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기다리고, 기대하던 게임을 하다.
그날이후, 학교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훈이랑 싸우던 모습을 지켜봤던 아이들도 마찬가지.
하긴,그림처럼 꽂혔던 내 플라잉 니킥을 보고 어떻게 감히.
아무튼, 오늘은 개교기념일이었기에 나는 학교를 가지 않았고, 아빠를 따라 JSM 본사에 와있었다.
"시윤아."
"왜요. 할아버지."
장성만 대표는 안절부절 못하고 나에게 초콜릿을 바치고 있었다.
"그... 삼촌으로... 어떻게 안 되겠니?"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라 하지~ 뭐라고 해요~"
장성만 대표의 장남은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빠와 나이차만 무려 16년이다.
아빠가 30살이 되었으니, 장성만 대표는 46세의 아저씨.
"나... 나이 50도 안됐는데..."
투덜거리는 장성만에게 나는 따지듯이 말했다.
"그래서 저는 왜 따로 보자고 한 거예요?"
"그... 아빠한테는 얘기 했는데... 혹시 영화 찍을래?"
나는 그 말에 급 관심이 생겼다.
"영화?"
요즘 내가 집에서 하는 거라곤 단풍잎 게임 아니면, 알파와 베타보기, 영화시청 뿐이다.
무엇보다 아역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더 잘할 것 같았다.
"응, 이번에 유명한 감독님이 영화 준비하거든~"
"누군데요."
"유대연이라고..."
유대연,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감독.
없던 관심도 생길만한 이름이다.
"오..."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장성만은 눈을 반짝였다.
"알고 있니?"
"많이 봤어요, 예전에 아메리칸 영화제 수상 받은 것도.
"...그거 15세 관람..."
"...?"
내 싸늘한 표정에 장성만이 크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다. 삼촌이 실언을 했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너의 호칭은 이제 확실해졌다는 듯이 말했다.
"예, 할아버지."
내 다리를 붙잡는 장성만.
"시윤아!!! 미안해!"
"유대연 감독님이 왜 저를 필요로 했는지, 먼저 말해보시죠."
내가 다리를 꼬려고 하자, 지적을 하려다 참는 장성만을 보고 다리를 풀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 같다.
이젠 나이 많은 사람이 지적하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장성만은 눈치를 보다가, 먼저 유대연 감독이 나를 발견한 계기를 설명했다.
"시윤이를 옆집형님 방송에서 봤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 이야기.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가득한 세상으로 변하게 된 한국이 주된 내용이며,
내가 오디션을 봐야할 역할은 주인공의 아끼는 동생이었다.
그 역할은 단역 수준의 역할이지만, 영화 자체는 해외 유명 배급사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게 다에요?"
"...응?"
"아니, 캐릭터 설정이 그게 다냐고요."
"...투자비용이 크다보니,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위험을 줄이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나는 추가적인 컨셉들을 설명하는 장성만을 보다가 대답했다.
"아빠한테 저는 하고 싶다고 전해줘요...아, 아니다 할아버지 또 이상하게 말할 것 같다."
장성만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날 어떻게 보는 거니...?"
"그냥 제가 직접 말할게요."
"...그래."
나는 촬영 중인 아빠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아빠의 집중력이 흩어졌다.
다행히도 영화감독도 잠시 쉬려고 했었는지, 촬영을 잠시 멈췄다.
"시윤이 왔어?"
"응."
아빠는 나를 안아들며, 사람들에게 인사시켜주었다.
"어머! 시윤이 너무 예쁘다!"
"알아요."
내 얼굴에 넋을 잃은 사람들.
나는 아빠를 보며 말했다.
"난 영화 해보고 싶은데 아빠 생각은 어때?"
"... 영화는 장난처럼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나는 아빠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장난처럼 할 건데? 어차피 감독이 내가 마음에 들면 시키겠지."
"오... 그러네?"
아빠와 내가 대화하는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나와 아빠의 모습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괜히 부담스럽게.
다음 날, 우리는 체육시간에 수영장 앞에서 선생을 따라 체조를 하고 있었다.
앞에서 열심히 따라하는 꼬맹이들.
나는 귀찮아서 대충 따라하며 몸을 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훈이 나를 보더니, 말을 꺼냈다.
"와... 수영이라니... 진짜 오랜만이다."
나와 재형이는 예전에 생존수영을 배웠었고, 그때도 수영을 못하진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물을꽤나 좋아했다.
그 증거로 어린이집에서 수영장을 갔을 때도, 둘이서 선수마냥 수영을 했었다.
그래서 지훈이가 저런 들뜬 표정을 짓는 것이고.
체조가 끝나고 수영 선생이 우리를 보고 물었다.
"혹시 수영 잘하는 친구 있어요?"
지훈이와 수영부에 속한 아이들이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지훈이 놈이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후후훗... 이번엔 내가 더 잘할 걸?"
나는 요즘 들어 지훈이가 진짜 초등학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은 표정으로 끄덕인 뒤, 체조를 끝내고 가만히 뒤에 앉았다.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친구들인지, 손을 들었던 아이들은 지훈이 보다 약간 빨랐다.
그중 한명은 선수 준비를 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영실력이 우월했다.
솔직하게 지훈이는... 기술이 아닌 힘으로 수영을 하려고하기에 낭비하는 힘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저러면 몸은 좋아지겠네...'
지훈이는 자신이 그 꼬맹이한테 졌다는 것에 분한지 수영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수영을 잘하는 꼬맹이가 웃는다.
턱을 괴고 꼬맹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역시나 평화롭다.
물론 꼬맹이들에 지훈이도 포함이다.
수영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수영선생.
"시윤이는 물에 들어가는 게 싫니?"
"아뇨."
"응? 그런데 왜 안 들어가니?"
나는 지훈이와 수영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만약 제가 들어간다면 박탈감느낄걸요?"
"...? 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바닥의 고무판이 편해서 앉아 있다가, 대답 없이 긴 머리카락을 묶으며 수영모를 썼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고, 물속으로자연스럽게 입수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수영 선생.
나를 발견한 지훈이가과한동작으로 자유형을 하며, 다가왔다.
"난 몸 다 풀었어, 너도 풀고 오지?"
나는 말없이 목에 걸었던 물안경을 쓰고, 잠수한 뒤 벽을 박찼다.
시윤이 잠영을 시작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과 선생.
그리고 영재라 불린 아이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숨 한 번 안 쉬고 물속에서 50m벽을 찍고 돌아오는 시윤.
특히 선생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시윤이가 잠수하기 전, 딱히 숨을 깊게 들어 마신 것 같지도 않아보였기에.
"".....""
검은 수영복을 입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영을 하고 있는 시윤이의 모습은 '어뢰' 같았다.
물을 일렁이며, 스타트 지점까지 도착했지만, 깔끔하고 완벽한 동작으로 턴을 한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
"마...말도 안 돼..."
시윤이의 모습은 아직도 여유로워 보였으며, 시윤이가 물을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던 선생의 턱이 빠진 것처럼 늘어났다.
2바퀴 째 돌고 있기에 나올 법도 했지만, 다시 벽을 박차고 출발하는 시윤.
자신의 시계를 바라본 선생은 말을 잃었다.
시윤이 잠수한지 4분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잠수한지 6분쯤 되었을 무렵, 시윤이 물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물 안과 밖을 이어주는 계단을 밟고 걸어 나오는 시윤.
물안경을 빼고, 모자를 벗더니,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털며 처음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직 여유롭다는 듯이 숨도 고르게 쉬면서...
모두가 경악하고 있을 때.
시윤이의 잠수 능력을 알고 있는 지훈이만 끄덕일 뿐이었다.
"푸하..."
물 밖으로나오자, 부담스럽게도 많은 시선이 꽂혀있었다.
익숙한 시선이긴 하지만... 수영 선생의 저 눈빛은 많이 부담스럽다.
가는 길에 수영패드가 보여서 하나를 뺀 뒤, 자리에 깔고 그 위에 앉았다.
멀리서 뛰어오는 수영선생.
"시윤아!"
"수영장에서 뛰지 말라던데...“
수영 선생은 내 말에 당황해하며, 매우 빠르게 말했다.
"아... 그건... 미안하다... 그건 그렇고 너 수영 배웠었니?"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나에게 수영을 알려줬던 어린 선생이 떠올랐다.
"음... 배우긴 했네요."
내 눈치를 보며 말하는 선생.
"혹시... 선수 준비하니?"
"아뇨."
내 대답에 기쁘다는 듯이 말하는 선생.
"혹시 선수할 생각은 있니?!"
"아뇨."
"...왜?"
"수영은 취미인데요."
"그렇구나..."
선생은 그래도 아쉬운지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아이들을 관리하러갔다.
하지만, 멀리서 아이들을 관리하며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에서 언제 나왔는지, 박지훈이 내게 다가왔다.
"헉... 헉... 숨을... 그렇게 오래 참을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정면을 보았고 지훈이가 말을 이어갔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더니..."
"뭐라는 거야, 메추라기 주제에 비행기 앞에서 날개 핀거지."
"그건 날지도 못하잖수...“
"그니까."
"......"
지훈이는 내 옆에 앉아서, 수영장을 보고 있는 나를 쳐다봤다.
"아니, 그 몸은 어떻게 된 거 길래... 이게 말이 됩니까?"
"뭐가."
"형님이랑 대련했을 때도, 지금처럼 건들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나는 잠시 두 손을 바라보았다.
새하얗고, 굳은살 하나 박혀있지 않는 작은 두 손.
"아닌데? 예전에도 너 나 못 건드렸잖아."
"....."
지훈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때려 봐."
"...?"
나는 지훈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쳐보라고."
"괜히 때리면, 저 인생 쫑납니다."
지훈이는 학폭위에서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던 이진석을 떠올렸다.
"새끼, 꽤나 위엄 있던데 말입니다."
나는 과거가 떠올라서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과거를 떠올리던 지훈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진석은 박기가 그랬습니다만?"
"미친놈, 네가 이기석 떡으로 만들어놓고... 그게 할 말이냐?"
"이잉? 행님이 시켰잖수, 어이가 없네?"
"그래, 그래서 내가 다연이 챙겨주는 거다."
"그런다고 한 짓이,사라지는 건 아니지..."
"....."
나는 잠시 턱을 괴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수영을 제일 잘했던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
"너, 수영선수 할거야?"
"아니."
"....."
내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정면을 보고 있자, 주먹을 불끈 쥔 남자아이가 말했다.
"난, 할거야."
'어쩌라는 거지...?'
갑자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꼬맹이.
"...?"
지훈이 상황을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기 많아서 좋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