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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첫인상 (6/99)



〈 6화 〉첫인상

한참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을 때, 아빠는 내 볼록 튀어나온 배에 손을 얹은 채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고양이 키울까?"
"아니, 귀찮아."

단호한 대답에, 아빠는 옅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래..."
"나보단 아빠가 귀찮아~"

어두운 방안, 다큐멘터리에선 고양이의 근력을 소개하고 있었고.
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이제 잘까?"
"음... 1시간만 더 보다가."

아빠는 내 볼을 만지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30분."
"45분."
"음... 37분 30초."
"40분 45초."

아빠는 포기했는지, 턱이 접히는 자세로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40분 45초 더 보다가 자는 거야~"
"응."

아빠는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췄다.

"근데 나 어린이집에서도 자는데?"
"원래 많이 자야, 키 크는 거야."
"여자가 키 좀 작으면 어때서."

내 말에 반박을 하는 아빠.

"여자가  크면 멋있는 거 모르는구나?"
"내가 아빠보다 크면 안 멋있을 걸?"

아빠는 자신보다 큰 나를 상상했는지, 끄덕이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그건 그렇네...?"









하루가 지나고, 나는 아빠에게 몸을 맡긴  밖으로 나갈 채비를 끝냈다.
울리는 전화를 보고 아빠에게 말했다.

"할머니."

아빠는 다가와서,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후에 아빠는 할머니와 대화를 해보았는지, 평소와 다르게 웃으며 끄덕이기를 반복했다.

"네네, 다음 주에 찾아갈게요, 네."

아빠는 안겨있던 나를 카시트가 있는 상석에 앉혔고,
카시트의 안전벨트를 해준 뒤, 시동을 걸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후우... 재미없어."
"시윤이 친구 안 사귀었어?"
"친구는 무슨, 너무 어려"
"... 그러면 우리 시윤이가 어린이들 돌봐주면 되지 않을까?"
"아기는 귀찮아. 가끔씩... 하아... 바지에 오줌 싸"
"어... 음...? 당연한 거... 아닌가...?"

부모님들의 회의가 있는 날, 아빠는 다른 엄마들의 끝없는 질문 공세를 받았었다.
어떻게 하면 시윤이처럼  부러지게 키울  있냐며.
팬들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하던 아빠가, 나에 대한 질문들이 나오자 급격하게 당황해하는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핸드폰 사줄까?"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제안을 하는 아빠에게 격하게 끄덕였다.

"응."

아빠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대신 하루에 4시간만 볼 수 있도록 설정할 거야"
"... 급할 때 전화는?"
"전화는 항상 되도록 만들면 되지~"

아빠는 차를 돌렸고, 어린이집에 전화를 하면서 핸드폰을 사주기 위해 매장으로 향했다.

"어휴... 그런 기능도 생겼나 보네..."
"뭐라고?"
"아니야~"

매장에 도착한 후, 아빠는 내 작은 몸만한 태블릿과, 팔뚝보다도 굵은 핸드폰을 구매했다.

"이거는 아빠 꺼, 이거는 시윤이 꺼~"
"응."

핸드폰을 4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켜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자, 아빠가 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제 어린이집 갈까?"
"응."

직원들은 나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었고, 나는 받으면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빨 닦기 귀찮지만, 잘 먹을게요."
"그래주면 우리야 고맙지~"

나는 아빠의 손길로 카시트에 올라탔고, 우리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그림만 그리다가 소란스러워진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와 같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어린 꼬맹이와, 그런 꼬맹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생님들.
꼬맹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시선을 받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옷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아빠가 나에게 처음 입히려고 했던 옷이었다.

 옷을 입을 바엔 벗고 다니겠다는 선언에 아빠가 항복했지만.
한참동안이나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꼬맹이,
그러다 옷에 달린 레이스를 나풀거리며,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왔다.

"안녕?  다연이라고 해."
"그래, 반갑다."
"너 되게 예쁘다~"
"그래, 고맙다."
"옷 진짜 예쁘다."
"그래, 고맙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림을 보던 꼬맹이가 비웃었다.

"아하핰, 네 그림 되게 못생겼어!"
"...? 이거 넌데?"

내 말에 급격하게 정색하는 꼬맹이.

"...나 아니야."

나를 새침한 표정으로 찌릿 쳐다보는 다연이란 꼬맹이.
그리고 멀리서 장난감을 두고 싸우던 덩치가  꼬맹이들.

12단 변신이 가능한 장난감.
 몸만 하게 덩치가 큰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장난감을 놓치자 그 거대한 장난감은 다연이를 향해 날아왔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오는 12단 변신 장난감.
나는 날아오는 로봇의 다리 한쪽을 가볍게 잡고, 장난감의 각도를 비틀어 옆에 있는 서랍에 그대로 내리쳐 박살냈다.

콰앙!!!

"애새끼들 진짜... 가만히 좀 있지."

12단 변신로봇이 충격에 의해 분해되며 바닥에 떨어졌고, 로봇의 한쪽 다리만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 목소리에 움찔하는 꼬맹이들.
그에 따라 급격히 조용해진 햇님반.
그런데, 다연이란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대저택이라고 불러도  정도로 커다란 집.
그 안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던 다연이란 아이에게 다가가는 여성.

"다연아~ 오늘은 뭐하고 싶니?"
"어린이집 갈래요."

자신의 딸이 하는 의외의 답변에 여성은 눈을 반짝였다.

"어머? 우리 다연이 어린이집 가고 싶어요?"
"네~"
"그럼 준비할까?"
"네!"

다연이의 엄마는 몸에 명품이란 명품을 전부 도배한 모습을 하곤 우아한 자세로 전화기를 꺼냈다.

"기사님? 외출 준비  해주세요."
"다연이 오늘은 뭐 입을까?"
"예쁜 거!"
"다연이가 좋아하는 거 말고?"
"네!"
"우리 다연이는 뭘 입어도 예쁜데~"

다연이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골라주는 거!"
"어머~"

자신의 딸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든, 뿌듯한 마음에 웃고 있는 다연의 엄마.

"그리구 나도 핸드폰!"
"핸드폰? 다연이 친구 중에 핸드폰 쓰는 친구 있어?"
"응."

다연이의 엄마는 웃으면서 다연이에게 옷을 입힌 뒤, 한빛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시윤아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나는 스스로를 시크하다고 생각하며, 대충 어린 선생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른한테 인사할 때, 어떻게 하라 그랬지?"

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다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소녀, 이만... 물러가보겠사옵나이다."
"으휴..."

아빠는 웃음 섞인 한숨을 쉬더니 나를 들고 차에 태웠다.

"오늘 재밌었어?"
"하아... 다연이라고, 귀찮은  붙었어...'
"응?"
"나 좋다고 따라다녀..."
"오... 우리 시윤이 인기 짱인데?"

나는 오늘 알게  다연이란 꼬맹이를 떠올렸다.
내가 남자 꼬맹이들의 장난감을 박살 낸 뒤로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따라하려고 했다.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며, 아빠에게 말했다.

"오... 아빠, 책 사줘."
"책? 어떤 책?"
"소설책, 영어로 된 거로."

아빠는 운전에 집중하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갑자기? 그럼 우리 서점에 갈까?"
"응"

서점에 도착한 뒤, 나는 가장 앞줄에 전시된 책을 가리켰다.

"읽을 수 있겠어?"

나는 아빠에게 안긴 채 책을 펼치고, 아빠 앞에서 번역을 하면서 읽어 내렸다.

"....."
"이거로 할게."

아빠는 나를  손으로 안아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계산했다.

"어머~ 딸이 너무 예쁘... 허업!"

나를 보다가 아빠를 보고 놀라는 아르바이트생.
아빠는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모자를 내렸다.

"감사합니다..."
"네 또 오세요..."



 여성의 전화로, 어린 선생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네, 다연이 어머님."

다연이의 어머니는 핸드폰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한빛 어린이집, 이촌동에 있는 어린이집.
여기서는 부모들의 결정으로 인해 핸드폰 사용은 금지하고 있었다.

"...네? 아... 혹시 시윤이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린 선생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원장님을 쳐다보았고, 원장님은 입모양으로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보았다.
입모양으로 '핸드폰'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어린 선생.
원장님은 전화를 넘겨달라는 표시를 했다.

"어머님, 잠시만요."
"안녕하세요~ 다연이 어머님, 한빛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긴 대화가 이어지고, 전화를 끊은 원장은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연이와 함께 다연이의 어머니가 어린이집으로 들어왔다.
뒤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둘.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어머님."

어린 선생은 다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자세를 낮춰주며 인사했다.

"안녕~ 다연이 잘 지냈어?"
"네!"
"선생님이랑 들어가서, 그림그리기 할까?"
"네!"

다연이와 어린 선생이 빠지고, 현관엔 원장님과 다연이의 어머니만 남아있었다.

이다연, 대한민국 재계 2위 한성의 젊은 대표, 이진석의 막내딸이다.
후계자로 지목된 이진석이 다음 한성의 회장 자리에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젊은 아내, 김선화가 어린이집에 앉아있었다.

"핸드폰이 아이들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그게..."

원장님이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김선화는 걱정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다연이가... 핸드폰을 쓰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서... 자기도 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김선화의 말을 듣던 원장님은, 노트북으로 김선화에게 하나의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곳엔 시윤이가 주변에 바리게이트를  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아이가 시윤이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원장님이 현재 CCTV 상황을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윤이가... 다른 아이와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책을 읽고 있는 시윤, 전부 영어로 되어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다연이가 시윤이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윤이는 다연이의 입을 웃으면서 닦아주고는,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김선화는 그 말이 욕일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똑똑한, 아이인가 보네요...?"
"교육자의 입장으로써 어린아이를 똑똑하다고 치우치면  되지만... 예... 어린이집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전부 알고 있어서, 빠르게 초등 교육을 시킬까 했습니다..."

다연이의 어머니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원장님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시윤이의 아버님께서 원하지 않더라고요."

남들은 시키고 싶어도 못 시키는, 그런 '영재 교육'을 거부하고 있는 시윤이의 아빠였다.


"....."
"시윤이가 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아이들이랑 같은 속도로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핸드폰은...?"
"처음에 보여드린 영상처럼... 시윤이가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만한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아요."
"아... 그래서 자는 거였구나..."
"예...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시윤이 아버님이..."

다연이의 어머니는 자신도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핸드폰을 보더라도, 아이들이 안 보는 곳에서 숨어서 보는 시윤.
저 어린 꼬맹이는 어린이집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모습을 계속 따라다니던 다연이 지켜본 것이다.

"혹시 시윤이와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요?"

원장은 끄덕이며, 김선화에게 말했다.

"그럼, 시윤이 아버님께 허락을 맡아 볼까요?"

만약 다른 부모님이 다연이와 대화를 하더라도, 당연히 자신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제가 직접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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