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기다리고, 기대하던 게임을 하다.
서울 사립초등학교.
1년에 학비만 천만 원에 달하는 학교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해도 항의가 끝없이 나온다.
아이들의 반 배정부터, 사교성 등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도.
무엇보다, 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은 녹색 창에 검색만 해도 나오는 사람들이 대다수.
그렇기에 체육 선생은 쌍코피를 흘리는 남자아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 옆에서 정자세로 앉아 턱을 괴며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
특유의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방금 전 앞에 있는 남자아이의 얼굴을 작살냈다.
'난리 났네...'
나는 치료가 끝난 지훈이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의 몸이 이상한 것 같다.
지훈이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흥분을 하니,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듯하며, 몸이 제어가 되질 않는다.
승부욕으로 인한 흥분이 더 큰 흥분을 낳으면서, 자제력은 사라지고 진짜 어린아이처럼 싸우게 되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지훈이도 나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체육 선생이 정적을 깼다.
"누가 친구를 때리라고 그랬어!"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던 체육 선생에겐 변명할 수도 없었다.
체육 선생은 담임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양쪽 코에 솜을 넣은 지훈이를 보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림 같은 플라잉 니킥 영상으로 남겼으면 너튜브 조회 수 100만 각이다."
"뭐래, 내가 눈 감고 공 잡은 게 100만이지."
"지랄? 니 면상에 메테오처럼 꽂아 넣은 걸 직접 맞아놓고?"
"이잉? 눈 감고 졸라 가볍게 막는 거 봤으면서 그딴 소리 하네"
한참 지훈이와 토론을 하고 있는데, 체육 선생이 소리쳤다.
"조용히 안 해!"
"".....""
잠시 후, 담임 선생이 의무실에 도착했고, 지훈이를 보더니 경악을 했다.
"김시윤..."
"네."
이마를 매만지며, 우리를 바라보는 담임.
"하아... 너네 둘 다 부모님께 연락드릴 거야."
'조졌네...'
지훈이는 그동안 나에게 많이 맞았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사교성이라곤 하나도 없던 박지훈.
나를 처음만나면서 친구가 생긴 것이었기에.
그래서 지훈이의 부모님은 지훈이가 나를 좋아해서 먼저 장난을 치고, 내가 참지 못해 때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훈이 부모님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사실이 아빠의 귀에 들어가면, 규칙대로 1대당 30분가량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단 '한 대'만을 꽂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부모님들이 찾아왔고, 어색하게 웃는 지훈의 어머니.
"또... 뵙네요..."
아빠는 상황을 보고 머리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시윤이가 지훈이 말고 누구를 때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분명 지훈이에게도 잘못이 있겠죠."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훈이의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정말 괜찮아요, 지훈이가 시윤이를 좋아하는지, 장난을 정말 많이 쳐서..."
나는 조용히 반성하고 있다는 듯이 땅을 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빠.
"시윤아."
"응."
"왜 그랬어."
나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모르겠어, 처음엔 둘 다 장난이었구... 승부욕밖에 없었는데, 지훈이가 놀리니까 감정 조절이 안되더라구..."
옆에서 지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훈이의 어머니가 지훈이에게 딱밤을 때렸다.
"아주머니, 지훈이 때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친구끼리 싸울 수도 있지~ 지훈이 친구라곤 시윤이 하난데 아줌마가 부탁해야지~"
내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고 있자, 아빠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죄송하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네?"
지훈이의 어머니는 나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훈이 어머니는 나를 자신의 며느리 감으로 보고 있다.
"집에 맛있는 거 많아~"
...재형이와의 결혼?
지랄... 절대 그럴 일도 없거니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지훈이의 중성화 수술을 직접 시켜줘 나처럼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선을 그어놔야 했지만, 오늘은 상황도 상황이기에 해맑게 웃으면서 답했다.
"네~"
담임 선생도 좋게 해결돼서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훈이와 싸움으로 인해 빠른 조퇴 조치가 내려졌고,
아빠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혼내지 않았기에, 화난 모습을 감춘 채로 지훈이의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기다리는 동안, 교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
누군가 사물함을 열었던 흔적과 함께, 상한 우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사물함을 열어보니 우유로 젖어있는 교복이 눈앞에 있었다.
"응?"
나를 아니꼽게 보며, 내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던 꼬맹이들이 생각났다.
돼지도 왕따를 시킨다는데, 이렇게 노골적인 상황을 보니...
어린아이들이 아닌 돼지새끼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얼마나 아름다운 상황이란 말인가.
집에 가게 된다면 벌을 서게 될 것이 뻔한 상황에... 저 돼지새끼들은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오... 신이시여...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나는 흔쾌히 상한 우유로 젖어있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해서, 일부러 머리에 우유를 조금 묻힌 뒤,
소설 속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처량한 모습을 하고 탈의실을 나섰다.
"윽, 냄새!"
깔깔거리며, 나를 놀리는 아이들.
나는 보란 듯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체육관을 가로질러갔고, 그 모습은 체육 선생에게 발견되었다.
"세상에! 시윤아! 무슨 일이야?!"
"....."
나는 그 말에 더욱더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체육 선생을 지나쳐갔다.
체육 선생은 내 모습을 보고, 저 상태로 부모님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해졌을 것이다.
남색의 교복은 우유로 인해 하얗게 떠있었고, 체크무늬 치마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약간 붉힌 채로,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 느리게... 운동장을 걸어갔다.
운동장을 지나, 복도를 지나쳐 아빠가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
"아빠..."
내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담임 선생.
나를 발견한 아빠는 경직된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 시윤아... 옷이 왜 그래?"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아빠에게 말했다.
"누가 내 사물함에 우유 뿌렸어..."
아빠의 표정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응... 가보니까, 이렇더라고..."
빠르게 CCTV를 확인하던 담임 선생은 경악했다.
탈의실 내부에는 CCTV가 없었지만, 입구에서 우유 5개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는 꼬맹이가 보였다.
나에게 냄새난다고 했던 꼬마였다.
"아...! 내가 나가자마자 냄새난다고 했던 애다..."
아빠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와...'
아빠의 저런 표정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아니, 아빠를 아는 세상사람 모두가 처음 볼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화내는 모습은... 순둥순둥했던 아빠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고, 래퍼 김지호의 모습 또한 아니었다.
김지호의 화난 모습을 처음 본 주변의 어른들이 숨을 죽였다.
처음 듣는 힘이 풀린 저음 가득한 아빠의 목소리.
"잠시... 대화 좀 하시죠."
그런 아빠를 보며, 침을 삼키는 담임 선생이 고개를끄덕였다.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 씻고 싶은데."
아빠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빠르게 감정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처량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면 감정 조절이 힘든지,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화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감정 조절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한 아빠는 다시 한 번 지훈이 어머니에게 사과했다.
"거듭,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빠의 딱딱한 인사에 지훈이의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시윤이 데리고 가서 어서 씻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아빠는 말없이 우유 냄새가 심하게 나는 나를 꼬옥 안아들며, 차로 향했다.
운전을 하며, 아무 표정이 없는 아빠.
나는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애들이 귀엽더라."
"...뭐?"
나는 웃으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아빠는 룸미러로 그런 나를 확인했다.
"8살... 원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때지."
아빠는 내가 자신에게 꼬맹이들을 용서하라는 줄 알고,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창밖을 바라보다 아빠와 눈을 맞추며, 싸늘하게 감정이 없어 보이는 눈으로 입꼬리만 올려서 웃었다.
"그래서, 어른이 필요한 거고."
"....."
"다시는 못하도록... 고통에 울부짖더라도... 어릴 때 코뚜레를 박아 넣어줘야지..."
아빠는 내 싸늘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서울 사립초등학교는 뒤집어졌다.
옆집 형님에서 처음 공개된 김지호의 딸이, 모자이크 처리가 된 CCTV와 함께,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이 전국으로 퍼지며.
그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대한민국에서 아빠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어지간한 국회의원을 압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절친은 다연이다.
대한민국 재계순위 2위에 달하는 한성의 둘째 이다연.
학폭위가 열리는 날.
우유를 뿌렸던 아이의 부모들은 아빠에게 애들 일일 뿐이라며, 빠르게 합의를 보자고 했지만...
때마침 문이 열리며, 아빠의 지원자로서 경호원을 이끈 이진석이 등장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이진석을 발견하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보았던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양복을 차려입은 이진석.
교장과 이사장도 이진석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았는지, 이진석과 함께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학폭위가 진행되면서 이진석은 매우 차분하고 싸늘하게 말을 이어갔고, 그 모습은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옆집 아저씨의 모습이 아니었다.
항상 나와 다연이에게 쩔쩔매고, 내가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면서 나와 장난치던 아저씨 이진석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한민국을 흔드는 경영가의 모습, 공기마저 무겁고 싸늘하게 만들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죽게 만드는 이진석의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