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첫인상
궁전처럼 보이는 거대한 집.
"안녕하세요... 시윤이 아빠입니다."
-"아! 잠시만요~!"
인터폰에 목소리가 울렸고, 문이 열리며 정장을 빼입은 경호원이 안내를 해주었다.
"시유나~!"
대문이 열리며, 마당에서 나를 반기는 다연.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더니 문이 열리자마자 나에게 뛰어왔다.
"어머, 다연아! 그러다 넘어진다?"
김선화, 다연이의 어머니를 발견한 아빠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윤이 아빠입니다."
"어? 지... 호?"
아빠는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저 진짜 팬이에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아빠의 팬이란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때마침 아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와... 시윤이의 아버님이 지호 씨라니... 정말 놀랐어요. 왠지... 시윤이가 너무 예쁘더라..."
"아... 감사합니다.저도 다연이의 부모님이 한성 대표라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손님방에 배치되어 있는 소파에 앉기를 권하는 김선화.
"에이~ 지호 씨에 비하면아무것도 아니죠~ 시윤아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니?"
"응."
"그... 그래?"
다연이는 인형을 만지며, 내 옆에 앉아있었다.
"이거 줄까?"
"어머... 다연아 그거 가장 아끼는 인형이잖니?"
"시유니가 더 좋아."
김선화는 아빠에게 차를 따라주고, 웃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시윤이는 좋겠네~"
나는 레이스가 달린 토끼 인형을 만지다가, 다연이에게 건넸다.
"이름이 뭐야?"
"안토니오!"
"남자 이름 아닌가?"
"남자야!"
"...응?"
살짝 내 처지 같아 보이는 토끼 인형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겉은 귀엽고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수컷이라니...
계속 토끼 인형의 치마를 들춰보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빠.
그리고 김선화 옆에 숨어있던 남자아이가, 나를 힐끔힐끔쳐다보았다.
"정연아 시윤이한테 인사해야지"
"아... 안녕."
나는 부끄러워하는 꼬맹이를 쳐다보며 끄덕였다.
"안녕~"
"....."
끝내 자신의 엄마 뒤에 숨어버리는 꼬맹이.
"어머...? 정연이도 시윤이가 좋니?"
"....."
"우리 정연이 부끄러워하는 거, 엄마가 처음 보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빛을 내고 있는 내 외모였기에, 그런 반응은당연했다.
내 얼굴을 보던 김선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시윤이... 무섭게 예뻐지네? 나중에 남자들 다 홀리겠어..."
김선화의 말에 아빠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아! 내 정신 좀 봐... 이모~"
김선화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모라 불린 여성과 같이, 다과를 가져왔다.
"드세요, 이모가 만든 쿠키인데, 정말 맛있어요."
나는, '과자가 맛있어 봐야 과하지.'라는 생각으로 한입 베어 물었고...
눈앞에 천상이 펼쳐졌다.
"아..."
잠시 눈을 감으며 음미하고 있자, 김선화가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맛있니?"
"...응."
아빠도 먹어보더니,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맛있네요. 세상에"
내가 넋을 잃고 쿠키를 먹고 있자, 김선화가 말했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면 매일 먹을 수 있는데..."
나는 아빠를 잠시 쳐다본 다음 끄덕였다.
"다연이 통해서 매일 받으면 되죠."
다연이를 빵배달원으로 쓰겠다는 것을 부모님 앞에서 말하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
나를 쳐다보는 김선화, 나는 웃으면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우리 영어 놀이할까?"
"응!"
"... 쿠키... 보내줄게."
4살짜리 꼬맹이에게 졌다는 현실에, 어이없어하는 김선화였다.
어른들은 커피를, 아이들은 우유를 마셨다.
여기는 심지어 우유의 맛도 달랐다.
다연이와 정연이 살이 안찌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시윤이 입맛 까다로워지겠어요... 너무 맛있어요."
"어머... 그러면 안 되는데... 저희 집에서 지내실래요?"
웃으면서 대화하는 김선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대화주제가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본 다연이는 자신의 오빠인 정연이보다 똑똑하다.
물론 나는 환생을 했기에 이상한 거지만, 한빛 유치원 전부가 영재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언제 가져왔는지, 정연이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 조그마한 작은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그리고 자세를 잡더니, 내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말했다.
"와... 대단한데요?"
"정말요?"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가요? 정말 대단해요..."
아빠는 정연이에게 다가가 자세를 잡아주었다.
"여기는 이렇게."
아빠의 바이올린 실력은 그렇게 높게 평가되지 않지만,
음악에는 진심이라는 듯이, 진지하게 정연이의 부족한 부분을 말해주었다.
"어머... 바이올린 선생님이랑 같은 지적을 하시네요?"
"아, 그런가요?"
나는 다연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바이올린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시윤이도 해볼래?"
"아니, 난 뭐든지 잘해서, 저것도 잘하면 아빠 또 울어요."
"....."
아빠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김선화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시윤이는 크면 뭐하고 싶어?"
나는 입에 우유를 묻힌 채로, 김선화의 질문에 답했다.
"흠... 어둠 속을 지배하는 암살자? 이름은 어비스가 좋겠네요."
""...?""
나는 과자를 먹다가, 웃으면서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체육 선생님? 군인? 그것도 아니라면 은둔 고수..."
"".....""
아빠도 내 꿈에 대해서 궁금했는지, 나는 항상 끝에 진실을 말해왔기에, 아직 장난치는 줄 알고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었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다연이의 맞춤형 영어교육을 시작했다.
내 모습을 심각하게 지켜보던 아빠.
"진심인가요...?"
"...시윤이는... 진심인 거 같은데요...?"
나는 서재로 보이는 방에 들어갔다.
"오..."
"여기 오면 안 돼."
다연이가 내 팔을 잡았다.
"왜?"
"음... 아빠 일하는 곳이랬어."
"그럼 조용히, 어지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다연.
"...그런 거야?"
"응."
나는 의자 위로 힘겹게 올라가서, 책상에 있는 프로젝트를 읽어 내려갔다.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
이 말은 진심이다. 뭐라고 적혀있는지 읽을 수야 있겠다만, 도저히 해석하진 못하겠다.
한참을 읽고 있을 때, 때마침 이진석이 들어왔다.
아빠랑 이미 대화를 했는지, 나를 아는 눈치였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렸을 때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진석, 자신의 아빠를 지키려고 박기에게 맞은 칼자국이 얼굴에 옅게 남아있었다.
다연이는 이 서재에서 자신의 아빠를 마주하는 게 무서운지 반갑게인사하면서도, 혼날까 두려워했다.
"안녕,아빠..."
이진석은 다연이를 안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시윤이라고 했지? 예쁘구나~"
"알아요."
"...그래?"
"응."
과거에 그렇게 행동한 이진석으로 인해, 우리는 한성의 일에 관해 손을 털었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큰 회의감을 느꼈었다.
나는 당당하게 A4용지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어른 흉내를 내는 애들 장난으로 여겼는지, 웃고 있는 이진석.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아뇨."
내 당당한 모습에 이진석은 할 말을 잃었다.
"플랫폼이 여기에서 왜 나와요?"
"응?"
"플랫폼은 기차역인데... 왜... 아, 알겠다."
나는 이해가 안 되는 단어들을 프린트를 보지도 않고, 이진석을 바라보며,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ROE, EBITDA, 공매도, 공시 사례, 유동비율, 미처리 결손금, 당기순손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서 도와주는 이진석.
"똑똑하구나..."
"알아요."
"....."
과거 유명했던 한국 노래가 떠올랐다.
"난~ 알아요~"
"....."
내 드립까지는... 받아주지 못한 이진석.
여기 가족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깐깐하지 않고, 순수했다.
내가 지금까지 두 눈으로 보았던 대기업은, 가족끼리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나있었다.
만약 S사의 서재에 앉아있었다면, 별의별 더러운 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회사의 발전을 위한 곳이다.
이렇게 화목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미안한 감정이 들어 이 가정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하아... 난, 무슨 짓을...'
그리고 나와 눈과 마주친 채, 웃고 있는 다연.
짐승처럼 살아갔을 때, 주인의 명령 하에 가리지 않고 움직이던 나에게, 양심이란 것을 다시금 새겨준,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이진석.
그의 품에 안긴 작은 꼬맹이는, 나를 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한성의 대부분의 일이 결정된다는 서재 안, 이진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천장을 보았다.
"...천재... 내 입에서 이런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어..."
"어머, 그 정도에요?"
이진석은 시윤이의 첫인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검고 긴 생머리, 인형같이 어여쁜 아이가, 어른 흉내라도 내는 듯이 도도한척하며, 회사의 일이 담긴 중요한 프린트를 넘기고 있었다.
외부에 발설하게 된다면, 회사가 조금 휘청거릴만한 내용이지만,
이 상황 속에 저기의 적혀있는 글씨 중, 10글자만 기억하더라도, 똑똑한 아이로 취급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도 이곳에 자주 들어오지만, 아직 뒤에 있는 책 이름 하나 외우지 못했었다.
똑똑함을 떠나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곳을 압박감을 줄 수 있는 숨 막히는 장소로 느끼게끔 설계했기에.
하지만, 시윤이는 만화책이라도 읽는다는 듯이,
'가, 나, 다'라도 물어보는 듯이,
수많은 단어들을 한 번씩만 물어보고, 그 많은 분량의 프린터를 다 이해했다는 듯이 덮었다.
아직 가족에 품에 있어야 할 4살짜리 꼬맹이가...
집을 나가기 전, 작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쉿'을 가리키는 꼬맹이.
천재를 떠나서,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이해력과 사고력,
동갑인 자신의 딸 다연이는 아직, 자신의 모국어의 기본 틀조차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외국어의 틀을 일찍이 완성하려고 하는 딸을 보았을 때, 자신의 딸도 천재임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꼬맹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꼬맹이는 천재를 넘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것을 천재라 일컫는다는, 자신의 대학 스승님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와 확연히 다름을 느낄 때, 그것을 천재라 일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