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SIYUN - In her brain.
시간이 흐르고, 아빠랑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무렵 택배가 왔다.
"아빠, 뭐 시켰어?"
"아니."
"아빠가 나가."
"귀찮아~ 시윤이가 가."
"힋! 택배인척하고 있는 암살자가 덮치면 어떻게 하지?! 난 꼬맹인데?"
"그건 아빠도 위험해."
"아~ 싫어어~ 알파랑 베타가 나한테서 떨어지질 않네~"
아빠는 나에게 장난을 치다가 일어나더니, 나가서 택배를 받았다.
택배를 가져온 아빠.
"그림인데?"
"그림? 무슨 그림?"
아빠는 포장지를 뜯었고, 나는 아빠가 건넨 편지를 받았다.
"응?"
나는 편지 봉투를 뜯은 뒤 내용을 확인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악필인가? 싶은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 김시윤 화가에게...
안준태 교수라네.
자네가 내게준다고 했던 이 그림은 정말로 가지고 싶었으나, 도저히 받을 수 없겠더군.
그림 안의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그림은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지난 14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 그림만 바라보았다네.
이 그림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차마 설명할 수 없겠더군.
내가 그림을 보고 이렇게 감정적이게 바뀐 것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지...
물감 값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고민수 화가에게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너무 많은 재능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나도 고민수 화가처럼 자네가 그림을 그리길 원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자신이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걸 해야 한다는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네.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을 부탁을 해도 되겠나?
그림을 그리는 것만은... 그만두진 말아 주게나.
안준태 (인)
아빠는 내가 편지를 읽는 동안 말없이 그림을 보고 있었다.
"왜? 아빠는 무슨 기분이야.?"
나는 아차 싶었다.
아빠의 눈시울이 이미 붉어지기 시작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하필이면... 에이미 엘런도 엄마와 같은 단발이다...
저 감수성 풍부한 다 큰 아빠의 눈물보를 건드린 거 같아서, 빠르게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거니까 의미 부여하지 마."
아... 이미 늦었다.
역시, 아빠의 붉어진 눈에서, 아빠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윤이도... 아닌척해도 평소에 그리웠구나."
"아니야!"
"괜찮아, 아빠한테 말해주기로 했잖아."
"아니라고! 울지 말라고! 그거 엄마 아니라고!!!"
내가 엄마를 생각하며 그렸다고, 착각하는 아빠였다.
학교 아침조회시간, 담임이 나를 불렀다.
옆에서 비웃는 지훈, 내가 혼나러 가는 줄 아나보다.
나는 선생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엿을 날린 뒤 선생님을 따라갔다.
"왜요?"
"상을 탔다고 하던데? 큰 상인 가봐?"
"아, 그 그림상인가?"
그리고 보이는 교장실, 담임 선생은 나를 배웅해 주고 할 일을 하러 떠났다.
문을 열자 교장실이 보이고 옆에 고민수 선생이 있었다.
"오오... 시윤이지? 정말 팬이란다."
"범죈데요?"
나도 모르게 친한 사람에게 하는 드립을, 처음 보는 교장 면전에 박았다.
"푸훕."
"....."
커피를 쏟는 고민수.
나는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서 웃으면서 말했다.
"상 탔어요?"
고민수 선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대상이란다. 이제 세계 대회로 나가 호주에서 상을 노린다면, 네 작품이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겠지..."
"상장은요?"
"다음 주에 받을 예정이란다. 거기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안 해요."
"....."
고민수 선생이 이미 말을 해놨는지, 교장이 끄덕였다.
"그럼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어줄 수 있겠니?"
나는 펜을 받아들고는 '137번작'의 설명을 적어 넣었다.
김시윤의 삶을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인 137번작.
나는 설명 란에 글을 적어 넣었다.
-다이아 수저의 삶.
"".....?""
나는 완벽한 설명이라는 듯이 끄덕였다.
하지만, 고민수 선생은 내 글씨에 집중했다.
나의 그 평화로움이,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붓 칠이,
차가운 물속을 그리면서, 여유로움이 느껴지며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서 포근한 감정을 느끼게 해줬던, 나의 붓칠이.
'다이아 수저의 삶'이란 문구 하나로 이해가 되었는지.
고민수 선생은 급격하게 말이 없어지며 내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가도 되죠?"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반으로 향했다.
내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박지훈은 킥복싱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뽐냈는지, 요즘 들어 운동에만 매진했다.
"너 좀 빨리 크는 거 같다?"
나보다 5cm 가량 키가 커진 박지훈.
"원래 여자가 더 빨리 크는 거 아니냐?"
"훗... 이것이 우월한 유전자..."
박지훈의 아빠는 192cm의 키를 보유하고 있었다.
"뭐래 쉬림프 주제에."
"....."
나는 얼굴을 강조하듯이 자만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이것이... 우월한 유전자."
"고추도 없는 게."
"...?"
"생리할 때마다 존나 놀려야지~"
박지훈의 말을 듣고,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2차 성징... 나도 (X, X) 염색체인 이상 피해갈 수 없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박지훈을 쳐다봤다.
"...뭐?"
내 표정을 보고 지레 겁먹은 박지훈.
"너... 네가 먼저 시작했다?"
나는 박지훈의 말로 인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벌레를 보는듯한 표정으로 박지훈을 보며 말했다.
"네가 나한테 그 말 했다고, 너네 엄마한테 일러야지."
갑자기 내 팔을 잡는 박지훈.
"...아니 형님? 우리끼리 해결합시다..."
"아구창 3대 콜?"
"아니 시발, 먼저 했잖아요!"
"그거랑 이거랑 같냐!? 어? 변태새꺄."
박지훈은 변태새끼라는 내 말을 듣고, 나와 멀어지며 정색하면서 말했다.
".....? 그럼 새우는 존나 정상적인 발언인가?"
"왜, 난 쉬림프 버거 좋아하는데."
"와... 미치겠네..."
"그리고 너 군대 갈 때 기대 중임. 존나게 놀려야지."
내 말로 인해 이번엔 박지훈이 급격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고, 떨리는 시선으로 날 보았다.
"...나 군대... 또 가?"
"...미안하다."
"시발 나한테 왜 그래? 너는 과거에도 안 갔으면서!?"
"미안... 그래도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하잖냐..."
박지훈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군대가 군대 아니야? 예전에도 베트남 끌려가던 시대랑 비교해놓고 좋아졌다고 말했거든?"
"그건 네가... 멋있다고 해병대 갔잖냐... 중사 이상은 전부 참전 용산데 당연하지 병신..."
"와... 나 군대에서 겨울에, 밥 반 숟가락 남겼다고 한 톨에 입수 한 번씩 120번 했는데..."
"그거 21번째 듣는다."
"이게 짬밥이라면서 음식물 통 퍼먹었는데!"
"그거 너 취할 때마다 말해서 84번 들었다..."
"선임이 싸움 잘하냐고 물어봐서 잘했다고 했다가 다구리 맞았는데!"
"그건 43번째..."
"고양이한테 경례 똑바로 안 했다고 손목에 5kg짜리 원반 달아놓고, 1시간 동안 경례 자세로 들었는데!"
"132번..."
"아니 축구 동아리 들어올 생각 있냐고 그래서, 없다 그랬더니 생각나게 해준다고 2시간 동안 축구공으로 머리 맞았는데!"
빠악!
나는 박지훈의 뒤통수를 때렸다.
"적당히 해 새끼야! 네 군대 썰은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다녀온 기분이다."
"...거길 다시 가라고...?"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지훈.
"다 뒤졌어, 건들기만 해봐... 김 병장 개새끼..."
"병신 그 사람 이미 뒤지고 없어."
"찾으면 있을수도?"
"어? 그러게...?는 무슨 10살짜리가 7,80대 할아버지랑 맞다이 뜨게? 미친 새낀가 진짜."
나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지훈이 갑자기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뭘 봐."
"나 눈 쌍꺼풀 수술하기로 했어."
"...? 갑자기?"
"엄마가 하라던데?"
"그래 뭐, 요즘 기술 좋더라."
우리는 사립초답게 오늘 점심에 빠네랑 스테이크가 나온다고 해서, 매점이 아닌 급식실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교장선생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받았고, 모든 교실에 배치되어 있는 TV에서 중계되었다.
악수를 하고 끝나는 영상.
미리 찍어놓은 영상이라서, 나는 교실에 앉아서 시청하고 있었다.
"대단한 건가 봐?"
"뭐, 그림?"
나는 핸드폰으로 'SIYUN - In her brain 137.'을 보여줬다.
"...미친."
적혀있는 숫자는 754,000이며, 뒤의 표시는 '$'였다.
"지리지? 나도 느낀다, 요즘 시대에는 돈을 펑펑 날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1교시부터 있는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걸어 나가며 구시렁거렸다.
"아침부터 뭔 체육이냐 귀찮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에 도착한 뒤, 옷을 벗고 있으니 꼬맹이가 다가왔다.
"안녕...?"
"그래 안녕."
"나 드라마에서 너 봤어!"
"고맙다."
"너 진짜 이쁘더라..."
"그것도 고맙고."
체육복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자 꼬마가 뒤에서 당겨줬다.
나는 옷 안으로 들어간 긴 머리카락을 뺀 뒤 손목에 있는 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고맙다~"
"아니야! 이 정도야 뭘..."
얼굴을 붉히는 꼬맹이.
나랑 친해지고 싶은지 나를 따라왔다.
이번 체육시간은피구를 하려다, 체육 선생이 나와 지훈이가 같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과거가 생각났는지, 종목을 바꾸었다.
축구를 하려고 하는지 축구공을 가져오는 선생.
남아, 여아를 나눠놓고 축구를 하고 싶은 여자아이가 있는지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내 눈치를 보는 선생이, 내가 축구에 관심이 없자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쉰다.
"...?"
여자아이들은 다른 종목을 시켰지만, 난 관심이 없어서 운동장 계단에 앉아있었다.
과거, 난 공으로 하는 운동은 골프와 탁구 말고는 해본 적이 없었다.
심심한 재형이가 축구공을 보고는 족구를 하자고 해서 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 공을 자유자재로 만지던 재형이가 족같이 굴어서 존나 팼었다.
지금도 꼬맹이들 사이에서 혼자 우월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는지, 애들을 상대로 사포를 시전하는 저 새끼랑 싸우게 될 것 같아 피했다.
그림자에 앉아서 지훈이 양학을 하고 있는축구 경기를 턱을 괴면서 지켜보자, 아까 봤던 꼬맹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난 이지영이라고 해."
"응."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생각보다도 직설적이고 당돌한 꼬맹이다.
"나 재미없는데?"
"이쁘잖아."
"그래? 너도 이뻐."
꼬맹이의 외모를 판단하는 것도 어이가 없고, 대충 한 말인데 앞에 있는 꼬맹이가 내 말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거짓말."
"꼬맹이가 이뻐서 뭐 하게, 잘 먹고 잘 커야지."
"넌 이쁜데?"
"나중에 못생겨질 수도 있어."
"그런 거야...?"
"그런 거지."
내 유전자를 봤을 때, 그럴 확률은 극한으로 낮겠지만...
이지영이란 꼬맹이는 혼자 날아다니는 박지훈을 보며 감탄했다.
"와... 쟤가 지훈이지? 네 친구."
"따까리야."
"...? 따까리가 뭐야?"
"꼬붕이지."
"꼬붕?"
"꼬부기야."
".....?"
꼬맹이한테 근본 없는 대화를 하고 있으니, 고개를 갸웃하는 게 강아지 같고 꽤나 귀여웠다.
나는 이지영이란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왜 저기 가서 안 놀고."
"난 운동 재미없어."
"뭐가 재밌는데?"
"피아노..."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축구를 지켜보자 3분에 한 번꼴로 지훈이가 골을 넣는다.
'저 새끼는 애들한테 한 번쯤 봐줄법한데.'
한심한 박지훈을 쳐다보고 있으니, 이지영이 나를 쳐다보았다.
"너... 피아노도 엄청 잘 치더라... 부러워."
"흠... 그런가? 그냥 치는 거야."
"못하는 게 뭐야? 수영도 잘하고, 그림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손가락을 접으며 말하는 꼬맹이.
마지막에 싸움도 잘한다는 말은 심각하게 걸리긴 했지만, 나는 꼬맹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엄마가 엄청 부러워했어..."
"무시해,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지금 시대엔 뭘 해도 먹고는 살 거 같더라."
"...그래도 엄마 말인데?"
"나도 아빠 말 무시해 오늘도 할 일 없다고, 하루 종일 학교에 있겠다고 해서 꺼지라고 했어."
진짜로 아빠에게 꺼지라고 하진 않았지만, 꼬맹이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 그래도 되는 거야...?"
"어른한테 그러면 안 되지만, 아빠가 학교 오면 뭐 하게."
"음... 모르겠어..."
이지영이란 꼬맹이는 체육시간 뒤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