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첫인상
집으로 향하는 아빠의 차 안, 아빠가 핸드폰을 하는 나를 힐끔 보았다.
"시윤아 오늘 재밌었어?"
"맞다, 쿠키 싸왔지?!"
아빠는 운전을 하면서, 나에게 쿠키가 담긴 봉지를 꺼냈다.
"짜잔~ 많이 싸주더라고,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꺼내 먹으면 된대."
"오오... 고생한 보람이 있구먼?"
아빠는 피식 웃으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고생을 했는데?"
"음... 다연이네 가족에게 인정을 받는?"
"...?"
나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빠를 보았다.
"이제 다연이가 나한테 미쳐도, 옳다구나 할 걸?"
"그... 그렇구나..."
"그런 거지."
아빠에게 했던 내 말은 결국 정답이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김선화, 그리고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빠.
나만이라도 보내길 원했지만, 아직 내가 너무 어려서 불안하다는 아빠의 말에 김선화가 백기를 들었다.
나는 유치원에서 다연이가 가져온 쿠키를 먹으면서, 다연이의 한글 과외를 시작했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알아야 돼"
"왜? 영어 하고 싶은데..."
"엄마랑 아빠 한국인이지?"
"응!"
"그럼 한국어를 먼저 해야지."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다연.
"음...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다연이는 나와 있을 때만 공부에 흥미를 가졌고.
결국 김선화는 다연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왔다.
빈손으로 올 수 없다며, 가져오는 옷들.
김선화가올 때마다,각종 명품 옷들이 내 옷 방에 쌓이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옷들도 많은데...'
그리고 이 작은 몸은 빠르게 크고 있어서, 얼마 입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아까워서라도, 한 번씩은 입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연이와의 한국어 공부시간이 지나고, 유치원에서 점심밥을 먹었다.
유치원은 비용 값을 하려고 하는지, 모든 채소는 유기농이었고, 식단 또한 화려했다.
어린 선생은 밥을 먹는 우리를 보며 손뼉을 치더니 집중시켰다.
"내일은 수영장 가는 거, 알고 있죠?"
""네!!!""
"수영복 챙겨오세요~"
""네!!!""
"....."
나는 어린 선생이 말한 수영복이란 단어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가 사 온수영복을 바라보았다.
"하아..."
아빠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윤아... 혹시, 수영장 가기 싫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응?"
'와... 시벌... 이걸 입으라고?'
너무나도 큐티하고 귀염 뽕짝한, 핑크빛의 수영복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닌 거 같아."
"뭐가?"
내가 만약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군말 없이 입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벗고 다니는 것보다, 뭐라도 입는 게 나으니까...
하지만 '시크릿 주주'도, '콩수니'도 안 입을 것 같은 비주얼의수영복.
"나 이거, 도저히 못 입겠어, 차라리 팬티만 입고, 수영하지..."
아빠가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윤아..."
"아빠, 옷 입어,"
"...어?"
"하아... 쇼핑 가게 옷 입어, 차라리 내가 고르는 게 나을 거 같아..."
"왜... 이거 예쁜데..."
나는 아직도 현실을 보지 못한 아빠에게 선을 그었다.
"아빠 눈 너무 허접해, 이러다가 아빠 딸내미 수치사 할 거 같아."
"...응."
결국 나는 아빠를 데리고, 수영복을 사러 밖을 나섰다.
어린이 수영복 매장,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렇게 괜찮은 게 많은데, 굳이 그걸 사왔다고?!"
아빠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시윤이가 입으면... 깜찍할 거 같아서."
"끔찍하거든?"
"....."
결국, 덜 창피한 수영복을 고르고 나서야, 나와 아빠가 만족했다.
자꾸 레이스가 달린 걸 입히려는 아빠 때문에, 욕이 나올 뻔 했지만,
이 어린 초보 아빠가 충격을 받을까, 차마 입 밖으로 뱉진 않았다.
눈으로는 욕했지만.
내가 고른 래시가드를 입고서야, 나는 스스로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야, 잘 기억해."
"응..."
"잘 보라고! 이게 아빠 딸이 원하는 거라고!"
"알겠어어..."
나는 흥얼거리며 차에 탑승했다.
"맞다, 내일 노래 내려고 했는데."
아빠의 말에 잠깐 잔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진짜?"
"시윤이는 어때?"
나는 가능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끄덕이면서 답했다.
"정말 기대돼."
"정말?"
"응!"
"그럼 내일 유치원 가지 말까?"
역시, 작전에 성공했다는 생각을 한 나는 '딱히 뭐 상관없다'라는 듯이 끄덕였다.
하지만 아빠의 이어지는 말은 나를 정색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아빠가 바보여도, 우리 시윤이 내일, 수영장 가는 거 까먹진 않았어."
"....."
"사실 내일모레, 노래 내기로 했지~"
옛날 같았으면 손이 먼저 올라갔겠지만,아빠라는 생각에 이성을 되찾았고.
나는 아빠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냈다.
"....."
"... 시윤아?"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다가 멈추고, 내 눈치를 살피는 아빠.
"....."
그 시선을 무시하자, 아빠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빠가 미안해!!!"
"....."
아빠가 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고, 나는 핸드폰을 보며, 한 손으로 들러붙는 아빠를 밀어냈다.
내가 물을 싫어하냐고?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지금 나는 물고기처럼 물속을 유영하고 있다.
이 작은 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서, 숨을 5분 이상 참는 것이 가능했다.
"우와..."
이곳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 수심이 70cm도 되지 않았다.
어린 선생의허벅지까지 잠기는 깊이.
나는 물 밖에 나와, 내 지도 선생인 어린 선생을 감명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캬~ 왜,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을까?"
손으로 찍으면 분이 묻어 나올까? 새하얀 피부에, 얼굴도 상당히 예뻐서 잡지 모델을 해도 성공했을 것 같을 정도였다.
과거를 떠올려 봐도 어지간한 연예인들은 저 어린 선생님보다 못생겼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직업은 잘 선택한 것 같았다.
한빛 유치원, 그곳에 취업하기 위한 경쟁률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저래 보여도 꽤나 촉망받는 인재라는 거겠지.'
어린 선생은, 아이들을 놀아주다가, 갑자기 엔도르핀이 솟구치는지, 자기 혼자 신나서 놀고 있었다.
'...?'
멀리서 다연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물에 뜨는 패드를 잡고, 강아지처럼 헤엄치며 다가왔다.
"시유나~"
한참을 헤엄쳐서, 결국 내 앞까지 다가온 다연.
"시유나 모해?"
나는 턱을 괴고 어린 선생의 역동적인 무브먼트를 지켜봤다.
어린 선생의 검은 머릿결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굴곡진 몸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흘러가는 미래, 그 끝을 보며, 숨겨진 골짜기엔 어떠한 오아시스가 숨어 있을지... 그에 대한 생각과 망상, 완벽이란 정점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중이지."
"...?"
다연이는 내 시선을 따라서, 어린 선생을 한번 쳐다보고는 물 밖으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나도 수영 잘하고 싶어!"
나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있는, 다연이와 눈을 맞췄다.
"음... 나는 사실 인어야."
"진짜?!"
"사실, 아빠를 좋아해서 다리가 생겼고, 그래서 사람인 척하고 있는 거야"
동그란 눈이 더욱더 커지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다연.
"허억!!!"
"비밀이다?"
"응!"
"나는 인어인데, 다연이가 나만큼 수영 잘하긴 힘들겠지?"
"응!"
"그러면, 앞으로 인어만큼 수영 잘하도록 연습해."
"알겠어! 노력할 거야!"
다연이는 자신의 패드를 들고, 의욕이 넘치는지 수영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완벽 방수가 된다는 핸드폰.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이 보기 전에 다시 집어넣었다.
나는 어린아이의 특권을 이용하기 위해 물속을 유영하며, 어린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안아줘요."
"응? 시윤이니? 알겠어."
나는 어린 선생에게 자주 안겼다.
굳이 말하자면, 걷기 귀찮아서 안긴 것뿐이었다.
물속에 들어온 지금은, 수영하기 귀찮다는 이유랄까?
뭐가 됐든, 안길 때마다 느껴지는 중량감에 내 입에선 감탄만이 나왔다.
"캬..."
"...?"
아빠는 집에서 나를 씻기며 물어보았다.
"수영장 재밌었어?"
나는 잠시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음... 충분히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었어."
아빠는 나를 보더니 웃는다.
"다행이네~"
"난 수영도 잘하더라고."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아빠랑 수영장 갈까?"
"귀찮아."
내 단호한 대답에 풀이 죽은 아빠였다.
"...알겠어."
아빠는 밥을 미리 해놨는지, 나를 의자에 앉혔다.
"내일 우리 노래 나오는 날이네?"
"그렇지~ '우리'노래지~"
아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아빠 너무 기대돼서, 심장 뛰고 있다?"
"그거 안 뛰면, 주거."
내 극단적인 말에 아빠는 움찔하며, 나를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맞지."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들었어, 나도 기대돼."
"정말?"
"응! 콧수염과자 285,715개면 성도 쌓을 수 있겠다~"
아빠는 작업실에서 내가 했던 대화가 생각났는지, 말이 없어졌다.
"....."
"해외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3백만 개... 우와... 성이 10배나 커져..."
"시윤아...?"
"응?"
"그렇게까지는 필요하지 않지 않을까?"
아빠라면, 내가 사달라면 사줄 사람이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사면,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그치?"
"응."
밥을 다 먹은 뒤, 아빠는 내 이빨을 닦이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씻고 나와서, 굳이 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아빠는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해서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기분은 씁쓸하기에...
아마 아빠가 스스로 깨닫고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거부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윤이 배 뽈록 튀어나왔네?"
"그래서 예쁜거야."
"아하핳, 맞네~ 그래서 예쁘네~"
요새 과자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살이 찌는 거 같긴 했다.
그런데, 그걸 고민할 나이가 아님을 더욱 잘 알고 있다.
아빠랑 TV를 보면, 아빠는 동물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자주 봤다.
뭐 나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TV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아빠.
"고양이 키울까?"
"정말?! 시윤이 고양이 키우고 싶어?"
나는 정색을 하며 아빠를 보았다.
"딱 봐도, 누가 키우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지 않아?"
"크흠..."
"고양이 혼자면 심심해할 수 있으니까 2마리."
"그럴까?"
"아기 생기면 귀찮으니까, 중성화해서."
"...아기 생기면 입양시키면 되지 않을까?"
나는 아빠에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냥 입양 보내지그래? 힘들어 보이는데."
"아니야! 시윤아 미안해!!!"
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빠.
자신이 나와 함께 잘 키울 수 있는지부터, 어떠한 일들이 생길지 미리 연습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서, 빗질하고... 시윤이랑 나가기 전에 밥 챙겨주고... 씻기는 건... 2주에 한 번씩....."
한참을 고민을 하던 아빠는 나를 보더니 끄덕였다.
"키우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