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오디션. (29/99)



〈 29화 〉오디션.

대본 리딩 날짜가 잡혔고, 나는 아빠와 함께 장소에 도착했다.

"어! 김지호 씨...?"
"안녕하세요."

관계자가 안절부절 못하자, 이를 눈치  김지호가 먼저 물어보았다.

"보호자는 혹시 못 들어가나요?"
"아! 시윤이 보호자로 오셨구나!"

나와 아빠를 안내한 여성이 입구에 도착하자 다른 내부 관계자에게 말했다.

"한가인 역 시윤이 왔습니다!"

아빠는 안내를 받아 외빈석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내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앉았고, 다들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왜요."
""크흠...""

유대연 감독은 잠시상황을 지켜보더니 끄덕이면서 말했다.

"시윤이도 왔겠다. c-3 페이지부터 가시죠."
""네~""

c-3 페이지로 넘어가니 상황이 적혀있었다.
[유민성이 막혀있는 골목길에 들어가, 입구를 막고 한숨을 돌린다.]

유민성 역할을 맡은 김하늘 배우가 연기를 시작했다.

"하악... 하악... 아...김지성 이 개새끼..."

[주변 상황에 절망하며, 하늘을 보자,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 저기요! 도와주세요!"

[한가인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젊은 남자를 보고 비릿하게 웃으며,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더해 김하늘과 눈을 맞추고 엿을 날리며, 입모양으로 '조까'라고 말했다.

"...!?"
""푸핰""

진지한 상황 속에, 어른에게도 거리낌 없이 엿을 날리는 모습에 유대연 감독이 눈을 반짝였다.

"와... 좋은데??? 이렇게 바꿔야겠다. 시윤아 계속 편한 대로 해볼래?"
"네~"

우리를 보며 글을 적어내리는 감독, 그리고 다시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프로는 프로인지 빠르게 몰입하는 김하늘.

[한가인을 발견한 유민성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건물 위로 올라갔다.]
"하악... 저기요... 안에 있는 거 알아요."
"그냥 뒤져, 피해 주지 말고."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고, 건물을 오르기 위해서 무리하게 사용한 손이 찢어진 것을 보며, 유민성은 절망한다.]
"...제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가인, 문틈 사이로 보이는 유민성의 머리에 당장이라도 석궁의 화살을 박아 넣을  있었지만, 고민하기 시작했다.]
[건물 옥상 가까이 좀비가 올라오기 시작하며, 모든 걸 내려놓은 유민성.]
"하아... 그러게... 미안하다. 목소리를들어보니 꼬마일텐데... 네 말대로 어른이 돼가지고 민폐를 끼쳤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민성, 옥상으로 좀비가 기어 올라왔다.]
"더 숙여, 머리 뚫리기 싫으면, 병신아."






대본의 리딩이 끝나고, 감독은 만족한 듯 끄덕이고 있었지만, 주변 배우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시윤아, 액션 신 할 수 있겠어?"

옆에 있던 여성 배우 강희선이 말했다.

"그러게? 액션 신 엄청나던데..."

나는 1,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송일성을쳐다보았다.

"수영 신은 어떻게 하지... 저걸 애한테 시키려고 하고..."

내가 맡은 역할에서,망가진 엘리베이터로 인해 물에 잠긴 지하실에 들어가는 신이 있었다.
어른들이 어두운 물속을 두려워하며,겁을 먹고 들어가기 꺼려할 때,
좀비가 사람보다 수영을 잘할 리가 없다고, 욕을 하며, 혼자 잠수하는 장면.

"음... 수영 조금 해요."
"아역은 스턴트맨도 없어서..."

나는 그게  대수냐는 듯이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다른 배우들과 감독은 아빠와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소고기 사려고 하는데, 다들 식사 가능하세요?"

유대연 감독의 말에,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시윤이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제가 사도될까요? 여기에 있는 분들 전부."

이 인원 전부에게 소고기를 산다니...
오늘도 아빠의 '클라쓰'를 느꼈다.

"소고기를... 40명한테 쏘신다구요!?"

아빠는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바로 고깃집으로 향했고, 아빠는  옆에 앉아서 고기를 구워줬다.
고기를 먹으면서 몇몇 배우들이 아빠에게 사인을 받아 갔다.
아빠도 어느새 준비했는지, 종이와 펜을 꺼내 배우들의 사인을 받아 교환을 했다.
무명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소고기집에서 1,200만 원을  자리에서 태우는 아빠.

"혹시 싸가실 분들은 싸가셔도 돼요."
""와...""
"지호  엄청난 부자라던데... 사실인가 봐요..."
"에이... 시윤이랑 집에만 있으니까, 돈을 쓸 곳이 없어서 그래요."

아빠는 고기 맛이 좋았는지, 추가로 생고기를 구입했다.
유대연이 다가와서 아빠에게 말했다.

"이거라도 제가 사게해주세요."
"아... 그렇다면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아빠의 말로 인해 생고기를 사는  유대연이 되었으며,
아빠는 의미만 샀을 뿐, 명예는 유대연에게 돌렸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촬영 날이 되었다.
나는 촬영장인 어느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이번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하더니, 좀비들의 분장이 심상치 않다.
이 세상에 좀비가 나타난다면 정말 저렇게 생겼을 것 같은...
과거의 나였으면, 얼굴만 보고 한 치의고민도 없이 뚝배기를 터트렸을 외모다.
아빠가 좀비 분장을 보고 걱정이 된 듯 내 눈을 가렸다.

"나, 눈 가리고 촬영 못해."
"....."

아빠가  말을 듣고 나서 손을 떼 줬다.

"그리고, 내가 보는 리뷰보다 덜 잔인해."
"....."

나를 발견한 관계자들이 다가와 인사했다.

"시윤이, 분장실로 가야 해서 안내 해드릴게요."

분장실에 도착한 나는 관계자에게 몸을 맡겼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올려서 고정시킨 뒤, 단발머리 가발을 씌웠다.

"꺅! 너무 예쁘다."

래시가드를 찢어서 만든 듯한 보호구도 착용했다.

"오..."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자, 옆에 있던 의상 디자이너가 말했다.

"실제 좀비가 물어도 감염 안될걸~? 멋지지?"
"응.

의상은 생존을 위해 대충 입은 것 같지만 효율성이 뛰어나 보였다.
나는 분장을 얼추 마치고, 쉬는 시간에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아빠가 핸드폰을 들고 쫓아온다.

"시윤아, 사진 찍자!"

그리고 작중, 조연인 여배우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같이 찍을까?"
"응."

우리 둘을 시작으로 예고편과 광고에 나올 에필로그 장면을 찍기 위해, 배우들 모두 자리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서  늦기 전에 내가 들어가는 컷을 찍자고 말하는 감독.
짧게 찍은 뒤, 만족한 감독이 끄덕였다.
추가로 다른 사람들도 여러 짧은 장면들을 찍었고, 모든 촬영을 마친 후 유대연 감독이 말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해 봅시다!"
""네!""







영화 촬영이한창이었던 어느 날.
팀을 나누어 촬영하던 도중, 커피 차가 왔다.
아니,  이름으로 되어있는 '우유 차'였다.
보낸 사람은 지은 이모였다.
옆에 있던 김하늘 배우가 물어보았다.

"와... 시윤이 지은 씨랑 친해?"
"응, 아빠가 더 친해."

이젠 나는 김하늘 배우에게도 반말을 시전하고 있다.
물론, 내 모든 나이를 합해도 그것보다 나이가  많은 송일성 배우에겐, 반말을 하지 않았다.

"부럽다.  정말 팬인데..."
"그래? 소개해 줄까?"
"...진짜?"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는 김하늘.

"선의로 말한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매력 없어."
"...응."
"나이차도 7살이나 나면서 주접이야 그거."

나는 지은 이모가 보낸 우유와 빵을 먹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 지나고, 유대연 감독이 말했다.

"다 드셨으면, 다시 시작합시다!"

시간이 금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연 감독.
이번 촬영은 내 첫 액션 촬영이다.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나는 표정관리를 시작했다.
감독이 시작을 알리고, 연습한대로 나무 책상 위에 있는 악역배우의 손등을 특수 제작된 칼로 찍었다.
남성이 비명을지르려고 할 때, 의자를 박차고 뛰어올라 허리에 있는 비수를 꺼내 남성의 입속으로 던져넣은 뒤, 더욱 깊게 들어가도록 무릎으로 찍어 눌렀다.

"컥."

묶여있던 유민성의 동공이 떨렸다.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쉿."

감독 또한 집중하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은밀하게 선반 위에 올라가서 양말을 벗은 뒤, 들어오는 남성의 뒤에 올라타 단검으로 목을 긋고는 비명을 못 지르게 입속으로 양말을 넣었다.

"커... 커업."

쓰러진 남성을 바라보다가, 묶여있는 유민성에게 말했다.

"거기에 가만히 있어."

나는 유민성을 두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컷! 와!!! 시윤아 대박인데!?"
"와... 진짜 잘한다."

시윤이의 액션신을 바라보던 유대연 감독이 말했다.

"시윤이가 하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찍었던 다른 아역배우들 생각해보면... 진짜 대단해."

유대연 감독에 말에 움찔한 이들, 다들 내가 8살이었다는 것을 잠시 잊은 듯했다.
남은 촬영까지 끝낸 뒤, 나를 데리러 온 아빠의 차에 탔다.
유대연 감독이 다가오며 말했다.

"지호 씨, 이거 시윤이 선물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게 뭔가요?"
"영화 소품입니다. 추억이 됐으면 해서요."

오늘 찍은 신에서 한가인은 자신 부모의 사진을 목걸이에 간직하고 있다가 민성을 살리기 위해 잃어버린다.
그 목걸이를 기념으로 준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유대연이 주는 소품을 받았다.

"이거 찍으면 안 되죠?"
"... 그치, 해외에서 투자가 많아서... 스포방지를 심하게 하더라고."
"감사합니다~ 제가 말한 3항 지켜주셔서."

내가 유대연에게 조건을 내건 5가지 사항이 있었다.

1. 내가 8살이란 것을 잊지 말 것.
2. 방학이 끝난다면, 촬영은 주말에만.
3. 계약금은 적어도 상관없으니, 추억이 되게끔 만들어 줄 것.
4. 별것 아닌 이유로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면, 그 순간 촬영을 중단하겠음.
5. 부족한 점, 원하는 점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직접 말해줄 것.

 손 글씨로 적힌 소원 같은 느낌이지만, 유대연 감독은 지켜주었다.

"하하하, 그래."

나를 쓰다듬으려는 유대연 감독에게 머리를 허락했다.

"가볼게요~"
"2일 뒤에 촬영 있어, 시간은 아빠에게 얘기해놓으마."
"네~"

아빠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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