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나 강한성, 자본에 굴복하다. (12/99)



〈 12화 〉나 강한성, 자본에 굴복하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아빠는 나를 데리고 알파와 베타가 있는 방으로들어갔다.
나는 이 건물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아까부터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이 부자 아빠를 둔, 재벌 2세의 시선이라는 건가...'

지금까지 해왔던 걱정들이, 단 한 번에 사라졌다.
'세상이 참 맑고,밝도다. 내 인생 또한'

"크하하하."

내가 뒷짐을 쥐며,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빠가 걱정스럽게 나를 불렀다.

"시윤아 괜찮아?"
"응? 그러엄~"

나는 무릎을 꿇고, 알파와 베타를 빗질해주고 있는 아빠를 도와주었다.

"시윤아 돈이 그렇게 좋아?"
"아니?"

 표정에서 거짓말을 보았는지, 아빠가 말을 이었다.

"아빠가... 시윤이 부족하게 키웠나?  그럴까?"

알파를 빗어주던 아빠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툭 뱉었다.

"할머니한테, 나 키울 돈만 있다고 했잖아."
"...어?"
"아닌가?"

아빠도 그 생각을 했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 짓말... 그때 막, 말 떼기 시작했을 때인데..."

나는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서 꺼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연스럽게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도 기억나는데?"
"....."

잠시고민한, 아빠는 언제인가  적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 4살까지... 그렇구나."
"응응,그  심심해서 긴  가지고 놀았었어."

내 말에 잠시 상상한 아빠는 경악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빠르게 검색을 해보더니, 내가 지극히 정상인 것을 알아냈다.
나는 한동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애교를 부리는 베타의 가슴 털을 만졌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5살이 된 시점에 내 키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었고, 이젠 아빠의 골반까지 오게 되었다.
아빠의 뮤비에 등장한 나를 보고는 유아복 모델을 해달라는 제안이들어왔다.
어떤옷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수도 있는데?"
"괜찮아.“




촬영장에 도착한 뒤, 아빠는 멀리에서 내 짐을 들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촬영감독.

"지호 씨, 시윤이가 정말 똑똑한데요?"
"그런가요?"

감독은 아빠를 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와... 정말 감탄밖에  나옵니다. 카메라가 체질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하하..."

각종 촬영을 끝내고, 내가 촬영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던 아빠는...
 사진들을 보더니 혼자서 끄덕이며, 자신의 지갑에 넣었다.

"왜, 거기다 둬?"
"응?"
"엄마랑 같이 놔야지."

아빠는 잠시 지갑을 쳐다보더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아빠가 사진 더 받아올게"
"....."

나는 아빠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진을 선택했었다.
나와 찍은 사진을 상자에 집어넣으면, 엄마도  수 있다는 말로...



집에 도착한 뒤, 아빠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는 아빠를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노트와 펜을 쥐었다.
음악 쪽은 너무 빠르게 습득하기에,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용도로, 가장 못하는 그림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하다 보니, 동갑내기들을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훗... 나의 재능이란..."
"시윤아 뭐 하고 있어?"
"아빠 그려."
"정말?"

아빠는 내 그림을 보고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뭐야 그 반응은?"
"...응? 너무 멋지네~ 이게 아빠야?"

영혼 없는 반응에 나는  그림을 찢으려는 시늉을 했다.

"아니야! 완전  그렸는 걸?! 사진 찍은  아니야?! 진짜 못하는  없네 우리 딸~"

나는 아빠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으면서 그림을 제자리에 놔뒀다.
내 그림 실력이 나이에 비하면 압도한다는 거지, 그래봐야 초등학생 저학년 수준의 그림이었다.

"시윤아 그림 그리는 게 재밌어?"
"내가 못하는  있을 같아?!"

내가 펜을 돌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자,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시윤이 엄마랑 아빠,  다 그림을  그려서, 시윤이도 그림은 잘... 못할걸?"
"노력으로  되는 건 없어."
"그걸 5살짜리가 말하는 게, 어이가 없긴 하네"

비꼬는 아빠의 말투, 내가 말없이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는 흠칫했다.

"...나 화가 할래."
"...어?"
"가장 못하는 걸로 성공해야지~ 그럼 다른 것도 다~~ 잘하겠지."
"음... 시윤아? 가장 잘하는 걸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끄덕였다.

"그러면, 싸우는 거?"
"...우리 시윤이 싸움 잘해?"

내 대답이 장난인  아는 아빠.

"응, 아빠보다 잘해~"
"에이~ 아빠가 얼마나 쎈데?!"
"아니야, 아빠 약해."
"....."

아빠는갑자기 팔을 걷어 올리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뭐하자는 건가 싶어, 아빠를 쳐다보았다.

"팔씨름 덤벼."
"꺾어버린다?"

내 한마디에, 새끼손가락을 접는 아빠.

"...미안."

나는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림을 마저 그리기 시작했다.
실력은 늘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리는 속도만 빨라지고 있었다.
거의 찍어내는 수준으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으로 '그림 연습'을 검색한 뒤, 따라서 그리기 시작했다.

"오..."

아빠가 요리를 하다가, 나를 지켜보더니고개를 끄덕인다.
완벽한 손가락 형태를 가진 그림.
영상을 끝낸 뒤, 노트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리고 영상을 보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노트에 그린 손가락은, 콩나물이 되어 있었다.

"....."
"...풋."
"...웃어?"

내 눈빛에 아빠가 움찔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아빠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아빠."
"...으응?"
"5살짜리 꼬맹이보다 잘하는 것도 얼마 없으면서, 남들이 보면 버릇없어 보이게 만들지 마."
"넵."

나는 그림 그리는 것에 질려서 노트를 옆에 대충 꽂아놓았다.
내 눈치를 보던 아빠가,내가 꽂아놓은 노트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는 항상 노트와 펜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그리기에 빠져있는 나에 대한 아빠의 배려였다.
또 나는 아직도 아빠의 품에서 잠든다.
이 어린 아빠는 내가 없으면, 잠들지 못했기에.








이제는 집에 다양한 사람들이 놀러 오기 시작했다.
다연이네 어머니를 시작으로, 베일에 싸여있던 아빠의 지인까지,

"할머니, 오늘 자고 가요?"
"그럼~ 우리 시윤이도 좋니?"
"응. 할아버지는?"
"바빠서 내일 온다고 하더구나~"

나는 빠르게 그림을 그려서, 할머니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보던 아빠는, 할머니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할미야? 엄청 똑같네~"
"아빤데...?"
"".....""

아빠는 PTSD라도 오는지,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아빠의 표정을 보더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할머니 손에 들려있는 공책을 뺏으려고 하자, 할머니는 공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가 할머니 닮았잖니? 그래서 헷갈릴  있는 거야~ 할머니도 머리가 짧잖아~"

나는 애써 변명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흐음... 좀 더 설득해 봐요."
"그... 그리고... 아빠가 시윤이처럼 예쁘게 생겼잖니? 예쁘게 그려서 할머니인 줄 알았지~"

나처럼 예쁜 아빠가 예쁘게 생겨서 예쁘게 그렸더니, 예뻐서 할머니인 줄 알았다라...
'내가 그린 기린그림은 기린그림이고, 네가 그린기린그림, 이런 건가?'

내가 정말로 5살짜리의 사고력을 가졌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법한 변명이다.

"솔직하게 할머니도 말 안 되는 거 알죠?"
"...그렇네."
"내 스케치북 줘요."

할머니는 결국, 나에게 그림 한 장 받아 가지 못했다.
나는 이런 행위에 재미를 붙여서, 하루에  번씩만 사람들에게 그림을 받아 갈 기회를 줬다.
의외로 다연이가 내 그림을 가장 많이 가져갔다.
이런 것에 재밌어하는 나를 되돌아보니, 몸이 어린아이가 됐다고 생각마저도 몸을 따라가고 있는듯했다.
이젠,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나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눈앞에 알파를 놓고 그리기 시작했다.
1년간 반복한 덕에, 내 그림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럼에도 아직은 초등학생 고학년 수준이지만,  있으면 중학생 수준으로 올라갈 법하다.

"시윤아."
"응?"
"아빠랑 악기 해볼래?"
"쉬워서 싫어."

쉬워서 싫다는 소리를 살면서 들어나 봤을까.
아빠는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어려울걸?"

아빠는 먼지가 쌓인 바이올린을 꺼냈다.
먼지를 털어내고 조율을 하던 아빠는 바이올린을 켜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아빠, 이번 노래에, 내가 바이올린 켜는  들어갔으면 좋겠어?"
".....“
"속보여."

아빠는 그렇게, 다시 바이올린을 집어넣었다.

"피아노라면 쳐줄게."

아빠는 눈을 반짝이면서, 하루 종일 나에게 어떤 피아노가 좋냐고 물어보았다.

"그랜드 피아노는 좀... 오바 아니야?"

아빠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야, 소리가 완전히 다른 걸?"
"디지털 피아노면 돼."

아빠는 아쉽다는 듯이 인터넷 사이트를 쳐다보다가 끝내 디지털피아노를 주문했다.



"오늘은 아빠랑 외식할까?"
"고기?"
"당연하지~"
"좋아."

우리는 외출 준비를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빠는 나를 카시트에 앉혔다.

"뭐 먹으러 가는데?"
"기대해도 좋아~"

고깃집을 향해 가는 도중, 장성만 대표가 조수석에 타고, 지은 이모는 내 옆에 탔다.
내가 시크하게 손인사만 하자, 지은 이모가 내 볼을 만졌다.

"시윤이~~"
"아파."
"힝... 살살 만졌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만지며 영화 리뷰를 틀었다.

"오... 나도 그거 재밌게 봤는데."

나는 아빠 눈치를 보며, 지은 이모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줬지만, 눈치 없는 지은 이모는  밖으로 말했다.

"에일리안 대 프레다터라니, 완전 옛날 영화잖아~?"
"김시윤..."
"...응?"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빠가 그런 거, 보지 말라고 했지."
"...알겠어..."

내가 지은 이모를 찌릿 쳐다보자, 이모는 내 시선을 피했고, 그 모습을 룸미러로 확인한 아빠가 말했다.

"누구 탓을 하려고 그래? 시윤이가 본 거면서?"
"...미안."

아빠는 한숨을 쉬더니, 운전에 집중했다.
나에게 조용하게 사과하는 지은 이모.
나는 지은 이모를 무시하며,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소리를 일부러 키우며, 뽀루루를 틀자, 차 안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는  제일 좋아~]

"".....""

약한 반항심에 내가 관심도 없는 뽀루루를 틀었으니, 아빠가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노... 노는 게 제일 좋아..."

어색하게 따라 부르는 내 모습에, 아빠가 피식 웃었고, 나는 핸드폰을 이모에게 건넸다.

"이모 이거나 봐.  잘래,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시고요, 아빠도 나중에 시간 되면 자."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려고 했지만, 정말 그대로 잠들었다.
이 몸은 너무나도 쉽게 잠에 들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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