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재회. (17/99)



〈 17화 〉재회.

내 표정으로 인해, 과거가 생각나는지 겁을 먹은 박지훈이 움찔거린다.
나는 표정을 풀고 한숨을 쉬며말했다.

"하아... 늦었지만, 뒤지게 반갑다."

나는 지훈이와 말을 맞춰, 남들이 있을 때만큼은 그냥 친구처럼 말을 놓으라고 했다.

"그... 그래."

나와 다연이의 고정 자리로 돌아가자, 다연이가 책을 읽고있었다.
일본어로 적힌 만화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다연.

"다연아."
"!!! 시유나! 왔어?!"

책에 집중하던 다연이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일어나서 반겼다.
나는 옆에 있는 박지훈을 쳐다보았다.

"얘는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야."

내 말에, 다연이가 친해지기 싫다는 듯이, 억지로 인사했다.

"아... 안녕."

다연이는 나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순간부터 낯을 가렸다.

"얘는 다연이고, 한성의 둘째"
"엥?!"
"....."
"네가 이기석... 아니지... 설마, 그... 이진석?"

안 그래도 박지훈이 마음에안 들었던 다연이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너, 뭔데 우리 할아버지랑 아빠 이름  불러?!"
"...아 미안하다."
"시유나... 나 얘 싫어..."

다연이에게 미운 털이 박혔나 보다.

"응응, 나도 쟤 싫어."

새로운 친구로 인해, 나를 뺏길까 두려워하던 다연이는 내 말에 밝게 웃었다.

"와... 내가 인간 대신,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게 한스럽다."
"난 분명 그 때 튀라고 말했다?"

다연이가 나와 지훈이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안토니오랑 같이 안 왔네?"

비운의 안토니오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연의 표정이 밝아진다.

"응! 가연이 놀아주고 있어."

가연이는 다연이의 남동생이다.

"가연이는 좋겠는데? 안토니오가 지켜주고."
"응."

나는 지훈이를 바라보았다.

"이야~ 네가 혐오하던 범생이 스타일이네?"

눈도 작고 얼굴도 어디 가서 기를 못 펴고 다니게 생겼다.
내가 박지훈에게, 시비를 거는 줄 알고 겁을 먹은 다연이.
하지만 박지훈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얼굴 박기 닮았어."
"어엌?"

보인다...
박지훈에게 박기의 용모가 눈에 보였다.

"....."

자신의 새로운 외모에 한숨을 쉬는 박지훈.

"그럼, 분명 박기도 어딘가에 있겠지?"
"설마... 다른 애들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겠지."

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어색한 지훈이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나와 12살이나 차이가 났던 지훈이다.
다시 만화책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다연이를 두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삶의 의미나, 목표는 있고?"
“S사 부수려고 했지."
"어떻게?"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힘쓰는 거 밖에 더 있남?"

나는 지훈이의 말에 이상한 점을 느꼈다.

"너 엊그제 뭐 먹었는지 기억해?"

내 말에 박지훈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흠...? 우리가 언제 그런  기억했다고."
"....."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훈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423 x 382 는?"
"...장난해?"
"161,586"
".....?"
"이거... 나만 되는 거냐?"

나를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훈.
옆에서 다연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힝..."
"다연이 할 수 있었어? 미안, 내가 너무 일찍 답을 말했네?"
"응... 너무 빨리 말 했어..."

나는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이 몸이, 엄청 똑똑한 거였네..."
"....."
"넌, 더 멍청해진  같고."
"...뭐요?"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흠, 나도 목표는 비슷해, S사의 끝."
"....."
"그리고 어딘가 숨어있는 태백의 끝."

지훈이 나를 쳐다보았다.

"S사는 내가 한다, 태백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박기랑 네가 맡아라."
"....."

우리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면서...
색연필로 토끼를 그리고 있었다.






한빛 유치원, 내가 7살이 되자, 유치원에선 많은 일들을 시켰다.
부모님이 데리러 오면, 하원을 하던 5살 때와는 달랐다.
5시가 돼서야 하원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또한 아이들의 재능을 좀 더 확실하게 찾아주기 위해, 더욱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시킨다.

"시윤아, 우리 그림그리기 말고 수학 놀이할까?"
"흠..."

나를 일반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어린 선생을 보고, 옆에서 지훈이 키득거린다.

"저, 멍청한 애는 수학 놀이가 꽤나 필요해 보이는데, 데리고 가요."
"시윤아! 친구한테 그러면  되지!"

나는 잠시 지훈을쳐다보았다.
나를 비웃는 지훈.
'이 새끼 왜 이렇게 재수 없어졌냐.'

어린 선생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담당인 다른 꼬맹이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흐르고,  가지 사실을 알  있었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의지대로 움직였던 지훈과 나는 근력이 남달랐다.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운동장에서 일본어로 적혀있는 만화책을 보며, 다리를 동동거리는 다연.
나는스케치북을 가지고 옆에 앉았다.
잘 크고 있는 다연이를 보고 있으니, 대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다연이에게 장난치고 싶어졌다.

"카미노 그려줄까?"
"으...응."

다연이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다.

"....."
"그... 그려줘!"
"...싫어."
"시유나!!!"

다연이는 책을 덮어서 나에게 건네고는,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려주세요!"
"흠... 그렇게 원한다면, 그렇게 할까?"
"응!"

하지만 자신의 카미노가  허접한 손길을 탄다는 것에 다연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펜대를 돌리며, 만화책을 보지도 않고 그리기 시작했고, 다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 보고 그리는 게 낫지 않을... 까?"

내 기억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만화책 주인공의 얼굴을 기억한다.
하지만 직접 보면서 그리는 것과 안 보고 그리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보면서 그리는 것은이젠 복사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안 본다면 표연 하고싶은 게 많아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못 믿어?"
"아니..."
"책이나 읽고 있어."
"...응."

풀이 죽은 다연이는, 자신의 만화책을 가져갔다.
7살이 되며 부쩍 예뻐지기 시작한 다연이지만, 나나 지훈이의 눈엔 그냥 귀여운 꼬마 아이다.
내가 들고 있는 펜이 망설임 없이 쭉쭉 뻗어나가자, 다연이의 동공이 흔들렸고 만화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다연.

"만화책 읽어."
"응..."
"소리 내서."

일본어로 소리 내서 읽는 다연이는 부끄럼 없이 말하고 있지만... 만화 대사가 참...
내가 시켰지만... 듣기 싫어졌다.

"ダメ。カミノ、お前ならできる! (안 돼. 카미노, 넌 할 수 있어!)'
"....."

어느새 다가온 일본어를 모르는 지훈이는 다연이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君の体が疲れたら、心で走ればいいんだよ。 (네 몸이 지친다면, 마음으로 뛰면 돼.)"

어느새 만화책에 집중하는 다연이는 말이 없어지며 점점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옆에서 나에게속삭이는 지훈.

"와... 엄청나게 똑똑하네."
"꺼져."
"와 형님, 계집 되셨소."

나는 잠시 들고 있는 펜을 지훈이의 관자놀이에 꽂을까 고민했지만, 요즘 시대에 그러면 큰 사고다.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훈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떼버린다?"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한 지훈이 그곳을 잡고 움찔했다.

"....."
"난... 잃을 것도 없어."

지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형님?"
"재형아."
"예..."
"우리는 잘 알잖냐?"
"....."
"잃을 거 없는 새끼가, 뒤도 없는 거."

땅을 쳐다보기 시작한 지훈,

"...죄송합니다."
"또 그러면 진짜로 그거 못쓰게 만든다."
"헙..."
"대답."
"예."

나는 그림을 완성하고, 다연이에게 보여주었다.

"우와!"

진심으로 나오는 감탄사.
카미노의 날카로운 모습은 살리면서, 다연이의 스타일대로 귀엽게 바꿔 그렸다.

"어때?"
"대박... 너무 귀엽다!"
"색칠은 다연이가 할래?"
"응!!!"

다연이는 내가 준 그림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색칠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 제한이 걸려있지 않은  핸드폰, 지훈이 내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와, 우리 부모님은 어리다고,  된다고 하던데 부럽다."

다연이는 나보다도 자신이 더 뿌듯해하면서, 끄덕이며 대답했다.

"시유니는 대단해서 그런 거야!"
"...?"

우리는 지금 동물원에 와있었다.
아이들의 담당 선생님들도 많지만, 저 멀리 숨어있는경호원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하시냐?"

내 물음에 지훈이 말했다.

"엄마는 교수, 아빠는 운동선수."
"무슨 운동?"
"야구."
"공놀이 하시나보네."
"...? 패드립 한 거야?"
"?"

진지하게 기분 나빠하는 지훈이를 보고 있으니, 지훈이도가족에 적응을 한  같았다.
하긴... 우리는우리끼리 뭉쳤지 다른 이들에게 사랑 한번 받아본 적 없었으니...
그런 우리가, 대가가 필요 없는 가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 애착을 안 느낄 수는 없었다.

"실언했네, 미안."
"그러면 너네 부모님은 뭐 하시는데?"
"우리 아빠? 작곡가."
"딴따라?"
"미친 새낀가?"

내 욕설에, 깜짝 놀란 다연이가 나와 지훈이 사이를 막았다.

"시유나 화내지 마, 우리끼리 놀자."

나는  올라오는 분노를 삭히고는 다연이를 데리고 멀어졌다.
하지만 우리를 따라오는 지훈.

"오지 마."
다연이의말에 머리를 긁적인다.

"나 친구 없는데?"

순간 안쓰러운 감정과 자신이 함부로 말했다는 사실에다연이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조금 떨어져서 따라와..."

그리곤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내가 험한 말을  쓰게 하려는 듯한 다연.

"엄마가 나쁜 말 하면 못생겨진대."

다연이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난 엄청나게 예뻐서, 조금 못생겨져도 돼."

다연이는 잠시 나를 보더니,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지 끄덕이기 시작했다.
구석에 앉아서 도시락을 열어보니, 아빠가 다양하게도 채워놓은 음식들이 있었다.
옆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 지훈.

"맛있냐?"
"지리게 맛있음."

다연이 지훈이를보다가 선생님한테 말했다.

"선생님! 지훈이 오줌 쌌대요!"
""...?""

우리를 주시하던 선생님이 달려오더니 지훈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랑, 화장실 갔다 올까?"

지훈이는 어린 선생을 보며, 말했다.

"안 쌌는데요?"

하지만 어린 선생은 지훈이 창피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선생님이랑, 잠시만 사자 보러 갈까?"
"안 쌌다고요."
"...그러니? 다연이가 거짓말할 아이는 아닌데..."
"피자 지리게 맛있다고 했는데, 오줌 싼 줄 안거에요."
"...그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니?"
"TV에서요."

갑자기 지훈이를 훈육하는 어린 선생이었고, 나는 그런 지훈이를 무시한채 지훈이의 피자를 다연이와 나눠먹었다.





"우와... 사자다..."

사자를 구경하는 다연, 나는 옆에 앉아서 사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유니 대박... 엄청 똑같아..."

내 그림 실력은, 그림 좀 그린다는 어지간한 중학생을 넘어섰다.
 그리는 것에 재미가 붙어서, 누구에게  때만 대충 그리는 것뿐.
북극곰을 보러 갔을 때, 옆에서 지훈이 말했다.

"와... 옛날 생각나네, 칼 들고 곰이랑 다이다이 깨보겠다고."
"뻥치지 마!"
"거짓말 아닌데, 네 옆에 있는 시윤이가 하자고 했는데?"

나는 잠시 흑역사가 떠올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다연.

"진짜야?"
"쟤가 거짓말하는 거야~"
"이잉?어이가 없네 덕분에 박기 뒤질 뻔 했구먼."

나는 지훈이를 무시한 채,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북극곰을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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