 기준에서 정상의 범주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여자끼리니까 괜찮은 걸까? 어렸을 때보았던 또래를든 여성끼리라면 손을 잡고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도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계속 우울해 있으면 어떡할까 고민하던 나였다. 어차피, 시엘이 벨튼 저택 쪽의 사람을 부른다고 했었으니, 그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순순히 요나엘을 보내줄 참이었다.

“저기~ 메이드 씨. 다 좋은데, 마리아는 돈도 필요 없는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될까?”

“그럼, 같이 가요!”

“꼭 같이 가야 돼? 여기 화장실은 엄청 비좁아. 나는 메이드 씨 부려먹는 거 좋아하지, 내가 부려지는 건 싫은데?”

“마리아 언니는 저보다 언니지만, 여동생 같아서 같이 들어가도 문제없을 거예요.”

“아니, 담배 피우러 갈 거야! 담배 피우고 싶어!”

“안 돼요! 담배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데요. 자, 담배 대신 저랑 뽀뽀··· 윽!”

“오, 오지 마! 마리아는 덮치는 거 좋아하지, 덮쳐지는 건 질색이이라고! 서, 선장님 살려주세요!”

“마리아 언니··· 제, 제가 싫으신 건가요?”

“메이드 씨, 아니야! 울지 말아줘, 마리아가 잘 못했어. 응? 자, 뚝? 헤헤···! 농담한 것뿐이야. 옳지옳지, 우쭈쭈!”

필사적으로 요나엘을 대응하는 마리아에게 미안함이 솟구쳐 왔다. 미안해. 마리아··· 지금 내 능력으로는 요나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속으로 마리아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가라앉은 표정을 유지한 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마리아를 너무 부려먹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요나엘의 저런 반응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겁을 상실한 마리아도 약한 부분은 있는 것 같았다.

덮치는 건 좋아하는데, 덮쳐지는 건 싫다는 마리아의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시엘, 추운데 고생했어. 누나가 도와줄게.”

“많이 늦었죠?”

마나전구가 밝혀주는 조리실에는 시엘이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내가 시엘 곁으로 가자, 시엘이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제야 시엘이 반쯤 걸쭉해진 수푸를 휘휘 내젓고 있었다. 선박에서는 화재 때문에 불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폭발할 수 있는 마력을 불판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선박에서는 마력으로 물을 끓인 수증기로 열을 가하여, 수프를 끓이거나 할 수 있었다.

“요나엘,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마리아가 어떻게든 손을 쓴 것 같아.”

“항해사님이요? 뭐... 요나엘의 약점을 잘 간파하신 것 같네요. 요나엘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남녀 구분할 거 없이 엄청 따라다니거든요.”

시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시엘이 사온 식료품을 확인했다. 항구 입구에서 맛집으로 소문 난 달꽃크림 빵과 소고기 수프의 재료들과 방울토마토 샐러드의 재료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배에서는 직접 열을 가하지 못하니까.”

“···그것도 그렇고, 제르바엘 예비공작하고 항구 입구에서 잠깐 만났었어요.”

시엘이 늦게 도착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한 방울토마토를 물에 씻어내기 시작했다.

“또 심각한 이야기가 오간거야?”

“아뇨. 심각하지는 않았어요. 벨튼 부인이 이번 일로 많이 불쾌해 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휴가정도로 생각할 테니까, 하루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저도 빨리 업무에 복귀하라고 했어요. 저희 집도 벨튼 부인께서 직접 청소까지 해주셨다고 해요.”

“아··· 그래? 많이 화내셨겠네.”

벨튼 부인이 우리 집을 직접 청소했을 정도면, 워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름 청소에는 자신 있었는데··· 어쨌든, 어제 내가 한 행동이며 시엘과 요나엘의 지금행동은 벨튼 부인을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는 행위임은 틀림없었다.

어쨌든 벨튼 부인도, 그녀의 양아들인 제르바엘 예비공작도 벨튼 대 공작의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제르바엘 예비 공작님이 부두입구까지 찾아 오셨을 정도면··· 벨튼 부인은 제 얼굴도 보기 싫다는 뜻이겠죠.”

“벨튼 부인하고는 의견 충돌이 많았던 거야? 아, 접시는 아래 선반에 넣어 두었어.”

나는 다 씻은 방울토마토를 그릇 위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시엘은 수프의 맛을 살짝 확인하고는 내게 작은 그릇을 내밀었다.

“맛 괜찮아요? 좀 달달하게 맞추었는데··· 죄송해요. 요나엘이 조금 신경 쓰여서, 맛은 달달하게 맞추었어요.”

“훌륭해. 누나는 달달한 거 좋아해.”

“다행이에요. 어쨌든, 벨튼 부인과는 마왕 후계자 문제로 최근에 의견충돌이 많았어요. 벨튼 부인은 제 뜻을 존중해주시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이익만을 추구하시죠. 대를 위해서라면, 소를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세요.”

“···그렇겠지.”

벨튼 부인은 전직 마계의 흑기사단 출신이었다. 그것도 요인 암살 같은 특수작전임무를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낭떠러지까지 몰락했었던 벨튼 가문을 다시 일으킨 것도 벨튼 부인 덕이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정도까지 우리의 뒤를 봐준 것만으로도 아득히 감사하고도 모자를 정도였다.

“그래도 먼저, 누나랑 제가 아이를 먼저 갖기를 원하셨지만··· 최소한 그 기간만이라도 벨튼 부인을 설득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거예요. 근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었으니까요. 많이 조바심 나셨을 거예요. 절충안으로 요나엘에게 아이를 임신시키라니. 저도 이해하고 수긍하기 어려웠어요.”

“그렇다면, 내가 아이를 가졌었다면, 시엘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다른 계획이나, 벨튼 부인을 설득할 수 있었다는 거겠네?”

“길어야 3개월. 최소 2주 정도면 다른 우수한 계획을 만들어냈을 거예요. 벨튼 부인을 설득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고요. 아무리 그래도 언제가 태어날 아이까지 정치적 문제에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요. 그래도 누나랑 같이 고민하니까, 좋은 방법이 많이 생겨났잖아요.”

“뭐, 어쩌면 지금당장 최선의 문제해결 책은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거네?”

“그렇게 되면··· 당장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싸움은 멈추게 되겠죠. 벨튼 가문도 제게 더 큰 신뢰를 줄거고요. 어쨌든 마계 문제까지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장성하기 전까지 마계에 다른 마왕을 세우고, 저희 가족은 평범하게 지내는 방법도 있어요.”

“···그렇구나.”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시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해 보아도, 시엘의 방안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요나엘이 폭주하기 전에 내가 임신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죄송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너무 악랄하죠? 저기, 누나?”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한 건··· 뭐. 음···”

나는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던져 넣으며 웅얼거렸다.

“그야, 시엘 네 탓이지.”

“네?”

“아, 몰라! 시엘 네 탓이야.”

“그, 그건요! 인간하고 마족이랑은··· 읍!”

나는 시엘의 입에 방울토마토 하나를 던져 넣었다. 인간과 마족 사이에는 임신부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시엘 탓으로 돌리는 건 농담이었다. 그야, 뭐···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잠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피곤할 때가 가장 많았고, 무섭기도 했었다. 시엘도 늦게 퇴근할 때가 많았다. 가끔씩 시엘과 분위기가 생길 때나, 시엘이 애교부릴 때나, 그래도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할 때나··· 지금까지 세보면, 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누나도 이제 상황을 알았으니까 같이 노력하자고요. 예비아빠님!”

“그, 그렇죠? 노력하면 되겠죠?”

나는 손가락을 굽혀, 시엘의 뺨을 앙증맞게 꼬집어보았다. 자그맣던 시엘이었다면, 아프다고 울상을 지었겠지만, 지금은 내게 오히려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얄밉게 느껴지는 건지···

“마리아 언니! 어디 가세요!?”

“꺄악! 제발 좀 그만해! 담배 대신에 뽀뽀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시엘이 얄미운 게 아니라, 비명을 꽥꽥 지리는 마리아와 그걸 추적하는 요나엘이 짜증날 정도로 얄밉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출 따위 시도하는 게 아니었다. 칫!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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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마리아는 사실 히든카드(?)였습니다. :)

선작과 조회수가 다시 회복 되고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제가 4개월이나 연중했는지 알려드리고 싶네요.

4개월의 공백도 언젠가 소재로 써먹을 날이 오겠죠?

여유가 되는대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리코멘트를 준비할까합니다.

독자분들을 위한 이벤트도 열고 싶은데, 좋은 소재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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