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회
[ chapter # 14 ]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바다는 움직인다.
# 64(3).
“친구들? 마리아는 친구들도 있어?”
“당연히 있지! 선장 씨, 내가 그렇게 왕따로 보인 거야?”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마리아는 머리카락까지 곤두세우며 내게 반문했다. 마리아를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친구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친구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나는 씩씩거리는 마리아를 곁에서 떼어놓으며 말했다. 용사 덕분에 소꿉친구라는 명칭을 머릿속에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친구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놓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동료, 동기, 전우라는 식으로 부른 적이 더 많았다.
친구라. 나는 ‘친구’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친구가 낯설어? 선장 씨랑 나랑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거야?”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라고 생각했어.”
“으엑?! 마리아는 그 정도 밖에 안 됐던 거야?”
마리아가 다시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말한 것에는 착오가 있었다. 반쯤 농담삼아 한 말이었다. 마리아는 정식 고용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마리아에게 있어서, 동료나 보호자 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됐고. 마리아의 친구들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거야?”
“응!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방금 선장 씨가 한 말 때문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계속 뭐라고 쫑알거리는 거야? 어쨌든, 네 친구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해도 정식 고용은 아니야.”
마리아가 쫑알쫑알 불만을 내뱉자, 나는 마리아의 이마에 살짝 손가락을 튕겨주었다. 마리아는 뺨을 부풀리며, 내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그건 마리아도 알고 있다고. 어차피 내 친구들도 나랑 같은 부류야.”
“마족들?”
“맞아. 마족들이랑은 같이 일하기 싫은 거야?”
마리아의 친구들이라고 한다면, 마리아와 같은 처지의 마족들인 것은 분명했다. 남자라면 위험한 갑판 일을 해주고 숙식을 제공 받거나, 여자라면 요리나 청소 같은 것을 해주면서 밤에는 배에서 수발을 드는··· 그런 마족들끼리 모여지어 지내면서 생긴 친구들일 것이다.
왕국의 해상법규 상, 비인간적인 행위만 아니라면 선박의 선택권은 선장에게 있었다. 신원불명의 인원을 선박에 승선시켜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박을 대표하는 선장은 선박의 규정을 제시하거나, 규칙을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내가 마리아를 데리고 마을을 배회한다면 시엘 때처럼 불법보호 및 인신매매혐의로 기사단에 구금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선장의 주권이 보장 되었다. 아무리 해군 기사단이라 하더라도 쉽게 왕국 소속의 선발을 검문하거나 검색할 수 없었다. 내가 마리아의 친구들까지 승선시키고 일을 시킨다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었다.
덕분에 선박이 모인 선단이나 상공업 길드 쪽에서는 선원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선장의 주권의 보장 된다고는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 되었다. 마족들의 불리함을 이유로, 억지로 구금하여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다면 당연히 기사단의 철퇴를 받아야만 했다.
가령, 선장이 마리아를 상대로 강간을 시도했다가 선원 중 누군가가 기사단에 신고한다면, 선장은 강간혐의 및 인신매매법 위반, 마족 불법 구금 행위로 최소 십자가형이었다. 그것도 왕국의 법정이 아니라 교황청으로 끌려가야했다. 여신은 바다를 신성이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고한 자는 교황청에서 막대한 포상을 지급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마를 톡톡 두들겼다.
“뭐, 마리아 같은 애들이라면 문제없지.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겠지.”
나는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뾰로퉁 했던 마리아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응응! 당연하지. 나보다 우수한 친구들이야!!”
“갑자기 왜 그렇게 들떠?”
마리아가 살짝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내 친구들도 돈을 받아도 값비싼 암시장 밖에 못가는 애들이라고. 숙식제공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당장 선원도 안 구해지고 있잖아. 그래서 선장 씨만 괜찮다면 친구들도 같이 일해도 괜찮을까 싶은 거 있지?”
마리아가 꺄르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잔뜩 들뜨기 시작한 마리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곧바로 헛기침을 하고는 덥석 내 양손을 잡았다.
“그럼 언제부터 오라고 하면 돼?”
“웬만하면 오늘 봤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그렇지?! 오늘이 제일 좋지? 어제 입항해서 조금 꼬질꼬질할 수도 있는데, 선장 씨 마음에 쏙 들지도 모른다고!”
나는 마리아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나와 마리아는 곧바로 선교 탑 아래로 내려갔다. 갑판으로 가리라 생각했지만, 마리아는 곧바로 실내통로로 향했다.
실내통로를 지나가자마자 선원식당이 나왔다. 선원식당에 위치한 조리실에서는 무척이나 고소한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마리아! 아침 먹고 설거지 안 했어?”
“응?! 다, 당연히 했··· 안 했어요!”
마리아가 잠시 식겁한 표정을 짓더니, 바보 같은 웃음을 그렸다. 나는 의문을 표하며, 마나전구로 밝혀진 기관실 입구를 바라보았다. 마력을 아끼기 위해서 사용하는 격실이 아니면, 마나전구는 꺼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라? 이 녀석들 일어나 있는 건가? 정말! 밤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이 녀석들은 뭐? 마리아, 친구들이라는 애들도 우리 배에서 지내고 있던 건 아니지?”
“히익!”
마리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마리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소중한 친구들이야. 어제 입항하자마자 내 친구라는 이유로 배에서 쫓겨났거든.”
마리아가 “헤헤”웃기 시작했다. ‘웃지 마라 정든다.’ 라고 차갑게 쏘아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아무리 마리아의 친구들이라지만, 새까만 남정네들이 나 몰래 배에서 지냈다는 것은 사양이었다. 아무리 배라고 하지만, 나름 신원불명의 남자는 종족을 막론하고 피하고 싶었다.
“마리아. 밤에 혼자 남겨둔다고 하지만, 웬만하면 남자는 데려오지 마. 데려오더라도 아침에 나한테 얘기했어야지.”
“그럼 얘기하면 허락해 줄 거야?”
마리아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기관실의 문을 열었다. 단단하게 수밀 되어 있는지, 마리아가 안간힘을 쓰며 기관실의 잠금장치를 해제시켰다.
“쯧!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모르는 누가 배에 있는 건 싫어.”
“아, 알았어. 조심할게. 그래도 나 때문에 배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어휴.”
내가 한숨을 팍 내쉬었다.
“항구가 좁은 걸 어떡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단 말이야.”
마리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뱃사람들이 해도 너무
한 것 같았다. 시엘과 만나면서 잊고 지냈던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이거 왜 이렇게 안 열려?! 야! 내 말 들려?! 이 녀석들아, 문 열어!”
마리아가 문고리의 잠금장치를 잡아 흔들었다. 정확하게 수밀장치였다. 배가 침몰 시, 각 구역을 밀폐 시켜서 침몰 시간을 벌어주게 하는 수밀장치였다. 수밀문이라고도 불렸다. 특히, 마력동력이 설치 된 선박에서는 필수적인 물건이었다. 마력기관의 무게는 상당했기 때문에 긴급시 수밀되지 않으면, 배가 순식간에 가라앉을 수 있었다.
물론, 안전장치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함부로 기관실에 사람을 구속시키지 않기 위해서 안에서도 잠금장치를 해제시킬 수 있었다.
“헥헥···! 독한 녀석들!”
마리아가 진땀을 훔쳤다. 마리아가 반쯤 풀었던 수밀문의 잠금장치가 다시 제자리도 끼리릭 돌아갔다. 그렇군. 기관실 안에서 누군가가 힘으로 잠금장치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마족들은 오감이 좋으니, 내가 내쫓기 위해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안한 것은 이해하지만, 배 안에서 농성을 부리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리아, 비켜. 내가 열게.”
“엑? 선장 씨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
“기사단에서 뱃밥만 10년 가까이 먹었었어. 이건 요령으로 열어야해.”
“마리아는 10년 더 넘었는데?”
“시끄러.”
나는 수밀문의 잠금장치를 붙잡았다. 해군 기사단에서는 유사시 검을 잡고 백병전을 펼쳐야만 했었다. 특히, 상대 군함의 장악이 완료 되었을 쯤에는 각 격실의 문을 열고 끝까지 위험요소를 제거해야만 했었다. 그러기 위해서 배운 기술이었다.
나는 살짝 힘을 주어 잠금장치를 돌렸다. 아무래도 몸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히죽 웃음을 그렸다. 안에 어떤 녀석이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마리아 같은 녀석이라면 반드시 이마에 불을 붙여 주리라 생각했다.
“물러!”
나는 있는 힘껏 수밀문의 잠금장치를 위로 들었다. 잠금장치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안에 지지해주는 고리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위 아래로 흔들면 쉽게 부서졌다. 아는 사람만 아는 기술이었다. 수리해야만 하는 게 가슴 아팠지만, 내 승부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잠금장치 부수자마자, 수밀문을 있는 힘껏 당겨 열었다.
“꺄앗!!”
문을 열기 무섭게 흑발을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아이가 튕겨져 나왔다. 반대편에서 온 몸으로 문을 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기관실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여는 문이었다.
기관실에서 튕겨져 나온 작은 여자아이는 보기 좋게 내 품에 돌진했다. 나는 가볍게 여자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톡하고 내 품에 여자아이가 이마를 박았다.
“아··· 안녕하세요?”
“···.”
여자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어깨가 흔들리며, 땋은 머리카락이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리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활짝 개방 된 수밀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안녕 못하겠는데···.”
“히익! 자, 잘못했어요! 때리지 말아주세요!”
양갈래 머리의 어린 마족소녀가 다급하게 몸을 웅크렸다. 마리아가 부리나케 어린 마족소녀를 끌어안았다.
“서, 선장 씨! 내, 내가 말한 친구 중 한명이야. 우리들 중에서 제일 막내니까, 응? 그, 그 주먹 풀어 주지 않을래?”
“···어휴. 얘도 뭐, 성장기니 뭐니 놓친 뭐 그런 건가?”
나는 울먹이는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보며 말했다. 덩치는 마리아 보다 한 두뼘 정도 더 작은 것 같았다. 처음 만났던 시엘보다 더 작은 것 같았다. 더 어려 보였다. 나는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서 착잡한 기분도 들었다.
“넌 몇 살이니?”
“19살···이요.”
울먹이던 여자아이가 9살 어린아이마냥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선단에서 마족을 선원으로 승선시키는 것에 대해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어린아이들까지 승선시켰다는 점이 더욱 착잡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19살이면, 시엘보다 1살 연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려 보였다. 행동도 처음 만났을 적의 시엘만큼이나 어리숙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가는 정말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마! 벌써, 선장인가 뭔가 퇴근했나? 하~암.”
이번에는 기관실 구석에서 찬란한 금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무척이나 장신의 여성이었다. 눈부실 정도로 백옥 같은 피부와 찬란한 금발이 순간이나마 용사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진한 남색 눈동자와 머리를 삐져나온 귀가 분명 인간종족은 아니었다.
“정말! 언니는 갑자기 왜 나오고 그러세요?!”
“잉? 뭐고, 마리아 요 있었나? 으잉? 저 분홍머리 여자는 또 뭐고?”
역사 속에서나 보았던 요정종족 같은 여자였다. 엘프라고 했던가? 마리아는 인상을 찌푸리고 몽롱한 표정의 금발여성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나를 분홍머리라고 부른 금발의 여자는 이미지와는 다른 지방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과거 베르투아에서 사용했던 언어였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한 두 명이 아닌 것 같은 불안감이 오한을 불러 일으켰다. 마력기관의 통로에는 먹다만 빵과 그릇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대충 세어보아도 5인분은 족히 넘어보였다. 여기서 며칠을 지내고 있었는지, 얇은 끈으로 만든 건조대에는 수건이며 속옷도 보였다.
“마리아. 안에 더 있지? 다 튀어 나오라고 그래.”
“네, 네! 선장님!!”
* * *
“마리아.”
“네, 선장님. 말씀만 하세요.”
마리아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회의실의 테이블에 커피 잔을 올렸다. 진한 블랙커피 향이 그나마 내 후각을 안정시켜주었다. 마력이 사용되고 남은 냄새가 회의실에 모인 여자아이들에게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당장 발로 걷어차며, 목욕탕이라도 데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들이 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처, 처음부터 ‘친구들’! 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잔뜩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금발의 여자를 째려보았다. 이들 중에서 제일 연장자로 보였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소곳한 자세로 바꾸었다. 그녀와 비슷한 부류인지, 은발의 여자아이도 있었다. 마리아와 비슷한 덩치의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제일 자그마한 마족여자아이의 등을 다독여 주고 있었다.
“큭큭큭···! 이렇게 은둔생활은 끝나는 건가? 내 안의 흑염룡이 미쳐 날뛰려고 하는군.”
머리를 산발로 기른 여자아이가 이유를 모를 소리도 내뱉고 있었다. 마리아가 이를 내보이며, 웃는 표정으로 냉소를 흘리던 여자아이를 제압했다.
“그, 그러면··· 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줄게···”
“존칭 써라.”
“···요.”
마리아가 어깨를 움츠리며, 내 곁에서 떨어졌다. 나는 눈시울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제일 마지막에 앉은 작은 마족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족소녀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나도 표정관리를 하고싶었지만, 마리아의 도를 넘은 행동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 여자아이를 울리는 것은 내 취향이 결코 아니었다. 혹시라도 마리아가 시엘에게 이르기라도 한다면, 시엘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쓸데없는 불안감도 같이 찾아왔다.
“그래. 어쨌든, 우리 배에 온 걸 환영해요. 레이디스··· 저는 환경사랑 91호의 선장, 아르미엘이라고 해요. 자자, 그런 표정들 짓지 말고, 편하게 있으세요. 제 예비신랑도 여러분들과 같은 마족이에요. 나쁜 시선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훌쩍.”
나는 시엘의 웃음을 억지로 따라 해보았다. 제대로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막내인 마족소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나는 회의실에 모인 여자아이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의외로 다른 남자들은 없었다. 마리아가 다른 남자라도 끌어드렸다면, 정말로 역정을 냈겠지만, 여자애들이라서 크게 화를 내기도 어려웠다.
“선장 씨, 표정 무서워···요. 무섭다고, 요.”
“쯧! 마리아, 존칭 써라. 꿀밤 날아간다.”
“넵! 선장님!”
마리아가 꼿꼿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막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다시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렸다.
“제일 막내라고 했지?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해주겠니?”
“···네! 저, 저는요. 세리나라고하고요. 언니들은 세리라고 불러요. 잘하는 건 요리하고요. 바느질도 잘하고요. 청소하고 페인트칠하는 것도 잘해요. 그리고 돛대 움직이는 방법하고요, 타도 잡을 줄 알아요. 나이는 올해로 19살이에요.”
막내. 세리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특히, 마지막에서 자기 나이를 더욱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왕국기준으로 성인식을 앞두고 있는 나이라고 하지만, 유쾌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특히, 자신을 소개할 때 통상적으로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구나. 요리를 잘한다고? 나중에 세리나가 만든 요리를 먹어 볼 수 있을까?”
“네··· 네! 서, 설거지는 더 자신 있어요! 정말 반짝반짝 잘 닦을 수 있어요!”
세리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세라나의 어깨에 닿은 양 갈래 머리가 크게 찰랑거렸다. 세리나가 희미하게 웃음을 짓는 모습이 살짝 시엘의 인상이 느껴졌다.
“하하하··· 설거지는 나도 자신 있어. 자, 제일 연상이시죠?”
“뭐, 대충 그렇지예.”
금발의 여성이 도도한 표정으로 콧대를 세웠다. 거만한 표정이 내가 알던 역사속의 엘프가 맞는 것 같았다. 사투리만 아니었으면 어디 공주라고 해도 믿을 외모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색의 가죽 재질로 만든 일체형 작업복이 대장장이를 연상시켰다. 칼로 찢어낸 가슴의 명찰과 상공업길드의 마크가 어디 큰 선단의 배에서 일한 것 같았다.
척 봐도 마리아 친구일행에서 리더 격으로 보였다.
“그러면,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척이나 거만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애써 존칭을 붙였다. 엘프를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수명이 300년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충 보시면 모르겠습니꺼? 마, 보여드릴 신분증도 없네예···읍!”
“언니. 시끄러워.”
은발의 소녀가 금발의 여성의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은색의 단발머리 소녀는 금발의 여성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금발의 여성은 손으로 은발소녀의 손을 툭 때렸다. 그녀는 곧바로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은발의 여자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예 감정이 없는 것인지, 무척이나 인형 같은 외모였다.
“저희 큰언니의 결례를 용서바랍니다. 선장님.”
“아니에요.”
은색단발 소녀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척이나 단아하고 깔끔한 자세였다. 어딘가의 귀족 자제같이 보였다. 유창한 언어 실력으로 보아, 같은 왕국민일 수도 있었다. 다만 단발머리 때문에 귀가 확인 되지 않았다. 다른 이유로 귀를 드러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는 얀제레라고 합니다. 앞서, 선장님의 배에 무단으로 숙식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렇게 배에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잖아요. 자, 편하게 앉아주세요.”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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