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다연이의 짝사랑 (59/99)



〈 59화 〉다연이의 짝사랑

지훈이와 떠들고 있자, 오랜만에 보는 지영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영이는 다가와서 뭐가 그렇게 급한지 가방도 벗지 않고 근황을 얘기했다.
얼굴이 부어있는 지훈이를 보고 움찔한 지영.

"싸...싸웠어?"

지훈이 지영이를 쳐다보자 지영이 흠칫했다.

"나?"
"으...응."
"니 앞에 있는 애가 그랬어.'
"...지...진짜?"

나는 웃으며 지영이의 시선을 뺏었다.

"쟤가 뻥치는 거지, 내가 어떻게 사람을 때려~"

지영이는 잠시 과거 내 그림 같았던 플라잉 니킥이 떠올랐는지, 내 눈치를 보며 천천히 끄덕였다.

"그...치?"
"그러엄~"

지영이는 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걸어두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연이는 요새 나를 만날 때마다 김태오 이야기만 했다.

"...고백한  아니지?"
"응! 더 이쁘게 꾸미고 있어!"
"그렇지, 그렇게 티내지 않고 행동하면 언젠간 태오도 봐줄 거야."
"응!"

다연이는 생각보다  말을  따랐고,더욱더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태오와 짝이 되면서, 태오 앞에선 좋아하는 만화책도 안 읽고 공부만 하는 것 같다.
이진석은 이 아슬아슬한 상황도 모르고, 평균 99점이라는 수치에 기뻐했지만...

만약 태오가 다연이에게 반해 고백이라도 하는 날엔, 우리 다연이 마음이 태오에게 납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로는 얼굴도 본적 없는 태오지만, 얼마나 대단한 꼬맹인지 궁금하긴 했다.

듣기로는 HSW 기관장의 손주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김태오를 뽑지 말라고 했음에도 뽑은 것 같지만.
물론 이진석이 최종으로 뽑은 이유는 낙하산이 아닌 오로지 실력이었다.
모든 꼬맹이를 다 붙여놔도 혼자서 이길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이라고 할 정도니,  호기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훈이랑 싸우면 어느 정도 버틸까? 정도의 수준이지만.
지훈이가 질리는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만약 내가아닌 다른 10살 꼬맹이한테 진다면 팝콘각은 확실하다.

"시유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나? 음... 드리밍 지수 이모?"

내 시윤 일생 통틀어 가장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은 맞는 것 같다. 아 동성인가...?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다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
"맞다 지훈이 잘생겨진 거 모르지?"
"뻥치지 마!"

나는 지훈이의 사진을 보여줬다.
날카로운 눈매로 인해 사나워보이는 인상이었다.

"....."

말이 없는 거 보니 진짜 잘생겨졌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태오랑 비교해 봤을 때는 어때?"
"못생겼어."

'미안하다 재형아. 내 실수다.'

나는 점점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다연이를 보며, 아이는 빨리 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연이의 침대에 누워있자, 오랜만에 보는 비운의 안토니오가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요즘 안토니오는 어때."
"가연이가 안놀아줘서 혼자  지키지."
"다연이가 놀아주면 되잖아?"
"흠... 하지만 나는 요즘 바쁜 걸? 그래도 항상 같이 자~"
"그래?"

인화된 태오의 사진을 보기 시작하는 다연, 사진은 꽤나 닳아있었다.

'저렇게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쯤 되면 말리는 내가 나쁜 년이 된 것 같은 정도였다.
웃으면서 사진을 바라보는 다연이를 보고 있으니 참...  장인어른들의 표정이 그런지 알듯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한동안 유화 물감의 사용빈도를 줄였다.
반면에 더욱 많아진 수채화 물감.

학교에서 그림을그리고 있으면, 고민수 선생은 전과 같은 부담감을 주지 않고 처음과 같은 태도로 나를 대했다.
가끔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할 때면, 엉덩이에 쥐가 나는  같아서 구석에 마련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봤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지속되는 관심에 부담스러워진 나와 아빠는 어떠한 섭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덧 3학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고, 나는 전과 같이 아빠의 직장동료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 된 지금, 나이와 비례하듯키도 빠르게 크기 시작해서 나는 새로운 교복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박지훈은 그동안 꽤나 공부에 열중하더니, 결국 이번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꽤나 열심이다?"
"훗... 꼬맹이들한테  수야 없지."

박지훈의 말처럼 이번엔 턱걸이가 아니었다.
운동 때문에 수업도 잘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
특히 시험기간엔 나랑 같이 게임도 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지영이와도 같은 반이 되었고, 나는 지영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생각 없이 지영이에게 물었다.

"아빠 직업이 뭐야?"
"응? 우리아빠? 검사."

지영이네 아빠가 칼을 휘두르는 직업은 아닐 거고... 역시 서울사립초등학교는 심상치 않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꼬맹이들의 키가 들쑥날쑥했다.
박지훈의 키는 같은 나이대의 상위권이었고, 나 역시 빠르게 크기 시작해서 다시 지훈이와 비슷해졌다.

"멈춘  아니냐?"
"...너가 크는 거잖아."

주변 여자아이들을 보면 나는 확실하게 큰 키다.

"이 새끼 우월한 키는 어디감? 아핰?"
"...하지마라."
"처먹기는 개돼지마냥 처먹으면서 다 똥으로 나왔나보네."
"하아...시발..."

나한테 놀림을받고 있는 박지훈은 생각보다꼬맹이들에게 고백을 많이 받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범죄라며 놀렸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압도적인 수의 남자애들에게 고백을 받았고, 내 신발장을 열면 편지와 초콜릿이 하루에 하나씩은 꼭 있었다.

"...엌? 받으면..."

스팡! 소리가나는  주먹감자로 인해, 박지훈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은 뒤, 편지를 이대로 버리면 꼬맹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어쩔 수 없이 가방에 넣었다.
물론 학교가 끝나기 전에 무조건 버렸다.
집에 가져가면 아빠가 놀릴게 분명했기에...

"읽어나 봅시다."
"꺼져."
"아 왜에엥"
"...?"
"미안."




나는 아빠가 땋아준 머리를 만지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생각보다 공부에 열중하는 박지훈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책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병신.'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이제 박지훈은 내가 아는 재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힘들었다.
억지로 밝은척했던 재형과 실제로 밝은 지훈.
서로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둘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컸기에...

물론 누군가 나를 본다면, 그 강한성이라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지훈이도, 나를 강한성이 아닌 새로운 인격체로 대하는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나는 머리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그래서 고추는 컸냐?"
"진짜 뒤진다."

나는 조커처럼 과장되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아핰?"
"시발!!!"

그리고 역시나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박지훈!!! 또 너야!? 나가!!!"

요즘 들어  장면을 많이 보는  같다.
나는 뒤에 서있는 박지훈을 보며 씨익 웃었다.

"김시윤 너도 똑같아! 같이 나가!"
"네?"

2학년 담임이었던 국어선생의말을 듣고 나는 억울한 눈빛을 보냈지만,
역시 나를 경험해  국어선생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쭈? 안 나가지?"
"아, 아닙니다. 넵."

나는 결국 사물함이 있는 교실 뒤로 나갔다.
시윤이는 자기 자신도  11살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내 그림실력에 대해서 고민수 선생도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것을 보고, 같이 그리며, 그림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뿐.
고민수 선생의 그림은 처음 봤을 때보다 생기가 넘쳤다.
실력이 몇 단계를 뛰어 넘은 것처럼.

"와... 저건 어떻게 하는 거에요?"

나는 꽃잎이 물에 번지듯 퍼져있는 붓 칠을 봤다.

"이건 이렇게....."

고민수 선생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에게 쏟던 열정을 자신의 그림에 쏟기 시작했을 뿐. 달라진  없는 고민수 선생이었다.

"시윤아 중학교 어디 생각하니?"

고민수 선생의 목적이 보이는 질문.
나는 모른척하며 대답했다.

"아, 이미 말은 끝냈어요. 일반 국립 중학교 가려고요."
"응? 왜?"
"아빠가 사립 초를 원했던 건, 제가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길 바랐거든요."
"아하..."

고민수 선생의 아쉬워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역시 내가 생각한 목적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아빠도 느낀 거죠 딱히 필요가 없는걸. 그리고 요즘 특수목적 학교 없어지는 추세잖아요."
"그렇구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이 소심한 고민수 선생에게 말했다.

"학교 선생 말고 학원 차릴 생각 없어요? 다닐 생각은 있는데."
"어?"
"내가  학원 다니면 인기는 두말할 것도 없을 걸요? 그리고 한종예대 수석 졸업만 간판에 붙여도 뭐..."

고민수 선생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니까 제가 어딜 가도 미술을 그만두지는 않는다구요. 그리고 한번 스승은영원한 스승이라잖아요?"
"시윤아..."
"됐고 저기 앉아 봐요 그려줄게요."

나는 웃으면서 고민수 선생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속의 고민수도 웃고 있었다.


나는 파르지에와 그림을 주고받고 있었다.
주제에 상관없이 다음 작품을 그리면 전에 받은 작품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보내주는 식으로.
하지만 파르지에는 내 그림을 전시하길 원했고, 내 허락 하에 직접 자신의 전시회를 열어 내 그림을 전시했다.
그 전시회를 보고 내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에게 연락이 왔다.

-"시윤아 '313' 사려는 사람이 있는데... 200만 달러를 불렀단다."
"그래요? 알아서 팔아주세요, 수수료 30% 챙기시구요."
-"늘 말하지만수수료가 너무 많군."
"어차피 세금 떼야하잖아요, 귀찮으니까 알아서 떼주세요."
-"흠... 그나저나 내가보기엔 유화'313'번 200만 달러는 너무 적군, 너를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뭐래요, 그림쪼가리에 200만이면 넘쳐나는 거지. 팔아요."

하지만, 파르지에의 입김으로 결국 300만 달러에 팔린 그림.
파르지에에게 30%를 가져가라고 말했지만, 세금을 뗀 금액 전부를 나에게 보냈다.
나는 파르지에가 내 그림을  때마다 선물로 그림 하나씩을 추가로 보냈다.

어차피 집에 넘쳐나는 것은 그림이기에.

가끔씩 물감이 부족하다고 편지를 보내면, 엄청난 가격대의 물감을 몇 박스씩 보내왔다.
이것이 윈윈 관계, 나는 안준태 화백에게도 내 그림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왔지만.
안준태, 이 사람은 한국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뭘 받는 걸 꺼려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다연이집에 자주 맡겨지고, 아빠는 국내 순회 공연을 자주 다녔다.
그래도 당일치기로 돌아오긴 했지만.
내가 이진석이 앉아있는 소파 옆에 앉아서 기대자, 이진석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뭐요."
"크흠..."
"말해 봐요."
"너무... 편안하게 있는 거 아니니?"

나는 다리를 꼬며 턱을 괴고 이진석을 쳐다봤다.

"불편해요?"
"크흠...아니란다..."
"아저씨."
"응?"

이진석은 보고 있던 신문을 접고는 나와 눈을 맞췄다.

"요즘 꼰대 같은 거 알죠? 다연이가 싫어할 수도."
"...다연이가 설마."
"슬슬 사춘기  때 됐는데 조심해요."
"그래..."

나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다가, 공부를 끝내고 뛰어오는 가연이를 바라봤다.

"가연이 공부 끝났어?"
"응!! 이거 시유니 누나야!"

공부가 끝났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를 그린 그림이었다.

"오... 완전 똑같은데?"
"그치?!"

가연이는 이진석의 품에 안겨있었다.

"심심한데 수영장 갈까?"
"응!"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서 다연이 방으로들어갔다.

'얼씨구...'

다연이는 자신의 비밀 일기장에, 새로운 모습이 찍힌 사진속의 김태오를 그리고 있었다.
금사빠인  알았던 다연이는 생각보다 진심인지,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깜짝 놀라며, 그림에 손을 얹는 다연.

"시유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거야!"

이젠 나한테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참... 섭섭한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다연이 마음  아는데?"

내가 장난스럽게 다연이의 코를 만지고, 옆에 앉아서 다연이의 그림을 고쳐주었다.
눈을 반짝이는 다연.

"확실히 잘생겼네."

크면 클수록  꼬맹이의 외모에서도 빛이 났다.

"그치?!"

그에 비해 다연이의 외모가부족한가?
절대로 아니다.
다연이의 귀여운 외모는 크면 클수록 더욱더 강조되고 있었고.
이건 대부로서의 시선이 아닌 인터넷 뉴스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외모 지상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을 가진 다연이다.
절대로 저 기생오라비에 비하면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압도하지.

"수영장 갈 건데."
"나도!"

다연이는 사진을 수첩에 소중하게 끼우더니, 서랍 속에 조심스럽게 넣어두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시유나 지퍼 당겨줘!"

나는 다연이의 래시가드 지퍼를 채워준 뒤, 수영복을 가지러 이진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이진석 앞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고, 이진석이 내 수영복 지퍼를 올려주었다.

"다연이 심각해요."
"...어쩌지...?"
"이거 말리는 내가 나쁜 년 된 거 같은데..."
"그 정도니...?"
"다연이가 나까지 경계하고 있어요."

이진석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먼저 고백은 절대로 안할 거 같은데... 김태오란 애한테도 충분히 말해놨죠?"
"....."
"안 했어요?"
"...언급하긴 했는데, 그럴 리는 없다고 하더라고..."
"다연이 사춘기 오면 난리 나겠네... 차라리 지금 고백했다가 까이는 게 나을 수도..."

내 말로인해 이진석은 정색을 하면서 답했다.

"다연이가 차이다니... 그건 안된다."
"안 된다고만 할  아니고 대책은 있냐고요. 하필이면 HSW 기관장님 손주라면서요. 아니 그걸 알고 뽑았어야지 하아..."
"....."

나는 한동안 이진석에게 잔소리를 늘어놨다.
이진석은 그런 나에게, 다시 몰려오는 피곤을 느끼고 있었다.

'하... 차라리 주주총회를  번 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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