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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첫인상 (8/99)



〈 8화 〉첫인상

차 안에서, 아빠는 한참동안 명함을 바라보았다.

"다연이 부모님이 한성... 이진석의 딸이었구나..."
"알아?"
"누구? 다연이네 부모님?"
"응."

아빠는 한성에 대해 알고 있는지,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부자인데?"
"...어?"
"아빠보다 돈이 훠어얼씬 많지~"
"와... 그 정도로 부자야?"
"그럼~"

내가 알기로 한성은 그렇게 부자가 아니었다.
아니, 20년이 흘렀어도 그렇게부자가 될 수 없다.
나는 조직에서 S사를 세계기업으로 만드는데 이바지했지만, 동시에 한국의 대기업들을 중견기업 급으로 낮추는 데에도 한몫을 했다.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켜서 뉴스를 검색했다.
S사도 해당된... 범죄와의 전쟁.
그 기사 하나로 어떻게  건지 예측할 수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버린 S사.
팔다리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 한국을 흔드는 기업이었던 만큼,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고, 현재까지도 재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S사의 현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두려워하던 인물.
대표로 올라선 직후, 결국엔 나를 죽이라고 지시했던  사람이다.
자신의 사냥개에 불과한 나조차도 두려워하던 그 작은 그릇을 가진 인물이 대표라니...

"시윤아 뭐 보고 있어?"
"한성, 궁금해서~"
"시윤이 핸드폰도 한성이 만든 거야"
"오..."
'그래서 내 핸드폰을 집중해서 봤구먼?'

"오늘은 아빠 회사 갈까? 지은이 이모 보게?"
"응"

아빠는 작업이 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굳이 내 핑계를 대며 자신이 속한 회사로 향했다.










나를 안고 들어가다가 마주치는 JSM 대표.
장성만이 아빠를 보고 있었다.

"지호야!"
"아 대표님."
"인마 형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한동안 전화도 안 받고."
"저도 보고는 싶었는데, 대표님 만날 때마다 술 마셔야 되잖아요."

아빠는 나를 쳐다보았고, 그 시선에 장성만 또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와... 엄청 예쁘네. 진짜 와... 아기천사네..."

나를 처음 보는 사람 100이면 99는 모두 넋을 잃었다.

"알아요."

물론 나는 이렇게 연약한 뼈와 근육을 가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빠랑 놀러 왔어요오오?"

나를 아이 취급하는 말투에,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장성만 대표가 움찔했다.

".....삼촌 상처받는다?"
"할아버지."

나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딸이  싫어하는  같은데...?"
"수염이나 깎아요. 대표님."

자신의 턱수염을 만져보는 장성만이 끄덕이더니 말했다.

"딸, 기다리고 있어. 금방 멋지게 하고 올게~"
"할아버지 딸 아닌데."
"....."

장성만 대표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하며 사라졌다.






"시윤아~!"

나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지은 이모에게 시크하게 끄덕이곤, 핸드폰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지은 이모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과자...?'

결국 양손에 가득한 과자 봉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쳐다보자, 나를 장난스럽게 쳐다보는 지은 이모.

"먹고 싶어요?"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하핳"

나는 핸드폰을 옆에 던져두고는 내 몸보다 커다란 봉투 속에서 과자를 꺼낸 뒤, 지은 이모에게 건넸다.

"역시... 시윤이는 콧수염 과자를 좋아하는 구나~"

과자 봉지를 까서 주는 지은 이모가 아빠를 보며 말했다.

"오빠, 노래 언제 올리려고?"
"응? 시윤이랑 녹음한 거?"
"응!"
"그거 안올릴 생각인데?"

아빠의 말에 당황한 지은 이모가 책상을 강하게 치면서 물었다.

쾅!

"왜?!"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놀랬을까 봐 사과하는 지은 이모.
나는 소파에앉아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냥 추억으로 남기려고 했지~"

지은 이모는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지은 이모와 눈을 맞췄다.

"?"
"시윤아 아빠랑 부른 노래,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아?"
"왜?"
"음... 그럼 다른 사람들도 시윤이 목소리 들으면서 행복해할 수 있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아빠가  모습을 보더니, 한소리를 했다.

"시윤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다리 꼬면 나중에 아프다고 했지?"

나는 꼰 다리를 풀며, 지은 이모에게 말했다.

"나를 너무 감성적으로 유혹하려고 하시네?"
"...어?"

아빠가  말투에 씁쓸하게 웃었다.

"좀  그럴듯한 말로, 유혹 해봐요."
"어... 음... 노래를 공개하면, 돈이 많이 나올걸...?"

아빠가 지은 이모의 말에 당황했다.

"야 이지은!"

아빠가 지은 이모를 다그쳤지만, 나는 끄덕였다.

"오... 얼마나 버는데요?"

지은 이모는 내가 4살짜리가 맞는지, 의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장성만이 들어왔다.

"어? 대표님 안녕하세요~"

지은 이모는 일어나서 예의를 차리며 장성만에게 인사했고, 아빠는 생각 이상으로 친한지 눈을 맞추고 말했다.

"왔어요?"

처음 본 러닝셔츠 대신 정장을 걸치고, 머리도 올린채로 깔끔한 미중년이 되어 나타난 장성만.
장성만 대표는 아빠의 말에 대충 끄덕이며,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로 다가왔다.

"어때? 아직도 할아버지 같아?"
"응."

 치의 고민도 없는  답변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시늉을 하면서, 팔을 소파에 걸쳐 몸을 지지하는 장성만 대표.
끝내 자신이 할아버지임을 인정하고, 지은 이모를 보며 물었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지은 이모는 아빠의 눈치를 보다가, 아빠가 끄덕이자 노래를 틀었다.

"어때요?"
"....."

아빠와 내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힙한 동요의 느낌을 내고 있었다.

"이걸   내고 있던 거야? 계약금 때문에 그래? 전처럼 백지 계약서로, 다시 계약할까?"

아빠는 과장이 넘치는 장난스러운 장성만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요, 그냥 시윤이 놀아주려고 만든 노래에요."
"넌 항상 대충 만들면 대박 났잖냐? 이거 무조건 뜬다! 네 복귀로 완벽해!!!"
"알잖아요, 복귀할 마음 없는 거, 만약에 하더라도 시윤이 더 크고, 초등학교라도 들어가면 할래요."

장성만 대표는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도 꿈 포기 안 한 게 어디냐... 계약은 그대로인  알지?"
"그럼요~"

지은 이모가 앉아서 대화에 집중하다가 말을 꺼냈다.

"시윤이가  노래하면 얼마 버냐고 물어봤어요."
"음..."

잠시 고민을 하던 장성만 대표가  옆에 앉아서 말했다.

"원래는 돈을 생각하고노래를 내면, 기대했던 거에 1/10 ~ 1/100 정도밖에  나오거든?"

나는 장성만 대표의 얼굴을 보며 끄덕였다.
입에는 뭘 뿌렸는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네 아빠의 이름값, 희대의 천재가 4년 만에 낸 노래...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화제성은 충분하고."

본인 앞에서 엄마의 죽음까지 간접적으로 말하다니... 눈치가 없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장성만 대표의 성격을 아는지 아빠는 살짝 불편한 기색만 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노래를 한국에서만 돌려도 적어도 십억 단위, 해외를 합하면 백억 단위 이상도 충분히..."

내가 생각했던 것을 압도하는, 말도  나오는 가격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콧수염 과자가... 적어도 285,715개...."
"".....""
"매일 하나씩 먹어도... 782년을 먹을 수..."

4살에 나누기와 곱셈을 완벽하게 하고 있는 나를, 경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와중에 아빠 또한 경악을 하고 있었다.


"처...천재..."
"알아요."
"희대의..."
"알아요."

예전의 나는 내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머리는 팽팽 돌아간다. 내가 아닌 것처럼.
생각을 깊게 하면 주변이 멈춘 것처럼 빠르게.




나는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노래 내자."
"...돈 때문이야?"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음... 얼마나 큰돈인지 와 닿지 않기는 한데..."

내 얼굴을 룸미러로 확인하는 아빠.

"아빠한테 또 거짓말하지?"
"응. 선의의 거짓말이야."

"....."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배고파."
"노래 진짜 냈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빠 바빠져서 우리 시윤이랑 못 놀아줄 수도 있어..."

누군가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는 것 같은 표정으로, 운전대를잡고 있는 아빠.

"그럼안하면 되지."
"....."

아빠는 내 말에 많은 고민을 하는 듯, 시름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아... 아빠."
"응?"
"노래하면 나 버릴 거야?"
"절대로!!! 아빠는 시윤이 밖에 없는 걸?!"
"노래하면, 나  데려다 주나?"
"아니..."
"노래하면, 밥 안 만들어 줄 거고?"
"...아니."
"노래하면, 나랑  잘 거야?"
"....."
"노래하면, 나랑 안 놀아줘?"
"아..."
"뭐, 평소랑 다른 것도 없구만..."
"하지만..."

아빠는 결국 차를 세웠다.

"아빠가...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 옆에 못 있어준 거?"

내 마지막 발언에 아빠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아빠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극한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내가 매일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6시간.
그래서 하루에 정확하게 5시간,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나더라도 알림이 울리면,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떠났다.
'희대의 천재'라는 별칭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희대의 천재'였던 아빠는 그 재능 때문에 엄마의 죽는 모습도, 나를 낳는 것도, 지켜보지 못했다.

그 트라우마로, 알람이 울린 후 작업실에 있게 되면,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그곳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아빠, 노래하잖아."
"....."
"그러면서, 나랑 시간 보내고 있잖아."
"응..."
"물론 아빠가 하고 싶어서, 나 데리고 일하는  갔겠지만..."
"....."

아빠는 그것조차 알고 있었냐는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이제 그만 못하지?"
"...아니, 시윤이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할게"
"퍽이나."
"....."

물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저 어린 아빠는 안 할 것이다.
아빠는 음악을 들을 때, 장난감 피아노를 만질 때,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4년이란 시간동안 음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린 초보 아빠의 행복을 막을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그냥, 아빠도 나 놀아주듯이 노래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 보여주면 되지~"
"....."
"아빠가 노래보다 내가 더 좋다며."
"응..."
"그럼, 아빠가 조절하면 되지, 그게 자신이 없으면 지금처럼 안하면 되고."

아빠는 한숨을 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딸 너무 똑똑해서... 아빠가 걱정시켰네?"
"알면 됐어."
"그럼... 아빠랑 부른 노래만 올려볼까?"
"방금까지 수정하던 거?"
"오... 그것도 알고 있었어?"
"응."

장성만 대표와 지은 이모는 아빠가 지금까지 수정한 것은 모르고, 나와 아빠가 처음 만든노래만을 알고 있었다.

"들어볼래?"
"응."

왜, 래퍼 김지호가 작곡의 천재인지 나는 몸소 느끼게 되었다.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만들어진 멜로디는 포근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동시에 복잡한 감정도 느껴졌다.
더없이 밝아 보이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 어떤 날은 슬퍼 보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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