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특별한아이
초등학교 입학 2일 전, 엄마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침대 위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아빠와 단둘이 대치했다.
"아바마마."
아빠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매우 꺼림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약속은 지키셔야지요..."
내 노골적인 눈빛을 피하지 못한 아빠는 한숨을 쉬었다.
"시윤아... 하아... 꼭 해야겠어?"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아빠를 설득했다.
"응, 8년은 기다렸어.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지."
둘만의 대치 상황에서, 내 말을 들은 아빠.
참다못한 아빠가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뻥치지 마! 8년은 무슨! 기억도 안 나면서!"
"허어... 생후 1일부터 뭐 들었는지 하나하나 얘기해?"
내 압도적인 기억력을알고 있는 아빠에게 말하자, 아빠는 매우 당황해했다.
"그... 그렇다고 해도, 시윤이가 알게 된 시간부터 계산해야지!"
꽤나 합리적인 아빠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5년은 기다렸어..."
그래봤자 3년만 줄어들 뿐이지만.
아빠는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빠.
".....하더라도, 하루에 1시간만..."
"뭐? 1시간? 장난해? 그걸로 뭐 하는데?"
아빠는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왜 이렇게 하고 싶어 하는 거야..."
나는 하고 싶은 이유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요즘 사람들이 그거에 미쳐있으니까."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궁금하다는 거지!"
아빠와 나는 말없이 서로 긴 시간 동안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꽤나 진심이었고, 아빠 또한 완고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아빠의 완고한 모습에 화가 난 나는 목소리를 키웠다.
"아니?! 아빠 약속 잘 지키잖아! 1분 1초도 지키려고 하잖아! 근데 왜 이래!?"
"...하아. 대신..."
"왜 자꾸, 뭐가 붙어!"
나는 팔짱을 끼고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최대한 삐졌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래 그럼, 대신 아빠는 아빠 주민번호 안 빌려줄 거야."
내 머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 만지지 않아도 느껴졌다.
나는 흥분을참지 못하고 아빠한테 말했다.
"딸 게임하는 게 그렇게 싫어!!!?"
내 고함에 깜짝 놀라는 알파와 베타.
그렇다. 나와 아빠, 우리가 침대 위에서 대치한 이유는 게임 때문이었다.
"...응. 너, 한번 빠지면 그것만 하잖아..."
나는 회심의 무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
'선즙필승'이라 들어는 보았는가.
"...억지로 눈물 짜내지 마, 안 나오는 거 알아."
역시 비장의 무기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쳇."
"후우... 허락할게, 대신."
나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하루에 3시간... 그 이상은 안돼."
"아이디는...?"
"...하고 싶은 게임 정리해서, 아빠한테 가져와."
하고 싶은 게임을 정리해서 가져오라니... 어이가 없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숙제.
나를 대하는 아빠의 육아 방식이 답답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한마디 했다.
"다연이네랑 어울리고 나서, 나 키우는 방식이 이상해졌어, 그건 알지?!"
아빠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거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 삐뚤어질 거야."
"이미 너 삐뚤어졌어."
"우씨! 각 방 써!!!"
내가 뱉은 말은 지킨다는 것을 안 아빠.
갑자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빠의 가드 불가 기술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미안. 취소할게."
"시윤아... 아빠... 혼자 두지 마... 알겠지?"
"아... 진짜... 아빠 비겁한거 알아야 돼!"
나는 집을 나와 10m 거리에 있는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나요."
남에 집에 들어가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윤이니? 들어오렴~"
봐라.상대방도 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다연이가 나를 보자마자 껴안았다.
"시유나! 어서와!"
다연이 뒤에서 아장아장 걸어오는 가연이, 나는 가연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가연이 안녕~"
"응!"
가연이는 심각한 귀여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가연이를 쓰다듬으며,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뭐하고 있었어?"
"가연이 놀아주고 있었지!"
"정연이는?"
정연이가 초등학교를 가게 된다면 오빠 소리를한다고 했지만, 결국 나에게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빠 학원 갔어"
나는 그제서야 집안으로 들어가서, 김선화에게 자연스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럭셔리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김선화였다.
"아저씨는요?"
"저기 앉아있네."
나는 옆에있는 다연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연아, 아저씨랑 대화하고 올게, 방에서 조금만 놀고 있어~"
"응!"
내 말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두 명.
나는 다연이가 기연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침을 삼키는 김선화, 그리고 나를 힐끔 쳐다보는 이진석.
부부는 급격하게 썩어 들어가는 내 표정을 목격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이진석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크흠, 왜 불렀니? 시윤아?"
이진석이 앉아있는 소파 위에 올라간 뒤,
이진석을 바라보며, 아빠 다리를 한 채 턱을 괴었다.
"나 좀, 보시죠."
신문을 보고 있던 이진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딱, 하나만 물어봅시다."
"....."
"거짓말하면 알죠?"
"....."
나는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석에게, 빠르게 본론을 말했다.
"아빠한테, 나 게임 시키지 말라고 한 적, 있어요~ 없어요?"
"...크흠."
이진석의반응을 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 현기증이 분노로 바뀌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저씨였네!!! 이씨!!! 아저씨 때문에 아빠 헛바람 들어서!!! 갑자기 공부시키겠다고!!!"
나는 이진석에게 달려들었다.
저 머리카락을 전부다 뽑아버리겠다는 의지로.
당황하며, 힘겹게 나를 막는 이진석.
"시... 시윤아!"
상황을 지켜보던 김선화가, 빠르게 뛰어와서 나를 말렸다.
"전에 아저씨랑 아빠랑 단둘이 낚시 갈 때부터 알아봤어!"
이진석은 머리가 망가진 채로 안경을 고쳐쓰고는 나에게 말했다.
"미... 미안하다."
"이씨... 진짜 내가 5년 동안 간절하게 기다렸었는데... 아저씨 때문에 망했어..."
내가 풀죽어있자, 안절부절못하는 이진석.
옆에 있던 김선화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시윤아 너무 화내지 마렴, 아저씨도 어쩔 수 없었단다."
"됐거든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나를 설득하려는 둘,
팔짱을 끼고 있는 나는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라도 있는지, 이진석은 김선화를 보더니 서로 끄덕였다.
"이건... 시윤이 생일선물로 주려고 했던 건데..."
나는 그제서야 이진석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작은 것이 들어 있을법한 크기의 봉투, 이진석은 천천히 내용물을 꺼냈다.
검은색의 무언가가 나왔고, 상단에 적혀있는 HS the black card.
나는 충격을 받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웃고 있는 이들.
"시윤이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거 사용해도 돼. 시윤이가 우리 다연이랑 놀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 뒤에 아빠 아니, 이진석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HS... 그 매끄러운 자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환심을 산것을 알게 된, 이진석은 씨익 웃었다.
"아저씨가 미안하다?"
나는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면서 말했다.
"예, 아버지. 소녀 한 번 안아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난... 자본에 너무나도 약했다.
나는 아빠가 사준 내 작은 지갑 구석에 블랙카드를 숨겼다.
그리고 컴퓨터를 만지며, 논문을 적듯 게임을 찾아서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단풍잎 게임.
2002년 5월 29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곧 21주년을 맞는다.
세계 최초의 횡스크롤 MMORPG를 표방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필드에서의 여행과 모험을 강조하고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끊임없는 즐거움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판타지.' . . . . . .
-ROL
워구라프트의 카오수를 표방한 게임. 게임 출시 이후로 지금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RPG와 RTS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로 . . . . . .
나는 오기가 발동해서, 아빠에게 어울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들, 나는 아빠가 읽다가 후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으면서 끝없이 글을 적어 내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박지훈과 같은 반이되었다.
초등학생이 무슨 교복이라니...
내가 다니고 있는 서울 사립 초는 학비만 연마다 1,000만 원 이상이 빠져나간다.
과도한 치장을 못하게 한다는 목적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는 지훈.
"와... 형님이랑 이러고 있으니 신선하오."
"하아... 그냥 저기로 꺼지면 안 되냐?"
"이잉? 내가 진짜 이 인간 때문에 뒤진 거 생각하면, 아직도 안면이 아프네."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박지훈을 쳐다보았다.
"쓰읍... 그래서 허락은 맡았냐?"
"허락이라고 할 게 있소? 초등학생 됐다고, 내 컴퓨터 따로 사준다던데"
"와... 십새끼 처음으로 부럽네..."
박지훈과 대화를 하고 있으니, 아침조회 시간이 다가왔다.
"야."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큰, 처음 보는 꼬맹이가 갑자기 나를 부르며 내 앞에 섰다.
주변에서 우리를 향해 꽂히는 시선들.
"너, 내꺼 해라."
"...?"
내가 꼬맹이를 쳐다보자 얼굴을 붉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지훈이 나를 돌아보며,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잌? 좋겠수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박지훈의 안면에 내가 읽던 소설책을 그대로 꽂았고, 박지훈은 코를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같은 반 꼬맹이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박지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발..."
"힉!."
내 말에 놀란 덩치 큰 꼬맹이,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조... 좋아해!"
지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나에게 사랑고백을 마저 했다.
"처음 볼 때부터 좋아했어!"
"하아..."
나는 반으로 들어온 지 10분이 되었고, 저 덩치 큰 꼬맹이는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정도 속도면, 처음 볼 때 부터 좋아한게 맞지...
나한테 맞고 곧바로 일어나는 박지훈이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왜 자꾸 얼굴을 건드려..."
"못생겼으니까, 잃을 것도 없겠네."
갑자기 거울을 꺼낸 박지훈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
"아씨... 점점 박기 닮아가네."
"너 자꾸 박기 무시하는데, 너보다 여자 많았다?"
"....."
나에게 떨어진 소설책을 건네는 박지훈.
우리가 앞에 있는 꼬맹이를 무시하자, 덩치 큰 꼬맹이는 박지훈을 보더니 말했다.
"너 끝나고 나와."
"...? 나요? 갑자기? 왜 그럴까?"
나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지훈이의 팔을 잡고, 애교 섞인 말로 말했다.
"지훈아~ 내일모레 같이 게임하자~"
""....."“
이제야 상황을 판단한 지훈.
"...? 와... 미치겠네."
나는 조용히 박지훈이 주워준 소설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