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SIYUN - In her brain. (58/99)



〈 58화 〉SIYUN - In her brain.

한동안 미술 선생은 그림 그리는 것을 대충 알려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름 방학식이 있기 하루 전.

나는 아빠의 차에서 하나의 캔버스를 꺼냈다.

"학교 잘 다녀와~"
"응, 이따 봐."
"뽀뽀해 줘."
"뭐래. 더러워."

나는 입술을 내밀고 있다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하는 아빠를 보고, 가볍게 차 문을 닫으며 학교 안으로 향했다.
나는 내 몸만  캔버스를 들고 낑낑거리며 미술실로 향했다.

미술실에 도착한 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미술실 앞에 캔버스를 세워 놨다.
뒤를 돌자 마주치는 선생.

"아... 안녕하세요."
"그래..."
"이거 선물이에요, 돌려주실 필요는 없고요."
"....."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그림만을 남긴  반으로 향했다.


고민수는 시윤이가 가져온 캔버스를 감싸고 있는 '183'이라 적혀있는 포장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심란하던 상황에 수업 시간이 시작되었고, 창고에 그림을 넣었다.
수업을 진행하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있는 캔버스가 떠올랐다.

"...하아."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으응? 아니란다~ 여기는 이렇게..."

고민수는 수업을 끝내고, 창고에서 캔버스를 꺼내왔다.

"...후우....."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었지만 차마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했던 말, '시윤이는 그냥 보석일 뿐이다.'를 되뇌이며 캔버스의 그림을 확인했다.

"....."

그곳에 있는 그림은, 시윤의 자화상이었다.








한국 종합예술대학교, 미술에선 대한민국 15년째 1위를 달리고 있는 대학교의 연구실.
화공(畵工) 안준태 화백.
안준태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시윤이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꼬마 숙녀가 그린 그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해..."

그리고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오는 애제자 고민수를 발견하곤 기쁘게 반겼다.

"오! 무슨 일인가?"

고민수가 반갑긴 했지만, 안준태는 자신도 모르게 고민수 품에 소중하다는 듯이 안겨있는 캔버스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다.
안준태는 그곳에 적힌 '183'을 보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현제 세간에 알려진 것은 '137'이 마지막이었기에.
안준태는 캔버스에 시선을 고정하며, 빠르게 고민수에게 다가갔다.

"...볼 수 있겠나?"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안 교수는 빠르게 책상 위에 있는 그림들을 치우고 고민수를 앉혔다.
그리고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자꾸 '183'이라 적힌 캔버스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시윤이... 작품 맞습니다. 그리고... 아닙니다 그냥 보는 빠르겠어요."

고민수는 조심스럽게 캔버스의 포장을 뜯었다.
기대되는 눈빛으로 캔버스를 바라본 안준태는 그림을 보자 말이 없어졌다.

"....."



'SIYUN  In her brain' 시리즈 중 지금까지 시윤이가 그린 자화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183'에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시윤 특유의 붓 사용법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과감한 물감의 양,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의 시윤.

안준태는 시윤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림의 시윤이는 웃고 있지 않았지만, 주변 배경으로 인해 보면 볼수록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표정을 감춘다는 느낌을 주는 두껍게 묻어 나온 물감과,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  섬세하게 표현한 얼굴의 선을 지나,
생기가 가득한 두 눈동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보는 이들에게 웃고 있다는 착각을 준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배경이 더욱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화상'의 주제가 되는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보이도록.
시윤의 자화상은 현재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주제 따위는 상관없는 나에게 그림은 진짜 취미일 뿐이라는 듯이...

이들은 '183'을 보며, 'SIYUN- In her brain'의 의미를 다시  번 떠올렸다.



"허어..."
"제가 이 그림을 봤을 때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도록자신을 놔두라고 하는  같더라고요. 기대 좀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림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건가..."
"예..."
"...어른이 돼서 꼬마에게 너무 많은 부담감을 안겨준 것 같군..."
"그런  같아요."

안준태 교수는 'SIYUN - In her brain 137.'을100만 달러에 구입한 스위스의 거장 파르지에를 떠올렸다.
인터뷰에서 오만하고, 건방지고, 괘씸한 꼬맹이라고 이야기한 파르지에.
안준태 교수는 고민수와 대화를 하며, 파르지에 에게 이 '183'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여름방학이 되고 아빠를 끝없이 설득해서, 결국 다른 게임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시발!!! 뭐해! B 구역으로 가라고!!! 못 맞추면 견제라도 해!!!"
"너 욕 그만해라 진짜로 뒤진다."
-"와... 0킬 10데스 미치겠네... 아니 솔직히 이건 아니잖아! 왜 이렇게 못해!"
"나 안 해 시발."
-"솔직히 0킬 10데스, 사람 새끼 아님 인정?"
"야, 너네 집이랑 우리 집 중간에있는 그 한남대교로 와라."
-"지랄, 우리 집까지 10분의 1도  되는구만, 그게 어떻게 중간이야"

박지훈 이 개새끼는 방학  내 얼굴을 안 본다고 선을 크게 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다스리며 말했다.

"아무튼 안 해."
-"아  왜... 못하면 연습한다며."
"....."
-"왜 그럴까나~? 설마 시윤이가 한계를 느끼는 거야?"

나는 더 듣다간 본체를 박살 낼 거 같아 말없이 컴퓨터를 껐다.
밖으로 나와 소파에 앉아있자 아빠가 눈치를 본다.

"시윤아... 왜 기분이 안 좋아?"
"아니야."
"게임이 재미없어?"
"하아... 다른 게임 할래."

아빠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표정을 보고 차마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떤 거?"
"내가... 잘하는 거. 찾을래..."

나는 아빠 옆에서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인정한다.

나는 게임을 존나 못했다.
무엇보다, 할 때마다 신나있는 박지훈을 보고 있으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해서  이상 하지 못할  같았다.

거기에 더해 저 새끼는 모든 신체적 능력치를 게임에 몰빵한 것 마냥, 컨트롤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저 족같은 새끼한테 모든 게임을 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게임을 하다가,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 단풍잎 게임을 켰다.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기는 사람들, 역시 단풍잎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아니 애도 아니고 이게 뭐야, 기껏 재밌는 거 찾아왔드만."
"닥쳐라."
-"삐졌어? 진짜 계집 다됐네."

나는 머릿속의 무언가 투두둑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콰앙!!!

내가 키보드를 들고 책상에 내리치는 '샷건'에 아빠가 놀래서 달려왔다.
망가진 키보드와 책상을 본 아빠에게 오랜만에 먼지 쌓인 매를 맞은 뒤, 무릎을 꿇고  팔을 하늘 위로 든 뒤 벽을 바라봐야했다.
그리고, 1주일간 게임 금지라는 처벌을 받았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일 거다...'

방학기간이라 박지훈과 만날 수 없음에, 나는 벽만 바라보고 분노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안, 한 노인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르지에...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파르지에는 평소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식사라도 하시지..."
"괜찮습니다."

파르지에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거장 안준태, 그가 보낸 '183'이라고 적힌 그림을 보고 있었다.
 주 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들리며 만남을 가졌던 꼬맹이가 생각났다.
미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던 그런 꼬맹이.
그런 외모를 가졌음에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할 그러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자신은 그런 거 필요 없단 듯이 행동하던 건방진 꼬맹이.

하지만 그런 꼬맹이가 자신을 설득이라도 해보려는 건지.
안준태를 통해 보낸 이 그림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어쭙잖은 전문가들은 제대로 볼 수도 없을 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실린 그림.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이라도 하려고 하는 듯이, 보는 이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자화상.
자화상 안에 그림 그리는 꼬맹이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어떠한 표정을 짓고 싶었던 것인지 알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본다면, 평온하게 웃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고,
허기진 상태에서 본다면, 고민을 하며 급하게 그림을 그리는  같았으며,
피곤한 상태에서 본다면, 우울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이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파르지에는 모든 생리적 현상을 제외한 시간을 '183'을 감상하는  투자했다.
생기가 가득한 채로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는 것 같은 초상화의 두 눈.

경이롭다...

"하아... 이런 재능을 가지고..."

턱을 괴며 그림을 바라보던 파르지에는 꼬맹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는 단지 취미인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거기까지. 파르지에, 주변을 봐요 당신이 말한 그 편안한 손길이 어디에 있고 내게
그런 간절함이 보이는지..."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미 완성된 인격을가지고 있던 괘씸한 꼬맹이.
풍족한 집에 태어나, 부족함이라고 느껴본  없는 것 같은 꼬맹이.

"솔직하게 말할게요.  열정 저에게 부담스러워요."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자신이 샀던 그림을 반으로 찢어 뭉개고 싶었다.
하지만 '137'를 보는 순간...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 말에 자신이 살아왔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도, 머릿속에선 꼬맹이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꼬맹이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니... 그 어린 소녀의 감정을 알 것도 같았다.

부족한 거 하나 없이 자라면서도 엄청난 외모에 유명세를 타며 많은 시선을 받았던 꼬맹이가 시작한 그림.
무궁무진한 재능을 꽃피우며, 얼마나많은 시선들을 끌어 모았을까 상상하던 파르지에는 마지막으로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꼬맹이가 한 끼도 먹기 힘든 부족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 감정선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꼬맹이가 표현하는 절박함과 절규를 잠시 상상한 파르지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현재 수많은 시선에 부담스러워, 붓에 손을  대고 있지 않은가...

'그래... 취미일 뿐이구나.'







시간이 지나, 어느덧 여름방학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기존과  가지 다른 점이 생겼다면...
우리 집에 자신의 그림을 보내는 파르지에였다.
'그가 그린 그림은 최소 100만 달러부터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가격대를 자랑하는 파르지에의 그림 수십 장이 왔다.
자신이 받은 '183'의 답례이며, 자신도 취미일 뿐이라며.

"아빠 이거 버릴까? 너무 많은데?"
"...그건 아니지..."

그리고 오는 또 다른 택배.
고민수 선생의 그림과 안준태 교수의 그림이었다.
그들 또한 취미일 뿐이라며.

"아니... 부담스럽다니까 이게 뭐야..."

아빠는 그림들을 한 장씩 걸다가 너무 많은 그림에 결국 JSM 본사에 몇 점  걸어두었다.

"진짜로 그림 그리지말까...?"
"에이, 재밌는 거 하는 게 취미인 거야. 아빠도 노래 만드는 취미인 걸?"
"그치?"
"응."




개학식이 있던 날, 박지훈은 나를 보자마자 오랜만에 봤음에 반갑게 인사했고.
나는 멀리서 반갑게 인사하는 박지훈을 발견했다.

압도적인 기억력 덕분에, 마치 어제 일처럼 생각이 나서,
박지훈이 방심하도록,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가 안면에 주먹부터 꽂았다.
요즘 내 주먹을 피하고 매섭게 반격하는 게, 나도 운동을 시작해야 하나 싶었지만, 저 족같은 새끼를 패기엔 아직까지는 거뜬했다.
오랜만에  나에게 맞은 박지훈이 코피를 닦으며 말했다.

"시발! 보자마자  짓인데!!!"
"내가 너 새끼 보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냥 오늘 뒤지자."
"혀...형님?"
"이 시발새끼, 이제서야 형님으로 보인다 이거지? 넌 뒤졌어."

내가 주변에 보이는 모서리가 뾰족한 돌멩이를 줍자, 기겁하던 지훈이 뒤도  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로와 씨바알!!!"
"그거 맞으면 나 진짜 죽소 형님!!!"

멀리서 보던 서울 사립초 선생은 우리가 술래잡기를 하는  알고,
개학을 실감하듯 뿌듯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부어있는 박지훈 옆에서 도도하게 앉아 책을 펴고있었다.
박지훈은  씹은 표정으로나를 바라봤다.

"....."
"뭐."
"아닙니다."

박지훈은 쌍커풀 수술을 하더니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고, 눈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 변할  있나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이 전보다 몇 천배 나았다.
나에게 맞아서 얼굴이 부은 것을 제외 한다면.
그러던 중 박지훈이 혼잣말 하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내가 진짜... 조금만 더 크면 봅시다... 절대로... 나보다 약해지지 마쇼."

나는 책을 덮으며 지훈을 쳐다보았다.

"뭐라 했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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