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재회.
솔직하게 지수라는 여성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얼굴부터 개그코드까지 나와 맞았다.
내가 강한성이였으면 결혼까지, 아니 손주의 이름까지 생각할 만큼.
내가 계속 지수에게 붙어있자, 지수는 주변의 부러운 눈길을 받고 있었다.
아빠가 웃으면서, 나에게 물어본다.
"시윤아 지수 이모 좋아?"
나는 아빠의 목소리에 정색하며, 대답했다.
"뭐."
"...힝."
나와 아빠의 대화를 웃으면서 지켜보던 지수는, 나를 품에 안고는 핸드폰 게임을 시작했다.
그냥 영상인 줄 알았던 게임은, 지수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캐릭터가 움직였다.
'와... 기술력 봐라.'
"시윤이도 할래?"
"이모, 아빠한테 혼날걸?"
"앗..."
지수는 아빠의 눈치를 봤다.
"시윤이 게임 시키면... 그것만 할 거 같아서... 어렸을 때 핸드폰으로 영상 보여줬다가, 신기해하더니 지금까지 그것만 보거든."
"아빠가 쫌생이라, 나 초등학교 들어가면 게임하게 해준대."
"시윤아... 아빠한테 쫌생이가 뭐야."
나는 모르는척하며, 지수가 하고 있는 게임을 쳐다보았다.
점점 줄어드는 자기장을 피해, 생존을 해서 1등을 가리는 게임 같았다.
나는 한동안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곤함을 느껴서 아빠에게 다가갔다.
"시윤이 피곤해?"
"다리 아파. 주물러줘."
아빠는 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며, 허벅지를 주물러줬다.
"시원 하구나~"
"그렇사옵니까."
나는 잠깐의 대화를 한 뒤, 그대로 기절했다.
다들 시윤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대화했다.
"시윤이 너무 예쁜데요?"
"고마워... 잠깐만, 시윤이 좀 눕히고."
지수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저희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돼요."
"아... 그럼 그렇게 할까? 시윤이도 집에서 자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리제가 옆에서 끄덕였다.
"네~ 나머지는 연습 해올게요~"
"다들 수고했어, 들어가서 쉬어."
""네~ 고생하셨습니다~""
작업실의 청소를 끝내고 걸그룹 멤버들이 나가자, 작업실에는 김지호와 시윤이만 남았다.
김지호는 시윤이를 안은 채, 홀로 녹음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시윤이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오빠! 아압."
큰소리로 부르려다가, 김지호의 품에서 시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본 지은이 입을 급하게 막았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지은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윤이... 자고 있었구나."
잠시 시윤이의 얼굴을 확인한 김지호가 끄덕이며 답했다.
"응, 정리하고 가려고."
"드리밍 애들 끝났으면, 같이 놀자고 말하려 했는데."
"애들 끝났어, 숙소에 가면 있을 걸?"
"그래? 알겠어, 오빠도 수고 했어~"
"응, 들어가~"
지호는 시윤이를 안은 채로 조심스럽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C-19가 심해지며, 보호본능이 심한 아빠는 나를 밖으로 일절 내보내지 않았다.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빠는 집 안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나는 아빠와 악기로 노래를 만들거나, 다연이와 수영장을 간다든지, 유치원에서 하는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021년, 나는 6살이 되었다.
C-19의 반복되는 유행에 우리 사회는 이미 적응을 마친 듯 했다.
유치원에선, 부모의 동의하에 등원을 시키게 되었다.
나머지는 화상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시윤아 화면 봐야지."
노트북에선 어린 선생이 나왔다.
"눈 나빠져요."
-"잠깐 본다고 안 나빠져."
어린 선생이 가르치는 수업은 그림 수업이었지만...
솔직하게 나보다 못 그린다.
-"자, 화면에 보이는 걸 그려주세요~"
나는 펜을 돌리며, 빠르게 그려나갔다.
유치원에선 이런 식의 수업을 하루에 4시간씩 들어야 했다.
"시윤아~ 끝났어?"
"응."
아빠는 내 대답을 듣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자신이 혹시라도 C-19에 걸려서, 나에게 옮을까봐 밖으로 안 나가는 아빠.
나는 곰돌이 잠옷 바람으로 뒹굴 거리다가,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튜브 요리 방송을 보기 시작한 아빠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나에게 너튜브를 보다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만들어 주겠다고말했다.
나는 대답없이 식탁에 앉아서, 알파와 베타 그리기에 집중했다.
다연이네 가족과 아파트 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2022년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동안 아빠와 낸 노래와,내가 찍은 아동모델 사진들로 나는 스타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7살이 된 지금 C-19가 완전히 종식되며, 드디어 유치원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시유나~"
"왜."
만화책을 들고 있는 다연이가 얼굴을 붉힌다.
"카미노의 농구 봤어?"
"아니?"
"진짜 꼭 봐야 돼! 대박이야!"
다연이는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뒤로, 일본 만화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
"응응, 카미노... 너무 멋있어..."
"맛있어?"
"...멋있거든."
나는 내가 다연이의 길을 잘못 들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책을 펼쳤다.
- 私は経営者の安藤だ (나는 경영인 안도다.)
"완전 일본어네?"
다연이는 나와 오랫동안 같이 다니면서 영어는 이미 완벽한 수준까지 올라왔고, 일본어를 만화로 배우고 있었다.
"응,"
읽는 속도는 나보다 한참 느리지만, 차분히 읽어 내리는 다연.
나는 다연이를 배려하며, 천천히 책을 넘겼다.
"어려웡..."
"어려서 그래."
"시유니도... 어린데?"
"음... 난 인어잖아."
성장통을 겪는 시기여서 그런지, 가끔 몸이 욱신거린다.
신체 비율이 달라진 나와 다연이 앉아있자,반대편과는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 반대편에선, 꼬맹이들이 장난감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저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저렇게 행동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클수록, 급격하게 늙어가는 어린 선생.
'고생이 많수다.'
나는 다연이를 보며 말했다.
"비운의 안토니오 어디 갔어?"
"아!"
심각한 표정을 짓던 다연이가, 빠르게 가방에서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고 있는 토끼 인형을 꺼냈다.
"ごめん(고멘), 안토니오!"
다연이의 일본어는 자신의 귀여움을 뽐내는 듯했다.
비운의 안토니오를 자신의 품에 안더니 책을 읽어 주는 다연.
"カミノはセイレンの光です。 (카미노는... 세이렌의 빛입니다.)"
"...?"
다연이는 일본 만화책에 푹 빠져서, 안토니오에게 설명했다.
"似てるよ。カミノは。(닮았거든요. 카미노는.) 꺄악~"
일본어로 읽어주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다연이에게말했다.
"음... 안토니오는 영국인인데, 일본어 모르지 않을까?"
"헤에!? 안토니오! 설마... 지금까지... 못 알아들었어?"
갑자기 진지해진 다연이, 영어로 번역해주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다연이의 언어 구사력에 감탄이 나왔다.
어린 선생이 손뼉을 치며, 꼬맹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늘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맹이.
사람을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되게 순박하면서도 멍청하게 생겼다.
"이름은 박지훈이라고 해요~ 다들 환영해주세요~"
""우와~~~""
옷은 역시 명품이었다.
이곳의 꼬맹이들은, 부모를 잘 만난 케이스.
"지훈아,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요~"
어린 선생이 말과 함께 뒤로 물러나자, 새로 오게 된 꼬맹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왜 이런 어린애들이랑... 하이고, 두야..."
박지훈이라 불린 남자 꼬맹이가말을 꺼내기 전, 입모양에서 분명히 '시벌'이 보였다.
나는 잠시, 박지훈을 쳐다보았다.
말투가, 저 표정이, 특히 저 시선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나를 발견하고는 '예쁘네' 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끄덕이더니, 구석에 이불을 가져가더니 눕는다.
어린 선생이 당황해하며, 눕는 박지훈에게 다가갔다.
"...지훈아?"
"잘래요, 키 좀 크게 건들지 마요."
"....."
무언가 데자뷰를 느낀, 어린 선생이 나를 잠시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박지훈에게 눈을 떼지 않자, 다연이가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박지훈을 보고 있던 중,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덩치 큰 남자애가 지훈의 발을 밟았다.
내가 예전에 처음 자고 있을 때, 내 발을 밟았던 바로 그 꼬맹이었다.
그때 저 꼬맹이는 혼자서 울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반응이 조금 달랐다.
"왜 여기에서 자고 지랄이야!"
지훈이에게 욕을 박으며, 자신의 장난감으로 툭툭 치는 덩치 큰 꼬맹이,
그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시벌... 좀만한 애새끼가 진짜..."
"너! 뭐라고 했..."
박지훈은 자신을 툭툭 치는 장난감의 다리를 잡고, 서랍에내려쳤다.
박살 난장난감의 다리를 쥐고 있는 박지훈.
"네 입에 박아 넣기 전에 가라."
딸꾹질을 하는 덩치 큰 꼬맹이.
박지훈은 장난감 다리를, 서랍 뒤쪽으로 던지며 말했다.
"애새끼진짜... 귀찮게 하네."
저 반응을 보니 확실해졌다.
과거, 어떤 어린 학생은 내 라이터를 훔치려다가, 내 부하에게 심하게 맞았었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지, 숨을 고른 학생은 피투성이의 얼굴로 부하의 귀를 물어뜯었다.
한쪽 귀를 잃은부하는 칼을 꺼냈지만, 어린 학생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지막까지 내 옆에 있을 것이며, 나를 지키겠다고, 만약 지키지 못하더라도 같이 죽을 거라고, 말해놓고...
우리 중 누구보다 빨리 죽은 병신.
칼을 맞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나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겠다며 발을 잡다가, 얼굴에 둔기를 맞고 함몰된 병신.
이빨은 전부 빠져서 말도 못 하는 와중에도 나보고 도망치라고 했던 병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도 소중히 아꼈던 병신이 눈앞에 누워있다.
내가 중얼거리며 박지훈이란 꼬맹이를 보고 있을 때, 다연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무식해..."
다연이는 더러운 것을 본 것 같은 눈빛을 했지만, 내 눈에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 진짜야...? 하아... 나만 온 게 아니었어..."
"시유나?"
"나만... 미래로 온 게 아니었어..."
그리고 자고 있는 박지훈에게 다가갔다.
"시발... 혼자가 아니었다고."
내 기척을 느꼈는지, 자신이 자고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숨소리를 일부러 더욱 크게 내는 박지훈.
나는 그런 병신의 배를 강하게 발로 찼다.
'뻐억!' 소리가나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커헉!"
생각보다 강한 힘에, 쿨럭 거리는 박지훈,
그 모습을 보던 꼬맹이들은, 자신들의 서열 1위인 나를 응원했다.
"하, 시발, 진..."
내 우는 얼굴을 보고 말이 없어진 박지훈.
"네가 왜 우냐?"
당황한 지훈이 말했다.
"네가 먼저 때려놓고 왜 우냐고? 억울해 뒤지겠네."
"하아... 너... 재형이냐?"
어린 꼬맹이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