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재회. (16/99)



〈 16화 〉재회.

나는 눈치를 보고 있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잠깐만  좀 보고 있을래?"
"으...응."

내가 박지훈을 발로 찬 뒤, 다연이는 상황이 심상치않아 보였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구세요...?"

나는 다연이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누구 같냐 십새끼야."

완벽이라 칭해도 좋을 만큼, 흠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얼굴과 김선화가 선물해  귀티가 흐르는 옷차림.
박지훈은 그런 나를 천천히 위아래를 훑었다.

"...에이... 설마... 에이~"

고개를 저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가 말이 없어졌다.

".....형님이오?"

나는 그 말투에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얼굴을 본, 지훈이 갸웃하면서 말했다.

"아닌데?"
"이 새끼가, 진짜 뒤지려고..."

 말투에움찔한 지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냐?내가 오랫동안 형님 지켜봤는데, 누가 뒤져도 우는 꼴은 못 봤는디?"

저 족보도 없는 사투리, 너무나도 익숙하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커억!"
"시발 새끼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는 박지훈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당황한 다연이가 빠르게 뛰어왔다.

"꺄아악!!! 시유나!!!"
"너 죽고, 나 살자  새꺄."
"형니임!!!"

지훈은 자신의 부운 얼굴을 부여잡고, 잘못했다며  다리를 붙잡았다.

"어떡해..."

그때 어린 선생이 우리를 발견하고, 크게 당황해하며 달려들었다.

"김시윤!!!"







시간이 흐르고, 원장 선생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손을 들고 있는 나와, 손을 들고 치료를 받고 있는 지훈이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세상에..."

원장님은  앞에 오더니, 무릎을 꿇고 숨을 골랐다.
어린 선생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급하게 뛰어온 것 같았다.

"시윤이가 그랬어요?"
"네."

차분하게 나에게 묻는 원장.

"왜 그랬어요."
"쟤가 성희롱했어요."
"".....?""
"그리고 저보고, 엄마도 없다고 놀렸어요."
"....."

경악한 표정을 짓는 지훈.
원장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박지훈에게 다가갔다.

"지훈이가... 정말 그랬어요?"

 눈치를 격하게 보는 지훈이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나는 말없이 정색하며 쳐다보았다.

"...네."
"후우..."

원장님은 안절부절못하는 어린 선생에게 말했다.

"빨리 지훈이 부모님한테, 전화 걸어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지훈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어머!! 어떡해!!!"

아빠는 상황을 판단했는지, 바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훈이의 어머니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니에요... 들어보니까... 하아... 지훈이가 먼저 잘못했더라고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네?! 아닙니다! 제가... 제가 딸을 잘못 키운 것 같습니다."
"어머! 그러지 마세요. 저희 애가 입이 너무 험해서... 시윤이가 참기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잘못 키운 거죠..."

나는 유치원에 와서 한 번도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꼬맹이들을 놀아줬으면 놀아줬지.
아빠는 화가 많이 난 듯, 나를 처음 보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 시윤이랑 잠시 대화 좀..."

나는 원장님을 보며, 살려달라는 듯이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원장, 이 공간에 내 편은 없었다.

"여기에서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
"김시윤..."

"응."
"따라와."

나는 아빠에게 비장의 카드를 썼다.

"아... 안아줘."

아빠는 그런 나를 정색하면서 쳐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따라갔다.





"시윤아..."

나는 아빠의 눈을 피했다.

"아빠 봐봐."
"응."
"아무리 화가 나도... 친구를때리면 어떻게 해..."
"미안."

아빠는 내 손을 확인했다.
어린아이가 주먹을 휘두르면, 연약한 피부가 찢어지기 마련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두 손.

"...핸드폰 1달간 압수."
"...어?"

아빠는 내 두 손을 수갑 채우듯 한 손으로 잡고는,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집에 가서, 30분 손들고 있어."
"...응."

내가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는 시늉을 하자, 아빠는 힘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무시했다.

"30분 동안 손들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줄거야."
"...응."











유치원에서 싸운 뒤 바로 하원 조치가 취해졌고, 집에 도착했다.
차에 있는 동안, 아빠는 나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처음 겪는 아빠의 모습에, 내가 실수했음을 느꼈다.
나도조용히 조수석의 뒤편만 바라볼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아빠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응."

나는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하아... 시바...'

정확하게 30분이 되자, 아빠가 나를 불렀다.

"시윤아, 여기에 앉아."
"응."
"뭘 잘못해서 혼났는지 알아?"

나는 팔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30분간 들고 있어서 팔과 다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대충 말했다.

"지훈이는 말로 했지만, 난 때린 거."
"....."

아빠는 침묵했고,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거짓말로 상황을 만들었다고 했어도...
엄마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나를 단호하게 혼내는 아빠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미안. 그런데 아빠, 다음에도 안 그런다고  수는 없을 거 같아."
"....."
"부모욕을 듣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하아..."

아빠는 나를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무조건 '내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순간 울컥했다.

"진짜 엄마 없는 내 마음, 아빠는 모르잖아."
"....."
"진짜 없다고... 그래서 남들이 그거 가지고 놀리면,   그럴 거야."

아빠는  말에 오랫동안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알겠어, 아빠가... 미안."

아빠는 말없이 나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뒤, 먼저 잠을 자러 들어갔다.
나는 배가 고파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음식 냄새가 나서 혼자라도 해먹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작았다.
나는 창고에 들어가, 힘겹게 과자봉지를 꺼냈다.
그리고 창고에 대충 앉아 과자를 주워 먹고는 아빠의 방을 한번 쳐다보았다.

"....."

잠시 고민한 나는,  방으로 향했다.







아빠의 실망한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올라서, 잠이 오지 않아 천장만 바라보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내가 조금 전 혼자 꺼내 먹은 과자봉지가 들려있었다.

"아빠가 미안해..."

내가 벌을 서는 동안 저녁밥을 만들었지만, 나로 인해 받은 충격으로, 밥을 먹이는 것을 깜빡한 것 같았다.
아빠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뒤돌아 누워있는 나를 보고 감정이 격해졌는지, 아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아... 아빠가... 아빠가... 부족해서... 미안해."

과자봉지를 들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아빠.

"...데리러 왔어?"
"응..."
"안아줘."

아빠는 나를 강하게 안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자러 가자."

내 목소리에 안심이라도 되는지, 아빠는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응."

29살의 아빠는 혼자서 7살의 아이를 키우기에 아직 어리고 힘들 나이였다.




요즘 아빠의 노래에 달려있는 댓글을 보는 재미가 있다.

- 딸이랑 싸우고 만든 노래인 듯.
- ㄹㅇㅋㅋ
와... 근데 지호 시간 지날수록 내는앨범들... 지린다.
- 진짜... 감정 찐하게 녹아있다.
- 어떻게  때마다 레전드를 갱신하냐...
- 지호 나이가 29임... ㄷㄷㄷㄷ
- 시윤이가 벌써 7살이네 ㄷㄷ


아빠의 노래 가사엔, 항상 내 이름이 박혀있었다.

"시윤아~"
"응?"
"밥 먹어."
"응,"

나는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는 밥을 먹으러 갔다.
어제의 일로 어색한 식사 자리일  했지만, 내가 분위기를 깼다.

"오늘도 싱겁구먼!"
"...다음부터 소금 좀 더 넣을까?"
"흐음... 소녀 아직 7살이니... 1살만  먹으면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해 봅시다."
"아핳."

나는 미지근한 미역국을 마셨다.

"크음... 시원하구나."
"예~ 감사하옵니다."
"오늘은 국이 맛있으니, 밥을국에 말아서 먹어야겠구나."

아빠는 어제의 일로 인해, 고민을 많이 한 듯,  반응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문 채로, 나를 보고 있는 아빠와 눈을 맞췄다.

"왜."
"으응? 아니야. 맛있어?"
"싱겁다니까?"
"...응."

나는 평소와 같아진 아빠를 보면서, 다시 평소처럼 아빠를 대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손길에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한 뒤, 아빠가 머리를 말려줬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머리 자를까?"

아빠가 움찔하며 말했다.

"왜...?"
"흠... 너무 펄럭여서?"

아빠는 내가 정말 자르고 싶다면, 잘라도 된다고 표현했지만, 아쉬운 티를 냈다.

"시윤이는 머리 긴 게 예쁜데..."
"어휴... 그럼 그렇게 합시다."

머리를 말리고, 내가 유치원에 가야  시간이 되었다.
아빠는  일기를 다시 확인하고, 내 가방에 공책을 집어넣었다.
 가방에 이것저것 차곡차곡 쌓더니, 무겁다고 느끼는지 몇 개를 뺐다.

"뭐해?"
"음... 시윤이 물통 필요해?"
"쓰지도 않더라."

아빠는 가방의 무게를 줄인 뒤 어깨에 메고, 나를 들어 올렸다.

"유치원 가자~"
"응."





아빠의 자동차 안, 내가 핸드폰을 보고 있자, 아빠가 상석에 타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곧 도착하는데 준비 다했어?"
"응."

준비라고 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냥 가방을 챙겨서 몸만 가면 되는 것을.
한빛 유치원에 도착하자, 아빠가 카시트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내가 먼저 아빠에게 말을 꺼냈다.

"가능한 대화로 풀려고 노력할게."

아빠는 내 모습을 보며, 밝은 표정을 짓더니 끄덕였다.

"다음에 또 그래도 되지만, 손부터 나가지는 마, 알겠지?"

또 그래도 된다는 게 참... 애한테  소리인가 싶긴 했지만 나는 끄덕였다.

"알겠어."
"이따가 데리러 올게~"
"응, 또 나랑 부를 노래, 만들고 있어~"
"응."
"나 몰래, 다른 엄마 만들지 말고."
"...어?"

아빠랑 7년째같이 살다 보니, 말투도 비슷해졌다.
내가 아빠를 따라 하는 거지만.
아빠는 입구에 나를 데려다준 뒤, 어린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는 차를 타고 갔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방금 간 아빠도, 원장도, 앞에서 나를 반기는 어린 선생도 아니다.
'이재형  개새끼'

박지훈을 발견하고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다가가는 나를 발견했는지 움찔하는 지훈,  새끼는 평소에도 입이 험했는지, 부모님한테 혼난 것 같지도 않았다.

"형님 어젠, 너무한 거 아니오."
"남들 앞에서 형님 형님, 하지 마라 입 찢어버린다."
"....."
"십새끼 너 때문에 혼나느라 잠도  자고."

예쁘고 여린 작은 몸으로 화를 내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라고 느꼈는지, 지훈이 웃었다.

"...웃어?"
"흡!"

내가 정색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기겁하며 물러나는 지훈.

"재밌어...?

나와 붙어있는 지훈이를 보고, 화해했다고 생각하는 어린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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