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오디션. (33/99)



〈 33화 〉오디션.

학교가 끝날 때까지 부족한 채색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술실에 있었다.
국어에 이어 다음 수업은 내 담임인 수학 선생 수업이었고, 상황을 들은 선생은 나를 데리러 왔다.

"시윤아 가야지."
"네."

어차피 그림도 끝나가서 가려던 찰나, 고민수 미술 선생은 말없이 내가 그린 그림을 쳐다보았다.
압도적인 재능인 줄 알았던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고민수 선생.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신을 차린 고민수 선생이 수채색연필이 들어있는 상자를 새로 꺼냈다.

"이거 선물이야~"
"아! 감사합니다~"
"어차피 학교 건데 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오늘처럼 수업 없는 날 찾아오면 돼."

고민수 선생은 자신의 시간표를 나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색연필 다 쓰면 찾아와~ 채워줄게 알겠지? 꼭 또 와야 돼~"
"넵."

내가 힘겨워하며 거대한 케이스를 들고 있자, 담임 선생이 들어주었다.

"시윤아,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
"그래요?"

나는 담임의 안내를 받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한곳에서 다른 선생에게 사인을 해주며 기다리는 아빠.
나를 발견하더니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는다.







얼마 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배우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나에게 콜라랑 팝콘을 챙겨주는 강희선.

"맛있어?"
"응."
"와... 시윤이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네."
"이모도 예뻐."
"진짜!?"
"거짓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줄게."
"....."

내 말에 김하늘 배우와 송인성 배우가 웃는다.
감독이 제작자 한명 한명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마무리로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작품을 같이 끝내주었다는 것에 고마워하는 유대연 감독.

"우리 편집자들은 좀만 더 고생하고! 다들 고생해 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박수를 끝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모니터링을 할 때는 몰랐지만, 스크린을 보니 매우 화려하게 나오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흘리며 시작하는 영화.
좀비에게 도망치는 배우, 숨 막히는 추격신이 나온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상황이 매우 아슬아슬해 보인다.
저 장면을 찍기 위해서, 수많은 좀비 엑스트라들이 갈려나갔다.
사람을 갈아 넣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듯, 영상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감독.
어느새 나의 첫 등장신이 나오며, 아빠가 침을 삼켰다.
헐떡이는 엑스트라 앞에 겁을 먹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나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해 보이는 얼굴로, 머리에 칼을 박아 넣는 장면은 달빛의 그림자로 가려졌다.
완전한 악당으로 나오는 거 같아 보였는지, 아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모습을 팝콘을 입에 쑤셔 넣으며 지켜봤고, 볼이 빵빵해진 나를 본 민지가 미소를 지었다.


한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모습이 나왔다.
아직 정하지 못한 부분과,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듯이.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옆에 있던 아빠가 급하게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치워."
"안 돼! 너무 잔인해."
"에일리안보다 덜 잔인해, 1편부터 6편까지 다 봤고, 나도 알 거 다 알아."
"....."

아빠가 자연스럽게 손을 뗐다.
전체적인 모니터링의 목적으로 보여준영화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상영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리에게 의견을 묻는 감독.
어차피 형식적인 부분이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다고 기대된다며 말하고 있을 때, 나는  가지 장면을 이야기했다.
특히 쓸모없어 보이는 부분들, 수영 신은 너무나도 빛 좋은 개살구인 느낌이 강했다.
내가 돋보이며 화려하고 좋은 신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어색했다.
감독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 다들 하나씩 의견을 더 내기 시작했고,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감독은 크게 만족을 하고 있는지, 답변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결국 감독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의견들을 노트에 적어내리며 대답했다.

"정말... 마지막까지 도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박수를 끝으로 우리는 회식자리에 갔다.
아빠는 생각보다도 인싸인지, 술은 거절했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하긴 낚시와 경제밖에 모르는 이진석과도 친구를 먹는데, 아빠는 타고난 인싸가 분명하다.
 와중에 아빠는 익숙해진 듯 보지도 않고 내가 먹을 고기를 잘게 썰고 있었고, 술을 많이 마신 유대연 감독이 다가와 아빠에게 다시  번 말했다.

"오늘은 무조건 제가 삽니다."
"아하하. 그렇다면 많이 먹고 가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그겁니다! 모두 배가 터질 때까지 드세요! 시윤이도 많이 먹으렴~"

나는 술기운에 얼굴이 빨개져서 좋아하고 있는 유대연을 바라봤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어서, 고뇌하며, 기대하고, 몰입하면서 만들었을 이번 영화.
그 영화의 끝이 눈앞에 보이자, 유대연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예전에 내가 보는 앞에서, 처음 피아노를 치던 아빠의 표정이 떠올랐다.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
정말로 원해서 하는 일.
정말로 즐거워하는 표정.
눈앞의 자신의 꿈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행복해 보였다.
남들에게 민폐만 끼치면서 살아왔던... 하나의 담배 같던 내 인생을 돌이켜보며 떠올렸다.

'나도 저렇게 행복해했을까...?'







다음날, 아침이 되자, 베타가 내 얼굴을 핥았다.

"....."

지금 밖의 날씨는 누가 보더라도 '좋은 날씨다.'라고 할만한 날씨였다.
커튼 사이로 내리쬐는 빛이, 하필이면 내 눈을 찌르지만 않았다면 완벽했을 텐데...
커튼을 치고 싶었지만 팔이 짧은 관계로, 그냥 아빠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베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지, 아빠와 내 사이에 파고들어왔다.
아빠가 뒤척이기 시작했고,  행동으로 인해, 커튼 사이로 뜨거운 햇빛이 내 눈꺼풀을 찔렀다.

"윽..."

나는 베타를 들어서 내 머리 위에 앉히려 했고.
누워서 6kg의 베타를 들려고 하니, 힘들어서 잠이 다 날아갔다.
누가 그랬지, 커피를 마셔서 잠을 깨는 것보다, 잠을 깨려고 커피를 만들다가 쏟으면 잠을  잘   있다고...
그러므로 내가  잘  없다면, 잘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운다.
이것이 어린 나의 해석이자 특권이다.

"아빠."
"...으응"
"배고파."

솔직하게 배고프지 않지만, 내가 배고프다고 말하면 조건반사처럼 몸을 일으키는 아빠.
얼굴은 순둥순둥해 보이지만, 쩍쩍 갈라져 있는 몸은 과거 박기의 몸을 연상케 했다.
물론 박기보다 실속 없는 데코레이션 같은 근육이지만.

"베타가 자꾸 깨워..."
"으응? 왜 그럴까아아...아..."

아빠는 다시 자려다가 내가 배고프다고  것을 떠올렸는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베타와 알파를 쳐다보다가 둘을 씻긴 지 2주가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로와."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파와 베타가 다가왔다.

"씻을까?"

알파는 빠르게 도망쳤으며, 베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쓰다듬어달라고 내 품으로 파고들어왔다.
나와 누운 키가 비슷한 베타.
 정도면 고양이가 아닌 사자가 틀림없다.
내가 거실로 나가자, 알파가 내 뒤를 따라온다.

"아빠."

앞치마를 매고 있는 아빠가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응?"
"오늘 영화 보는 거 알지?"
"아!!! 오늘이구나!"

아빠가 장성만 대표에게 부탁해서, 내가 나온 영화를 다연이와 이진석과 내 지인들이랑 같이 보기로 했다.
김선화는 정연이와 가연이를 보기 위해 집에남았다.


아빠의 요리 실력은 너튜브로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잘했다.
셰프라도 되는 것처럼.

"시윤아."
"응?"
"아빠 좀 찍어줘,"

아빠는 나로 인해 밤에 주로 하던 공연을 안 하기 시작했고, 아빠의 팬들이 장성만을 괴롭혔다.
그렇게 장성만은 아빠에게 공연을 하지 않을 거면 브이로그라도 찍어 달라 부탁했고.
아빠는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나는 아빠의 핸드폰으로 브이로그를 켰다.

"안녕하세요."

내 잠긴 목소리만 나오고 화면에는 식탁 위에 있는 베타만 보였다.

- 시윤아!!!
- 아침부터 시윤이 목소리 힐링 된다...

내가 베타를 손으로 쓰다듬으니, 그 크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내 손이작아 보였다.

- 아빠 보여줘!

내가 핸드폰을 들어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아빠를 비추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꺄아아악!!
- ㅗㅜㅑ... 지호 오빠... 하앍
- 아침부터 힐링합니다.
- 유부남이 됐는데.... 몸  좋아진 거 봐... 와...  근육 심멋...

아빠는 촬영 중인 핸드폰을 보고 잠시 인사를 하고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아니... 아빠가 키라며."
"미안..."
"이럴 거면 내가 방송했지."

- 이모는 환영이다.
- 삼촌도...
- 오늘 시윤이 영화 나오잖아!

나는 댓글을 보고 말했다.

"난 8살이라 못 보는데... 좀 억울하네."
- 시윤아 혹시 단풍잎 게임해?

그때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나는 유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빠르게 답했다.

"그게 뭔데요?"

잠시 내 목소리로 의심하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을 무렵.
아빠는 시간이 남는지, 나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걸어가는 도중 거울 식으로 되어있는 냉장고에 내 모습이 비춰졌다.

- 와... 방금 뭐야.
- 진짜 너무 예쁘다...
- 솔직히 김지호도 비주얼 지리는데, 딸이랑 있으면 오징어...

나는 노란색의 병아리 잠옷을 입고 있었고, 큰 사이즈의 잠옷이었기에 펄럭이며 걸어 다녔다.
아빠에게 핸드폰을 넘기고, 알파와 베타의 간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아빠가 나를 방송에 비췄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다.

"아빠 얼굴이나 찍지?"
"우리 딸 예쁜 모습 남겨야지~"
"흠... 영화로 많이 남겼어."

내가 자연스럽게 팔을 내리니, 아빠가 어색하게 웃었다.
알파와 베타가 간식을 들고 있는 내 손만을 쳐다보고 있길래, 쪼그려 앉았다.

"오늘 나 깨운 베타는 기다려."

내가 간식을 바닥에 내려놔도 가만히 있는 베타.

"먕..."

손에 들린 간식을 알파에게 먼저 먹인 뒤, 베타에게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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