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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212화 (212/246)

212회

[ chapter # 15 ] 맹세한 우리는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도전한다.

# 67(2).

나는 용사의 약속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여신에게 기도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되려 묻어버리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좋은 추억만 남기자, 행복한 추억만 남기자.

그렇게 몇 번이고 내게 암시를 걸었다.

환영행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만 하면 됐다. 고향 사람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최근에 들은 소식에는 마을이 안정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남기신 농장도, 집도 그대로였다. 돌아가면 그곳이 신혼집이 되겠지. 아니면 모은 돈으로 저택을 하나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근데, 어째서 설레지가 않지?

나는 어거지로 마음을 고쳐 잡았다. 조금 씩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나름 거금을 들여 준비한 드레스를 확인했다. 용사에게 눈이 멀어 다른 감정은 모두 배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는 아름다웠다. 그가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다. 최대한 그의 이상형에 맞추어 준비했다. 근데, 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붉은색으로 치장했는지 모르겠다.

용사와의 약속시간이 두렵게 느껴졌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새삼스레 긴장 되는 마음에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혹시나 모를까 준비해둔 ‘청혼반지’를 꺼냈다.

용사가 먼저 하지 않는 다면 내가 먼저 청혼할 예정이었다. 그는 소심했으니까.

앞으로라도 내가 그를 뒷받침하리라 다짐했다.

아니다. 단지, 보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용사는 원정대 내내 내게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었었는가? 나는 단지, 싸늘한 그의 시선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나는 차가워진 시선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용사님 행진하신다!”

“용사님 행진하신다!”

약속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종소리와 입구를 지키는 위병들의 외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금으로 자수 된 금빛 망토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나는 어째서 이 자리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며, 무엇을 위해 내 손을 더럽혔던 거지? 겨우, 부귀영화를 위해서? 아니면, 명예?

소꿉친구인 아밀레스와 이어진다는 생각? 그렇게 내게 잔혹함만을 요구했던 용사에게 나는 무엇을 또 보여줘야만 하는 거지?

분명, 설레고 기뻐야하는 자리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용사의 청혼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나였다. 하지만, 용사의 등장과 함께 마음이 차가워졌다.

“아르미엘.”

“아밀레스.”

용사가 내게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었다. 다섯걸음 정도 거리를 두었던 용사였다.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분명하게 아름답고, 찬란했던 용사의 미모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 눈에는 용사가 용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경계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사람은 적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어째서, 이토록 용사를 증오하는 거지?

“아르미엘. 고생했어. 이제 보답 받을 때가 된 거야. 약속을 지킬 때가 됐어.”

“···.”

나는 용사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모습에 설랬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미묘한 눈웃음에 의심 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엘 공주의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목을 드러내는 용사였다. 하지만, 두꺼운 망토 장식에 목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방어하는 자세였다. 간편한 제복이었지만, 중요급소에는 경갑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백금의 검도 그의 허리춤에 있었다. 내가 그의 웃음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저 검이 내게 향할 것만 같았다.

“아르미엘. 왜 그래?”

“아, 아니야··· 아밀레스. 머리가 조금 아파서.”

“피곤해서 그런 거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어.”

아밀레스의 미묘한 눈웃음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찬양하고, 매혹적이었던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야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용사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의 눈빛은 나를 품평하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 행동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왕국의 국왕이 될 거야. 우리엘 공주라면, 이미 내 손에 있어. 그녀는 내 수족이나 다름 없어. 충분히 구슬려 두었어. 그녀는 너의 중요한 조력자가 되어 줄 거야.”

“우리 사이에 왜 우리엘 공주님이 필요한 거야?”

“권력을 위해. 아르미엘의 명예와 권력을 모두 지탱해주는 받침돌이 되어 줄 거야.”

“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

“···너와 내가 모은 재산으로는 아르미엘이 꿈꾸는 것들을 이룰 수 없어.”

“나는 너에게 내 꿈에 대해서 얘기한 적은 없어.”

“차가워, 아르미엘. 왜 그래?”

“···.”

“갑자기 긴장해서 그런 건 알아.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너만을 위해 백금화도 산더미 만큼 준비해 봤어. 더 이상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르미엘은 선장이 되고 싶었었잖아. 너를 위한 배도 준비할 거야.”

거짓말이다. 또 다시 달콤한 말로 나를 속여 넘기려는 거짓말이었다.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내 미래가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물건으로 보는 시선에는 악의가 가득해 보였다. 지금의 용사가 내게 주는 시선은 품평이 끝마친 상태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 쌀살 맞은 태도에 용사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내 시선의 끝에는···.

‘아르미엘 누나!’

자그마한 마족 소년이 내게 호수물방울 꽃으로 만든 머리핀을 내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흔들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들마다, 나는 누군가와 즐거운 한때를 만끽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불로 태워냈을 어린 마족소년이 점차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내 곁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밀레스가 나를 향해 몸을 낮추었다. 차마, 내 뒤로 보이는 광경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환영처럼 일렁이는 장면에는 용사가 없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환영이 거짓이겠지. 내가 무엇을 위해 7년간 용사와 원정대를 위해 피눈물을 흘렸는지 기억해야만 했었다.

분명, 용사를 의심하는 마음 때문이라며, 나는 아밀레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분명, 행복해야 하는 순간일 텐데. 마음의 방향이 내 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굽힌 아밀레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서는 내 목에 칼을 꽂는 용사가 보였다.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용사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분명, 용사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었다고 생각한 나였다.

아밀레스가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내게 내밀어 왔다. 아름다운 결혼반지였다. 하지만, 용사의 가식적인 웃음 앞에,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마저 퇴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밀레스··· 만약, 내가 이 반지를 받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밀레스가 천천히 웃음을 얼굴에 그렸다. 나는 그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아밀레스가 반지 케이스를 닫았다.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용사의 뒤에서는 나와 용사가 서로의 검을 들고 서로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용사는 불사조의 화염에 삼켜져도 광소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백금의 검에 목이 베여도,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지켜내고 있었다. 내가 쓰는 검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용사는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것이며,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저렇게 싸우고 있는 걸까?

“아르미엘은 어째서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아밀레스는 어째서 다른 손으로 검을 빼려고 하는 거야?”

“···.”

“나를 죽이려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용사가 웃음을 거두어 내었다. 나는 무기도 없었다. 나는 치장한 탓에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용사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바꾸었다.

“다시··· 시작 하자. 아르미엘.”

용사는 결국 검을 내게 내밀었다. 아아. 그렇구나. 용사는 결국, 나를 죽이려는 심산이었구나. 언제나 그렇듯, 잊고 있었던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용사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마, 저 검은 여지없이 내 몸을 관통하겠지.

나는 내 뒤에서 펼쳐지고 있는 행복하고 달콤한 꿈에 아쉬운 시선을 던져보았다.

“내 여자를 건드리지 마라! 하찮은 쓰레기가!”

마왕. 분명, 내 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왕. 내게 머리핀을 내밀던 자그맣던 소년은 새카만 마왕이 되어 있었다. 그의 붉은 안광이 괴성과 함께 거대한 낫을 내려찍었다.

잔혹한 마왕의 모습일지라도, 절대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구나.

꿈속에서조차, 나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와 준 시엘이었다. 그에 비해서, 용사는 끝끝내 내게 검을 내미는 것을 선택했었다.

시엘이 있었기에, 지독하게 잊고 싶었던 악몽마저 희극이 되는구나. 나 역시, 시엘을 향한 마음은 일편단심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를 악무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나는 유리구두를 벗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용사의 얼굴을 향해 유리 구두를 내던졌다. 용사는 혀를 차며, 구두를 부셔버렸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새카만 마왕의 손을 붙잡았다. 시엘이 마왕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되어버리는 걸까? 아마, 꿈이라서 마왕이 된 시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마왕 시엘이 쥐고 있는 낫을 움직였다.

“불사조의 기사, 아르미엘이 여신 앞에 선포하노니···.”

“마왕 에르시엘 3세가 여신에게 명하노니···”

* * *

“죽어라, 용사!”

“으악!”

순간적으로 시야에 별들이 튕겨 올랐다. 꿈에서 깼다는 감각조차 순식간에 날아갔다. 누군가의 비명소리와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화들짝 놀란 시선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내 힘없이 뒤로 쓰러져버렸다. 이마가 무척이나 얼얼했다.

침대. 나는 따끔거리는 뒷목으로 손을 움직였다.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발의 감각은 여전히 멀쩡했었다. 다만, 근력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양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벨튼 부부의 결혼식장에서 기억이 끊어져 있었다. 무언가 큰 폭발음이 몇 번인가 울려 퍼졌었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었다. 벨튼 부부를 노리는 자객들이었을 지도 몰랐다. 아니면, 마족과 인간들이 왕국 내부에서 대립하면서 생겨난 테러범들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마지막 기억에서는 벨튼 부부가 무사히 피난하는 것까지는 머리에 떠올랐다.

“선장 씨! 괜찮은 거야?!”

“으으으··· 마리아?”

나는 얼얼한 이마를 매만지며, 코를 어루만지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감격에 겨웠는지, 콧물이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세리나! 얀제레! 공주님 일어나셨어! 다 어디 갔어!? 빨리, 마왕님 안 찾아오고 뭐해?!”

“마왕님···?”

나는 의문을 표시했다. 마리아는 헐레벌떡 방에서 빠져나갔다. 천장이 무척이나 고풍스러워 보인 것은 착각일까? 분명, 선장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마리아의 키가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공기가 차가웠다. 나는 이불 밖으로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어깨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나는 온몸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았다. 폭발에 휘말리면서, 화상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화상이 깊지 않으면 좋을 텐데···

나는 비쩍 마른 내 팔을 바라보았다. 그야, 며칠 동안 병원신세를 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침대 벽에 몸을 기대는 것이 전부였다.

결혼식··· 너무 아까워. 나는 벨튼 부부의 행복한 결혼식을 방해한 무리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은빛 투구를 쓴 남자가 마지막에 희미하게 기억났다. 무척이나 낯익은 웃음이었던 것만큼은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랐다.

분명, 내가 아는 용사와 닮아 있었다.

침대에는 처음 보는 꽃잎들이 즐비하게 깔려있었다. 검은색과 붉은색 장미 비슷한 꽃잎들이었다. 향기가 무척이나 진해서 향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꽃잎 결이 무척이나 보드라웠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숨 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코에 닿은 공기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가 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달력이 보였다.

“10월···?”

달력에는 시엘의 글씨체로 빼곡하게 날짜가 지워져 있었다. 나는 달력이 잘 못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건가? 나는 다급하게 붕대를 풀어내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절대 1주, 2주가지고는 나을 상처들이 아니었던 것만큼은 기억이 났다. 나는 얼굴을 얼굴로 감싸 쥐었다. 무려, 최소 3개월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시간 감각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뚜벅뚜벅, 다급한 발소리가 문 저편에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곧바로, 문이 벌컥 열렸다. 시엘은 어깨장식을 거칠게 뜯어냈다. 검은 망토가 시엘의 어깨장식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던 내 사랑. 차마, 3개월 동안 시간이 흘렀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시엘···!”

시엘이 나를 온 몸으로 끌어안았다. 시엘의 한쪽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겨우 팔을 움직였다. 시엘의 등을 천천히 어루만져 주었다. 시엘의 길어진 머리카락이 내 머리카락과 엉켰다. 시엘의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시엘의 머리도 함께 쓰다듬어 주었다. 시엘의 체온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르미엘!”

시엘은 하염없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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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 댓글이 많이 달려서, 연참 준비중이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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