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꼬맹이들의 다짐. (51/99)



〈 51화 〉꼬맹이들의 다짐.

겨울방학은 '내 사랑은 구미호였다.'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찍으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좀비 영화의 영향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는 해외에서 투자가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해외에서 더욱더 유명세를 치렀다.
나는 바쁜 스케줄을 끝내고, '내 사랑은 구미호였다'를 촬영하는 도중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호연 배우였다.



여배우 이호연.

구미호에게 홀린 남자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 역의 배우로, 주연 같은 조연이지만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배우로서 앞길이 창창한 여배우였다.

'나에게 그런 짓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첫 촬영 당일, 나는 분장을 마친 뒤, 아빠랑 사진을 찍으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장면보다 앞서 찍어야 하는 이호연은 시간이 지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다들 걱정을 먼저 했지만, 결국 아무 소식도없는 이호연 때문에 분위기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이유인즉슨, 오늘 찍는 배우들의 짬밥이 낮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주연 배우도 아빠의 회사 소속 아이돌 출신이었기에.
한마디로 배우들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 늦게 오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빠의 얼굴은 썩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새하얀 가발과 핑크색의 아이라인을 그리며, 뾰족한 송곳니를 만들고 귀가 있는 구미호 분장을  뒤, 괜찮다고 웃으면서 아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는 분장을 한, 내 모습을 보며 기분이 나아졌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내 말랑한 볼을 만졌다.
그리고 나는 아빠와 영상을 찍으며 놀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30분을 더 기다리게 되자, 나는 결국 감독에게 다가갔다.

"시윤아... 미안하구나 곧 온다면서  이렇게 안 오는지."
"저, 원래 이 작품 하기 싫어했던 거 들었죠...?아니면 못 들으셨나?"
"....."
"그거 봤어요? 유대연 감독님이 말했던 거. 그리고 제가 사진으로 보낸 거."

그 사진은 내가 유대연 감독에게 줬던 약정서 같은 종이였다.
당황해하는 감독에게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5분 안에 안 오면 저 안 한다고 전해줘요~ 아역배우 다시 찾고 시작하자고..."

백발의 가발을 쓰고 귀를 달고있는, 구미호 분장을 하고 있는 내가 생긋 웃어주자, 감독은 움찔하더니 곧바로 이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꼬마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이호연은 5분 뒤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빠~ 가자~"
"응?"
"가자고, 내가 말해놨어."

아빠는 내가 기분 나빠하자, 더욱더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그래..."

우리는 정확하게 5분이 지나자마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자리를 떴고,
그 모습에 당황한 감독이 이호연의 소속사부터, 주변 인물들에게 빠르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이미 떠나버린 배.
촬영장이라는 '섬'에 있던 이들은 곧 더  재앙이 닥칠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된 장성만이 재앙의 시작을 알렸다.
주인공 역을 맡았던 아이돌 출신 남주는 JSM 소속이었고, 장성만은  치의 고민도 없이 남주의 하차를 결정했다.
주연의 하차 결정으로 인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누구의 딸을 건든 건지 정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인정한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당했으면, 자신도 해보고 싶은 법.
존중받아보고 싶고, 위에 군림해 보고 싶은 그런 기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미련도 없을뿐더러, 당하기 싫어서 그냥 하차를 결정한 것뿐이고.
 후폭풍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이건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김지호'의 영향력이 내가 생각한 거보다 압도적이었지만.
아빠가 괜히 이런저런 예능에도 등장하며 사방팔방 돌아다닌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호연과 그녀의 회사는 사과를 하러 돌아다녔지만, 모두 다 나에게 직접 사과하라는 소리만 반복하니, 결국 내 앞까지 찾아왔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빠가 없을 때 다가와서 사과를 하는 이호연.
하지만, 사과라고 하는 소리가 '언니가 너무 바빠서 늦었다.'라는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뉘앙스...
언니는 무슨... 나랑 적어도 2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겉으로 티 낼 수 없는 법.

"아... 네."
"그래도 언니가 잘못한 거니까, 시윤이가 이해하지?"
"전 신경 쓴 적 없는데요 뭐."

이호연은 사과를 끝냈다고 생각했는지, 만족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나는 어이없게 바라보았고.
지금까지 JSM이라는 가벼운 돌풍이 불었었다면...
한성으로 인한 '폭풍'은 다시 한 번 시작됐다.

그 후로 이번 드라마에 투자한 한성그룹 또한 빠지기로 결정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등장한 한성그룹의 계약 파기는 모든 관계자들의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호연과 관련된 회사와 사람들에게 김선화는 직접 "계약은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나저나 우리 시윤이 안쓰럽네..."라고 이야기했다.
이로 인해 이호연과 그녀의 회사는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

나는 이호연이 언제까지 저런 식으로 나올까 궁금했지만...
심각해져만 가는 상황에서, 그나마 현명하게 더 이상 일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 이호연.
나는 이호연이 다시, '겨우 지각한 거 가지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말해주길 원했지만,
이호연은 사과를 건넸고, 나무나도 아쉽게 이대로 끝이 났다.

갑자기 한성이 움직인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던 이들은 알게되었다.
아빠가 한성의 후계자와  동생 하는 사이란 것을...
결국 그들은 나에게 모든 보상을 약속해줬다.

나는 이왕 이 사단까지 난 거, 벼룩의 간까지 떼먹을 생각으로 보상을 요구했고.
이호연의 회사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요구를 전부 수용했다.
그제서야 이호연의 진심 어린 또다시 사과를 듣게 되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드라마 촬영 내내 관계자들은 전부 8살 여자아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호연은 다른 여배우로 교체되었다.
그런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거... 진짜 공주님 된 거 같은데...'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자 아빠가 배를 만졌다.

"차가워, 민감한 나이라 설사해."
"아?! 미안해 아빠 손이 차가웠구나."

아빠는 내 뽈록 튀어나온 하얀 배를 바라보았다.

"아빠 나 간식."
"응? 1시간 뒤에 밥 먹어야지."

나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다가, 아빠를 향해 방귀를 뀌고는
소파를 박차며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게임이나 해야지~"
"내일 학교 가는데 준비는 다했어?"
"꼬맹이들 놀러 가는 곳에 준비할게  있어, 지훈이  하려나."

나는 핸드폰을 만지며, 아빠가 만들어준 게임방에 들어갔다.
알파와 베타도 나를 따라 움직였고, 아빠도 따라 들어오자 나는 말렸다.

"오지 마."
"왜~ 같이하자~"
"아빠랑 같이하면 욕 못 해."

내 대답에 아빠가 슬픈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시윤아... 너무... 솔직한  아니니?"

단풍잎 게임의 '시유 아빠'는 그렇게 방에서 쫓겨났다.




9살이 되면서 새 학기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박지훈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역겨움이 올라온다.
저 X같이 생긴 얼굴로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는 저 시선은 무엇이란 말인가.
손을 들어  눈을 가볍게 눌러주고 싶지만,
어차피 저 작은  때문에 내 손가락은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직도 나를 쳐다보는 지훈이에게 올라오는 역겨움에 말을 꺼냈다.

"뭘 봐."
"날이 갈수록 이뻐지네."

나는 꼬리뼈를 시작으로 뒤통수까지 가시가 돋치는 듯한 서늘한 기운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지훈의 얼굴에 구멍을 내준다는 생각에 펜을 쥐었지만,
차마, 계속 나에게 반찬을 보내주는 지훈이의 어머니 얼굴이 생각나, 펜이 지훈이의 얼굴까지 가지 못했다.
하지만, 반응속도가 빨라진 지훈이는 내 살기를 느끼고, 피하려다 혼자서 뒤로 넘어갔다.




새 학년이 시작되며, 바뀐 선생을 시작으로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 학교.

공부에 대한 열정에, 이래서 사립, 사립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과거를 떠올리며 펜을 돌리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몇 없었던 과거.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글도  읽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물론 나는 중학교 중퇴였지만.
그래서 그때의 나는 꽤나 똑똑했다고 혼자 자부하고 있을 무렵.
옆에 앉아있는 지훈이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나처럼 펜을 돌리려다 실패했다.

"병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지만, 조용한 반 안에서 내 목소리가 울리기엔 충분했다.
나는 모든 시선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

근데 사회를 가르치는  선생은, 나를 혼내야 할 타이밍에  눈을 반짝이는가.
아마도 좀비 영화의 가인을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일 것이다.
'크흠...' 거리며 상황을 인지한 선생은 나를 뒤로 가서 서있게 만들었다.

내가 이 상황을 만들고,  때문에 일어난 일인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지훈이 뒤를 힐끔힐끔 보면서 피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에서 무언가가 꾸역꾸역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새끼는 과거에도 내가 중학교 중퇴인 걸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은 고등학교 중퇴라면서 비웃었다.
같은 병신끼리 뭘 재고 있나 싶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던 재형이에게 말에 대한 책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나는 10분가량  있다가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지훈이는 나에게 맞을까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선생이 책을 읽을 때,
정면을 보고 지훈이의 턱이 있는 방향을 생각한 뒤, 그대로 뻗어 방심하고 있는 박지훈의 턱을 가격했다.

투욱.

고민없이 정확하게 들어간 내 주먹감자.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고, 잠시 마취 총에 맞은 듯, 지훈이가 잠시 기절하며 옆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털썩.

나는 지훈이를 보며 기겁한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허억! 지훈아!  그래!"

나는 이 시대 최고의 아역 배우라는 타이틀을 괜히  것이 아님을, 지훈이에게 실전으로 보여주었다.
내 표정과 함께 갑자기 쓰러진 지훈이를 보고, 기겁한 사회 선생이 지훈이를 데리고 양호실에 갔다.
나는 소주에 국밥을  사발 먹은듯한 시원함을 느끼며, 사회책을 펼쳤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수영 시간이 다가와서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준비체조를 하고 있었다.
박지훈은 친하게 지냈던 꼬맹이와 같은 반이 돼서 기분이 좋은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지훈이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던 다른 꼬맹이가 다가왔다.
나는  하려는지 궁금해서 슬쩍 쳐다보았고, 갑자기 뒤에 있던 꼬맹이가 박지훈의 수영복 바지를 내렸다.
깜짝 놀란 지훈이 수영복을 입으며, 꼬맹이에게 욕을 했다.
그 소란스러움에 수영 선생이 자리로 돌아가라며 경고했지만...

나는 보았다...

박지훈이 왜 그렇게 자신의 소중이를 보여주지 않았는지, 과거와 다르게  숨기고 있었는지.
나는 지훈이의 몸에서 맥또날도의 쉬림프버거에 들어갈 법한 아주 작은 쉬림프를 보았다.

"아핰?, 새끼 존나 작네."
"...."

내 작은 목소리에 심각하게 경직되며 표정이 굳어버린 지훈.

"유치원에서 왜 가리나 했다 새끼얔, 아앜"
"조용히 해..."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깔깔거리며 자지러지자 선생이 다가왔다.

"김시윤!"

다가온 수영 선생, 하지만 나는 배를 부여잡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꺼윽꺼윽 거리자, 수영 선생이 나를 진정시켰다.

"시윤아  그래?"
"쟤... 아핰. 지훈이이잌 아핰."

지훈이 옆에서 서 있다가 빠르게  입을 막았다.
수영 선생이 지훈이를 쳐다보자 지훈이 어색하게 웃는다.

"방귀 뀌었는데 시윤이가 이러네요..."
"아... 그래?"
"네... 부끄럽게..."

수영 선생은 얼굴이 빨개져있는 지훈이를 보더니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눈물을 훔치며 웃고 있자 정색하는 박지훈.

"이 새끼 얼굴도 존나 못생겼는데 그것돜 씨밬... 커헙."

박지훈이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내 다리를 발로 차는 지훈.
그 모습을 발견한 선생이, 지훈이가 나를 덮치기 전에 뛰어오며 말렸다.

"놔!!!"

흥분한 지훈은 결국 내 얼굴에 한방이라도 먹이고 싶었는지, 선생을 피해 달려왔다.
그리고 뻗는 주먹, 나는 가볍게 지훈의 주먹을 피했다.
선생이 뜯어말린 후에도 내 얼굴을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보는 지훈.
나는 진심으로 분노하고있는 지훈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들고 사과했다.

"미안하다."
"....."
"근데... 너뭌"

나는 압도적인 기억력에,  장면이 다시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했고, 박지훈은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씨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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