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초보아빠. (2/99)



〈 2화 〉초보아빠.

처음에 간간이 보였던, 아빠로 추정되는 남성은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는지,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젖을 처음 받아먹을 때, 이 사람이 내 엄마인지 궁금했지만,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에 있는 결혼사진에서 보았던 넋을 잃을 정도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본 기억은 없으니.
 몸의 아빠라는 작자도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시윤아~"
"....."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자 남성이 울먹거린다.

"우리 딸  이렇게 화나있어?"

내가 힘겹게 움직이며 첫 뒤집기를 시도하자 남성이 기대에 가득  표정으로, 동물 그림의 케이스가 끼워져 있는 사진기로 추정되는 사각형의 물건을 꺼냈다.

'지금이 몇 년도지...?'

확실한 것은, 이곳은 미래다.
2004년도에 그 사단이 났으니, 지금은 적어도 2004년은 아니다.
철창처럼 보이는 침대에 누워있으니, 세상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방의 크기를 가늠하며 다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사각형의 물건을 내려놓는 남성.

"울지도 않고... 뭐가 문제지...?"

이 어린 남성은 혼자, 사각형의 물건을 두들겨보기 시작했다.
나를 보면서 말하기 시작하는 남성,

"어, 엄마 시윤이가 울지 않아서..."
'아...  아빠는 부족한 사람인 건가...'

귀를 보니 무언가를 착용하고 있었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면..."

한소리 들었는지 귀에 꽂은 무언가를 빼는 남성.
생김새를 보니 골프채 앞부분처럼 생겼지만, 끝에 실리콘으로 보이는 것이 달려있었다.
다시 그 물건을 귀에 꽂으며 말을 시작하는 남성, 하지만 끝내 정색하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뭐...? 진심으로 한 소리지...?"

그리고 내 눈치를 보더니, 방 밖으로 나갔다.
방음 때문에 작게 들렸지만... 그가 크게 분노하고 있음을 알았다.

"... 연락 안 할게, 엄마도 연락하지 마. 다시는..."

그리고 슬퍼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성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못난 아빠라서 미안해... 딸."







나에게 뭘 시키려고 하는지, 자꾸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뒤집는 아빠.

'시발 존나게 힘든데, 진짜.'

하지만 대근육이 발달했는지, 이제는 쉽게 뒤집기가 가능했다.
처음엔 땀을 좀 흘렸어야 했지만.

"시윤이 장하다!"

그리고 나를 씻기려고 하는 남성으로 인해, 처음 벗은 몸을 거울로 본 나는 현실을 자각했다.
내 염색체는 (X, Y)가 아닌 (X, X)였다.

'아... 안돼... 시바알...'

나를 웃으면서 쳐다보는 남성.

"우리 딸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네 고추를 지금 떼면, 나처럼 기운 없어질걸?'
"이게 부모의 시선인가...? 우리 딸 너무 이쁜데...?"

오늘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을 때, 나는 이곳이 확실한 미래이며, 어쩌면 이 몸의 아빠는 엄청난 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집이 어린 남자 혼자서 사용하는 집이라고 하기엔... 엄청나게 넓기에.
그리고 아기들이 왜 말을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목이 너무 말랑거려서 소리를 내지 못한다.
힘을 줘서 말하려고 하면 ‘꺄아’ 소리밖에 안 나온다.
차라리 혀 깨물고 뒤지고 말지.

'하 씨... 이빨도 없네.'

혀로 말랑거리는 잇몸을 만지며 남성의 손에 몸을 맡겼다.

"우리 딸 좋아요~?"
'미치겠네... 진짜... 하아...'






인정한다. 이 남성은 일생의 모든 것을 나에게 바치고 있다.
1분 1초도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정하겠다. 이것이 내가 부하들에게 주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그래서... 맞춰주기로 했다.
호칭도, 초보 아빠로 하자.

내가 없으면, 이 초보 아빠는 극단의 선택을 할  같기에,
나는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살다가, 초보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딸은 왜 이렇게 말문이 늦게 트이는 걸까...?"

혼자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아빠.

"매일같이  읽어주는데... 옹알이도 잘 안 하고..."
"아빠?"
"!!!!!"

너무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아니면, 옹알이조차 안하던 딸이 자신을 불렀음에 놀란 것일까.
거의 흥분상태로 고조되어 곧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빠르게 다가온 아빠.

"시윤아? 내... 내가 누구라고?! 다시! 한 번만!"
"아... 아빠."
"허어어어억!!!!"

 초보 아빠는 내 행동 하나하나에 항상 기절하려고 한다.

'야... 그러지마 너 죽으면 나도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 인마!!!'

아직 몸도 못 가누는 나이기에...






그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을 마주쳤다.

"시윤아~ 할미야 할미~"
"....."

나는 아빠의 평소 통화내용을 들어왔기에, 지금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는 표정을 이해할  있을  같았다.
나를 눕혀놓고, 방에서 나가 대화를 하는 이들, 문이 열려있어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 일은 안 할 생각이야?"
"시윤이 키울 돈은 충분히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냥 키울 돈으로 되겠어?"
"시윤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시작하면 돼요."

대화를 들어보니, 나를 키울 돈도 부족하다는 소리에,  넓은 집이 평범한 사람의 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시발... 금수저 아니었어?'






시간이 흘러 내가 3살이 되었을 때, 초보 아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시윤아 TV가 재밌어?"

나는 지금 15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를 시청 중이었다.

"집중하잖아,  걸지 마."
"....."

초보 아빠가 풀 죽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있자, 한숨을 쉬며 쳐다보았다.

"설마 동화책 읽자는  아니지?"

아직 발달이 덜된 입으로 인해, 뭉개진 발음이지만 초보 아빠가  눈치를 봤다.

"크흠... 이거 15세잖아, 시윤이 이제 3살인데? 우리 재밌는 뽀루루 볼까?"
"재밌으면 아빠나 봐."
"....."
"아빠도 오래 못 보면서,"
"....."

한때, 내가 정확하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는 것에 놀란 초보 아빠는 나를 천재로 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것에 어울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일  먹었던 음식도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지만, 지금은 모든 생후 기억들이 머릿속에 있다.
과거를 떠올리자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아니 동영상이 재생되는 것처럼 한번 본 모든 것을 기억했다.

"시윤아 우리  먹을까?"
"아니. 나 오줌 마려."

초보 아빠는  한마디에, 노예처럼 바로 반응하며 나를 들고 가서는 화장실에 앉혔다.

"나가."
"응..."

문득 나는 초보 아빠의 직업이 궁금해졌다.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요리사인 것 같다.

"시윤이도 할래?"
"귀찮아."
"그... 그래."

한때 내 기억력에 놀란 적이 있는 초보 아빠다.
재미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딱 한 번 읽어준 동화책을 줄줄이 읊자, 할 말을 잃은 초보 아빠였다.

"우리 딸은 아빠 눈에만 이렇게 예쁜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도 느낀다.
어린아이들을 많이 봐온 것은 아니었지만, 난 내가 지금까지 본 아이들 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쁘게 생겼다.

"아니, 내가 봐도 나 이뻐."
"그... 치?"

나한테 집중하면서도 칼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초보 아빠의 직업은 요리사가 확실한  같다.

"아빠."
"응? 시윤아 아빠 왜 불렀어?"
"TV 보게 내려주지?"

자신의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려는지, 혼자서 내려갈 수도 없게 만들어진 의자에 나를 앉힌 초보 아빠였다.

"어... 응...“







나는 TV를 보며 현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죽은 이후로 정확히 23년이 흘렀다.
초보 아빠의 이름은 김지호, 꽤나 능력 있는 사람 같았다.
처음 창문 밖을 보았을 때,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엄청난 높이에 위치한 우리 집, 그래서인지 땅에 있는 사람이 개미만 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난 금수저인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아파트, 내가 알고 있던 가장 높은 건물보다도 더 높아 보였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자,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뛰어온 초보 아빠.
지금은 창가로 못 가도록 막아놓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초보 아빠는 내가 창문 밖을 보겠다고 말해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생각보다 줏대도 있어서,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완고했다.
리모컨을 만지고 있자, 눈을 반짝이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우리 시윤이 너무 이뻐서~"
"닳아 보지 마."

초보 아빠는 내 눈치를 보면서, 작게 말했다.

"... 밥 먹을까?"

나는 TV를 끄고 팔을 벌리자, 아빠가 웃으면서 의자에 앉혔다.

"맛있어?"
"아직 입에  넣었어."

내가 숟가락질을 하자, 초보 아빠가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워 먹고 말해줄게"
"응!"

때마침 벨 소리가 울리고 할머니가 찾아왔다.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는 초보 아빠.
나는 의자에 내려갈 수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어머~ 우리 시윤이 밥 먹고 있었어요?"

나는 대충 끄덕이고, 초보 아빠가 만든 밥을 먹었다.
싱겁게 만든 반찬들이지만 생각보다도 맛있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도도한지~ 우리 손주 차도녀네~"
"부담스러워, 쳐다보지 마요."
"....."

완벽한 언어 구사력에 당황한 할머니.

"천재 아니니?"

아빠는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표정으로 말했다.

"왜 오셨어요."
"아들 집에 오는 게 무슨 이유가 있겠니."
"다음부터는 말하고 오세요."
"어머? 얘 좀 봐?"
"시윤이가 제 말을 대신해주네요. 부담스러워요."
"... 아직도   때문에 그러니?"

아빠는 나를 한번 보더니 입을  닫았다.

"이제 가시죠."

할머니의 표정엔 미안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었다.

"....."

할머니는 일어나더니, 음식을 담아온 봉투만을 놔두고 밖으로 향했다.

"시윤아~ 할머니 갈게~"

나는 아빠에게 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나를 들어서 바닥에 내려주었다.
현관으로 다가가 할머니를 안아주고는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응!"
"다음에 또 와."
"어이구 이쁘네~"

초보 아빠는 할머니가 싸온 음식을 말없이 보더니, 숨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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