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첫인상
시윤이와 같이 만든 노래를 작업하던 김지호.
컴퓨터 옆에 두었던 핸드폰에서 전화벨소리가 들려왔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빛 어린이집입니다."
"아 원장선생님, 네."
-"다름이 아니고, 다연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아 네, 압니다. 시윤이가 처음 사귄 친구라고 들었어요."
조심스러워하는 원장님의 목소리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고 집중해서 전화를 받는지호.
"혹시... 시윤이가 사고를... 쳤나요...?"
-"네?! 아니에요, 다연이 어머님께서 시윤이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시네요."
지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 전화 바꿔드려도 될까요?"
"네, 네."
전화기 너머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다연이 엄마예요."
"네~ 시윤이 아빠입니다."
-"저... 혹시 시윤이랑 대화를 해봐도 될까요?"
"혹시... 무슨 일때문에 그러시죠?"
-"아~ 다연이가 시윤이를 너무 좋아해서요."
지호는 김선화의 말에 끄덕였다.
시윤이는 어제 다연이를 귀찮은 애라고 말했다.
시윤이를 잘 아는 지호는 시윤이의 말이 진심인 것을 알았지만...
다른 부모님의 시선에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네, 시윤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시윤이 잘 부탁드려요~"
-"네!"
아빠가 사준 영어 소설책.
-Tears Become The Sea (눈물은 바다가 되어).
한참을 읽고 있을 때, 역시나 다연이란 꼬맹이가 내 옆에 앉았다.
"우와... 시유나 영어 할 줄 알아?!"
나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끄덕였다.
"그럼 읽어줘!"
나는피식 웃으며, 가장 처음에 쓰여 있는 구절을 번역해서 읽어주었다.
"하늘을 가르던 용의 용맹함은 잊혀가고, 제국의 웅장함도 잊히다."
"...?"
"왕족의 석비가 바람에 깎여 나가고, 사토 속에 묻혀가며, 그들의 존재도 묻혀갔다."
"....."
"천박한 사람의 삶. 그들의 위치보다도 낮아졌을 때, 하나의 작은 생명이 꽃피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작전은 성공했는지, 어린 꼬맹이는 기웃거리다가, 혼자서 놀기 시작했다.
소설 내용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한창 집중을 하고 있을 때, 어린 선생이 나를 찾았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어린 선생의 품에 안겨 원장실로 향했다.
한곳을 바라보다, 잠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만져볼까 고민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원장실에 도착하니, ‘럭셔리’라는 단어가 가장 잘 들어맞는,
미래의 귀족 같아 보이는 옷을 입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와오.'
깔끔하면서도화려해 보이는 옷이 너무 잘 어울려서, 누가 봐도 '나 지위 좀 높은 사람이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선생의 품에서 내려온 뒤 의자에 올라가려고 했지만, 너무 높다고 판단해 다시 팔을 벌렸다.
어린 선생은 나를 보다가 빠르게 의자에 올려주었다.
"방석 줘요. 책상 높아."
"잠깐만~ 선생님이 가져다줄게~"
나는 책상에 걸터앉은 다음, 어린 선생이 방석을 깔아준 후에 다시 앉았다.
"너무... 예쁘다..."
내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여성.
그 여성의 얼굴에서 다연이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연이 친구 김시윤입니다~"
"어머? 내가 다연이 엄마인 거 어떻게 알았어?"
"다연이가 엄마 닮아 예뻐서요."
"그래?"
4살짜리의 입에서 나올법한 소리가 아님에 매우 놀란 듯한 다연이의 어머니다.
나는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깍지를 끼웠다.
"그래서, 왜 불렀어요?"
"음, 우리 다연이가 시윤이를 너무 좋아해가지고~ 아줌마도 궁금해서 보고 싶었거든~"
나는 잠시 주변을 보다가 어린 선생을 보며 말했다.
"물 줘요."
"잠깐만~"
나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다연이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끝이에요?"
"...어?"
내가 핸드폰을 꺼내서 자연스럽게 영화 리뷰를 보려고 하자, 당황한 다연이의 엄마가 말했다.
"그... 시윤이는 뭘 좋아해?"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흠,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뒹굴거리기, 아빠 놀리기, 아니면 영화 리뷰 보는 거?"
"그래? 다연이가 시윤이 많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니?"
"음... 다연이 영어 배우고 싶어 하던데요?"
내 말에 급격하게 눈을 반짝이는 다연이의 어머니.
"그러니?"
"집 가면 자기도 영어공부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시윤이는 영어 잘해?"
"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거 돼요."
"".....""
나의 자기자랑에 이어, 갑자기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다연이의 어머니.
"Can my daughter be smart like you? (우리 딸도 너처럼 똑똑해질 수 있을까?)"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음... 나이 먹으면 되겠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던 다연이의 어머니가 다시 한국어로 말했다.
"오늘은 집에 가면 뭐할거니?"
나는 어린 선생이 가져다준 물을 조금 마신 뒤, 내려놓았다.
매우 소량의 물을 마셨음에 귀여워하는 이들이다.
"아빠랑 놀러 가는 거 아니면, TV 볼 거 같은데."
"아빠랑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아뇨."
내 단호한 대답에, 오히려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인.
"왜? 재밌는 거 진짜 많아~"
"뭐있는데요?"
"...어?"
"한번 나를 유혹해 봐요, 그럼 고민해 볼게요."
"음... 아하핳"
잠시 고민했다는 생각에 자신도 웃겼는지, 여인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집에 맛있는 거랑~ 장난감이랑~ 다연이 오빠도 있지~"
"몇 살 차이인데요?"
"다연이랑 2살 차이지?"
"6살? 어린이집 안 다녀요?"
"가끔씩 나가지?"
한빛 어린이집은 한 달에 180만 원이 들어간다.
다달이 돈은 내면서, 아이가 가고 싶을 때 보낸다라...
'어이가 없어서... 180만 원...'
그것보다 어린이집에서 이것저것 하긴 하는데, 왜 180만 원이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됐다.
'나 때는 180만 원이면, 나랑 부하들의 반 년 치 식비였는데 말이지...'
"좀 더 유혹해 봐요."
"인형도 엄청 많아~ 그리고 집에 있는 거 시윤이가 가지고 싶으면 다줄게~"
"호오... 후회 안하시겠어요?"
"음... 어른들 옷이랑액세서리만 빼고? 아! 골동품도 빼고, 다연이 할아버지 거거든."
나는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언제가 편하세요?"
다연이 어머니는 매력적이게 웃으며, 내볼을 만졌다.
"시윤이 오고 싶은 날 아무 때나~ 아줌마한테 연락해줄래?"
그리곤 자신의 명함을 꺼내서 나에게 주는 여인.
명함에는 한성 디자인넷 대표라고 적혀있었다.
'...한성.'
아직도 한성이 존재함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상 아마도 지금의 대표는 이기석, 아니면 눈앞에서 울던 꼬맹이 이진석이겠지.
다연이의 아빠는 이진석일 테고...
나는 대한민국 재계 1위 S사의 지저분한 일을 도와줬던 조직에서 한성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었다.
밝게 웃고 있는 다연이를 떠올리니,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그럼 나중에 아빠 편한 시간에 놀러 갈게요. 아빠는 뭐... 내가 조르면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맛있는 거 많이 해놔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말을 길게 한 건 처음이었다.
"다연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거 시키세요.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혹하지 말고."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여인,
자신은 지금까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시켰다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어린 선생님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어린 선생은 나를 쳐다보았다.
"열어줘요."
"응?"
"케이스 벗겨줘요."
"아~ 알겠어~"
케이스를 벗긴 뒤 나에게 돌려주었고, 나는 명함을 집어넣고 다시 건넸다.
"닫아줘요."
"응."
나는 어린 선생에게 내려가고 싶다는 눈치를 줬다.
"아! 내려가고 싶니?"
"응."
나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여인.
"다연이가 하고 싶은 거 시킬게~ 시윤아 다음에 또 봐~"
"네."
"시윤아~ 아빠 왔어~"
다연이는 집에 돌아간 지 오래였다.
"응."
보통 어린이집에서 부모님이 왔다고 하면, 아이들이 뛰어나가기 바쁘지만...
나는 아빠가 직접 안으로 들어왔다.
"시윤이 뭐해."
나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블록으로 탑을 쌓고 있었다.
"기다려."
"응..."
내 옆에서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아빠.
내 조그만 손가락으로 어린 선생의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경 쓰여, 저기 가서 기다려."
"... 응."
그 모습에 어린 선생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늘 시윤이 어땠나요? 다연이..."
"아! 역시 시윤이 엄청 똑똑하더라고요."
"그래요?"
오늘 대화 내용을 아빠에게 얘기해 주는 어린 선생.
"시윤이가 너무 똑똑해서 피곤하시겠어요."
"축복이죠. 부족한 저를 채워줘서..."
아빠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에이~ 하나도 안 부족해요!"
나는 탑을 전부 쌓은 뒤, 뿌듯해하며 끄덕였다.
"아빠!"
"응?"
내 목소리에 달려오는 아빠, 만약 꼬리가 달려있었다면 엄청 흔들었을 것 같다.
"어때."
"엄청 멋있는데?"
"4살짜리 꼬마의 엄청난 고뇌와 감정, 그리고 기술이 담긴 작품이야."
아빠는 내가 만든 탑을 말없이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
"반응이 왜 그래?"
"대... 대단해서."
내가 블록을 발로차서 무너뜨리자, 아빠가 당황해했다.
"...재미없어."
"시... 시윤아?"
아빠는 자신의 어정쩡한 반응 때문에,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생각했는지, 크게 당황해했다.
"같이 치워."
"아빠가 다시 만들어줄까?"
"싫어."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윤아..."
"대신 내일 나랑 어디 좀 가."
"응?"
나는 아빠에게핸드폰을 건넸다.
그게 뭐가 재미있냐며 하지도 않던 블록 쌓기를 아버지가 오기 직전에 만들기 시작했던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어린 선생.
그러나 지금 다연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떠올린 어린 선생은, 내 '큰 그림' 뒤에서 감탄하고 있었다.
"열어줘."
눈치 빠른 아빠는 곧바로 케이스를 열어줬고, 그곳에 들어있던 명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성 디자인넷 대표 김선화.
아빠가 어린 선생을 휙 돌아보았고, 어린 선생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