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SIYUN - In her brain. (57/99)



〈 57화 〉SIYUN - In her brain.

어제 생각 없이  전화에 브사 측에서는 발등에 불똥이라도 떨어진 듯 난리가 났다.
100만 달러짜리 계약, 수수료만 받아도 억 단위가 되기에.
하지만 나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는지, 계속해서 연락만을 요청했다.

"국제전화 비싼데 왜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옆에 있던 지영이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해외에서 오는 전화야?"
"응."
"누군데?"
"몰라, 브사 어쩌고 하는 거 같은데 귀찮아."
"그렇구나, 근데 시윤아, 방학에  할 거야?"
"음,  유치원 때 친구랑 아마 같이 해외로 여행 다녀올 같은데."
"진짜? 부럽다아~"

지영이와 방학 계획을 말하고 있을 때, 고민수 선생이 반으로 달려왔다.

"시윤아!"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민수 선생을 바라보자, 고민수 선생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허억... 시윤아 허업... 잠시 미술실 좀 같이 갈까?"

반 꼬맹이들이 고민수 선생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조용하게 끄덕였다.








고민수 선생은 미술실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시윤아, 상 안 받는다고 했어?"
"거기서 뭐라 했어요??"
"네가 상  받는다 했다고 하던데?"
"그럼 끝난  아닌가? 왜 선생님 통해서 저한테 말한대요?"

고민수 선생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쳐다봤다.

"상은... 필요 없는 거니?"
"네."
"...그렇구나."

갑자기 허탈한 표정을 짓는 고민수 선생이 천장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역시... 너한텐... 별거 아닌 일이었구나..."

천장을 보며, 웃음 속에서 허탈함과 우울함을 드러내는 고민수 선생.
나는  이상 얽히면 귀찮을 것 같아, 고민수 선생에게 말했다.

"저 가볼게요?"
"그래, 그러렴..."




얼마 뒤, 브사에서는 결국 관계자를 한국으로 보내 나에게 상장을 넘겼다.
여러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끝낸 뒤 일정에 맞춰 아빠가 데려다주는 곳으로 갔다.
경매장에서 내 그림을 산 중년 남성.
스위스의 거장, '로우 파르지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어눌한 영어를 쓰는 파르지에가 말했다.

"자네가... 시윤인가?"
"네."
"그림을 보고 정말 감명 받았다네.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꼭 보고 싶어서, 한국에 처음 와봤는데 좋은 나라더구나."

나는 한국의 칭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고 파르지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하네."
"넵. 그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이어 플래시가 터지며, 우리 둘이 악수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혹시,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나? 대화를 하고 싶은데..."

나는 아빠를 한번 쳐다보고는, 가능하다는 아빠의 사인에 끄덕였다.

"될 거예요."

파르지에는 경호원을 대동한 채 아빠를 따라서 움직였다.
아빠는 파르지에를 차에 태우며, 파르지에를 룸미러로 쳐다보았다.

"한식 어떠세요?"
"한국식바비큐... 한번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골인 소고기집으로 향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파르지에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나를 보며 질문했다.
그림한 장에 10억을 갖다 박은 남성에게, 질문 몇 개야 대답 못 해주겠냐만은.

"그숫자는 137번째 그림이라는 의미라던데... 맞나?"
"네."
"그럼 어디까지 그렸지?"
"지금은 182번 그리고 있어요."
"허어... 너무나도 궁금하구나..."

나는 돈을 펑펑 써버리는 호구같은 거장, 파르지에에게 그림을 또  생각으로 찍어놨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138. 이라 적혀있는 에이미 엘런의 초상화.

"세...세상에..."

갑자기 파르지에가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직접... 직접 볼 수 있겠나?!"
"그래요 뭐... 어렵지 않죠."

파르지에는 내 그림을 볼 생각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를 떨고 있었다.

"...?"







결국 파르지에는 우리 집까지 따라왔고, 아빠는 내 작업실로 안내했다.
내가 대충 포장한 그림들, 그중 '138'이라 적힌 그림을 꺼냈다.
지금 그리고 있는 '182'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파르지에.
부끄럽지만, 다연이에게 선물로 준다고 했던 일본 만화 캐릭터다.

"정말... 섬세하구나..."

내가 '138'이라고 적힌 캔버스를 건네자, 파르지에가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들었다.
대충 포장했지만,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는 파르지에.

"허억!!!"

너무 리액션이 좋다.
무릎을 꿇더니 닭살이 올라온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그림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무  없이 그림을 보고 있는 중년인.
그는 '138'을 보고 등줄기가 서늘해진 듯 움찔거렸다.

'바닥에 지린 거 아니겠지?'

파르지에.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스위스를 대표하는 거장.
나는 거장 파르지에를 오줌도  가리는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 말도 안 돼."

파르지에는 포장지를 발견하더니 완벽하게 보호를 하겠다는 듯이 꼼꼼하게 포장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프랑스... 프랑스로 가자꾸나."
"싫어요."
"...네 재능을 썩히면  된다!"
"아 싫다니까여."

조심스럽게 '138'이라고 적어놓은 그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 파르지에.

"이건 신이 내린 능력이란다... 네 그림을 보자마자 나는 마음을 알았단다."
"내 마음? 무슨 마음?"
"138번 그림을 보고서야 알았다. 괜찮다는 듯 편안한 그 손길에 담긴 그 슬픔을...  감정을... 그 끝을 보고 싶은 게지..."
"뭔 소리야...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이 숫자들은, 그림들은 뭔가? 매일같이 그림을 찍어낸 듯한, 집안 어디서든 보이는 미술 도구들은!"

갑자기 흥분한 파르지에가 말했다.

"저렇게 쌓여있는 노트들도...!! 전부 그림이겠지..."

나는 지금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게 없어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오해를 사고 있었다.

"아니... 파르지에? 잠시만요."

감정에 벅차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장.
저 열정이 나에겐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마치 고민수 선생과, 안준태 교수처럼...

그래서 그 열정을 보고 더욱 차갑게 대했었다.
포기하라는 듯이...

그러한 답답함으로 생긴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열정에 어울려줄 생각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하게 지금 생각나는 말을 파르지에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단지 취미인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 파르지에, 주변을 봐요 당신이 말한 그 편안한 손길이 어디에 있고, 내게 그런 간절함이 보이는지..."
"....."
"솔직하게 말할게요. 그 열정 저한테는 꽤나 부담스러워요."
"그렇구나..."

분노로 가득했다가, 이내 진정한 듯 허탈한 표정을 짓던 파르지에는 말없이 옷을 정돈하더니 끄덕였다.

"그랬던 거였어... 너의 그 재능이... 나는 너무나도 부럽구나."

급격하게 싸늘해진 분위기에 파르지에는 일어나더니 아빠에게 말했다.

"저녁은 정말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대접해서 영광이었습니다."

파르지에는 인사를 한  돌아갔다.

요즘 들어 기분이 이상하다.
가슴속이 간지럽고.
 그냥 취미로 하겠다는 걸 가지고, 난리를 못 쳐서 안달들인 건지, 이해조차 가지 않는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가득한 이에게,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에.
어울려주기 귀찮아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다연이에게 주기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팔레트에 유화 물감을 푹 짜고는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가득한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림으로 말해주기 위해서...




한동안 나는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오질 않았었다.
고조선일보 - 김지호의 딸, 김시윤 그림 10억에 팔다. 낙찰자는...
중심일보 - 아역배우 김시윤, 그림 천재 김시윤으로...
동화일보 - 스위스의 거장 파르지에 한국방문. 세간의 주목을 받다.


뉴스에 내 이야기가 내려오질 않았고,
아빠와 외출을 하다가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빠는 내가 위험해질까 봐  외출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다시 답답할 정도로 나를 보호하려는 아빠.
답답함을 느낀 나는, 앞으로 가능한 언론 노출을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색을 사용하고 씻어 내리기 위한 물통 안.
물의 색이 여러 가지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검은색은.
여러 가지의 색이 보이는 물통 같았다...

고민수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내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과거 고민수는 한국 종합예술대학교에서, 유망주로 뽑히고 있었지만.
지금의 아내와 아이를 위해, 돈을 가장 많이 준다는 서울 사립 초에서 선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여보, 요즘 왜 그래?"
"하아... 아니야..."
"왜 뭐가  안 돼?"
"뭐가... 안되긴 하지."

고민수는 와인을 벌컥 마셨다.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내.

"말해봐 내가 해결은 못해줘도, 덜어는 줄게"

잠시 고민하던 고민수는 테이블에 팔을 걸치며 웅크리면서 입을 열었다.

"...시윤이라고  제자가 있어."
"아, 알지 자주 말해줬잖아."
"어, 근데... 한번 알려준 건 잊지 않고, 다시 그려서 나는 시윤이가 노력까지 하는 천재인 줄 알았거든."
"....."
"그래서 차근차근 알려줬지, 붓을 사용하는 걸 어려워해서 연필로 그리는 것부터, 사물을 바라보는 법, 빛의 각도 이런 거."

고민수의 아내가 와인 잔을 들자, 고민수도 같이 들고 벌컥 마셨다.

"근데... 하하... 알고 보니까, 시윤이는 단지 자신이 보는 시야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거였는데 실력이 부족했던 거야."

잠시 와인이 담긴 잔을 바라보던 고민수가 말을 이었다.

"기본기가 완벽해지니까 무섭게 변하기 시작하더라고... 처음엔 그냥 '느낌 있는데?' 딱 이 정도였어, 내가 보기엔... 근데 한 장씩 한 장씩 그려갈 때마다 전에 느꼈던 걸 추가로 적용하기 시작하더라고."

고민수의 아내는 고민수의 표정을 보고 침을 삼켰다.
저렇게 열정을 보이는 자신의 남편,
고민수의 이런 모습은 대학시절 이후 처음이기에...

"그리고 유화 물감을 알려줬을 때... 이미 날 넘어섰더라."
"뭐?"
"내가 항상 가지고 싶어 했던, 아니 미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싶은 그림에 감정을 넣는 전달력... 하아... 시윤이는 이미 완성되어 있더라고."

고민수의 아내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고민수를 쳐다보았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그림이 그냥 취미래."
"응?"

고민수는 와인을 마시더니 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아...  혼자 '아름다운 원석'을 발견하고 신났던 거지, 정작 그 '원석'은 관심도 없었는데... 거기다가 내가 뭘 어떻게 말해, 내가 많이 부족해도 최고의 보석으로 만들어주
 싶었는데, 본인이 취미라는데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더해..."

고민수가 새하얀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바닥을 바라봤다.

"하하... 질투 나더라,  재능이 너무 부럽고, 또 부러워서 10살 꼬맹이가 질투 났어... 나 바보 같지?."
"....."
"내가... 시윤이었다면... 내가 그 재능을 가졌다면... 참... 신도 무심하다 생각도 했어."

고민수는 와인이 부족했는지 병째로 마셨다.

"그런 재능을 가졌으면서, 자기는 필요 없다는 듯이 행동할 때마다... 허탈함이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나."

고민수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바닥을 보고 있는 고민수의 턱을 잡고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민수야."
"으응?"
"너, 중학교  기억나?"
"....."
"내가 웹툰 작가 하고 싶어서, 그림 연습 하는데 네가 했던 말 기억나?"
"미안... 기억 안 나..."
"내가 몇 달간 연습해서 그리면, 너는 그림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한번 보고 그렸잖아.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에이 이게 뭐가 어렵다고.'"
"....."
"나 그때 참... 너 싫어했어 알지?"
"응..."
"그때 내가 느꼈던 너랑, 네가 지금 느끼는 시윤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 원석은 누구의 손길에 따라서 보석이 되는 게 아니야."
"....."
"보석은 그냥 혼자서 빛나니까 보석인 거야. 너는 보석의 존재를 세상에 꺼내고 알리는 역할을 이미  거고."
"하아..."
"보석 찾은 사람이 자기가 세공하는 거 본 적 있어? 당연히 다른 세공사한테 맡기고 팔아버리지."

고민수가 말이 없자,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보석을 보고 세공사가 나타나서 보석을 다듬을 거야. 네가 안 교수님을 만난 것처럼."
"....."

말이 없이 와인을 마시며 고민을 하는 고민수를, 그윽하게 쳐다본 고민수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아들 자는데 우리 둘째 만들까?"
"푸학!... 쿨럭... 뭐?"

고민수는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아내를 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