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특별한아이
나는 아빠의 작업실에 와있었다.
"시윤아, 아빠랑 TV 나갈래?"
"귀찮아."
"...응."
나는 아빠의 태블릿PC로, 예능을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고, 지수와 지은이 들어왔다.
""시윤아~""
"안녕."
자연스럽게 지수의 무릎위에 올라가서 앉자, 서운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지은.
"와... 내가 더 오래 봤는데..."
"지수 이모가 더 예뻐."
"...헐."
내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자, 지은이 말했다.
"어? 오빠 대표님이 말한 프로그램, 이거 아니야?"
아빠는 작업을 하다가, 지은의 말에 태블릿을 쳐다보았다.
"맞네,"
"최근에도 여기 출연하지 않았어?"
"응."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아빠의 이름을 검색했고, 1년 전에 올라온 영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따라갔었던 촬영장이었다.
"오..."
아빠는장난기가 많은 찐따 같았고, 특유의 유부남 같지 않은 멍뭉미를 뽐냈다.
내가 씩 웃으면서 보고 있자, 아빠가 말했다.
"시윤이도 거기에 나오고 싶지 않아?"
내 입으로 과자를 넣어주는 지수,
"응, 재밌을 거 같아."
강인성, 운동선수로 정점을 맛봤음에도 만족을 못하고, MC로서 정점을 찍고 있는 인물.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인 옆집 형님에 출연하게 되었다.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환호성이울렸다.
""오오오오!!!""
그리고 아빠의 뒤편에서 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
이 장면은 모두 계획된 장면이었으며, 이미 대본 리딩을 끝냈었다.
정면에 보이는 수십 대의카메라.
7살인 나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에게 내 특유의 손인사를 대충 하고는 교탁으로 향했다.
내게 말을 거는 연예인들, 아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아빠에게 팔을 벌리자, 아빠는 나를 들어 올린 뒤준비된 의자에 앉히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싫어?"
"교탁에 앉을래."
"....."
아빠는 말없이 교탁에 나를 조심스럽게 앉혔고, 나는 다리를 꼬려다가, 아빠의 눈치가 보여 그대로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안녕?"
"".....""
리허설에선 없었던 내 반응에, 다들 당황하기 시작했다.
7살의 어린 몸, 인형 같아 보이는 외모에,
이질적인 말투와 귀티를 흘리고 다니는 내 모습에 감독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성, 아빠보다 덩치가 2배 이상 큰 남성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유나~ 오늘 옆집 형님에 전학 온 고예요?
"똑바로 말해, 알아들어."
"....."
반말을 쓰는 것이 규칙인 이곳에서, 리허설과 다르게 차갑게 말했지만, 대한민국 대표 MC의 프로정신은 역시 대단했다.
삐진 표정을 짓는 강인성, 그를 시작으로 나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자기소개 할 수 있어요?"
나를 바라보는 젊은 남성, 나는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뒤로 넘겼고,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말했다.
"시윤이야."
강인성의 뒤에 있던 키 작은 남성이 말했다.
"어린이집 다녀요?"
"그럼 안 다녀?"
"....."
내 까칠한 토크에 아빠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시윤이 꿈이 뭐에요~?"
"화가."
드디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다 싶었는지,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왜 화가가 하고 싶어요?"
"화가 많아서? 아하핰."
"".....?""
"장난이야, 사실 나는 다른 거 다 잘하는데 그림을 제일 못 그려."
대본 따위 집어던진 나를 시작으로, 다들 웃으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7살인 나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있음에도,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감독.
뒤에서 내 특기가 적힌 책을 읽어본 키 작은 남성이 말했다.
"시윤이... 특기가 '그림 빼고 다~'라고 적혀있네?"
"응."
"그럼, 연기 잘해?"
나는 아빠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건 해본 적 없지만 잘할 거 같아."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럼 빨리 먹는 거 할 수 있어?"
"장난해?"
"뭐야! 할 줄 아는 거 아무것도 없네!"
나는 정색하며 고개를 까딱했다.
".....?"
"어... 미안..."
내 하얀 피부는 조명을 받아서, 빛이 날 정도였다.
웃으면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가장 앞에 있는 못생긴 남성이 물었다.
"아빠가 잘생겼어, 아저씨가 잘생겼어?"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한다~ 증말."
앞에 있던 남성이 어색하게 웃었고, 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아저씨 친구 없지?"
"아니야!"
"헿? 아니긴~"
내 옅은 미소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강인성이 나를 보며 말했다.
"시윤이... 너무 예쁘다아~"
강인성의 말에 넋을 잃었던 사람들이 조용히 끄덕였다.
"알아."
나는 웃음을 짓다가 정색하면서 강인성을 막 대하자, 웃으면서 말하는 젊은 남성.
"유연석 아저씨 알아?"
"응."
"유연석 아저씨가 좋아 강인성 아저씨가 좋아?"
나는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음... 강인성 아저씨는 운동선수의 열정이 보여서 좋고, 유연석 아저씨는 힘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간절함이 보여서 좋아."
누가 이 대답을 7살 여자아이의 대답이라고 생각할까... 다들 말이 없어졌다.
"".....""
조용한 장내, 빠른 진행을 위해 내가 먼저 질문을 했다.
"내가 질문할 테니까 맞춰봐~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은?"
손을 들고 말하는 연예인들.
"밥 줘."
"난, 네가 아니야."
내 대답에 상처를 받은 강인성.
"아빠한테 말하는 거지?"
"응."
"아빠, 나 양치할래."
"하아... 밥 먹고 양치하는 게 순서 아닐까...?"
"그렇네..."
아빠는 답을 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답을 말하는 사람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 비슷해."
"힌트 주면 안 될까?"
"내가 2살 때부터, 매일같이 한 말이야."
아빠는 기억을 하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드는 잘생긴 남성.
"시윤이가 2살 때?"
"응."
"아빠.“
”좀 더 감정을 실어봐.“
”아빠?“
"정답이야."
"와... 시윤이는 2살 때가 생각이 나?"
"뱃속에 있을 때도 기억나."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았고 아빠가 말했다.
"맞아, 시윤이가 전에 뱃속에서 긴 줄 같은 거 가지고 놀았다고 했어. 그때 나 진짜 놀랐다?"
"와... 대박이네..."
아빠가 나를 보며 옅게 웃고 있었다.
"다음 문제."
다들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보는 것은?"
다들 너무 쉽다는 듯이 말했다.
"아빠...?"
"음... 그런 식이면, 물, 밥, 집, 내 방, 고양이, 인형, 친구, 핸드폰 이런 것도 포함이지 않을까?"
"....."
나는 교탁에서 다리를 흔들면서, 대본을 덮으며 PD를 보고 말했다.
"이러면 못 맞춘다고 했죠?"
다시강인성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 몰래 너튜브로 보는 거야."
"뽀루루!"
"아니야. 그런 걸 아빠 몰래 볼 리가 없잖아."
말이 없던 잘생긴 남성이 말했다.
"만화?"
"뽀루루도 만화야 멍청아."
"미안..."
그리고 젊은 남성의 대답.
"드라마!"
"요즘 조금 보고 있긴 해~"
젊은 남성이 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영화!"
"조금 더 정확하게."
"음... 옛날 영화?"
"비슷하지만, 아니야."
"힌트!"
"하아... 노력을 해...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7살이랑 대화를 하면서, 어른이랑 말을 한다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이들,
그렇지만 육안으로 확인되는 내 몸은 너무나도 작았다.
그리고 키 큰 남성이 말했다.
"리뷰?"
"거의 다 왔어!"
"영화 리뷰!"
"정답! 난 더 어렸을 때부터 아빠 몰래 영화리뷰를 봤어."
내가 대충 넘어가려고 하자, 카메라를 향해 세리머니를 하던 키 큰 남성이 말했다.
"맞추면 주는 상 같은 거 없어?"
"뭘 원해?"
"뽀뽀 같은 건 안 해줘?"
"...? 범죄야 그거."
""...?""
앞에 있는 젊은 남성이 크게 웃었다.
"어엌?"
나는 키 큰 남성을 쳐다보았다.
"아빠한테도 한 번도 한적 없는데?"
아빠가 옆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응?"
"할 말 있어."
내가 화장실이 급한 줄 알고 아빠가 귀를 가져다댔다.
가볍게 뽀뽀한 뒤 진행을 하려고 했지만, 쓰러지는 아빠 때문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
잠시 진정이 됐는지, 눈시울을 붉히는 아빠.
"허억!... 나... 나 진짜 처음 받아봐..."
저럴 줄 알았으면... 가끔 한 번씩 해줄 걸 그랬다.
아빠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팔을 벌리자, 아빠가 내 전용 의자에 앉혀주었다.
"흐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시윤이 태어났을 때!"
"흠... 시윤이에겐 미안하지만, 그때는 슬펐지."
장내가 조용해졌지만, 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웃었다.
"처음 아빠 소리 들었을 때."
"어? 아... 맞는데... 원하는 답은 다른 거야... 미안."
아빠는 완전한 복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을 하기 위해서 지금은 노랑과 초록이 섞인 머리였다.
"힌트!"
"시윤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야."
나는 그제서야 언제인지 알게 되었다.
"아~ 그때가 가장 좋았어?"
아빠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늘 좋지만, 그때가 기억에 남았지~"
"오... 좋은 대답인데? 많이 늘었어."
"아하핳, 고마워~"
자신의 7살 딸과 대화하는 방식에, 신기해하는 이들이다.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키 작은 남성이 말했다.
"감동적인 거야?"
"흠... 조금?"
"시윤이 장기 자랑할 때?"
"아니야, C-19 때문에... 유치원에서 장기자랑이 없더라고... 보고 싶었는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이지."
강인성이 나에게 말했다.
"...시윤이는 장기자랑이 싫어요?"
"장기자랑도 싫지만, 유치하고 창피한 옷을 입고 싶진 않아."
"오... 시윤이 인성이처럼 멋쟁이네?!"
"멋쟁이인건 아는데, 너처럼은 아니야."
"....."
시시비비가 확실한 내 대답에 다들 아빠 미소를 지었다.
다시 아빠에게 시선이 집중되며, 못생긴 남성이 말했다.
"너무 어렵다~ 힌트!"
"음... 아마 시윤이랑 처음 노래를 낸 시기지."
갑자기 키 큰 남성이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시윤이랑 노래했을 때."
"오... 거의 다 왔어! 나랑 시윤이가 뭘 했어!"
그때 아빠가 나랑 만든 첫 노래를 생각했는지, 정답을 주워 먹는 잘생긴 남자.
"시윤이랑 피아노 쳤어!"
"정답!"
잘생긴 남자가좋아하자, 키 큰 남자가 뒤에서 크게 아쉬워했다.
"음... 사실 내가 시윤이를 키우면서, 평생 쓸 돈도 있겠다. 노래는 그만두려고 했거든."
"".....""
"근데 시윤이가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야, 어린 시윤이 몸에 맞는 장난감 피아노였는데... 시윤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까 치고 싶어 미치겠더라고."
다들 아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가가서 건반을 누르는데, 전율이 느껴졌달까? 이젠 그만한다고 다짐해서 4년간 참았던 음악인데, 건반을 하나씩 누르니까 마법처럼 머릿속에 멜로디가 들리는 거야"
아빠는 흥분을 다스리며 말했다.
"그 멜로디는 행복한 느낌을 줬어, 다시 치고 싶어도 기억은 안 나지만 정말로... 행복했었어."
추억과 감성에 젖은 아빠를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기억나는데?"
"...어?"
나를 보던 아빠의 동공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