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오디션. (32/99)



〈 32화 〉오디션.

이진석의 서재 안에서, 나는 이진석과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
"다연이가... 왕따라니... 학교 가기 싫어하더구나."
"누가 괴롭혔어요?"

내 말에 분노한 이진석이 뜨거운 매실차를 벌컥 마시고는 잔을 바닥에 내려쳤다.

"감히!"
"그니까, 그냥 내가 가는 학교오라니까! 왜 다연이랑 나랑 떨어트려 놔서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한 이진석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윤아 어떻게 해야 하니."
"플랜 B로 가야죠 뭘, 왕따 당했다고 주변 학교로 전학 가면 그거대로 소문날 거 아니에요."

이진석이 말없이 끄덕이더니, 나에게 플랜 - B 라고 적힌 종이봉투를 넘겼다.
HSW 후보.
꼬맹이들의 인적 사항, 성격 등의 정보가 담긴 봉투였다.

"동갑 경호원 조기교육이라니...  천재야 시윤아."
"어디 가서 경호원인  들키지 않도록 교육이나 시켜요... 한성 이미지 다 날아가니까."
"당연하지! 이래 보여도 그거 극비사항이다."

HSW, 쉽게 말해 한성의 무기다.
S사, 정확하게 태백에 대항하기 위해서, 과거 이기석이만든 경호원 조직으로, '파란 지붕'과 비견될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그 HSW의 어린 경호원 차출에 대해, 서재 안에서 비밀리에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3명까진 줄여봤어요."
"흠..."
"이 친구는 조금 마음에 안 들긴한데..."

내가 건넨 종이를 읽는 이진석.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한 꼬마는 이진석은 자신이 생각한 강력한 후보였는지, 눈에 띄게 반응했다.

"왜?"
"얼굴을 봐요."

모든 성적이 압도적으로 높은 김태오란 남자 꼬마 아이, 하지만 얼굴이 너무나도 잘생겼다.
그것도... 꼬마 모델 급으로.

"...잘생긴 사람이 싫니?"
"뭔 개소리야, 다연이가 그 꼬맹이한테 반하면, 책임질  있어요?"

이진석은 그제서야  말뜻을 이해했는지, 움찔했다.

"서... 설마."
"매번 자신을 구해주는 남자한테, 다연이 성격상 무조건 빠져요. 거기에 이렇게 잘생겼어봐."
"아..."

남은 2명의 의견을 묻는 이진석.

"왼쪽은, 자기가 경호원인  티 낼 거 같고, 오른쪽은 너무 열정적이라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
"암튼 나는 3명 골랐으니, 갈께연~"

나는 서재 밖으로 나갔고, 이진석은 문서 안의 3명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겨울방학에 환호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나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어제온 초대장을 떠올렸다.


"시사회라..."


아빠는 초대장이 왔다며, 단풍잎 게임을 하던 내게 건네주었다.
초대장에는 1,2,3차 시사회의 초대장이 있었지만, 1차는 수정 단계라서 관계자 외 참가가불가능하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추자, 아빠가 싱긋 웃는다.

"...이거 맞아?"
"음... 맞지 않을까?"

나는 충격적인 눈빛으로 하나의 문구를 읽었다.
-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아서... 시윤이는 1차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직접 모니터링을 한 작품이지만, 영화관에서 내가 나온 작품을 못 본다고 한다.

"....."
"시윤아?"
"나... 영화관에서 못 봐...?"

내가 실망하고 있자, 아빠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힘들게 찍었는데..."

아빠는  가지 결심을 했는지 끄덕였다.

"집에서 보면 되지!"
"...사람들 반응을 보고 싶었는데..."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윤이 크면, 이번에 찍은  영화관에서 보기로 하자!"
"하아...  19세 영화를 보려면... 내가 살아온 만큼 더 살면 되겠지..."
"모... 몰래 보러 갈까...?"
"어떻게?!"

아빠는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결국 장성만에게 전화를 했었다.

잠시 어제의 일을 떠올리는데, 박지훈이 옆에서 귀찮게 말을 걸었다.

"와... 같은 반 못  뻔했네."

다음 학년 반 배정을 바라보고 있는 지훈.
과거, 재형이가 무식의 끝을 보고 있었다면, 지금은 꽤나 노력한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재형이었던 시절보다 지금이 머리가 더 좋다던가.

"나, 생각보다 머리 좋은 거 같아..."

자신의 성적을 보고 있는 박지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8살짜리 애들 사이에서 턱걸이로 올라왔으면서?"
"턱걸이 아니야..."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훈을 무시한 채, 그림 노트를 펼쳤다.
그곳엔 내가 최근에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와... 진짜로 미대 준비하쇼? 대박이네..."
"스케치는 어느 정도 되는  같은데 흠... 색을 넣으면 이상해진단 말이지..."

박지훈이 내 노트를 가져가더니 하나씩 훑어본다.

"미술 쌤이 찾아오라고 했잖수."
"너는 존칭을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 언제까지 섞어서 하게."
"그럼 말 놔야지~"

내가 말했지만 박지훈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참... 속에서 말로  수 없는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

나는 노트를 덮고는 책상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매점."
"나도!"

박지훈이 빠르게 일어나더니 나를 따라왔다.
매점으로 향하고 있으니, 역시 못 보던 얼굴들이 많았으며, 나를 처음 본 꼬맹이들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열리는 길.

"".....""

매점에 도착하자, 신나서 고르기 시작하는 지훈.
말이 매점이지 뷔페처럼 각종 메뉴들이 즐비해 있고, 넓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내 손엔바나나우유가 들려있었고, 지훈은 품에 음식을 한가득들고 있었다.

"다 먹을 수 있냐?"
"물론."

계산대에 올려놓고, 현금이 없어서 블랙카드를 꺼냈다.
블랙카드치고 평범하게 생겼지만, 내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알아본 직원.

"...어?"
"계산해 주세요."
"그... 그래."

먹을 것을  때면, 과거의 습관대로 지훈이의 음식까지 내가 항상 계산하게 된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전자레인지로 달려가더니, 피자빵 종류를 데우는 지훈.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훈이 가져온 빵을 뜯었다.
피자빵을 데우고 지훈이가 자신의 빵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장난스레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그럴 거면 또 사면되지  뺏어 먹어."
"내 돈이잖냐."
"와 치사하게  돈, 내 돈이 어딨어."
"...조용히 하고 그냥 앉아서, 먹어라."
"넵."

지훈이가 거만하게 앉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나 때문에 이목이 집중되는  익숙하다는 듯이 주변을 훑는 지훈.
과거의 일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도 지훈이를 무시하지 않았다.
과거 박지훈의 찐따같은 얼굴 때문에 나랑 같이 다녀서 의문을 품었던 아이들.
나에게 선을 넘는 행동을 했던,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꼬맹이를 어르고 달래준 지훈이는 생각보다 유명해져 있었다.
나는 빵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면서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찍은 영화 예고편 나왔다."
"!? 진짜?"

나는 개봉 예정일이 나오는 예고편을 보여줬다.
피자빵의 소스가 묻은  더러운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려고 하기에, 휴지를 던져주자 손을 닦는 지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핸드폰에 집중했다.

"와... 기술력 봐라..."

아빠가 만든 긴박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하늘 배우가 화면에 나오고, 압도적인 수의 좀비들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김하늘이 문 앞에 앉아 있고, 작은 구멍을 통해 화면이 통과되며, 완벽한 자세로 석궁을 조준하고 있는 내가 나왔다.
-"더 숙여, 머리 뚫리기 싫으면..."
귀여움을 뽐낼 나이지만, 직접 대충 자른 것 같은 단발.
감정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이질적인 퇴폐미가 흘러나왔다.

"오우..."

나는 다시 돌려보고 있는 지훈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잘 나왔냐?"
"와, 자세 보니, 옛날 자세 그대로네."

학교 핸드폰이 규정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사용할 경우 벌점을 받는다.

"야 그만 보고 너껄로 봐."

말을 무시하며, 내 핸드폰을 바라보는 지훈.

"와... 엄마한테 보자고 해야겠다."

나는 지훈이 가져온 롤케이크를 한입 먹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인데?"
"...그럼 너도 못 보는 거 아니냐?"

나는 어제 아빠와의 대화 내용을 떠올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JSM 본사에서 내가 영화를 본다는 것을 발설하면  된다고 하기에...
"....."

나는 그 많던 음식을 다 먹은 지훈을 쳐다보았다.

"그게 다 들어가냐?"
"크흐... 배부르다. 뭐 얼마 되지도 않구먼."

내가 먹은 우유와 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움직이자, 자리를 치운 지훈이 나를 따라왔다.
반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서, 지훈이가 물어보았다.

"어디 가?"
"미술실."
"갑자기?"
"다음 수업 안 들을 거니까, 선생한테  좀 전해주고."
"허어... 이게전교 1등 클라쓰인가?"

나는 중얼거리는 지훈이를 두고 미술실로 향했다.







"어! 시윤아 무슨 일이니? 오늘 수업 아닐 텐데."
"다음 수업 장혁진 선생님 수업인데 말 좀 전해줘요, 그림 연습한다고."
"물론이지! 기다려 지금 전해줄게. 저기 앉아있어."
"네."

미술 선생은 국어 선생에게 전화를 걸더니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림 그리려고 찾아온 거야?"
"네."
"어떤 종류?"

진지하게 내 앞에 앉아서 하나하나 물어보려는 선생에게 노트를 건넸다.

"역시..."

사진처럼 뽑아내는 내 그림에 감탄하는 미술 선생.

"제가 색칠이 부족해서요."

잠시 내가 넣은 명암을 보더니 미술 선생이 의아해 한다.
하지만 정말 색을 넣는 것이 부족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는지, 미술 선생은 창고로 움직였다.

"그래? 그러면 흑연으로 그리는  익숙하니까, 수채색연필로 시작해볼까?"

한곳에서 가져오는 박스로 되어있는 케이스.
그곳에 120색 연필이 들어가 있었고, 준비를 끝낸 미술 선생이 한곳에 모형 과일과 꽃을 두었다.

"정물화가 색에 익숙해지는데 좋을 거야."
"넵."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지, 한쪽에 스케치북을 펼친 선생이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빨간 연필로 연하게 틀을 잡는 미술 선생이 나에게 자신이 쓰던 펜을 넘겼다.

"색이 전부 달라서, 실수할 수 있으니 틀을 만들어 주는 거야."


선생과 다르게나는 색이 연하지만,  번에 틀을 만들었다.


"오... 그것도 좋지만 정확하진 않은걸?"

내 옆에서 펜을 잡고 사과의 크기를 가늠한 선생이 한면 한면 잡아서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어때?"


확실히 선생이 그린 것은 완벽을 넘어서, 자신의 색이 들어가 있었다.
틀밖에 없는 그림이지만, 모형 사과와 다르게 생긴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을 꿈꾸는 이들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표.
2022년도 최고 경쟁률을 자랑하는 한국 종합예술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민수 미술 선생의 그림은 확실하게 달랐다.
서울사립초에서도  젊은 미술 선생을 데려오려고 꽤나 많은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선생이 알려준 대로 차근차근 그려나갔다.


"와... 대단한데? 확실히 기본기가 엄청 튼튼하다."

선생은 사과 하나를 금방 만들었고, 나에게 펜을 순서대로 쥐어줬다.
기억력을 토대로 하나씩 그려가자 감탄하는 미술 선생.

"하나도 안 부족한데?"

나는 피식 웃고는 일어나서 사과를  바퀴 돌렸다.
노란색이 더 많이 보이는 사과.
말없이 빠르게 그려나가자, 미술 선생은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렸다.

"보고 그린 게 아니라 그냥 나를 따라서 그린 거였구나..."
"네."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주는 선생을 따라 그림을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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