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무 외롭고 쓸쓸했던 나는 마왕의 신부가 되버렸다-235화 (235/246)

235회

[ chapter # 16 ]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우리는···

# 71(3).

“···.”

시야가 좁아졌다가 뿌옇게 변했다. 마치 내 의지가 아닌 것 같았다. 머리를 쪼갤 듯한 두통이 사고회로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득해지기 시작한 시선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팔 다리도 마찬가지였었다.

다만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분노뿐이었다.

“이렇게 속는 에밀리엘이나, 이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는 내 스스로나···”

“설마, 아르미엘!”

스스로에 대한 분노도 느껴졌다. 아밀레스를 에밀리엘이라는 어린 소녀의 이름으로 부르며, 내 손은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걱정 하지 마. 에밀리엘··· 이제 쉴 시간이야.”

손 톱이 부러지는 감각과 함께 아밀레스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감촉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두통 속으로 수많은 광경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뇌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정보량이었다.

다만··· 뿌옇게 변한 시야 속에는 에밀리엘이라는 백금발의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감촉과 시선과 기억과 감정이 뒤죽박죽으로 따로 놀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 자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라는 사실이었다. 아밀레스를 향한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가 정말로 죽을까 걱정되어 잔혹한 마음을 모두 발휘할 수 없었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 감정은 순수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소중한 무엇가를 에밀리엘이라는 소녀에게 모두 빼앗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정도, 사랑도, 추억도, 희망도,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까지!

“시엘!!!”

나는 목청껏 시엘의 이름을 불렀다. 아밀레스의 몸이 내 손끝을 타고 점차 불타기 시작했다. 내 생명력과 마력이 아밀레스의 신성력과 교환 되고 있었다. 아밀레스가 내 손아귀에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날 정도로 방대한 신성력이 흡수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을 거야. 에밀리엘!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몇 천 년을 숨죽여 왔는지 알아?!”

“아, 안 돼! 아니야! 아니라고! 아르미엘, 그렇게 내 신성력을 흡수하면, 너는···!”

“그 잘난 백금화를 못 쓸 때까지, 내 몸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이야 말로 네 명운을  끝내 주겠어!”

분명, 에밀리엘이라는 소녀에게 빼앗긴 것은 무엇인걸까? 에밀리엘은 아밀레스와 동일 인물이었었고, 나는 아밀레스를 드디어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에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몸을 채우기 시작한 신성력 마저 감미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르미엘 누나! 그만해요, 정말로 죽어요!”

“잔말 말고 이 녀석의 숨통을 빨리 끊으란 말이야! 예나엘 아빠, 내 말 안 들리는 거야?!”

알아 안다고! 나도 이 이상 내 생명력을 모두 소진하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밀레스와 자폭은 기어코 사절이었었다. 겨우 버텨서 시엘이 여기까지 도와주러 왔었다. 정녕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밀레스가 쉽게 쓰러지지 않은 것을 알고 있던 나였다.

나는 꿈속에서 보아왔었던 시엘의 모습과 광경을 애달프게 기억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된다며, 순수한 증오와 분노만이 아밀레스의 행동을 봉쇄하고 있었다. 점차 그의 몸이 푸른 불꽃에 완전히 잠식 되기 시작했다.

내 피부 살갗이 불꽃을 따라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생명력이 정녕 바닥을 드러냈는지,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뿌옇게 변했었던 시야가 점차 다시 선명해졌다.

무릎 꿇은 아밀레스의 목덜미에 매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엘의 다시 검붉은 마력에 물들었다. 내가 잠시 환상을 본 사이, 용사와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 잘 모르겠다. 피투성이의 시엘이 이를 악물며, 거대한 낫을 높게 쳐들었다.

“내 반려의 바램대로 잠들거라! 용사!”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네 놈들아!!!”

이성을 잃은 아밀레스의 목소리가 초토화 된 해변가에 충격을 주었다. 모래와 파도가 뒤섞인 채, 거대한 먼지를 일으켰다. 아밀레스를 향해 뛰어들었던 시엘이 멀리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여신께 간절히 바라노니···” 아밀레스의 입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품에서 백금 빛으로 빛나는 금화가 빛 무리에 삼켜지기 시작했다. 내 손은 망설임 없이 그의 목덜미를 떠났다. 곧바로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에밀리엘! 너는 여기서 끝이야!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환각이 아밀레스의 얼굴을 에밀리엘의 얼굴로 바꿔두었다. 시야가 잠시 일그러지자, 손에 힘이 빠져나가버렸다. 이미 신성력에 감전 된 내 몸에는 더 이상 아밀레스를 저지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크크큭. 끝이야, 아르미엘. 다음 생에···.”

아밀레스의 입가가 회심의 웃음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틈 새로 거대한 낫이···

“네 놈의 다음 정착지는 지옥이다. 용사여.”

아밀레스의 몸이 정확하게 가로로 분리 되어버렸다. 거대한 마력의 번개가 공간마저 베어내는 것만 같았다.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기분이었다. 거대한 낫이 베고 지난 자리에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있는 시엘이 보였다.

“···.”

“···.”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남빛으로 물든 맑은 빛이 썰물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아예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미처 가시지 않은 아밀레스의 신성력이 그의 주변을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지끈 거리는 두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피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짓고 있는 아밀레스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로 끝인 걸까? 정말로 끝이었다.

정리되기 시작한 내 기억들이 현실의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아밀레스는 회귀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력을 잃어버렸다.

아밀레스는 죽었다. 그걸로 성공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셀 수 없을 만큼 반복 된 상황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기쁨 마음도 허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내 스스로의 남은 생명력을 확인해보았다.

나는 시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데쟈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분명 처음이어야 할 분위기가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시엘의 거대한 낫이 검은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저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무척이나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어디선가 시엘이 텃밭을 가꾸겠다며, 쓸데없이 거대한 대형 낫을 사온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시엘의 무기가 되어 무척이나 슬프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발버둥 치기에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신성력을 내 힘으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몸에 잠식 된 신성력은 내게 상극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암세포처럼 내 몸을 당장이라도 분해시킬 준비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르미엘···”

더 이상 상체를 세울 힘도 없었다. 이윽고, 힘이 풀리자 몸이 시엘의 품에 안겨 들어갔다. 시엘의 마력과 내 몸에 잠식 된 용사의 신성력이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엘은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수, 숨 막혀··· 이 바보야!”

“죄, 죄송해요!”

나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시엘의 가슴을 콩콩 두들겼다. 가뜩이나 숨쉬기 어려운데, 시엘도 참 힘 조절은 여전히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줄곧 마왕따위하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 했었던 것 같은데···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성벽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지금 몇 번째 시간 선이며, 지금의 광경을 몇 번이나,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했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답을 내놓았다.

나는 거친 호흡을 찬찬히 정리했다.

“아르미엘··· 도대체 언제부터 기억이 돌아 왔었던 거예요! 이번에도 숨겼었던 거예요? 왜 또 절 버리고 용사랑 싸우러 나가신 거예요. 그러다가··· 계속 실패했었잖아요.”

시엘의 땀으로 젖은 뺨이 내 이마에 닿았다. 이 광경이 무척이나 낯익을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용사의 회귀를 막을 수 있을거라며,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든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내가 에밀리의 손에 죽거나, 시엘이 그 전에 사망하거나, 퍼즐이 안 맞은 적이 더러 있었다.

특히 이번 회귀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상태였었다. 내 나이가 벌써 28살이라니··· 시엘은 18살이었었다. 행복하면 행복했었다는 시간이었었지만, 본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에는 무척이나 힘든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이것은 내 감이지만, 이 시간대에는 예나엘과 둘째를 다시 만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본래의 기억을 얼마나 힘겹게 봉인해 왔던가?

내 스스로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나는 모든 기억을 일부러 되찾지 않았었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무모한 도박을 내지르는 게 내 성격이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회귀하면서 무척이나 많은 기억도 희생되었었다. 시엘의 회귀 대가가 자신의 기억이었었으니까.

“하··· 시엘. 가장 사랑하는 예나엘 아빠.”

나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몇 번이나 경험했었던 광경이었었다.

“네. 미안해요. 이번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시엘이 더 이상 못 참았는지 내 얼굴타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시엘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그렸다.

우리에게 불문율의 약속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시엘이나 내가 사망하게 되면 무조건 용사를 이용해서 회귀를 시도할 것.

두 번째, 아밀레스가 죽더라도, 둘 다 살아남지 못하면 아밀레스의 백금화를 빼앗아 회귀를 시도할 것.

세 번째, 설령 운이 좋아 대가로 바쳐진 시간의 기억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둘 다 찾은 것이 아니라면, 서로에게 말하지 말 것. 왜냐하면, 잘 못 된 정보로 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기억을 너무 늦게 되찾은 것도 큰 부작용으로 작용했었다. 시엘을 잠재우다니, 마리아가 아니었다면 이번 회귀도 분명 실패로 돌아갔었겠지.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나는 점차 내 몸과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마력이 신성력에 사라져가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억을 정리하고는 시엘의 체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번 회귀를 마지막으로 분명 많은 퍼즐들을 모았을 것이다.

“시엘··· 누나 손에 백금화 좀 쥐어줄래?”

“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부족한 탓에 또다시···”

시엘. 18살인데도 아직 다 크질 않았구나. 나는 머나먼 첫 번째 시절의 시엘의 선생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밀레스. 아니, 에밀리엘이 남긴 백금화를 양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수 천 번이나 시도해서 얻은 교훈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부디, 이 말이 우리의 행복한 운명으로 인도하길, 여신의 이름으로 간절히 담아보았다.

“시엘···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긴 이야기는 못 할 것 같아.”

“네.”

시엘이 울먹임을 참으며, 내게 끄덕였다. 시엘은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깊게 끌어안았다. 다시 한 번 시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무척이나 찢어지는 고통이었지만, 시엘을 잃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내 이기주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엘이 죽는 장면을 보는 것은 내가 죽는 것보다 더욱 더 고통스럽고, 다시 시작할 의지마저 꺾이게 했었다.

내 중심보다는 이렇게 얻은 정보와 변수들을 바탕으로 시엘이 운명을 구축해 나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회귀는 시엘과 함께 했었던 시간이 너무 짧았었다.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엘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몸을 갉아먹는 신성력들 덕분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도 어려웠다. 천천히 고통을 주다가 어느 순간에 목숨을 빼앗아 가는게 신성력의 특징이었었다.

“시엘··· 내 몸에 보이는 아밀레스의 신성력들 보이지? 이걸 이용하면, 반드시 대가없이 회귀할 수 있을 거야. 다음이 마지막이니까, 처음부터 서로 기억을 가지고 처음부터 구축해보자.”

“가능할까요?”

“후훗··· 시엘이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이번에도 훌륭하게 잘 해주었었잖아. 그래도 못내 아쉬워. 조금 더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도 누나가 너무 까칠했었네. 후후훗··· 이대로 마계로 가서 정식으로 왕비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 쿨럭!”

“아르미엘!”

기침으로 내뱉어진 검은 피가 코와 입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과묵한게 아니라 수다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나는 몇만번 회귀했어도 마지막에는 살고 싶어하는구나··· 결국 아밀레스와 마지막 결판을 내기 위해 돌아왔을 때는 살아 돌아갈 생각으로 덤빈 것이었었다. 물론, 지난번 회차의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기는 했었다. 용사와 다르게 기억유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었었다. 우리는 기억을 대가로 바쳐야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이 트기시작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계속 시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더욱 이 삶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삶도 최선을 다했었구나.

이번 회귀에서 용사에게 또 미쳐서 정조까지 내바치려 했던 내 자신이 살짝 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절대 그렇게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내쫓겼음에도 자살시도조차 하지 않은 내 자신도 한편으로 기특하게도 느껴졌었다.

“시엘. 사랑해요. 이번에도 존댓말을 해주지 못했네요.”

나는 첫 만남 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의 말투로 그대로 되살려보았다. 이내 시엘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또다시 만날 걸 알았다. 그렇기에 가슴은 아프지만, 이번에는 정확한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값진 교훈으로 이 정도 고생은 분명 아무것도 아닐 텐데···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러지마. 미련 남아버리면 더 힘들어··· 금방 다시 만날 테니까, 울지 마요. 시엘.”

“슬픈걸요. 정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요. 잠깐이라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어린애처럼 굴면 안 돼. 알잖아. 다음에는 분명 성공할 테니까··· 믿어줘. 시엘. 응?”

시엘의 품이 살짝 느슨해 졌다. 시엘의 엷은 미소가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이미 내 몸은 신성력에 잠식되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안 되는데, 조금이라도 온전하게 시엘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내 마음이 내 결심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것은 당연했었다. 다음이야 말로 진정한 마지막 기회였다. 이대로 서로의 기억을 되살린 채 회귀 할 수만 있다면···

“미안··· 아르미엘. 난 당신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지 않겠어.”

“···?”

시엘의 눈이 다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었다. 잠깐만··· 잠깐!

“안 돼! 시엘! ···읍!”

시엘의 몸이 순식간에 나를 감싸 안았다. 순식간에 시엘의 마력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시엘의 메마른 입술이 내 입술과 겹쳐졌다. 저항하려던 나는 재빠르게 포기해버렸다. 무척이나 따뜻한 온기였다. 신성력과 마력의 마찰마저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나와야겠지만, 나도 모르게 시엘에게 매달려버렸다. 어린애처럼 투정부리지 말라며, 따끔하게 혼내줘야 하는데···

어차피 실패할 것이다. 괜한 희망으로 더욱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나는 억지로 시엘의 얼굴을 떼어 놓았다.

내 몸에서 빠져나가던 신성력이 다시 제자리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시엘의 상처가 크게 찢어져 있었다. 이마에서 피가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내 몸에 잠식한 용사의 신성력과 자신의 마력을 교환했기 때문이었다.

“이 멍청아! 이렇게 살아 남아버리면 너도 얼마 못살고 죽어버린다고!!”

“걱정 마! 해봐야 당신과 비슷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이대로 또 헤어져야한다고? 이대로 이 미친 짓을 또 반복해야 한다고? 아르미엘, 어째서 내게 이야기 해주지 않는 거야?! 왜 계속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 희생하는 거냐고! 이대로도 괜찮아! 나는 당신만 있으면 그걸로 행복하다고! 이번에야말로 절대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어!”

시엘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소리쳤다.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나는 시엘에게 반박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상 이제는 어찌되어도 좋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피곤했고, 배도 고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시엘의 깊은 입맞춤뿐이었다. 내 몸을 잠식했던 용사의 신성력이 시엘의 마력과 바꿔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시엘의 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용사의 신성력이라도 시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끝날 뿐이었다. 대신에 희석시킨 신성력만큼 시엘의 수명만 줄어드는 것뿐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원리를 이용했다고 생각하면 쉬었다.

시엘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정도였나?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백금화를 떨어뜨렸다.

“불확실한 미래라도 좋아! 우리의 첫 만남 때와 다르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그때 그 이상으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아르미엘만 말고 나도 좀 믿어!”

< 다음 화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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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아니 텍스터양반, 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19.71kb라니 이거 너무한거 아니오?

다음화 드디어 최종화(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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