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오디션. (30/99)



〈 30화 〉오디션.

나는 수중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감탄하는 이들.
여유롭게 1분가량 숨을 참으며, 장면에 필요한 모든 행동들을 하고 있는 모습에 경악한다.

"와... 걷는 거보다 빠른데?"

나는 빠르게 물속에서 움직이기 위해 지형지물을 이용했다.
물밑에서 기어오는 좀비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
나와의 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된 스턴트맨이 더욱더 속도를 냈지만 좀비처럼 움직이며나를 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와..."

물속에서의 화려한 동작으로, 관계자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좀비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스턴트맨이 최선을 다하면서 긴박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숨을 참는 시간을 고려해, 1분이 지나고 물 밖으로 나왔지만, 숨을 들이킬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송일성.

"시윤이... 수영 잘하는구나..."
"좀 한다고 했잖아요~"

김하늘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수준 아닌가...?"

수영 연습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말했던 감독만이 촬영 전부터 내 수영실력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옆에서 감독이 말했다.

"시윤이... 보내준 영상에서 숨 참는 거 8분이던데..."
"".....""
"그것도 대충 했다고..."

말없이 옷의 물기를 짜고 있는 나를쳐다보는 이들.

"왜요."
"아... 아니다."

유대연 감독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시윤아 물 온도는 괜찮니?"
"네~"
"그래, 자! 다음 신 가겠습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관계자들이 전부 준비를 하고, 우리는 촬영을 이어나갔다.







"시유나... 요즘  나랑 안 놀아...?"

울먹거리는 다연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연이 두고 누구랑 놀아~"
"그치만... 맨날 어디 가잖아..."

내가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을 다연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 영화 찍고 있어."
"!!! 진짜?!"

다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달라붙었다.

"엄마가 말  해줬어?"
"응! 엄마도 알고 있었어?!"

나는 김선화에게 지나가듯 이야기했었기에, 미안한 감정을 느꼈지만,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우선이다.

"응, 다연이한테 말한  알았는데..."
"엄마 나빠!"
"그래도 다연이 엄만데?"
"그래도 나쁜  나쁜 거야!"

나는 웃으면서 다연이의 손을 잡았다.

"내일 영화 촬영하는데 놀러 올래?"
"진짜?!"
"응, 아빠한테 말해놓을게, 같이 가자~"
"응! 진짜 가고 싶어!"






다연이는 결국 김선화랑 함께 촬영장에 오기로 했다.
점심시간 쯤 도착한 다연이.
한성의 클래스라도 보여주고 싶었는지, 뒤에 딸려오는 럭셔리한 푸드 트럭.
요리사들이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오는 관계자.

"저..."

김선화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시윤이 응원차 왔는데, 식사하시죠."
"아, 자...잠시만요, 전해드릴게요."
"네~"

촬영 관계자들은 김선화 덕분에 점심부터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뜯었다.
몇 백 명의 인원들에게 고급진 식사를 대접한 김선화,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다연이도 환영했다.
그리고 오늘은 보낼 필요가 없다는 정보를 듣지 못한, 지수가 보낸 커피 차.

"와... 시윤이... 인맥 봐."
"그러게, 인기 많네..."

김하늘이 옆에 커피를 마시는 송일성을 바라보았다.

"선배님은 뭐 없어요?"
"야! 지는!"

김하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그래도 촬영하는 동안 2번은 받았거든요...?"
"시윤이는 매일같이 오잖냐."
"근데... 와... 아무리 생각해도, 시윤이 대단하네요."
"지호가 대단하지."

옆에서 그 말도 맞는다는 듯이 김하늘이 끄덕였다.
그때, 커피를 들고 온 강희선이 말했다.

"그... 혹시 아세요?"
""?""
"시윤이 친구라고 따라온 꼬맹이 한성 이진석 딸인 거."
""...?!"

그리고 멀리서 시윤이가 또래의 여자아이 다연이랑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진짜?"
"소문인 줄 알았는데, 한성의 김선화도 같이 왔더라고요..."
""와...""

멀리서 보이는 시윤이의 손에 있는 단검,
소품이지만 펜을 돌리듯, 현란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초등학생이 단검을 돌리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






"시유나, 머해?"
"응? 촬영대기하고 있지~ 다연이 얼굴 타겠다. 엄마한테 선크림 발라달라고 그래."
"응!"

다연이는 내 말에 아빠랑 대화를 하고 있는 김선화에게 뛰어가더니, 깔끔하게 선크림을 바르고 왔다.
주변에 보이는 좀비 분장을 한 사람들 때문에 크게 놀라는 다연이.


"꺄악!!!"

나는 다연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다연이 놀랬잖아요!"
"미...미안."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고 촬영장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이동했다.

"나 오늘 여기서 촬영한대."
"우와..."
"재밌겠지?"
"응!"


시간이 흐르고 내 촬영 신이 시작됐다.

"야 쥐새끼, 네 언니 뒤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나와라."

나는 손을 펼치며, 항복 의사를 밝히면서 밖으로 나왔다.

"와... 진짜 형님 말이 됩니까? 너무 어린데요?"
"...닥쳐,  좀만한 꼬맹이 때문에, 우리 식구 30명이 죽었으니까."

나를 보며 울먹이는 민지 역을 맡은 강희선.

"가... 가인아..."
"울지 마. 일 틀어지면 나라도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냥 도마..."

민지의 말은, 목에 깊게 들어오는 칼날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감이 대단하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리를 밟으며 다가갔다.

뽀드득, 뽀드득.

어린아이가 살얼음을 밟듯 장난스럽게 다가오는 모습에 인해 움찔거리는 이들.

"오지 마!"
"병신들.  겁먹고 그래... 내가 니들 나이였으면... 어휴 말을 말아야지."
"저 좀만한 새끼가!"

남성이 나에게 던진 칼, 자연스럽게 피했지만 볼을 스쳐 지나갔다.
싸늘하게 웃는 내 모습으로 그들은 더욱 동요한다.

"아하하. 도망은 무슨, 언니랑 그냥 길동무하자 우리."

허벅지에 있는 주머니에서 꺼낸 비수를 던지며 달려 나갔다.
방어하기 위해 팔로 얼굴을 가리는 남성.
양발을 부딪히며 달려 나가자, 신발 코 부분에서 칼날이 나왔다.
얼굴을 가린 남성의 허벅지를 타고 옆에 있던 남성의 관자놀이를 신발 끝으로 찍었다.
신발 끝에 달려있는 날붙이가 분리되어 남성의 관자놀이에 박혔고, 팔에 비수가 꽂힌 남성이  목을 잡았다.

"씨바아알!!"

내 목을 잡고 들어 올리는 남성,
모두가 몰입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시유니 괴롭히지 마!!!"

나를 들고 연기를 하고 있는 남성의 허벅지에 '정권 지르기'를 하는 다연.

"".....""
"아..."

내 목에서 팔을 떼는 남성,공중에 있던 나는 와이어를 통해 내려왔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다연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우오..."

유대연 감독이 머리를 매만진다.
멀리서 당황하며 뛰어온 김선화가 크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김선화는 다연이를 들고 사과를 했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에이 8살이 그럴 수 있죠, 그쵸?"

나와의 약속을 떠올린 듯한 유대연 감독은 어색하게 끄덕였다.









저녁 촬영까지 진행되며, 김선화는 미안한 마음에 저녁까지 쏘게 되었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아닙니다!""

한성의 김선화, 그녀가 어떤 행동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김선화의 눈치를 보았다.
우리는 4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김선화.

"시윤이 연기 엄청 잘하던데?"
"원래 다 잘해요."
"그...그렇지..."

반응에 실망한 내가 김선화의 눈을 쳐다보자, 김선화가 혼자 뜨끔해서 다시 말했다.

"시윤이는 다 잘해서 진짜 대단해!"

옆에서 다연이가 먹다말고 김선화의 말을 따라했다.

"대단해!"
"촬영은 언제까지 하는 거니?"

김선화의 질문에, 고기를 썰던 아빠가 말했다.

"제가 알기론, 학교 여름방학 끝나기 전까지 일거에요."
"아, 그렇게 짧게 찍어도 되는 건가요?"

김선화의 질문에 아빠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으쓱인다.

"그래서, 시윤이 분량을 한 번에찍고 있기도 한데, 방학 끝나고도 주말에 추가로 찍을 수도 있다네요."

아빠의 말에, 김선화는 물론 다연이도 끄덕였다.
나는 입에 한가득 음식을 넣은 다연이의 입을 닦아주었다.

"맛있어?"
"음!"
"천천히 먹어."
"암겜엄."

천천히 씹기 시작하는 다연이를 보니 미소가 흘러나왔다.





영화 촬영이 한창인 어느 날.
앞으로의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점핑 부츠를 신게 되는 신을 오늘 찍게 되었다.
내 옆에서 전투력이 강한 노인, 곽인구 역을 맡은 송일성 배우가 나를 챙겨주었다.

"시윤아... 할 수 있겠어?"

나는 작중에서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을 들려고 하자, 송일성이 도와줬다.

"생각보다 재밌던데요?"
"진짜 조심해야 돼, 보호 장비를 차기는 하겠지만."
"네."

유대연의 큐사인이 떨어지며, 우리는 연기를 시작했다.







영화 촬영은 NG가 거의 없기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감독이 생각했던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단축되어, 이젠 촬영장에 놀러 가는 정도였다.
다만 시간이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내 애드리브 때문이었다.
처음 내 애드리브를  유대연, 그 뒤로 애드리브를 요청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며,
대본 버전과 애드리브 버전을따로 찍을 정도로, 많이 찍었다.
아무튼... 그걸 감안하고도 촬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고, 내가 촬영해야 했던 신들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내 마지막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는 배우들과 인사를 나눴다.

"재밌었어요!"
"시윤아, 수고 했어~"
"고생 했어~"
"넵."

멀리서 장성만 대표가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

내 말에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짓는 장성만, 나는 선심 쓰듯 말했다.

"알겠어, 삼촌 가자!"
"오!!! 드디어..."

직원들을 시켜도 되지만 장성만은, 나를 직접 데리러 왔다.
책임감이 있어야, 아빠도 자신을 믿는다면서.
내가 예전에 장성만의 향수 냄새를 싫어했던 티를  이후로, 이젠 뿌리지도 않는다.

"시윤아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빠가 나 기다려."
"아니야~ 허락 맡고 왔는데?"
"아빠 간이 코딱지만 해서 음악 하는 거 아니면, 나 두고 아무것도 못해."

장성만은 잠시 생각하더니 끄덕였다.

"그렇겠네."

나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 하는 장성만, 내가 관심 없어하자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츄러스 사줘."

내 말에 갑자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장성만.

"시윤이, 츄러스 먹고 싶어요?"

'이래서 시발, 하아...'
내 반응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장성만에게 말했다.

"안 먹어."

"시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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